아름다운 이팝나무 길에 ‘옥의 티’, 무신경한 사람들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 440-7에는 수령 380년의 거목인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벌써 십여 년 전에 정월 열 나흩 날 이곳을 찾아갔을 때, 누군가 나무에 대고 정성을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수고 20m에 밑동의 둘레가 3.3m인 이 느티나무에는 그럴 듯한 전설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고목은 흔히 누군가에 의해서 심어지거나, 고승의 지팡이 등이 변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옛날에 광교산 인근에는 8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이 89개의 절을 다 돌아보기 위해 이곳에 신발을 벗어놓고 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자 비가 많이 내려 신발이 다 썩어 느티나무 뿌리가 내렸다.
뿌리에서 생겨난 느티나무는 점점 크게 자라 어른의 팔로 몇 아름이 되었다. 이 느티나무를 팔려고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베는 도중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전설은 그렇게 한 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먼저 취하다
뜬금없이 더위를 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30도를 훌쩍 넘긴 복중 오후에(7월 29일) 길을 나섰다. 원 목적은 옛 절터인 창성사지를 찾아볼 심산이었으나, 느티나무와 그 앞에 펼쳐진 왕복 3km 정도의 이팝나무 길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창성사지가 어디로 도망을 갈 것도 아니니, 이곳부터 걷자고 동행한 김홍범 기자(경기리포트 사회부 차장)에게 제안을 했다.
느티나무를 찾아 광교산 입구서부터 걸어 올라가다가 보니, 웬 신선들이 한가롭게 나무 그늘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눈을 돌리니,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철문과 소나무, 그리고 구름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그리고 그 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경.
수원의 광교산을 오르는 길에 누군가 벼농사를 지었다. 지금이야 유명한 등산로가 많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원래 광교산 인근에는 농사를 짓는 토착민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논과 그 뒤에 집 한 채. 참 아름답다.
이팝나무 길을 걷다.
이 이팝나무가 하광교 느티나무에서 상광교로 오르는 길목 1.5km 정도의 도로 양편에 서 있다. 나무의 굵기로 보아 수령이 15년 정도는 지난 듯하다. 이 이팝나무는 도로 정비를 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이 요즈음 한창 꽃을 떨구고 있다. 도로 양편 인도와 차도까지 온통 이팝나무의 꽃이 떨어져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아이들과 함께 왕복을 해도 좋을 거리인 왕복 3km 정도. 이런 아름다운 거리를 왜 사람들은 그저 차를 타고 무심히 지나가는 것일까?
앞서가는 김기자의 등에 땀으로 흠씬 젖었다. 이 더운 여름 날 ‘길’ 취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많이 힘든 것 같다. 누가 이 더위에 아름다운 길을 찾겠다고 이렇게 땀을 흘릴 수가 있을까? 길 건너편으로는 산행을 마친 몇 사람이 한가롭게 걷는다. 저들은 이 길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길 끝에 불쾌한 마음이
느티나무에서 시작하여 다시 느티나무로 돌아왔다. 한 편은 인도가 되어있어 괜찮지만, 건너편은 좁을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불안해 보인다. 안전 펜스라도 쳐주면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길인데, 그런 점이 조금은 아쉽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느티나무 주변 의자에 앉아 쉬려고 다가섰더니 주변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떨어져 있다. 참 이런 모습에 어이가 없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야 무엇이라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바닥에 꽁초를 버려야만 했을까? 자칫 물이라도 꺼지지 않은 꽁초로 인해 느티나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텐데. 금연표지판이라도 붙여 놓아야 할 듯하다.
아름다운 길. 어젠가는 이 느티나무에서 시작해 돌아오는 왕복 3km의 이팝나무 가로수 길이 또 다른 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 길에 안내 표지만 하나가 있었으면. 이 글은 언제 이팝나무를 심었고, 어떤 이유로 심었는지. 그런 것 하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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