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이는 행궁동 벽화골목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이임경 작가

 

1일 오후, 행궁동에 소재한 경기도무형문화재 소목장 기능보유자 김순기 옹과 예술공간 봄을 돌아보기 위해 행궁동 벽화골목을 들어섰는데 누군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행궁동을 다니다보면 이런 모습을 가끔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크게 마음 쓰지 않고 그냥 지나쳐 볼일부터 보았다.

 

한 시간 이상 지났는데 일을 보고 돌아 나오다보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행궁동은 벽화골목에 햇볕에 들지 않고 찬바람이 골목길로 몰려들어 딴 곳보다 날이 쌀쌀한데도 미동도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런 작업을 햇볕도 들지 않는 골목에서 하고 있는 모습이 마음이 쓰여 잠시 말을 건네 보았다.

 

수원문화재단에서 발주한 행궁동 벽화길 조성 사업에 선정되어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모두 8명의 작가가 선정이 되었는데 그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햇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이 8일 째 작업인데 골목이 유난히 찬바람이 불어와 중무장을 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젊은 작가들의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다

 

이임경 작가는 성신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고 한다. 벽화를 그리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수원문화재단에서 행궁동 벽화골목에 벽화를 그릴 작가들을 모집했는데 선정되어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이임경 작가는 한 달 안에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벽화작업에 선정된 작가들이 각자 알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햇볕도 들지 않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골목에서 쭈그리고 벽화를 그리다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조금이나마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이임경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작가들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아 이렇게라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벽화작업에 지원을 하게 됐다고 대답한다.

 

작가에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를 물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예능계통은 취업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가장 먼저 경제적인 면이 충분하지 않으면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대답이다. 또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는 대답이다.

 

 

작가들이 마음껏 기량 펼칠 수 있어야

 

이임경 작가는 대학을 마친 이름없는 작가들이 경제력이 없다면 마음 편하게 예술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그런 어려움을 그래도 이런 작업이라도 있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고 햇볕조차 없어 찬바람만 불어오는 행궁동 벽화골목. 그곳에서 쌀쌀한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있는 작가를 보면서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으로 마음이 편치않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장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어찌보면 지극히 냉정한 사회로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을 쏟아낸다. 음악, 미술, 무용, 체육 등, 모든 예체능분야가 그러하다. 수많은 졸업생이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문을 나서지만 사회라는 곳은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인원이 극히 제한적이다.

 

나중에라도 혹 개인전 등을 열게되면 꼭 연락주세요라는 말로 벽화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고 싶었지만, 작가는 라는 대답과 함께 묵묵히 작업을 계속한다. 찬바람이 부는 곳에서라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작가.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한 때는 참 지겹도록 안 좋은 소문이 나돈 지동이다. 그것도 지동에 터를 삶아 사는 주민들과는 전혀 무관한. 이제 그 지동이 마을 만들기와 벽화길 조성 등으로 인해 유명한 동네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있는 지동과 지동사람들.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본다.

 

나눌 줄 아는 지동사람들

 

지동은 수원에서도 낙후된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에 50년 이상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마음이 착하다. 서로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살기 때문인가? 지동 사람들은 나누는 것을 즐겨한다. 지동사람들은 이웃과 마음의 담을 쌓지 않는다. 그만큼 지동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냥 넘기지를 못한다. 무엇이라도 하나 나누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옥상음악회에서 염태영 수원시장이 윤건모 팔달구청장. 박찬복 지동장, 김상욱 수원시의원 등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위) 지동영화제를 시작하기 전 공연(아래)


 

마을에 자원봉사를 하는데 직접 물을 끓여 차를 내오는 10통 통장님. 정성들여 모은 쌀을 불우한 이웃에게 전하는 40년 지동사람인 고성주씨. 불편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옥상을 공연장으로 내놓는 13통 통장님. 그런가하면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하는 자치위원장님. 낮이나 밤이나 골목길을 돌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유병남 할머니. 이런 분들이 지동을, 사람의 정이 가득한 마을로 만들고 있다.

 

마을 만들기도 박차를

 

좁고 또 좁은 골목, 그리고 어둡고 침침한 골목의 집안. 거기다가 낡아서 비가 새는 천정. 이런 집들이 지동에는 상당히 많다. 화성 창룡문 부터 복원된 남수문까지를 연결하는 화성을 바라보고 있는 지동마을. 이 지동이 마을만들기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노인들을 위한 프로젝트인 황금마차(위) 아름답게 조성한 벽화길(아래)


 

하지만 지동은 수많은 변화를 했다. 도로를 말끔히 정비하는가 하면, 지동영화제, 옥상음악회 등을 열기도 했다. 또한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황금마차’라는 노인들을 위하는 프로젝트를 꾸미기도 했다. 이러한 것이 날마다 달라지고 있는 지동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지동 사람들은 요즈음 많은 기대를 하고 산다. ‘내일은 또 어떤 재미있는 벌어질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아름다운 골목벽화길 조성

 

지난 해 350m, 올 해는 680m의 골목벽화가 생겨났다. 올 6월부터 현재까지 자원봉사자 1,200명이 참여를 하여, 지동 10통과 13통 일대의 골목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지동 벽화길은 사전에 전문 작가들의 치밀한 구성과 밑그림 작업을, 자원봉사자들이 그려내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부자, 혹은 부녀, 모녀, 조손 등이 참여를 했다.

 

 

 

서울여자대학 미술학과 학생들의 벽화그리기 자원봉사(위) 지동부녀회에서 마련한 비빔밥을 지동 벽화길 유순혜 작가와 박찬복 지동장, 서울여대 학생들이 조리를 하고 있다.(아래)


 

골목길 입구를 들어서면 봄이 시작이 된다. 골목을 돌 때쯤이면 여름이, 그리고 좁은 골목을 통해 길을 들어서면 가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을의 끝에는 겨울과 편지, 동화 벽 등이 선을 보인다고 한다. 지동의 벽화길의 정점은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과 눈앞에 펼쳐지는 수원과 화성의 야경이다.

 

지동제일교회 종탑에 마련한 전망대는 내년 봄 정식 개관을 앞두고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낡고 퇴락한 건물을 작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바꿀 예정이다. 5개년 계획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끝나면, 지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변화할 것으로 기대를 한다.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성


 

한 때는 사람들조차 회피하던 마을 지동. 이제는 그 지동이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음 착한 지동사람들과 마을만들기 사업,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벽화길 조성이 지동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멀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 마을 지동. 우리가 지동을 자랑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9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경에 갑자기 지동의 골목길에 왁자하다. 무슨 일인가해서 들여다보았더니, 사람들이 벽에 붙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사단법인 수원시종합자원봉사자센터 이경묵 팀장의 인솔로, 지동 골목 벽화를 그리기 위해 찾아 온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여기저기 나뉘어 벽을 칠하고 그림을 그린다.

 

지동의 골목길 벽화는 청년작가들과 함께 삼성전자, 삼성생명, 회사 사원들과 일반 자원봉사자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지난해 280m의 골목길 벽화작업에 이어, 올해는 680m의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골목 벽화작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벽화에 표현하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지동 골목길을 찾아든 것이다.

 

 

 

가족봉사자들도 참여 해

 

30여명의 자원봉사자 중에는 가족이 함께 참여한 사람들도 있다. 친구끼리 참가를 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딸, 엄마와 두 딸의 가족도 있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거주한다는 김현주(엄마, 41세)는 큰딸 이혜림(중 1)과 작은딸 이유림(초 4)을 데리고 벽화작업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고 한다.

 

“오늘로 세 번째 참가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벽화작업에 참가를 했는데, 날이 덥고 해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네요. 또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이곳을 지날 때는, 저 그림이 내가 그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고요”

 

 

 

열심히 담벼락에 담쟁이넝쿨의 잎 작업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친구들이 함께 참여를 하기도 했다. 열심히 봄에 해당하는 벽에 개나리꽃을 그리고 있는 김민기(계원여고 1년), 박은주(장안고 1년), 장원경(장안고 1년) 등은 벽에 붙어서서 열심이다. 그림을 전공한다는 이 학생들은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이런 벽화그림을 지원했느냐고 물으니

 

“저희는 미술을 전공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해요. 토요일에 이렇게 한 번씩 봉사를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나중에 벽화가 다 완성이 되면, 이루었다는 뿌듯함도 가질 수 있고요”

 

이렇게 벽화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지동의 칙칙하던 골목이 달라지고 있다. 아직은 한낮의 기온이 높기도 하다. 따가운 햇살로 인해 봉사자들이 쉽게 지친다. 그런 봉사자들을 위해 주민들은 얼음물을 내다주며 격려를 하기도. 사람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아간다는 지동 사람들은, 요즈음 골목 벽화작업으로 인해 사는 재미를 붙여간다는 것.

 

 

7살 꼬마 형주는 골목길에서 이름난 화가

 

골목을 들어서면 벽 한 면이 온통 나비들로 가득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꼬마들이 그린 나비들이 벽에서 날아다닌다. 그렇게 벽에 붙어서 나비를 그렸을 꼬마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건너편 벽에 작은 꼬마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름이 무엇예요?”

“김형주입니다.”

“몇 살예요?”

“일곱살요.”

“여기 몇 번째 왔어요?”

“..... 세 번요(한참이나 생각을 한다)”

“그림 그리는 거 재미있어요?”

“예, 재미있어요.”

 

너무나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꼬마화가에게 방해를 하는 것 같아, 더 많은 질문을 할 수가 없다. 그 옆에는 누나들이 벽에 붙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동골목에서 꼬마화가 형주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골목.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칙칙하던 골목길이 환하게 변화고 있다. 5개년 계획으로 그려지고 있는 지동벽화길. 아마도 3.6Km에 달한다는 14개의 골목길 벽화가 다 그려지는 날에는, 이곳이 또 다른 명소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지금도 간간히 사람들이 찾아들어 골목에서 눌러대는 셔터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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