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에 드는 액은 이월 영등으로 막아내고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삼짇날 막아내고

삼월에 드는 액은 사월초파일에 막아내고

사월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로 막아내고

오월에 드는 액은 유월 유두날 막아내고

유월에 드는 액은 칠월 칠석에 막아내고

 

정월 초사흘부터 대보름까지 수원의 각 가정에서는 홍수막이라는 의식을 치렀다. 물론 지금에야 이런 광경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홍수막이는 일 년 간 사람에게 드는 나쁜 일들을 막아내는 일종의 제의식이다.

 

수원은 일찍 팔달문 안과 밖으로 장시가 섰던 곳이다. 자연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장거리가 활성화되면서 한양에서 축출을 당한 무격(巫覡)들이 노들나루를 건너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장시가 활성화 된 수원은 딴 곳보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을 테고, 그만큼 장사를 함에 있어서 궁금증도 많이 일어났을 것이다.

 

 

영동시장은 아예 거북산당을 섬겨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은 200여 년간이나 유서 깊게 전해 내려 온 지역의 전통굿으로, 경기도 수원 팔달문 인근의 영동시장 내에 신당이 있다. 시장의 역사는 1790년경 수원성 건립과 함께 하며, 그 때부터 터주가리 형태의 제당이 있었다고 한다.

 

영동 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축조된 이유를 보면 화성 건립을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연히 남문밖에 상포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적인 시장의 형태를 갖추고 되면서 당이 선 것으로 보인다. 거북산당은 상인들을 주축으로 상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도당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시장 사람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시장에 불이 잘 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 시장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없어도 당제는 올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영동 거북산당 도당굿은 영동시장 상인들을 주축으로 근 200년이 넘는 시간을 전승이 되어 온 것이다.

 

 

당의 명칭이 거북도당 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이 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고도 하며, 또 인근의 구천동과 가깝고 주위에 물이 많은 곳이며 풍수지리적으로 불을 제압 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처에 거북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구릉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 이름을 따 거북산당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정월에 홍수막이를 해야 안심이 돼

 

칠월에 드는 액은 팔월 한가위에 막아내고

팔월에 드는 액은 구월 중구절로 막아내고

구월에 드는 액은 시월 상당 무시루떡으로 막아내고

시월에 드는 액은 동지달 동지 팥죽으로 막아내고

동지에 드는 액은 섣달 악귀 쫓던 방포로 막아내고

섣달에 드는 액은 정월 방망이 맞은 북어 한 마리

소지에 둘둘말아 원주 원강에 던져 막아내고

 

예전에는 거북산당에서도 홍수막이를 하였다. 원래 홍수막이는 각 가정에서 대청과 부엌, 안방등에 고사상을 마련해 놓고 무격이 징을 치면서 달거리라고 하는 홍수막이 축원을 하였다. 하지만 요즈음은 집안에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가 전문적인 무업(巫業)을 하는 무격의 전안을 찾아가 홍수막이를 한다.

 

 

정초에 이렇게 홍수막이를 하고나면 무엇인가 든든한 것이 있어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이 든든하죠. 그래서 홍수막이는 빠트리지 않고 합니다. 벌써 저희는 수십 년을 이렇게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어요.”

 

연무동에 산다는 이모씨는 정월에 홍수막이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홍수막이를 하고나면 일이 터져도 자신이 생겨 쉽게 넘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의 풍습인 홍수막이. 단순히 우상숭배로 치부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부터 전해지는 풍속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혹시 굿 보신 적 있으세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답은 두세 가지로 구분이 되어 나온다. 그 첫째는 “굿 좋죠. 우리 굿이야말로 정말 축제죠”라는 대답이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래도 우리 문화나 정체성에 대해서 조금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굿 TV에서 가끔은 보았는데, 무섭기도 하고요”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사람들이 있다. “굿 그거요 미신이고 귀신들이 장난질 하는 것이잖아요” 라는 대답을 하는 부류이다. 이런 사람들은 난 종교적 사대주의자라고 표현을 한다. 한 마디로 굿이 무엇인지 그 어원조차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여기서 어떤 특정 종교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굿은 아주 오래 선사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그 굿을 통해 우리는 감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먼 뜬금없이 굿 이야길 하자고

 

굿 이야길 하자고 하면 아마 삼년 열흘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만큼 한 때 우리 굿에 미쳐 살았다. 오늘 뜬금없이 굿 이야길 하자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굿판에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도대체 저 사슬세우기는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바로 그 특별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굿판을 혹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굿을 하는 도중에 통돼지나 족발, 혹은 소머리 등을 월두나 삼지창 등에 끼워 세우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슬세우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떡시루 등을 걸어서 세우기도 한다. 이 사슬이 잘 서야 그 굿을 신령들이 잘 받았다고 흔히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사슬세우기는 두 가지가 있다. 이런 굿판에 진열되었던 돼지나 떡시루 등을 세우는 사슬세우기가 있고, 또 하나는 물동이 위에 무당이 직접 올라서서 뛰는 ‘용사슬 세우기’가 있다. 용사슬이란 물동이 안에 물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슬'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

 

'사슬을 세운다' 는 것은 무의식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행위를 말한다. 대감이나 장군, 혹은 별상이나 신장 등에서 사슬을 세우는데, 사슬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상당히 깊은 뜻을 내재하고 있다. 무의식에서 ‘사슬’이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사슬' 이란 고리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생태계 등에서도 '먹이사슬'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먹이고리’를 말하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나타나는 사슬이란 의미도 이런 고리로 연결이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즉 창이나 삼지창 등을 자루를 밑으로 하고, 위에 소머리나 돼지머리 우족이나 통돼지 등을 올려 중심을 잡는 행위이다.

 

이것은 두개의 연결고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슬을 세우는 것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연결을 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 안에 신에게 올리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하기에 이 사슬이 잘 서야 신령이 감응을 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바로 그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사슬인 것이다.

 

무격이 직접 고리가 되는 용사슬

 

무당들이 자신이 모시는 신령들을 위하는 굿인 맞이굿 등을 할 때나, 내림굿 등을 할 때는 항아리에 물을 담고 그 위를 한지로 덮어놓는다. 이 위에 오르는 것을 ‘용사슬’이라고 한다. 흔히 ‘용사슬 세운다’ 혹은 ‘용사슬 탄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 역시 사슬과 다름이 없다.

 

일반적인 사슬은 제물로 대신하지만, 용사슬은 무당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는 것이다. 즉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인 사슬을 자신이 직접 세움으로써, 자신이 주제자(主祭者)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사슬이란 단순히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중요한 뜻을 가진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 된다.

 

‘굿은 미신이다’라는 일제의 허망한 이야기가, 아직도 공공연히 종교적 폄하로 사용이 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굿을 제대로 이해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 굿을 이용해 정말로 혹세무민을 하는 사람들. 이제 제발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온전한 사슬이 서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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