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250~380년의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들 자리해

 

한때 인기리에 방영된 KBS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촬영했던 전주향교는 어떤 곳일까? 이미 전주향교에서는 영화 김혜수, 송광호 주연의 야구단>을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주향교가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 등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그 보존이 잘 되어 있고, 경내에는 수령 250~380년의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들이 몇 그루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제379호인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조 선조 때 건립되었다고 하며, 대성전 중앙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전주향교의 건물 배치를 보면 중층누각으로 되어 있는 만화루를 지나면 일월문이 있다.

 

그리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 서무가 있고, 대성전 뒷담을 사이로 명륜당이 자리한다. 명륜당의 서쪽으로는 장서각, 계성사, 양사재 와 사마재, 그리고 주위에 교직사 등 여러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주향교가 특히 유명한 것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이 드는 고목인 은행나무들이 은행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꼭 방문하는 전주향교

 

우리는 흔히 <교동>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전주시 교동에 자리한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전하는 말로는 원 위치는 경기전 북편에 있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을 세웠는데, 향교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태종 1년인 1410년에 현재의 중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그 뒤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합심하여 선조 36년인 1603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는 가을이 되면 꼭 전주향교를 찾아가 본다. 남들은 전주향교가 사적이고 또한 어느 땐가 김혜수, 송광호라는 배우가 주연을 한 'YMCA야구단'이라는 영화를 찍은 곳으로 더 유명한 곳이라서 찾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가을에 전주향교를 찾는 것은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몇 그루의 은행나무 때문이다.

 

전주향교 안에는 5그루의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다. 수령 250~400년의 나무들은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나름대로의 자태를 자랑한다. 향교 입구에 세운 만세루를 들어서면 우측에 한 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그리고 일월문을 들어가면 대성전을 마주하고 좌, 우에 한 그루씩 은행나무가 서 있다. 좌측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400년 이상이 되었는데 온통 외과수술 자욱으로 그 연륜을 보여준다. 난 가을에 이 은행나무가 보여주는 위용에 늘 압도당하고는 한다.

 

 

물론 우리나라 전역에는 많은 은행나무가 있다. 그 중에는 은행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은행나무는 역시 수령 1천년을 훌쩍 넘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다. 그러나 몇 그루의 나무들이 모여있는 전주향교의 은행나무들은 또 다른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전주향교의 은행나무는 대성전 안으로 들어서면 대성전을 바라보고 우측에 또 한 그루가 있으며 대성전 좌측 쪽문을 들어서면 명륜당 앞쪽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모두 다섯그루의 은행나무들이 저마다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전주향교. 물론 그 중에 두 그루인가는 열매를 달지 않는다.

 

 

은행의 열매가 흐드러지게 달려있는 모습도 좋지만, 노란 은행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가을을 만끽 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고도 하지만 무엇이 대수랴, 진정한 가을이 그곳에 있는데. 몇 그루의 보호수들이 모여 가을을 알려주는 전주향교. 나는 그래서 가을이 되면 전주향교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 가을 온통 노랗게 변한 전주향교를 찾아가보자. 진정한 가을이 그곳에 있다.


여주문화원에 재직하고 있는 조성문(남, 54세) 사무국장이 2008년 1월 5일부터 11월까지 KBS 대하사극으로 방영이 된 <대왕세종>을 보면서, 드라마에서 잘못 알려진 것들을 지역의 신문인 세종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대왕 세종 바로보기>는 모두 100쪽에 이르는 작은 책이지만, 내용을 보면 대왕세종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하고 값진 책이다.

 

여주문화원에서 펴낸 이 책은 모두 44단락으로 구분된다. 태몽, 신문고 양녕의 여인들, 윤회 등 그 제목에서 보이듯 <대왕세종>이 드라마로 방영이 될 때마다, 그 회차에 잘못 전해지는 것들을 다음 주 신문에 하나하나 열거를 했던 것들이다.

 

  
▲ <대왕세종 바로보기>의 표지 여주문화원 발행. 조성문 저

이 책에서는 대마도정벌, 관리임명, 여진족 등 대왕세종이 당면한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또한 대왕세종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해 세종과 그 인물들 간의 관계를 짚어나간다. 윤회, 장영실, 변계량, 조말생, 황희, 최만리 등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대왕세종 중에서 황희가 벼슬길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극중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잘못된 부분을 저자 조성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세자 양녕을 감싸주었다는 이유로 태종의 미움을 받아 벼슬길에서 물러났던 황희가 1422년(세종 4) 2월 20일 조정으로 돌아왔다. 3월 18일에는 과전을 돌려받았고, 태종의 국상이 끝나자 10월 28일에 의정부 참찬이 되었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한 두 차례 황희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가 있었지만 별다른 반대는 없었다. 그러나 극중에서는 황희의 복귀를 두고 서경이 벌어졌다. 서경이란 조선시대 관리의 임명이나 법령 제정 등에 있어 대간의 서명을 거치는 제도를 말한다. 조선의 관리임명절차를 살펴보면 인사권을 관장하고 이조와 병조에서 해당 관료의 문벌, 충사연월, 공과, 재행, 현부 등을 심사하여 복수로 추천하면 임금이 이를 보고 비목을 내리게 되어 있다. 이어 이조와 병조는 수직자의 고신(임명장)을 사간헌과 사헌부에 보내 대신의 심사동의를 구한다.(중략)

 

고려 때에는 1품부터 9품에 이르는 모든 관리가 서경을 받아야만 하였으나, 조선은 1392년(태조 1) 12월 22일 태조 이성계의 명에 의해 4품 이상 고위관리의 고신은 관교라 하여 대간을 거치지 않고 임금이 직접 제수하였으며, 5품 이하 관리의 고신은 교첩이라 하여 대간의 서명을 받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정2품 의정부 참찬에 임명된 황희는 대간의 서경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하략)

 

이렇게 드라마에서 잘못 보여진 것들이 자칫 세종대왕의 업적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다가 보면 우리가 미쳐 몰랐던 역사 속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필자와의 일문일답

 

-대왕세종 바로보기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대하사극 <대왕세종>은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한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잘못 전해진 것들로 인해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에 대한 잘못 알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여주지역신문인 세종신문에 연재를 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그 다음 주에 신문에 게재하였던 44회분의 지적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역대 임금들 중 최고의 성군이라는 세종대왕이 잘못 알려진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올바른 세종대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주는 영릉이 있어 세종대왕과는 뗄 수 없는 지역입니다. 일 년 가까이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서, 우리에게 보여진 것들 중에 잘못된 것들을 올바로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방영이 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매회 마다 이렇게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드라마라는 특수성 때문에 조금은 다른 부분도 있었을 텐데요. 그런 부분은 어느 드라마나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아닌가요?

사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급적이면 올바른 내용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재미를 위해 조금은 각색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 된 상식을 전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대왕세종 바로보기의 배포처는 어디인가요?

문화원에서 발간하는 책들은 비매품입니다. 책도 한정판이구요. 각 문화원과 예술단체들, 그리고 관내 학교에 배포를 하였습니다. 우리 지역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세종대왕을 제대로 알아야한다는 생각에서죠.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기사를 여러분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다시 다음 뷰에 송고를 합니다. 지난 기사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경북에서 충북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조령 삼 관문에서 소조령을 향하여 흘러내리는 계류가, 20m의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수옥폭포. 단원 김홍도가 초대 현감으로 부임하기도 했다는 이곳은 '옥을 씻는다'고 할 만큼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명절 연휴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이 폭포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이다.

 

정자에서 바라본 한 겨울의 얼어붙은 수옥폭포
 

사극 다모와 여인천하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수옥폭포는, 지난 해 MBC 대하드라마 '선덕여왕'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름철에야 폭포의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폭포가 꼭 여름에만 아름다울까? 겨울철에 보는 폭포의 모습은 또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 그 모습을 보기위해 설 연휴에 찾아들었다. 여름철 주변 암반과 노송들이 어우러진 폭포는 절경이다. 하지만 설이 지난 명절에 찾는 수옥정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 줄까? 

 

연풍현감 조유수가 지은 옛 수옥정

 

폭포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 여름이면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흥을 돋우고, 겨울이면 빙벽으로 변하는 폭포를 보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 수옥정은 바로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정자이다. 정자가 처음 지어진 것은 숙종 37년인 1711년이다. 당시 연풍현감 조유수가 청렴했던 삼촌인 동강 조상우를 기려 정자를 짓고, 정자의 이름을 '수옥정(漱玉亭)' 이라 했다. 이는 폭포의 암벽에 적힌 글이 증명을 한단다.

 

물이 언덕에 부딪쳐 흐르는 모습이 옥 같다는 뜻이니, 가히 이곳의 경치와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당시의 수옥정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의 수옥정은 예전 수옥정이 있던 자리에, 1960년에 팔각정으로 새롭게 꾸몄다. 한 겨울 노송의 가지에는 하얀 눈이 쌓여, 그 무게로 가지들이 적당히 밑으로 처져있다. 엊그제 내린 눈을 치우지 않아 눈을 밟고 걷는 기분이 좋다. 발 밑에서 들리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이 눈길을 하염없이 밟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눈이 쌓인 노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옥정의 겨울정취


오늘의 수옥정은 암벽에 얼어붙은 빙벽과 그 틈새로 녹아 흐르는 물줄기 그리고 노송에 쌓인 눈꽃과 함께 서 있다. 이 수옥정을 조선조에 처음으로 연풍현감 조유수가 지었다고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도 이 수옥폭포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있다. 전하는 말로는 고려 말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공민왕은 이 수옥폭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작은 정자를 지어 소일했다고 하니. 나름 수옥정의 역사는 오래다. 공민왕이 이곳에 와서 행궁을 지었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자 하나 쯤은 지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바위 틈 사이에 얼어붙은 고드름

 
신비하고 아름다운 빙벽

 

얼어붙은 수옥폭포의 신비함

 

수옥폭포는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류의 두 곳은 깊은 소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 확인할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밑에서 바라보는 폭포 하나만 갖고도 이렇게 절경이다. 밑에 소는 얼음이 얼어있고, 중간에 바위의 틈새 사이에도 천정에 고드름이 달려있다. 암벽에 얼어붙은 빙벽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수옥폭포에는 얼음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두라마 여인천하와 다모, 그리고 최근에 선덕여왕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날이 풀리면서 조금씩 녹기 시작한 얼음이 물이 되어 소리를 내며 폭포 아래로 흐른다. 그 또한 여름 시원한 물줄기와 다른 정취이다. 폭포주변 나무에도 고드름이 달렸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신비한 겨울철의 장관을 연출한다. 겨울에 보는 폭포의 신비함. 매번 많은 폭포들을 찾을 때마다,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만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겨울에 만난 폭포는, 우리가 알지 못한 또 다른 풍광을 맛보게 한다. 아마 이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또 다른 수옥정의 모습과 함께.

난 원래 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인사이다. TV를 볼 때도 뉴스나 다큐멘터리 외에 것은 잘 보게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요즈음 새롭게 시작한 ‘신의’라는 드라마와 접하게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고 본 유일한 드라마이다.

 

SBS의 드라마 ‘신의’는 2012년 8월 13일부터 방송하는 월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기존에 만났던 드라마와는 다른 IF의 가정설을 극화한 드라마이다. 사람들은 색다른 소재에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신의는 첫 회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볼 수 있다.

 

 

김종학 연출 송지나 극본의, 신의는 고려 공민왕 1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거를 사는 무사 최영 역의 이민호, 조금은 푼수 같이 현대를 살아가는 속된 여의사 유은수 역의 김희선, 기철 역의 유오성, 공민왕 역의 류덕환, 노국공주 역의 박세영등이 열연을 한다.

 

상상 속으로의 여행이 주는 재미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배우는, 한참이나 연기를 쉬었다가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여의사 유은수역의 김희선이다. 2012년 서울의 강남에서 병원이라도 개업하기 위해서는 돈 많은 남자를 잡아야한다는 조금은 너무나 시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여의사 유은수는, 시공을 초월해 고려에서 현대로 온 최영에게 이끌려 고려로의 여행을 떠난다.

 

칼을 맞은 노국공주를 살려 낸 유은수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려고 하지만, 하늘 문이 닫혀버리게 된다. 유은수는 돌아갈 수가 없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영을 칼로 찌르게 되고, 다시 최영을 살려내기 위해 수술을 감행한다. 그리고 난 뒤 궁 안에서 온갖 팔푼이 같은 좌충우돌을 해가며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푼수 여의사의 좌충우돌 고려생활

 

33세의 성형외과 전문의 유은수. 그녀는 외과전공이었지만, 외과가 돈이 안 된다고 하자 미련없이 성형외과를 택한 조금은 속물스런 요즘여자이다. 그런 유은수의 행동은 낯선 과거의 세계 고려의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직 현대로 돌아가 3년만 고생을 해서 돈 많은 친구를 꼬드겨 강남에 개업의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이다.

 

현대에서 하늘 문을 통해 660년 전의 고려로 최영에게 끌려간 여의사 유은수(김희선). 조금은 팔문이 같은 그녀의 연기가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29세의 고려무사 최영, 그 남자는 엑스트라 분장을 하고 여의사 유은수를 납치해 고려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이 푼수 끼 많은 여의사에게 무엇인가 조금씩 끌려가고 있다. 여의사 유은수도 이 66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강남에서 고려로 자신을 데려간 젊은 무사의 눈빛 속에 깃든 슬픔을 보게 되고, 그런 젊은 우달치부대의 대장인 최영에게 마음이 끌린다.

 

판타지와 역사,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꿈을 꾼다. 어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았다면, 꿈속에서 자신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 나쁜 사람을 벌한다. 또는 하늘을 날아 역사 저 편으로 가서 활약을 한다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악한들을 혼내기도 한다. 드라마 ‘신의’는 그런 재미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역사 속에서 가정은 늘 재미롭다. 만약에 그 시대에 내가 그곳에서 이렇게 적을 물리쳤다면, 혹은 악한들을 물리쳤다면, 과연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등의 꿈을 이루어 줄 수가 있다.

 

최영 역을 맡은 이민호. 많은 우려를 나았으나 그의 연기는 눈에서 보이는 슬픔으로 인해 한 역사를 이끌어가는 비운의 무사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드라마 ‘신의’에는 긱양각색의 군상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사람, 그런가 하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미련 없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그 안에 존재시키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총 24부작으로 우리에게 수백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만나게 되는 사랑을 보여 줄 드라마 ‘신의’. 서로가 추구하던 삶의 목적이 달랐지만, 이들은 시공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단다. 어찌 보면 드라마 ‘신의‘는 우리에게 주는 재미 외에도, 진정한 사랑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군상들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기 위해 일침을 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여의사 유은수 역의 김희선의 연기가 기대되는 것도, 지금까지의 그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자료 사진은 SBS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한국민속촌의 남부지방 대가인 9호 집은, 한때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아마도 그런 사극에서 많이 보아왔단 집이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마다 이 집이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한창 인기가 좋은 성균관 스캔들은, 방송 내내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켰으니 말이다.

 

이 9호 집의 안채를 돌아보면, 참 ‘대가집이라고 하는 것이 별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고택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예술을 좋아하는 고장에서 이건을 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무식함에서 조금은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ㄷ자형의 구조물, 그러나 참 놀랍소

 

호남 대가집의 안채를 보면 참 놀랍다. 이 집의 주인의 미적 감각이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다. 아무리 좀 다른 대가집들의 집의 구조가 남다르다고 하지만, 이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에서 이건한 제9호집은, 그런 집들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저 이 안채 하나만 갖고도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안채를 바라보고 좌우측에 돌출이 되어있는 ㄷ 자형의 집은 좌우 대칭이 다르다. 좌측이 조금 짧게 돌출이 되어, 전체적인 집의 분위기를 색다르게 했다. 좌측은 돌출된 부분에 마루를 앞에 두고, 작은 방을 드렸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상당이 넓은 부엌을 두고 있다. 이 집 부엌의 크기로 보아, 지역의 대가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안방을 중앙에 둔 안채

 

부엌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식솔이 많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부엌의 옆으로는 안방을 두고, 그 옆에 대청을 둔 특이한 형태로 꾸며졌다. 즉 안채의 뒤편 - 자 부분의 중앙에 안방을 두고, 동편으로는 대청을, 서편으로는 부엌을 두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앞뒤로 툇마루를 놓았다.

 

 

 

 

이 호남의 대가집 안채의 아름다움은 바로 동편의 돌출된 날개부분이다. 대청과 연결이 된 이 부분에는 두 개의 작은 방을 드렸다. 툇마루로 안방서부터 ㄱ 자 형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이 날개부분 끝에는, 높임 누마루를 놓고 난간을 두른 정자를 하나 두었다. 정자와 같은 형태의 누마루를 깔아 멋을 더한 것이다.

 

방의 옆에는 반드시 마루를 깔고, 안채의 뒤편인 대청과 안방의 뒤에도 마루를 깔았다. 대개 집 뒤편은 소홀한 편인데 비해, 이 호남 대가집의 경우 뒤편이 오히려 더 아름답다. 창호 등을 섬세하게 꾸몄기 때문이다. 이런 집의 치목 하나를 보아도 예사집이 아니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안채를 바라보고 우측으로는 광채가 -자로 자리를 하고 있다. 4칸인 광체는 안채 쪽의 두 칸은 마루를 놓았다. 그리고 개방된 핫간 한 칸과 그 끝에 한 칸의 광을 드렸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집이다. 대문채 역시 대문 양편에 방을 드려, 식솔들이 다양하게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많은 탤런트들이 향내를 풍기고 갔을 이 호남의 대가집. 참 이 정도 집이라면 지금 당장 이 곳에서 살라고 해도 반가울 듯하다. 고택 답사를 하면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민속촌 안의 제9호집. 두고두고 분내가 풍겨날 듯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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