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일부터 5일까지 서울시청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공동체 라디오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 세계 공동체 아시아 태평양 라디오 대회는 이번에 세 번째 열리는 대회이다. 2005년과 2010년 인도에 이어, 아시아, 태평양 연안의 23개국 173명의 라디오방송국 기자들이 서울대회에 참석을 했다.

 

세 번째 열리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대회는 각국에서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이, 라디오 방송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주제별 토론을 통하여 공동의 관심사를 찾아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번 대회에 네팔에서는 모두 26명의 대규모 기자단이 참가를 했다.

 

 

네팔에는 모두 250여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특성상 김포 험한 산맥을 넘어 방송 송출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한 지역에 하나의 라이도 방송이 있다 보니, 그렇게 많은 숫자의 라디오 방송사가 있다는 것이다.

 

수원으로 초빙을 받아 온 네팔기자단 

 

네팔에서 참가를 한 26명의 기자단 중 대회에 지장을 주지 않는 기자단 중에서 11명과, 한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4명 등 15명이 수원을 찾았다. 이번 수원 초청은 e수원뉴스의 시민기자인 김형효씨의 초청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네팔에서 참가를 한 기자단 중에 2명의 지인이 있습니다. 부인 먼주구릉(네팔인. 네팔몽골리안 기자협회 한국지부장)과 함께 그들을 수원으로 초청을 한 것이죠. 네팔에서 한국으로 이주를 한 사람들의 규모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의 수가 공식적으로 21천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인 그들이 지난 2008EPS(한국어능력시험)제도에 의해, 매년 정기적으로 5천여 명 이상의 네팔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죠,”

 

이들은 수원역에 도착을 해서 화성과 지동 벽화골목 등을 돌아본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바쁜 일정으로 수원을 찾았다. 라디오 아시아 태평양 서울대회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잠시 동안이나마 수원을 구경할 수 있도록 김형효씨 부부가 배려를 한 것이다.

 

 

화성은 아름답고 전통적이다

 

예정시간인 오전 11시보다 늦게 수원역에 도착한 네팔기자단 일행을 김형효씨 부부가 수원역으로 나가 맞이했다. 이들은 자리를 화서문, 서장대 등을 돌아본 후, 성신사에서 화성열차를 타고 연무대로 이동을 했다. 연무대에서 창룡문을 거쳐 화성의 성 밖 길을 잠시 걸어 지동 벽화길로 들어섰다.

 

벽화길로 이동을 하면서 기자단에게 질문을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본 소감이 어떠한가를.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화성은 전통적이고 참 아름답다.”

하긴 그 이상의 답변을 듣는다는 것이 과욕인지도 모른다. 수원에서 수십 년을 산 사람들조차 화성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벽화골목을 들어서도 기자단은 사진을 찍기에만 바쁘다.

 

 

지동 벽화골목에 있는 벽걸이 평상을 내려주자, 너나할 것 없이 그 자리에 앉아 포즈를 취한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자동적으로 포즈를 취해주는 바람에, 사진을 찍기는 수월하다. 시인의 벽으로 가서 고은 시인이 쓴 지동에 가면이라는 시의 설명을 들은 후, 바쁜 일정으로 인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긴다.

 

과연 그들이 서너 시간의 수원구경에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갔을까? 그리고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본 것들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들을 초대한 김형효씨 부부의 바람대로 인쇄물을 통해서라도 화성과 정조를 기억하고, 다시 한국을 찾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130. 11월의 끝 날이 토요일이라서 인가, 시청 건너편 올림픽 공원 앞에는 많은 차들이 모여 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어디론가 떠나는가 보다. ()화성연구회(이사장 이낙천) 회원 30여 명도 버스에 올라, 2013년 추계 답사를 준비하고 있다. 마침 날씨도 며칠 간 추웠었지만, 이날은 많이 누그러져 답사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일행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에 소재한 백제 때의 고찰인 성주사지. 사적 제307호인 성주사지는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성주사는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평지형 가람 배치인 성주사

 

당시의 절들은 산골에 자리 잡았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충남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석등, 보물 제19호인 5층석탑, 금당건물과 그 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26호인 동삼층석탑, 보물 제20호인 중앙 3층석탑, 보물 제47호인 서삼층석탑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성주사지는 발굴조사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사실 성주사지는 1110일에 다녀 온 곳이다. 이 날은 12일로 보령시와 서천, 공주를 돌아보았고, 성주사지는 벌써 10여 차례나 돌아본 곳이다. 하지만 문화재라는 것이 어디 한 반 가보아서 끝낼 일이던가?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문화재이고 보면, 이번 성주사지 여행은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왔다.

 

남포읍성과 옛 동헌을 만나다

 

보령시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그 중에도 남포면 읍내리에 소재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5호인 남포관아문을 만났을 때는 신이 난다. 이렇게 읍성과 함께 있는 문화재를 한 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진서루와 내삼문, 외동헌 등을 만날 수가 있고, 거기다가 충남 기념물 제10호인 읍성까지 돌아보았으니.

 

 

남포관아문은 조선시대 남포현의 관아 건물이다. 앞에는 중층 누각인 진서루가 서 있고, 그 뒤편에 내삼문을 들어서면 동헌 마당을 지나서 외동헌을 만나게 된다. 진서루는 외삼문으로 옛 남포현의 출입문이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2층 문루인데, 정면 3.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팔작지붕집이다. 아래층은 삼문을 달았고, 2층은 누마루를 깐 후 사면에 난간을 세웠다. 그 위에 올라서면 주변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 누각에서 남포현감은 주변 경관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동헌의 출입문인 내삼문은 정면 7,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다. 가운데 1칸은 출입문으로 큰 대문을 달고 나머지 칸은 방으로 꾸몄다. 중앙 칸은 한단 올려 맞배지붕으로, 좌우의 방은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이 문은 출입문 앙 옆을 살창으로 꾸민 특이한 형태이다.

 

 

남포현의 업무를 보던 외동헌은 대청으로 정면 7,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건물이다. 앞면 중앙에 2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는 온돌방으로 꾸몄다. 이렇게 외삼문인 누각과 옥산아문, 동헌 등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옛 동헌답게 고졸한 멋을 풍기고 있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중앙집권적인 권위의 상징으로 전국의 아문이 똑 같은 형태로 축조되었다. 남포관아를 돌아보고 난 뒤, 읍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읍성은 동헌 뒤편에 성곽이 이어진다.

 

대천 앞바다를 돌아보고, 한 횟집에 들려 푸짐하게 차려진 상으로 점심을 먹은 후 서산 부석사를 거쳐 돌아온 ()화성연구회의 추계답사. 답사를 함께 한 모든 회원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담아가기 위해 열심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만들어주었을 것 같은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 답사란 아름다운 과거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추석날 아침 한가하던 생태교통 시범지역인 행궁동 일대가, 오후가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례와 성묘를 마친 사람들이 가족끼리 행궁동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 3시가 지나면서 행궁동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색자전거를 타기 위해 줄이 늘어서기도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솜사탕도 만든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아무리 밟아대도 솜사탕이 잘 되지 않아요. 그래도 아들 녀석과 정말 재미있게 솜사탕을 하나 만들었어요.”

 

정자동에 살고 있다는 한 시민은 동생 가족과 함께 생태교통이 열리는 행궁동을 찾아왔는데, 정말 볼거리가 많아서 여기저기 돌아보고 있다고 한다.

 

 

생태교통에 오신 손님 복 많이 받으시고

 

19일 오후 5. 행궁동 주민센터 앞에 풍장소리가 울린다. 풍물패가 길놀이를 시작한다. 손님들을 모으러 길을 나선 것이다. 18생태교통 수원2013’ 축제에 모든 공연이 하루 쉬었다. 그리고 19일 추석 당일 행궁동 주민센터 앞과 파빌리온 무대에 다시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10여일 남짓 남아있는 생태교통 축제. 사람들이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몰려들고 있는 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풍물패들이 주민센터 앞에서 한 바탕 뛴 후에 고사소리가 시작이 되었다. ‘풍물굿패 삶터의 덕담이 시작이 된 것이다.

 

 

생태교통에 모인 여러분들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한 달 동안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열심히 도움을 주신 행궁동 주민 여러분도 복 많이 받으시고....”

 

비나리꾼이 소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고사상에 술 한 잔 따라놓고 기원을 한다. 한편에는 새끼줄을 꼬아 늘이고 그곳에 서원을 쓴 종이를 끼워놓기도 한다. 소리를 하는 동안 어깨춤을 추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손장단을 치기도 한다. 생태교통 추진단 김병익 단장도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린다. 아마도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하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오늘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들이 모두 나왔는데 정말 흥겹습니다. 이렇게 추석에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행궁동에서 저녁까지 해결하려고 합니다.”

 

 

함부로 나다니는 차량 아쉬워

 

행궁동을 찾아온 사람들은 길을 걸어 다니면서 즐거워한다. 차에게 빼앗겼던 도로를 다시 찾았다는 생각에 신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골목마다 가득 주차해 있는 차량들이나, 행사를 하고 있는 앞으로 차를 몰고 지나가는 행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본적인 양식도 없는 것 같습니다. 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차 없는 거리에 이렇게 많은 차들이 돌아다녀서야 무슨 의미가 있나요.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이런 축제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방문차량만이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주민들의 차량들까지 큰 거리를 마구 차를 몰고 다닌다. 심지어는 도로를 걸어가는데 경적까지 울려댄다. 연휴와 주말이 이어지는 20~22, 더 많은 사람들이 생태교통 축제가 열리는 행궁동을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도로에 차가 멋대로 돌아다니는 일은 없었으면.

 

 

파빌리온에서도 흥겨운 동행

 

같은 시각인 오후 5. 총회장인 파빌리온 무대에는 한가위 풍류한마당 흥겨운 동행이 무대에 올랐다. 추석에 행궁동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파빌리온을 채웠다. 민요 한마당에 무대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어르신도 보인다.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공연으로 인해, 어디를 찾아갈까 고민을 했다는 한 시민은

 

추석에 이런 무대를 마련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남들은 연휴를 즐기고 있는데, 이렇게 쉬지도 못하고 공연을 해주는 출연자들에게도 고맙고요. 이번 추석은 가족들에게 남다른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라며 고맙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보내는 추석. 생태교통에도 풍요로움이 넘쳐 난 하루였다.

사람이 짐승에게서 배울 것은 하나 둘이 아니다. 특히 농촌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소에게서 배울 것은 더욱 더 그렇다. 흔히 소선생, 혹은 우선생이라고 하는 소는, 옛 선인들은 사람에게 가장 많은 것을 준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소 한 마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저 짐승으로만 여긴 것이 아니다.

 

소에게서 배우게 되는 세상살이. 그리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말없이 따라하는 우직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어리석게도 보이지만, 그것이 주인에 대한 충심인지도 모르겠다. 소와 동행을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세상을 배운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돌아보고,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소를 몰고 가는 여인'.  지금은 어디를 가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더욱이 차도 한 편으로 걷는 소는, 절대로 포장이 된 도로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를 않는다.

 

소는 절대로 포장도로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버티면서 땅만을 밟고 있는 소. 우직함일까? 아니면 생명을 지키기 위함일까?

저 멀리 굽이길을 돌아설 때까지 한 번도 도로를 밟지 않고 땅으로만 걷는 소

 

소를 끌고 가는 여인이 잡아 끌어보아도, 도로 위로 올라오지 않는 우직한 소. 한낱 짐승이지만 예의를 아는 것일까? 아니면 도로 위로 오르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저 멀리 굽이치는 길을 돌아설 때까지 한 옆으로만 걸어가는 소와 여인. 그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영월읍의 합수머리. 다리쪽에서 흐르는 물이 서강이다. 사진 밑에 우측으로 오르면서 동강이 된다.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이, 정선의 아우라지를 만나 조양강을 이룬다. 그리고 이 물이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주천강, 서강)과 만나는 영월의 합수머리에서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동강의 길이는 56㎞에 달하며, 서강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시작하여,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를 감싸 안으며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합수머리 동 서강이 모여 큰 물을 이루면서 강의 이름이 남한강으로 바뀐다.

 

물이 맑고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널려있다는 동강과 서강. 그리고 그 물이 합수머리부터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뀌어 흐르는 구간에도 아름다움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찢기고 할퀴어진 남한강은 이제 그 옛 모습을 다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합수머리에서 바라보는 동, 서강과 남한강이 애틋하게 다가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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