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을 걷다가 보면 서문인 화서문서부터 동문인 창룡문 사이에는 유난히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곳이 평지이다 보니 그만큼 많은 대비를 해야 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반화수류정과 용연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꼭 밤에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만일 방화수류정에서 용연으로 나오고 싶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 바로 옆에, 숨겨진 문인 북암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문의 문루 위에 쌓은 아치형의 용도는?

 

암문은 대개 숨겨 놓았다. 그러나 북암문은 성벽이 양편에 돌출되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작은 성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양편을 검은 벽돌로 쌓은 성벽 안에 움푹 들어가 있는 북암문은 방화수류정에서 동편으로 40보의 거리에 있다. 안과 밖은 모두 검은 벽돌로 쌓았는데, 문의 위에는 둥그렇게 아치형으로 아름답게 꾸몄다.

 

암문은 비상시에 군사들의 빠른 이동 등을 고려해 만든 성문이다. 더 견고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저렇게 문 위에 아치형으로 벽돌을 쌓아야만 했을까? 물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치형으로 쌓아올린 벽돌의 쓰임새는 더 중요한데 있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적이 문을 공격해 오면 아치로 된 벽돌을 무너트려 성문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아름답기만 한 아치형의 구조물이 이런 쓰임새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감히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화성을 겉도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터진 조망을 바라보는 즐거움

 

북암문을 지나면 갑자기 성이 용틀임을 하며 위로 오른다. 지형이 갑자기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곳은 성 돌을 잘 다듬지 않고 막쌓기를 한 구간이다. 그런 모습이 비탈을 오르는 나그네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돌출 된 치성 위에 올려 진 전각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병사들이 쉴 수 있는 ‘동북포루’ 창룡문을 향해 걷다가보면 이곳은 비탈 위에 축성을 하였고, 동북포루는 그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다. ‘각건대’라고도 부르는 이 동북포루 위에 앉으면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지형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 바로 화성이다.

 

 

 

동북포루는 아래는 돌로 쌓고 그 위는 검은 벽돌을 이용해 3단으로 쌓아올렸다. 그리고 그 안은 공간을 만들었으며, 총안 구멍 19개와 누혈 11개를 조성하였다. 치성 위에 잇는 병사들을 보호하고 쉬는 공간이지만, 이곳으로 몰려드는 적에게는 참으로 소름돗는 구조물이 아닐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암문, 동암문을 지나다.

 

그 성곽을 따라 걷다가 보면, 푸른 이끼가 낀 성 돌과 하얀색의 성 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200년 전의 역사와 현대가, 사이좋게 몸을 부딪치며 성을 이루고 있는가 보다. 그 돌 틈 사이사이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 그저 아무렇게나 성 돌에 기대어 살고 싶은 생명들이다.

 

 

 

밑으로 경사가 진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또 하나의 암문이 나타난다. 바로 동암문이다. 이 동암문 역시 북암문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치 양편에 비예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 암문의 너비는 말 한필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꾸며놓았다.

 

각건대부터 동암문을 지나 연무대인 동장대 밖을 걷는 성 길을 돌아본다. 마치 뱀이 기어가 듯 구불거리는 성곽의 형태가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생명들이 자라고 있다. 마치 생명 없는 성 돌이 그 생명을 품어, 스스로 살아나려고 하는 것처럼.

 

 

 

저만치 성벽 위에 동장대의 지붕이 보인다. 그리고 동장대 밑으로 가면 비스듬한 비탈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서 동장대를 훔쳐보고 있다. 화성의 성 밖 나무들은 왜 그리도 성을 탐한 것일까? 아마도 화성 겉돌기를 하는 내내, 그 해답은 얻어질 것 같지가 않다.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났느냐?"

화성은 실제로 축성을 하고 난 뒤 전쟁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을 시물레이션으로 전쟁 장면을 제작한다고 하면, 정말 장관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화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 장용위의 군사들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할 것이다. 화성은 그만큼 수성(守城)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적이 성으로 밀려왔다. 4대문을 아무리 깨트리려고 공성무기를 총 동원했지만, 문 앞까지 다가서지도 못했다. 겨우 옹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기를 움직일 공간이 없이, 옹성 안에 들어 온 병사들이 전멸을 당했다. 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적들은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었다. 성벽을 타고 오르기로 한 것이다.


화성의 서암문. 성벽 안에 감추어졌다.

앞뒤에서 공격하는 성안의 병사들.


긴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성벽을 오를 수가 없다. 여장에 걸친 사다리는 긴 창을 이용한 성안의 병사들에 의해 제거가 되고, 뒤에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성벽이 돌출된 치성에서 쏘아대는 화살이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적은 성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만다.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에는 후미진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성 앞으로 조금씩 지형지물을 이용해 다가들었다. 성벽에 줄을 던지고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뒤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적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한 무리의 장용위 군사들이 나타난다,


암문의 문은 계단을 내려가 성벽 아랫쪽에 나 있다. 암문 여장에서 내다 본 바깥

“도대체 어떻게 저 많은 병사들이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난 병사들이란 말이냐?“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성 밖은 자신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딴 곳에서 지원군이 올만한 길도 모두 차단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저 많은 군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저 군사들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냐?”

화성에는 암문이 있다. 현재는 네 곳의 암문이 남아있다. 이 암문들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적의 눈에 잘 띠질 않는다. 그곳은 전쟁이 나면 무기를 공수하거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통로이다. 거기다가 몰래 성을 빠져나간 군사들의 적의 배후를 공격하게 된다. 성으로 접근을 했던 적들은 혼비백산을 할 수 밖에.


북암문의 바깥과 안

화성에는 처음으로 축성을 하고 난 뒤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다. 현재는 4개의 암문이 남아있다. 동문에서 남문 사이에는 암문이 없다. 그리고 남문에서 서장대를 오르는 산꼭대기에는 서남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의 위에는 주변을 관찰하는 ‘포루(鋪樓)’가 있으며, 앞으로는 용도(甬道)가 시작되는 곳으로 그 끝에는 화양루가 자리한다.

암문은 철판으로 문 바깥부분을 덮었다.

벽돌로 쌓은 아름다운 암문

서장대의 남쪽에는 서암문이 있다. 팔달산 남쪽 기슭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암문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암문이 연결되는 곳은 가파른 비탈로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암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뒤를 공격하고 난 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고 생각을 해보자. 모골이 송연하지 않겠는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옆에도 암문이 있다. 북암문은 화성 전체구간 중에서 유일하게 좌우의 성벽을 벽돌로 쌓은 곳이다.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7일에 완성이 되었다. 이 북암문 앞에는 연지가 있다. 요즈음 연지는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만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적군의 시신으로 메워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혼자 놀란다.



동암문

그리고 동장대 가까이 또 하나의 암문이 있다. 바로 동암문이다. 동암문은 북암문보다 이틀 빠른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5일에 완성이 되었다. 만일에 대비해 4대문 외에도 후미지고 적당한 곳에 마련한 암문. 이 암문이 있어 적들을 물리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이러한 많은 구조물들이 적절하게 자리를 하고 있어,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최고의 성이란 찬사를 받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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