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재 서울 경기지역에 첫 눈이 내렸다. 첫 눈이라고 하지만 눈이 온 표시도 나지 않게 조금 내리는가 싶더니 그쳐버렸다. 한 겨울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가급적이면 고택답사는 피하고 있다. 그것은 눈에 덮힌 고택의 정취는 아름답지만, 곳곳을 제대로 살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오리 고가를 찾아 간 날은 눈이 발목까지 빠지게 쌓여있는 날이었다.

 

제천시 한수면 소재지에서 597번 도로를 따라 한수면에 있는 덕주사를 찾아가기 전, 좌측으로 보면 도로에서 조금 들어가 한송초등학교가 있다. 그 학교 교문 옆에는 초가 한 채와 기와 한 채가 나란히 보인다. 이 초가가 충북 민속문화재 제5호인 한수 명오리 고가이다. 이 명오리 고가는 초가로 꾸며졌으며, 원래는 한수면 명오리 303번지 풍무골에 있었던 것을,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눈밭에 집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아

 

명오리 고가를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세 번째 찾아가는 집이지만, 갈 때마다 문이 잠겨 있었다. 대문 안으로 보면 슬리퍼 등도 보이고, 패널을 여기저기 쌓아 놓은 것이 사람이 사는 집 같은데 항상 문이 자물통으로 채워져 있다. 이곳도 눈이 꽤나 내렸는지 집 뒤편으로 돌아가니, 밭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있고 담장의 초가위에도 눈이 쌓여있다. 할 수 없이 눈밭을 몇 바퀴를 돌면서, 집의 구석구석을 촬영하는 수밖에. 고가를 찾아다니다가 보면 이렇게 문이 잠겨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명오리 고가는 튼 ㅁ 자형의 집이다. 대문을 사랑채로 삼아 대문을 들어서면서 좌측에는 두 칸 방을 드렸고, 대문을 지나 남쪽으로는 방과 외양간, 방앗간, 광으로 배열하였다. ㄴ 자형의 이 대문채는 사랑과 대문채를 겸한 집이다. 이 지역의 일반적인 민가의 형태를 갖고 있는 명오리 고가는 특별한 점은 없으나, 나름대로 중부지방 민가의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고가이다.

 

 

건넌방에 낸 까치구멍의 용도는?

 

명오리 고가의 안채는 ㄱ 자 형으로 대문채와 마주하고 있다. 삼단의 돌로 쌓은 기단위에 지은 안채는, 안방을 기준으로 하여 정남향을 하고 있다. 안방의 좌측으로는 부엌이 있고, 우측으로는 윗방이 있다. 꺾인 부분에는 한 칸 대청과 건넌방이 자리하고 있다. 안채의 부엌 앞에는 누군가 패널을 가득 쌓아 놓아, 밖에서는 부엌문을 확인할 수가 없다.

 

밖을 몇 바퀴를 돌았지만, 안방이 있는 곳은 가려서 보이지를 않는다. 이럴 때는 할 수 없이 안방의 뒤편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고가를 답사하면서 생긴 나름대로의 답사방법이다. 이제는 웬만한 집은 밖에서 한 바퀴만 돌아보아도 집안 구조를 알 수 있으니, 그도 다행이랄 수밖에.

 

 

안채는 평범한 민가의 꾸밈이다. 그런데 안채의 건넌방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건넌방의 앞쪽에는 툇간으로 달아낸 한데 아궁이를 두었는데, 그 아궁이 우측에 까치구멍이 있다. 바람을 막으려고 종이로 발라 놓았지만, 이렇게 건넌방에 까치구멍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까치구멍의 용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냥 작은 쪽문이라면 이 문을 통해 음식물 등을 들여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까치구멍이라니.

 

건넌방의 옆문 밖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다. 뒤로 돌아가니 대청의 뒤편에는 판자문이 있다. 옆과 뒷면을 보고나서야 이 까치구멍의 용도가 이해가 간다. 일반적으로 건넌방에도 뒷벽에 문을 하나정도 내는 것이 통례이다. 그런데 건넌방은 툇마루를 놓은 곳과, 대청에서 드나드는 곳 밖에 문이 없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작은 까치구멍을 한데 아궁이쪽에 하나 내어놓음으로써 환기를 원활하게 한 것이다. 작은 것 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는 지혜다.

 

 

판자굴뚝이 아름다운 집

 

명오리 고가는 굴뚝이 모두 판자굴뚝이다. 이 판자굴뚝이 이 초가집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판자굴뚝은 네모난 판자로 길게 사각의 연기통을 만들고, 그 중간에는 역시 나무로 움직이지 않게 고정을 시켰다. 그리고 맨 위에는 사방을 트이게 해, 위를 꺾은 판자로 마감을 하였다. 흡사 고깔을 쓴 것처럼 만들었는데, 모든 방의 뒤편에는 이 판자굴뚝이 서 있다. 이 판자굴뚝이 서 있어, 초가집이 더욱 여유 있게 보인다.

 

명오리 고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집은 전체적으로 크지 않지만, 이용을 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조금 흐트러진 사각형으로 쌓은 담 안에 집을 놓았는데, 대문채에서 북쪽 담 끄트머리에 측간을 두었다. 그리고 안채 부엌 밖에는 또 다른 한데 아궁이를 놓았다. 이렇게 전체적인 조형을 생각한 것이 명오리 고가의 특징이다. 비록 화려하지도 않고 남다를 것도 없는 초가이지만, 그 안에 한껏 여유를 부린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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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답사를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역시 한 곳에 많은 고택이 몰려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다. 경주 양동마을이 그렇고 순천 낙안마을이 그랬다. 온양 민속마을도, 강원도 고성에 있는 마을도 그랬다. 그런 곳을 방문하면 내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이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그렇게까지 고택답사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그 안에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 때 묻은 우리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사는 요즈음, 그 하나의 작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소중하게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벌써 전국에 있는 고택을 돌아본 것이 그동안 200여 채는 됨직하다.

 


특별환 날에 나선 답사, 수지맞았다


남들이 특별한 날이라고 하는 날도, 난 탑사를 떠났다. 그들이 말하는 생일이나 회갑이나 하는 날이, 나에게는 특별한 날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연장일 뿐이다. 그런 날 오히려 문화재 답사 한 곳이라도 더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나를 두고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함이 사실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것을 찾아나서는 길이 '이상하다'는, 그 사람들이 오히려 내가 보기에는 이상할 뿐이다. 제천시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 이곳을 몇 번이나 들렸지만, 그렇게 고가들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는 사진 몇 장으로 지나쳐버렸다.

 

뒷간

이번 답사에는 마음을 먹고 떠난 길이라, 세세한 것까지 보고 오리란 생각으로 들렸다. 오후 시간이라, 특별한 날 점심도 못 먹고 사진만 찍고 있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일행. 그러나 난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배가 고픈 것을 잊을 만큼, 그 작은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시골의 양반집인 청풍 황석리 고가


청풍문화재 단지 안에는 모두 4채의 고가가 있다. 이 고가들은 충주 다목적댐의 건설로 인해 수몰이 된 문화재 중에서, 청풍면 일대에 있던 중요문화재를 1983년부터 옮겨 문화재단지를 조성한 곳이다. 황석리 고가는 청풍면 황석리에 있던 조선말기의 목조가옥이다. 수몰지역에 있던 것을 1985년 문화재단지로 이전하였다.

 

 

대문채

청풍문화재단지를 들어서면 우측으로 4채의 고가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집이 황석리 고가이다. 대문을 초가로 꾸민 황석리 고가는, 입구부터 옛 이야기가 물씬 풍길 것만 같다. 


황석리 고가는 조선시대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평범한 집이다. 초가로 지어진 대문채는 크고 작은 강돌을 이용해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었다. 벽도 이중으로 된 심벽으로 되어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대문채의 방문이 있다. 적기는 해도 양반집이니 당연히 머슴이 있었을 터. 아마 이 방에서 밤새 새끼라도 꼬다가, 주인영감이 들어오면 문을 얼어주고는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방문이 대문 쪽으로도 나 있다. 비교적 원형을 잃지 않고, 방위까지 수몰되기 전 모습 그대로 옮겨왔다는 황석리 고가다.

 

 

안채

 

4칸의 일자형 양반집, 편의를 생각해 짓다


황석리 고가의 특징은 좁은 마당을 적절하게 잘 이용했다는데 있다. 4칸 규모의 일자형 안채는 부엌, 안방, 윗방, 사랑방으로 꾸몄다. 그런데 부엌을 들어가는 입구에 뒤주 간을 만들었다. 또한 안채의 앞에 놓은 마루에서 밖으로 신을 신고 나가지 않고, 바로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루와 부엌이 연결되는 곳에 문을 내었다. 부녀자들이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동선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집안 곳곳에 배어있다.


황석리 고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랑채와 안채가 붙어있다는 점이다. 일자형으로 길게 구성이 되어있는 황석리 고가는 안방과 윗방, 사랑방의 앞에 모두 마루를 깔았다. 사랑채와 안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일자형 집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오밀조밀한 부엌, 그래도 명색이 양반집인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황석리 고가에는 흔한 헛간채나 광채가 없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헛간을 대신할 공간을 꾸며 놓았다. 명색이 양반집인지라 함부로 밖에 늘어놓을 수는 없었는지, 부엌의 한편을 헛간으로 사용을 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 초입에 헛간에 둠직한 소쿠리며 농기구 등을 정리해 놓았다.


이런 것도 알고 보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부엌은 불을 떼는 곳이므로, 늘 불기운이 있어서 건조가 잘된다. 농기구나 소쿠리 등을 부엌에 두면, 녹이 슬지도 않을 뿐더러 습기가 차지 않아서 좋다. 작은 집이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이점도 있다. 황석리 고가는 이러한 점을 최대한 활용을 한 기능성 맞춤집이다.  

 

 


또 하나 황석리 고가에서 볼 수 있는 부엌의 특징이 깊은 부엌이다. 그래서인가 까치구멍을 나뭇조각으로 막지를 않고, 그냥 통으로 구멍을 냈다. 깊은 부엌이 위에서 부는 바람을 아래까지 들어오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도 이 가옥의 특이한 건축법의 하나이다. 그저 평범한 고택인 듯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재미난 것이 많은 것도 황석리 고가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집은 잘 살던 집이 아닌가봐'라는 관광객의 말에 뒤를 돌아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집 주인이 청렴한 양반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일까? 그저 크기와 호화로움 만으로 가치를 따지려는, 요즈음의 사람들이 조금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는 중요민속자료 제207호인 안의 금천리 윤씨 고가가 있다. 일명 ‘허삼둘 가옥’으로도 불리는 이 고가는, 영남지역 상류주택으로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지난 번 10월에 함양을 돌아볼 때는 이 집을 빠트려, 이번 12월 11일의 답사에서는 먼저 찾아가 본 집이기도 하다.

허삼둘 고가는 기백산을 뒤로하고, 덕유산의 지맥을 따른 진수산에 형성된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쇠부리’라고 부른다. 마을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허삼둘 고가는 약 70여 년 전 윤대흥이 진양 갑부인 허씨 문중에 장가를 들어, 부인 허삼둘과 함께 지은 집이다.


멋들어진 사랑채의 구성

허삼둘 가옥은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곳간, 안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행랑채가 있고, 그 옆으로 ㄱ자로 구성된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앞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데, 넓은 공지인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곳에 정원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사랑채는 마주보면서 우측으로 한 칸을 빼내어 누정으로 삼았다. 난간을 두르고 기둥을 세워 정자와 같은 모양으로 꾸며 놓았다. 이단의 돌을 쌓은 기단을 놓고, 그 위에 사랑채 건물을 지었다. 중앙을 빼고 좌우로도 난간을 둘러 멋을 더했다.



함양 허삼둘 가옥의 전경(위) 솟을대문과 사랑채 누정(아래)

특이한 안채의 구성은 놀라워

안채로 들어가면 ㄱ 자로 꾸며졌는데, 7칸의 집에는 특이하게 중앙에 부엌을 두었다. 이 안채는 꺾인 부분에 좁은 판자문을 두어 마루로 나올 수 있도록 꾸몄다. 안채는 여느 집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건축방법을 택했다. 우선 중앙에 부엌으로 통하는 판자문도 특이하지만, 까치구멍을 넓게 ×자형으로 달아낸 것도 그렇다.

대청은 이중으로 꾸며, 문을 달아낸 뒤로도 다시 마루를 놓았다. 아마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중으로 대청을 구성함으로써 여름이면 해를 막은 뒤편에 그늘을 만들고, 겨울이면 따듯하게 보호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이한 집의 구성으로 인해 중요민속자료 제207호로 지정이 되었다.




ㄱ 자형으로 꾸며진 안채. 꺾인 부분에 문을 낸 특이함. 그리고 X 형으로 구성된 까치구멍과 이중으로 된 대청
 
불탄 흔적 그대로 방치가 되

이렇게 잘 꾸며진 허삼둘 가옥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담장은 무너져 내리고, 사랑채와 안채는 불에 튼 흔적이 그대로 있다. 행랑채가 보수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안채와 사랑채의 불에 탄 흔적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것도 일부만 그렇게 탔다는 것이 더욱 의심이 간다.

안의면 담당자와 통화를 해보았다. 5년 전인가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다는 것이다. 문화재는 아무리 국가에서 지정을 했다고 해도, 개인소유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즈음에 안의면에서는, 정자를 비롯한 몇 채의 한옥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의도적인 방화일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사랑채와 무너진 담장

그 후 문화재청에서는 이 가옥을 사서 보수를 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가 않아 아직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어느 집보다도 특이한 형태로 꾸며진 집이, 이렇게 방치가 되어있다니. 이럴 때는 강제로라도 보수를 할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인지. 그저 집안을 돌아보면서 답답할 뿐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돌아보려고 길을 나서지만, 자꾸만 그 불탄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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