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이틀간 무섭게 쏟아지는 비가 멈춘 듯하더니, 이번에는 날씨 몸을 무겁게 할 정도로 덥다. 구례 사성암.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해발 500m의 오산에 있는 암자인 사성암은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이다. 오산 꼭대기에 있는데 도선굴에는 원효와 의상, 도선과 진각 등 네 명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고 하여 ‘사성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암자 뒤편으로 돌아서면 우뚝우뚝 솟은 절벽이 전개되는데,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12대가 있어 뛰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봉성지』에 이르기를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옛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했다고 적고 있다.

 


셔틀버스로 운행하는 사성암 가는 길


현재 사성암은 조그마한 소규모의 목조 기와집인 몇 채 바위 틈에 자리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앞에 돌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있는 전각 안에는, 암벽에 높이 4m되는 음각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 음각마애여래입상의 연대가 고려초반기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사성암의 창건 내력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마애상이 보호하는 이 적각 앞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구비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네 분의 고승이 도를 깨우쳤다는 도선굴로 오르다가 보면, 800년이 지났다는 고목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괴목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소원바위. 그 앞에는 명패를 적은 나무들을 가득 걸어놓았다.

 

 


지금은 밑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사람들을 사성암 입구까지 실어다 준다. 왕복요금은 3,400원이며, 언제라도 사람들이 차면 출발을 한다. 예전에 이곳을 걸어 올랐을 때 3시간이 넘었던 기억을 하면, 이제는 답사도 참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굴을 지나면 절경이 펼쳐져


산왕전에 들려 참례를 하고 도선굴로 들어선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축축한 것이 습기가 가득하다. 예전 고승들은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참선을 한 것일까? 아마도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 곳에서 더욱 더 인간의 힘든 것을 이겨내며 스스로 달굼질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굴을 나오면 절벽에 붙들어 매듯 만들어 놓은 나무로 짠 길이 나온다. 그 앞으로 펼쳐지는 섬진강의 모습.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장관이었다. 그러나 붉은 섬진강만 보일 뿐, 흐린 날이라 그 앞 절경이 감춰져있어 아쉽기만 하다.


돌아내려오는 길에 보니 젊은 사람들이 괴목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아마도 저 나무처럼 그리 오랜 세월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늘 다녀보지만 좋은 절은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진다. 그래서 몇 번이고 찾아가는 것이지만.


사성암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한 장 촬영을 하려고 하니 문화재라서 사진을 찍으면 인된다고 한다. 요즈음 답사하기가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사진촬영금지 때문이다. 그래도 허락을 받고나서 대개는 촬영을 하지만, 어떤 곳은 아예 딱 잘라 거부를 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면 참으로 씁쓰레하다. 사진촬영을 막는다고 문화재보호가 잘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말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소재한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인 560년에 창건된 비구니 사찰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벌써 1,500년 전에 세워진 고찰이다. 이 운문사 경내 만세루 옆에 서식하고 있는 처진 소나무 한 그루는, 수령 500년이 지난 천연기념물 제180호이다. 이 나무의 키는 9.4m에 가슴둘레의 높이는 3.4m 정도이다.

처진 소나무의 밑동 둘레는 2.9m, 가지는 동으로 8.4m에 서로 9.2m, 남으로는 10.3m에 북으로는 10m 정도로 뻗어 30여 평을 뒤덮고 있다. 사방으로 고르게 발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나무는,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모습을 한 보기 드문 품종이다.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된 수많은 소나무 중, 이렇게 가지가 처진 소나무는 몇 그루되지 않는다.


‘삽목(揷木)’으로 새 생명을 얻은 처진 소나무

우리나라에 있는 고목(古木)이나 거목(巨木) 등에는 많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삽목(揷木)’에 대한 전설이다. 삽목이란 말 그대로 나무를 땅에 꽂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삽목의 전설은 고승이나 유명한 인물들과 관련이 지어진다. 이 운문사 처진 소나무 역시 어느 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시든 나뭇가지를 땅에 꽂아 이렇게 큰 나무로 자랐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보던지 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자란 운문사 처진 소나무. 아마 이 삽목에 대한 전설은 새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절 안에 서식하고 있는 수령이 오래 된 나무들은, 거의가 역사적 인물이나 고승들이 마른 지팡이 등을 꽂아 새 생명을 주었다는 삽목의 전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마시는 운문사 처진 소나무

운문사 처진 소나무가 기이한 나무라는 것은 전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가 있다. 시든가지를 꽂아 생명을 얻은 이 나무는,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렸지만 칡넝쿨이 나무를 감고 있어 살려냈다고 하다. 운문사에서는 1970년대부터 매년 음력 삼월삼짇날이 되면, 막걸리 12말에 물 열두 말을 타서 나무 둘레에 뿌려주는 ‘처진 소나무 막걸리 먹이기’를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처진 소나무에 막걸리를 먹이는 것은, 소나무가 막걸리를 마시면 생육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막걸리에는 많은 영양분을 함유라고 있기 때문에, 나무를 옮겨 심거나 할 때도 막걸리를 주변이 뿌려주고는 한다. 운문사 스님들은 이 나무를 ‘선정(禪定)에 든 나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듣고, 도를 닦아 스스로를 낮추는 나무라는 것이다.



비가 뿌리는 날 만난 처진 소나무, 그대로 춤이었다.

땅 위 2m 정도에서 사방으로 뻗친 가지는 지주를 대고 있다. 아마 이 지주들이 없다면 가지들이 모두 땅에 닿아있을 것이다. 7월 15일 금요일. 아침 일찍 운문사에서 생활을 하고 계시는 25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에게, ‘스님짜장’ 봉사를 하기 위해 운문사로 떠났다. 맑던 날씨가 청도에 들어서면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운문사에 내려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처진 소나무였다. 운문사는 그동안 몇 차례나 방문한 곳이지만 갈 때마다 새롭다. 비를 맞으면서 처진 소나무 주변을 돌아본다. 호거산 운문사. 주변 산에는 호랑이에 관한 전설도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6,25 때도 방화로 일부 전각을 잃었지만, 이 소나무는 재앙을 피했다고 한다. 그만큼 신령한 나무이기도 하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수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처진 소나무 중에는 최고로 친다. 빗물이 떨어지는 가지 밑으로 들어가 본다. 마치 춤을 추듯 늘어진 가지들. 그 모습에서 수많은 무희들이 팔을 뻗쳐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마도 새 생명을 얻은 희열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연의 신비.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보면서, 그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에 고개를 숙인다. 비를 맞으며 만난 소나무 한 그루에서, 난 또 다른 자연의 힘을 얻어간다. 새로운 생명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겸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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