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은 우리 민족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날이다. 음력 정월초하루 설 명절을 지낸 사람들은 초 2일을 귀신날이라고 하며 문밖출입을 삼가고 근신하며 지낸다. 하지만 정월 초3일이 되면 정월 각종 놀이가 시작된다. 마을에서는 지신밟기 등이 시작되고 주민들이 함께 모여 단합을 다지는 척사대회(윷놀이)를 시작한다.

 

이렇게 각 마을마다 많은 민속놀이 등이 시작되는 음력 정월은 우리민족의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연희되는데, 그 놀이의 이유를 들어보면 공동체정신함양, 마을의 안녕, 개인의 초복축사 등을 주로 놀이 안에 함유하고 있으며, 풍농과 풍어를 위한 놀이도 마을마다 전해진다. 각 마을이 중요하게 여겨 음력 대보름 전까지 마치는 각종 제의식인 산신제, 서낭제, 거리제 등은 모두 정월을 잘 보내고 일 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방법이다.

 

올해 기해년 정월 대보름은 219일이다. 대보름 며칠 전부터 수원시의 각 구 행정복지센터들은 마을주민들과 화합을 다니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척사대회를 열고 있다. 척사대회에는 많은 경품을 걸고 있어 주민들이 앞 다투어 척사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모여든다. 수원시의 전통시장도 상인들 간 화합을 다지고, 주변 주민들에게 전통시장을 알리는 척사대회를 열고 있다. 전통시장의 척사대회는 먹을 것이 풍성하고 상품이 많기 때문에 행정복지센터 척사대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을과 전통시장 정월 화합 다지는 척사대회 열어

 

정월에 많이 즐기는 윷놀이는 부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부여(夫餘)조에 다섯 가지 가축을 다섯 부락에 나누어준 뒤,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척사대회의 유래로 보기 때문이다. 윷놀이에서 `'는 돼지, `'는 개, `'은 양, `'은 소, `'는 말에 비유한다.

 

윷놀이는 <사희(柶戱)>라고도 한다.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한편이 되어 대국하며, 각각 네 마리의 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던져 도, , , , 모로 구분 지으며, 그 시원을 이익의 <성호사설> 사희조(柶戱條)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遺俗)으로 본다.”고 하였다.

 

상원일(上元日)’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은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설날을 그 해에 가장 첫날이라고 해서 원일(元日)’이라고 한데서 기인한다. 수원 곳곳에서 열리는 척사대회는 단지 정월 하루를 주민들과 화목을 다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척사대회에서 모인 기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한다.

 

정월 대보름 놀이 달집태우기로 소원빌어

 

정월 열나흘이 되면 마을의 공터에 달집을 세운다. 대나무와 솔가지, 짚을 이용해 쌓은 달집은 보름을 맞아 농사를 짓기 전에 해충을 없애는 기능을 갖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동(解冬=겨울을 녹인다)’의 뜻이 더 깊다. 달집태우기는 쥐불놀이와 함께 대보름을 맞이하기 전에 모든 재액을 태워버린다는 속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라는 짚단으로 만든 것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제일먼저 달이 뜬 것을 본 사람이 망월(望月)이여를 외치면서 달집으로 달려가 불을 붙인다. 달맞이를 할 때는 임산부인 여자가 먼저 달이 뜨는 것을 보면 남자아이를 낳고, 병자가 먼저 보면 병이 완쾌된다고 한다. 또한 처녀가 달이 뜨는 것을 가장 먼저보고 소리를 치면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먼저 보면 장가를 간다고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정월 대보름이 주는 즐거움으로 한 해의 풍요를 열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상원일 풍습 안타까워

 

서구화된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풍속들. 그 안에는 상원일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이 있었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마을과 마을 간의 단합을 일구어 낸 수많은 놀이들이 단지 옛것이나 미신이라는 폄하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민족에게는 4대 명절 증 하나였다.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큰 명절로 여긴 것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여긴 이유는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한 각종 공동체놀이들이가 정월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우리들의 상원일의 놀이는 이 외에도 마을과 마을이 벌이는 횃불싸움이나, 수원의 여러 마을에서 나타났던 석전(石戰=돌싸움), 그리고 일 년 동안 건강한 몸과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다리밟기 등 많은 놀이가 전해지고 있었다.

 

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연에다가 서원을 적거나, 집안의 애환을 적어 날려 보내는 액연날리기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은 모두가 풍농과 풍어, 마을의 안녕, 가내의 안과태평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민족은 그 안에서 공동체를 창출했으며, 놀이를 하면서 이웃과 하나가 되는 우리라는 단단한 결속력을 다졌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들어 재현되는 많은 놀이들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사고는 사라진 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민속이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민족의 상원일의 놀이는 단순한 연희가 아닌, 그 내면에 깊은 사고를 지닌 놀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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