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는 풍년, 풍어의 기원

 

줄다리기는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갈라, 줄을 마주 잡아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한 해의 길흉을 점치고 풍년·풍어 등을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한 마을 행사였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점점 이웃마을로 합세를 하면서 대보름이 되면 거대한 줄로 변한다. 새끼줄이 중줄이 되고, 그것이 다시 모여 쌍룡이라는 암수의 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줄은 주로 음력 대보름을 기해 행해졌으며 마을 단위로 편을 갈라 장정들이 하거나 또는 남녀노소가 함께 줄을 마주 잡아당겨 승부를 겨루었다. 줄다리기를 삭전(索戰)·조리지희(照里之戱)·갈전(葛戰)이라고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줄다리기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주로 중부지방 아래에서 성행한 것으로 보아 벼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줄다리기는 대개 정월 대보름날 행하지만, 곳에 따라 단오나 한가위에 하기도 한다. 줄은 암줄과 수줄을 각각 만든다. 예전에 여주 흔암리 일대의 줄다리기는 수천 명이 달라붙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일부 지방에서는 줄의 길이가 한편이 80m 정도의 큰 줄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기 때문에 일대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줄은 암수줄을 만들어 그 용두(줄머리) 부분을 암줄은 넓게, 숫줄은 좁고 위로 오르게 만든다. 숫줄의 용두를 암줄의 용두에 넣은 후 비녀라는 나무빗장을 걸게 된다. 용목의 너비가 1m에 이른다고 했으니 그 줄의 위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줄의 용두 부분. 굵은 줄은 용목이 1m 나 되었다

 

줄다리기는 공동체의 구심점

 

줄다리기는 단순히 줄을 당기는 놀이가 아니다. 그 안에는 공동체를 창출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내적 사고를 지니게 된다. 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틀이 지나고 나면 마을마다 작은 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줄을 갖고 이웃마을과 줄다리기를 한다. 진 마을에서는 이긴 마을에 줄을 넘기게 되고, 이긴 마을에서는 그 줄을 합해 조금 굵은 줄을 만든다. 이처럼 처음 만들어진 줄이'새끼줄'이다. 마을마다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며 새끼줄을 모으고, 이긴 마을끼리 또 다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줄은 점점 굵어지는데, 이때 줄을 '중줄'이라고 한다.

 

줄을 이긴 마을에 넘겨줄 때는 사람들도 함께 그 편이 된다. 이웃과 이웃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절로 공동체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줄이 보름이 가까워지면 커다란 암줄과 수줄로 형태가 변한다. 즉 암용과 수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마을도 강을 사이로 강북과 강남이 암숫룡을 이고 줄다리기를 할 강변으로 모여든다. 마을마다 들고 나온 깃발에, 마을의 풍물패가 한데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한바탕 난장이 벌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의 마음으로 풍농을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염원하였던 것이 바로 우리 줄다리기의 근본이다. 또한 겨우내 움츠려진 몸을 줄다리기를 하면서 길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대한 줄로 보를 막으면 그 줄을 이용해 많은 어종들이 알을 낳기도 했다.

 

'줄보'는 생명의 근원

 

줄다리기를 마친 후 줄은 마을마다 사용법이 다르다. 어느 곳에서는 줄을 당산에 쳐놓기도 하고, 어느 마을에서는 얼음이 언 강에 갖다 놓기도 한다. 새끼줄을 잘라 지붕에 던지면 집안에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하여 잘라가기도 한다. 또는 기자속(祈子俗)으로 줄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줄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줄보>라는 줄의 사용법이다. 마을에 내가 흐르면, 줄을 당긴 후 내를 막아 보를 만든다. 이 짚으로 만든 줄보는 생명의 근원이다. 또한 자연을 보호하고 물을 정화시킨다. 수많은 어류들이 이곳에서 생명을 잉태시킨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어장이 되는 것이다.

 

물속에 많은 먹이를 만들어 배부른 강을 만들고, 여름 장마철이 되면 떠내려간다. 이때쯤이면 농사를 지을 물이 부족하지 않다. 생명을 잉태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물을 가둘 수 있는 줄보.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하면 스스로 떠내려가 물의 흐름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음 해에는 또 다른 생명의 줄보가 물을 막는 것이다.

 

  
줄을 이용해 보를 막은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자. 강을 오염시키지 않고 수 많은 생명을 잉태한 생명의 줄이다

 

이런 줄보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들의 논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조상 대대로 이용해 농사를 지을 물을 가두고, 많은 생명을 잉태시킨 줄보.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선조들의 자연사랑과 공동체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저마다 잘났다고 침을 튀기는 사람들. 이 줄보를 과연 알고는 있었을까? 그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서 저곳을 줄보로 막을 수만 있다면 굳이 이런 논란은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생명의 보 <줄보>, 이 줄보를 만들어 썩은 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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