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자락정, 즐거움도 잃어버리다
자락정(自樂亭),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정자라는 뜻인가? 자락정 앞을 흐르는 노평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흥이 일어날 것만 같다.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앞 도로를 지나는데, 자락정의 안내판이 보인다. 정자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논개의 생가지를 찾아가는 갈이고, 날은 이미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길을 돌렸다.
이정표가 가르치는 곳으로 들어갔으나, 정자가 보이지를 않는다. 한참이나 지나 올라간 듯하여 돌아내려오는 길에 저만큼 정자가 하나 보인다. 옆에는 큰 나무 두어 그루가 서 있는 것이 영락없는 옛 정자의 운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9호인 자락정은 그렇게 노평천의 기암 위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전북 문화재자료 제129호인 장수 장계의 자락정
530년 세월을 지낸 고정(古亭)
자락정이 처음으로 지어진 것은 조선 성종 10년인 1479년이었으니, 벌써 530년이나 지났다. 당시 박수기(1429~1510)가 처 조부인 김영호가 살던 장수로 내려와, 지은 것으로 전한다. 박수기는 충청도 유성사람으로 결혼을 계기로 장수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심신을 수양하여 보냈다고 전한다.
처음에 세운 정자는 부서지고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고종 20년인 1883년 박수기의 후손들이 김영호의 후손들과 함께 힘을 합쳐 유허비를 세웠다. 현재의 정자는 옛 정자가 있던 터에, 1924년에 세운 것이다. 스스로 즐긴다는 뜻의 자락정은 노평천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벗 삼아 살아가고자 했던 박수기의 심성이 그대로 배어있는 정자이다.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는 자락정.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다는 자락정은 노평천가에 자리한다. 통나무로 만든 계단과 자연 암석을 그대로 이용햔 주춧돌
겨울철에 만난 자락정은 또 다른 감흥이
뒤편으로는 커다란 나무가 자리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노평천이 흐르고, 정자의 주변에는 기암이 정자를 받치고 있다. 지금이야 주변으로 도로가 나고 조금은 정신이 사납기도 하지만, 처음 이곳에 정자를 지었을 때를 생각하면 나름 절경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정자를 지은 박수기의 마음은 자연 그대로를 닮았을 것만 같다.
12월 29일 겨울, 정자 뒤편의 나무들은 앙상하니 가지만 남았다. 하지만 주변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쌓여 있어, 조금은 허전한 마음을 가시게 한다. 넓은 암석 위에 세운 자락정은 주춧돌이 없다. 투박한 나무 그대로를 이용하여, 정자 밑의 기둥을 삼아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정자로 오르는 세단의 나무계단은, 통나무를 찍어 홈을 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이다.
정자 안에 걸린 편액들과 후손들이 세운 유허비
퇴색되어가는 자락정의 즐거움
통나무 계단을 밟고 자락정 위로 오른다. 초겨울의 시원한 바람이 사방이 트인 자락정 안으로 몰려든다. 여기저기 줄지어 붙은 편액들이 가득하다. 그저 자연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을까? 단청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가 오랜 세월 속에 거무티티한 자연색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기쁨이었을까? 난간도 간단하다. 그저 멋이라고는 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주인의 심성을 그대로 보이는 정자이다.
자리를 뜨려고 하니 마루바닥에 무엇인가 한 무더기가 쏟아져 있다. 부서진 난간이 그대로 방치가 되어있는 것이다. 주인을 잃은 자락정은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는 것일까? 이렇게 부수어진 모습으로 객을 맞이하다니. 갑자기 정자로 몰려오는 바람이 춥게만 느껴진다. 보수라도 좀 해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부수어진 채 방치되고 있는 난간
주인이 자연 속으로 돌아가니, 자락정도 자연으로 돌아가려나? 두 번 째의 아픔을 당하고 있는 자락정의 모습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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