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한이 많은 민족이라 새도 울고, 바람도 운다고 표현을 한다.’ 정말로 그런 표현을 한다. 모든 것을 운다고 표현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운다는 표현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 그런 표현으로 인해 우리민족이 한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또 한 예는 요즈음 성시를 누리고 있는 노래방을 이야기한다. 가슴 속에 맺힌 한이 많아서 그것을 풀기 위해 노래를 하다가 보니, 그렇게 노래방이 수도 없이 들어차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들은 흔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한이 많아서일까?

2010년 남한강 정월대보름 한마당에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역동적인 놀이가 바로 우리의 민족성이다.

우리민족은 원래 강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민족처럼 강한 민족도 드물다, 이웃 나라들과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에 따라 통치자에 의해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딴 나라들처럼 이민족에게 나라를 넘겨주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것 하나를 보아도 참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성정은 늘 강해야만 했다. 그 강함이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래놀이들이다. 그 놀이 안에 보면 공동체가 살아있다. 나를 위하기보다는 남을 위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민족성이 놀이 안에도 잘 나타난다. 우리 놀이들을 보면 경쟁이 심하다. 말은 경쟁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투쟁의 심성이 포함되어 있다.

고려 때는 여자들이 말을 타고 격구를 즐겼다. 그 사치가 지나쳐 나라에서 금지를 시키기도 했지만, 적어도 고려 때까지는 우리민족이 그런 한을 갖고 사는 민족이 아니었다. 고대에 나타나는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3일 밤낮을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 노래가, 그 춤이 과연 한이었을까? 아니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올렸을 것이다. 한이 아닌 흥이란 뜻이다.


장과 얼레공을 갖고 하는 장치기는 승부성 민속이다. 격구가 변해서 민속 장치기로 변했다고 한다.

왜 한(恨)스런 민족으로 바뀌었을까?

고려 때까지만 해도 역동적이던 우리민족은, 조선조에 들어서 여성들이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개방적이던 여성들이 울안에서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반상의 차가 커지면서 양반가의 여인들은 ‘남존여비’라는 논리에 얽매어 문밖출입을 삼가고, 담장 안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 민초들은 양반가의 수탈로 인해 하루하루를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양반가의 수탈이 결국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또한 힘든 삶의 연속이다 보니, 여인들이 살림을 꾸려가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그런 연유로 여인들은 점점 늘어간 것이 한숨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많은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여인들로서는, 나오느니 한숨이요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시집살이’ ‘꼬댁각시‘ 등 한탄조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오고. 작업요의 대부분이 한탄조의 가사와 음률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보니 생활의 고통, 여자를 천시하는 풍조, 이런 것들이 자연 ’흥‘에서 ’한‘으로 변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줄다리기 역시 역동적이다. 그리고 승부성 민속이기도 하다.

우리민족은 원래 역동적이다

우리민족이 ‘흥겨운 민족이냐?’ 아니면 ‘한스런 민족이냐?’는 간단하다. 원래는 지극히 흥겨운 민족이었고, 그 흥이 곧 삶이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각종 놀이에서 나타나는 동작이나 내용을 보면, 지극히 역동적이다. 그러한 놀이문화는 정월 대보름에 나타나는 줄다리기, 장치기, 기싸움 등 모두가 승부성 민속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내면을 보면 풍농의 기원이나, 겨우내 사용하지 않던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의 대부분이 승부성 놀이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민족의 삶이 강하고 패기가 넘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민족이 왜 그렇게 한스런 민족으로 변한 것일까? 그것은 조선조에 들어 양반의 세에 억눌리고, 오랜 외침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조에 들어서 수없이 많은 외침과, 당쟁, 그리고 남존여비 사상.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만들었고, 수없는 환란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연 소심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러한 소심함이 한과 연결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성정이 바뀐다고 한다. 불안한 환경이 바로 우리민족이 한의 민족이 되게 만든 요인이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혹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말은, 바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나타난 인사라고 본다. 밤이 지나고 나면 주변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흥”이 사라지고 만다.

때로는 격한 승부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민속이 갖는 흥의 결정체이다.

한은 외적인 영향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런 영향을 이겨내지 못할 때, 스스로 한을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외침과 내란, 그리고 일제의 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불안하기만한 삶의 연속. 이런 것들이 바로 한을 만들어 낸 요인이다. 이런 것을 배제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의 본 모습인 ‘흥겨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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