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문화제 때 주빈으로 상석에 앉혔으면

 

마지막 황손 이석(76) 공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시해를 당한 지 114주기가 되는 2010108일 여주시에 소재한 명성황후 생가지에서였다. 당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명성황후 추모제가 열린 생가지에서 한 시간여 이석 황손과 개인적인 대담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런 이석 황손을 7년 만에 전주 승광재에서 다시 뵙게 된 것이다.

 

승광재는 조선의 황손인 이석 공이 사는 곳이다. 한옥마을 최명희 문학관 인근에 있는 승광재는 20048월경에 지어진 집이다. 이곳은 조선황실의 마지막 황손이라는 이석씨가 거주를 하고 있는 집으로 전 전라북도 도지사였던 김완주 전 지사가 전주시장으로 재직시 이 승광재를 지어 이석 공을 머물게 했다.

 

승광재는 한옥마을의 한편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긴 흙담 사이로 난 최명희 길 골목 안에 일각문이 보이고, 그 문 위에는 승광재라는 현판을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는 집이 있고, 우측으로는 자로 꾸며진 승광재가 자리한다. 승광재는 자 집 두 채를 연결해 자로 꾸민 집이다. 승광재에는 황실 사람들의 사진과 황실에 관련된 내용들이 진열이 되어있다

 

이번 이틀간의 전주 여행에서 7년 만에 마지막 황손인 이석(본명 이해석) 공을 승광재 뜰에서 잠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올해로 벌써 76세인 이석 공은 한 때 가수로도 활동을 했으며, 터전을 잡지 못해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석 공은 고종 황제의 손이고 아버지는 의친왕이다. 하기에 명성황후는 이석 씨의 할머니가 된다.

 

 

어린 시절 사동궁에서 자란 황손, 그 곳으로 돌아가야

 

황손 이석 공은 1941년 음력 83일 사동궁(寺洞宮)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사동궁에서 자랐다. 후일 사동궁에서 나오게 되고,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1979년까지는 그나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안배로 서울 궁정동 청와대 옆, 칠궁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도 쫓겨나 1년이면 12번도 더 이사를 다녔단다.

 

사동궁은 한성부 중부 관인방에 있던 궁으로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이석 옹의 부친)이 살았다. 김수덕과 혼인한 후 살림을 차렸는데, 미국 유학 후 고국에 돌아오자 일제는 양관을 지어 주었다. 이때 사동궁은 이강 공저혹은 이건 공저로 불렸다. 그 후 의친왕의 자녀들이 그 주변에서 살았는데 황손 이석 공도 형제들과 함께 사동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석 공은 살아가면서 중앙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국수장사, 자장면 장사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는 한다. 한 낮에 찾아 든 승광재. 이곳을 찾은 수원시 e수원뉴스 시민기자들과 SNS서포터즈들을 만나기 위해 뜰에 있는 벤치에 앉은 황손이 이야기를 꺼냈다. 가슴에 맺힌 것이 많기 때문인지 이야기마다 한이 서려있다.

 

 

"당연히 궁에서 살아야했지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일본인)이 얼마나 잔인했으면 아버님께서는 항상 칼을 머리맡에 두고 사셨답니다. 심지어는 독약을 받을 것에 대비를 해 비상을 조금씩 마셨다고도 합니다." 처음으로 밝히는 이야기라면서 말을 하는 황손 이석씨의 웃는 얼굴에 잠시 노기가 스몄었다. "그저 제가 태어난 곳에서 여생을 마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래전 명성황후 생가에서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황손의 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만난 황손은 이제는 깊은 주름에 머리가 희어져 있다. 세월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더니 이야기를 하는 황손의 눈가에도 깊은 주름으로 그늘이 서려있다.

 

 

화성문화제 때 황손을 주빈으로 삼았으면

 

승광재에서 입을 연 이석 공은 재벌들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해야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실정이 너무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조선과 무관하지 않고 500년 왕조가 이어왔는데 그에 비해 너무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서 박대통령에게 독대를 신청하겠다고 한다. “만일 내가 황손인 것을 인정한다면 독대신청을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하면서 승광재를 찾아 온 손들의 주문에 의해 당신이 예전에 즐겨 불렀다는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수원 화성을 축성한 지 올해로 220주년이다. 수원은 2016년을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정하고 많은 행사들을 벌이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 것은 바로 화성문화재 행사시에 열리는 화성 능행차 연시이다. 올해 능행차는 정조대왕 때와 마찬가지의 서울서부터 예전 능행차 길을 따라 행차를 준비하겠다고 한다.

 

의친왕 이강 공의 139녀 중 11남으로 유일하게 국내에 남아있는 황손 이석 공. 정조대왕의 직계 손은 아니라고 해도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이다. 이번 화성문화제 행사 때에는 황손 이석 옹을 초청해 주빈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황손을 상석에 앉혀 그동안 한 많은 세월을 살아 온 이석 공의 가슴에 남은 한이 조금은 누그려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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