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상궂은 괴수의 얼굴을 하고, 머리의 양 옆 귀 뒤에는 물고기 지느러미와 같은 형상을 한 용머리. 그리고 몸은 거북의 몸체에, 발톱은 용의 발톱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있는 보물 제78호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 이 탑비는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소재 사적 제168호 거돈사 터에 자리하고 있다.

 

거돈사지를 찾아가면 우측 한편에 서 있는 이 탑비는, 고려시대의 고승인 원공국사(930 ~ 1018)의 행적을 적은 탑비이다. 비문은 해동공자라 불리던 최충이 짓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라는 김거웅이 써서, 현종 16년인 1025년에 세웠다.

 

왕사를 지낸 원공국사

 

원공국사(930∼1018)의 법명은 지종(智宗)이고, 속성은 전주 이씨인데, 자는 신칙이다.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 그의 덕을 기리는 송덕문이 담겨있다. 국사는 고려 초기의 천태학승으로, 8세의 어린나이에 동진출가를 하여, 사나사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승려 홍범삼장에게 출가하였다. 광종 6년인 955년에는 오월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광종 21년인 970년에 15년 만에 귀국하여 대선사, 왕사가 되었다.

 

 용머리에 거북이 몸을 갖고 있는 탑비의 받침돌

 비문에는 원공국사의 일대기가 적혀있다. 최충이 글을 지었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현종 3년인 1012년에 왕사가 된 원공국사는, 1016년 병을 얻어 현종 9년인 1018년 원주 현계산 거돈사로 하산하여 입적하였다. 이러한 원공국사의 내력이 소상히 적힌 이 비는 형식적으로는 신라비의 형태를 취했으나, 세부적인 기법이나 고려초기의 비 받침에서 나타나는 거북의 몸에 용머리를 한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뛰어난 조각 솜씨에 절로 감탄이

 

받침돌 위에 네모난 돌을 올려 비를 받치고 있다. 안상을 새겨 넣어 고려시대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연곷문양과 만자를 돋을새김 하였다

비문을 적은 비의 몸돌이 받침이나 머릿돌보다 적다.

 

한 겨울에 찾아간 거돈사지. 눈이 쌓인 빈 절터에는 탑비와 반대편에 석탑 1기, 그리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석조물들이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원공국사승묘탑비이다. 받침돌인 거북의 잔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 안에 '만(卍)'자와 연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눈이 쌓인 거북의 뒤편도 눈을 치워놓고 보니, 육각형 안에 똑같이 만자와 연꽃 문양을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었다.

 

비몸은 머릿돌인 이수와 받침에 비해 작은 편이다. 거북의 몸에는 사각형의 편편한 돌을 얹어 비 받침을 장식했는데, 안상을 새겨 넣어, 고려 때의 탑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석의 위와 아래에는 인동무늬와 당초무늬를 새겨 넣었다. 탑비는 전체적으로 높이가 499.7cm, 폭은 비신의 폭이 123.8cm로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이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탑비이다.

 

비의 머릿돌에는 구름위에 요동치는 두 마리의 용이 가운데 놓인 보주를 다투어 물고자 하는 모습을 조각하였으며, 밑 부분에도 꽃잎을 섬세하게 조각했다. 머릿돌의 뒤편 역시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있다. 머릿돌 뒤편에도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반대로 하고, 뛰쳐나갈 듯한 모습으로 조각이 되어있다. 아래편 비 받침의 용머리가 전설 속의 괴수와 같은 모습이라면, 머릿돌에 조각된 용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였다.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머릿돌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보주를 자기 위해 다투고 있는 형상이다.

뒤편에도 두 마리의 용을 섬세하게 조각했다.

 

탑비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 탑비의 머릿돌인 이수를 옮기려고 수 십 명의 장정들이 달라붙어 움직이려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몇 번이고 머릿돌을 움직여 보았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근처 농가에 가서 소 한 마리를 빌려와 끌어보았더니, 바로 움직였다고 한다.

 

머릿돌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은 무슨 뜻일까? 탑의 주위를 돌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정말 답답하다. 마치 선문답과 같은 전설 하나로, 이렇게 꽤 오랜 시간을 눈밭에서 서성이다니. 오후의 햇살이 흰 눈에 반사가 되어, 눈이 부시다. 저녁 햇살을 받은 탑비의 용머리가 더욱 괴이하다. 또 몇 날인가 이 해답을 얻기 위해 골이 아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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