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 보면 참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취재하고 기사 쓰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거의 녹초가 된다. 어떤 날은 씻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대충 물을 끼얹고 방으로 들어가면, 바로 파김치처럼 늘어진다. 낮 기온이 워낙 뜨겁다가 보니 피곤함도 더하는 듯하다.

 

그렇게 자리에 들면 바로 눈을 감아버린다. 잠시 뒤척이다가 보면 밤새 TV 혼자 떠들어 대기가 일쑤이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고 했다는데, 이건 어찌된 일인지 잠만 더 늘어났다. 늘 부족한 잠 때문에 머리가 맑아지지가 않는다. 이럴 때 밤늦게 누군가 전화라도 걸려오면,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다.

 

 

정신 빠진 사람, 누구더러 여보래?

 

12시가 다 되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잠결에 귀찮아 받지 않으려다가 생각을 해보니, 이 시간에 급한 전화라도 누군가 했다면 큰일이지 싶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 나야 나 오늘 집에 늦게 들어갈 것 같아

여보세요. 전화 잘 못 하신 것 같은데요.”

나라니까 왜 장난해. 나 늦게 들어간다니까.”

 

잔뜩 취해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다. 전화를 잘 못 걸었다고 하는데도 장난하지 말란다. 이런 전화 때문에 곤한 잠을 자다가 깼다는 것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전화 잘 못 하셨어요. 번호 확인하고 다시 거세요.”

 

이미 잠은 다 깨버렸다. 이렇게 잠이 한 번 깨면 다시 잡을 청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도 전화가 울린다. 번호를 보니 낯선 번호다. 받지 않을까 하다가 무슨 일인가 해서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여보 나야 왜 자꾸 전화 갖고 그래

전화 잘 못 거셨다고 했잖아요.”

아냐 나야 여보, 미안해 얼른 들어갈께.”

 

이정도면 돌아버릴 지경이다. 성질도 나지만 이 여자분 참 딱하단 생각이다. 아무리 술이 취해도 그렇지 어째 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여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렇게 목소리를 못 알아듣는 것일까?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 해도 이 정도면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전화 잘 못 하셨습니다.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참 어이가 없다. 욕지거리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욕은 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도 미안하다고 얼른 들어간다고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또 전화가 울린다. 아까 그 번호다. 이 정도면 이제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보세요. 정말 너무하시네. 전화 잘 못 걸었다고 몇 번을 이야기를 해요.”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더 듣고 싶어서 했어요.”

이 아줌마가 미쳤나? 술이 취했으면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아저씨 목소리 좀 더 듣고요.”

 

세상 참 이런 사람도 있나 싶다. 만일 여자라도 곁에 있었으면 바로 파탄이 날 일이다. 본인이야 술이 취해 그렇다고 하지만, 피곤한 몸을 쉬려고 잠을 자고 있다가 이런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았으니 말이다. 배터리를 빼 놓았지만, 한 번 잠이 깬 잠을 밤새 설쳤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밤 늦게 술을 먹고 전화를 걸어 와 잠을 설친 것이 처음이 아니다. 잊을만 하면 걸려오는 잘못 된 전화, 나도 이젠 술 마시고 전화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 전화는 해도 너무하다. 세상 참 이런 아내를 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 걱정이 된다.(사진은 기사와 무관한 전라북도 부안군 구암마을 지석묘임)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