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의 순 우리말 이름은 ‘못골’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큰 연못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동새마을 금고에서 못골어린이 놀이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좌측으로 이발소 하나가 보인다. ‘조원이발관’이라는 이 이발관은 이순재씨(남, 65세)가 운영을 하고 있는 이발관이다.

 

탤런트 이순재와 이름이 같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농을 해대고는 한다. 한국동란 때 부모님과 함께 월남을 하여, 못골에 정착을 했다. 그리고 이발 기술을 배워 이발관을 시작한지가 벌써 40년이 지났다. 숱한 세월을 못골 사람들과 함께 애환을 달래면서 살아온 이순재 사장이다.

 

 

“그 땐 제일교회가 판자집이었지”

 

이순재 사장이 운영하는 이발관은 마을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꼭 이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일을 하기 위해서 들려가고는 한다. 찾아오신 어르신들이 머리가 단정치 않으면 그냥 머리 손질을 하기도 한다.

 

“처음 이발관을 열었을 때는 마을에 어르신들이 한 150여 명 정도였는데, 40년 세월동안 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젠 한 열 분이나 남았나 봐요. 그 땐 이발소에서 위편으로 제일교회 있는 곳까지 집이 없었어요. 모두 밭이고 지금 앞으로 난 길 건너편은 논이었으니까요. 그 때는 제일교회도 판자였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지금처럼 큰 대형교회가 되었지만.”

 

사람이 좋아 그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이 이발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지만 안을 들어가면 40년 전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40년 세월의 손때가 묻어있다.

 

 

40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조원이발관

 

“예전에는 손님들도 참 많았어요. 많을 때는 혼자서 하루에 20명을 이발을 한 적도 있었고요. 그 때는 정말 젊어서 그런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는 했는데. 이런 적도 있었어요. 제가 낚시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낮에는 이발을 하고 밤에는 낚시를 다니고는 했죠. 그러다가 보니 낮에 이발을 하러 손님이 오셨는데, 그만 졸고 있었나 봐요. 어르신이 피곤하면 잠시 들어가 눈을 붙이고 나오라고 하시데요.”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부친 것이 두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발을 하러 오신 어르신은 그 자리에 앉아 계시더라는 것. 그만큼 못골의 옛 어르신들은 정이 넘쳤다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동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지동에는 어르신들 중에 남자가 별로 없어요. 모두 다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마나님들만 남아 계시죠.”

 

 

40년 세월을 많은 사람들과 접하다가 보니, 마을의 집집마다 그 속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조원이발관은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속내를 풀어내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발을 하러 오거나, 그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을 찾았거나 아무래도 좋았다는 것.

 

“어르신들이 오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시기 때문에, 마을 사정을 잘 알고는 했죠. 어느 날부터인가 어르신들이 한 분씩 보이지 않는 거예요. 세상을 떠나신 것이죠.”

 

한 자리에서 40년 세월을 남의 머리를 만지며 살았다. 그리고 어르신들과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아직 못골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발소 안에는 나무로 열을 내는 난로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40년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 있는 셈이다.

 

“저희 집에는 아직도 220V 전기를 쓰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선풍기고 무엇이고 다. 40년 동안 함께 이 이발관을 지켜 온 것들이죠. 그래서 쉽게 바꿀 수도 없고요”

 

그랬나보다. 곁에서 대담을 듣고 있던 마을분이 한 마디 거든다. 그 말에서 40년 세월을 못골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며 그 애환을 함께 한 것이 아닐까?

 

“참 오래되었죠. 저 의자도 아마 처음 문을 열 때 그대로인 것 같아요. 타일을 붙인 저 세면대도 그 때 그대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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