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비행장에서 35년을 근무를 했다. 올해 수원비행장 이전이 확정되어 누구보다 지난 세월의 추억이 많을 것 같은 부산건어물 이충호(, 69)사장. 벌써 매산시장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지 15년이 흘렀다. 그동안 강산이 5번이나 변할 만큼 오랜 세월을 수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매산시장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15년 전 처음 이곳에 건어물 가게를 차렸을 때는 매출이 꽤 올랐어요. 지금은 그 당시의 25% 정도 오른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당시 매상이 100만원이 올랐다면 지금은 25만 원 정도 오르는 것이죠. 한 마디로 한 번 일이 생길 때마다 50% 이상 매출이 줄어든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수원역에 애경백화점이 입점을 하고나서 많은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롯데쇼핑몰로 인해 소비자들이 대형 할인점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판매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건어물 가게를 열었기 때문에 이제는 나이가 들어 종목변경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 안 쓰고 안 먹나 봐요.”

 

요즘 사람들은 안 먹고 안 쓰는 것 같아요. 경제가 워낙 어렵다보니까 가급적이면 지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듯해요. 그래도 예전에는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나이도 많고 노력을 해도 달라지질 않아요.”

 

시간이 갈수록 시장이 자꾸 퇴보하는 것 같다고 하는 이충호 사장. 매산시장엔 주차공간이 없어 차를 갖고 오는 사람들이 그저 지나가기만 한다는 것이다. 주차장이 있으면 지금보다는 그래도 매출이 오를 수 있는데, 그런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인근 주변 주민들만 이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차장이 있으면 그래도 옛 정취가 있는 곳이라 손님들이 들어올 텐데 아무래도 그런 편의시설이 없다보니 주차장이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을 이용하게 되죠. 요즈음 차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요.”

 

 

중국인들로 인해 유지를 하고 있어

 

이충호 사장은 그나마 중국인들이 주변 원룸이나 고시원 등에 많이 거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 견딜 수가 있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미역이나 멸치, 김 등을 구입하는데, 김의 경우 본국으로 많이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우리나라 김처럼 좋은 것이 생산이 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이 주로 김을 많이 사가죠. 더구나 요즈음은 종합슈퍼에서 건어물을 다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움이 많아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매장이 큰 곳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하니까요.”

 

그래도 명절이 되면 아직도 건어물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제수용품을 구입하는 데는 건어물 가게를 들리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 이충호 사장은 요즘 건어물 상회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한다. 전처럼 건어물 전에서 파는 상품들을 요즈음은 모든 가게들이 취급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인 등 외국인 점포 점차 늘어나

 

지금 매산시장에도 중국 및 태국 등 외국인 점포가 15개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들은 시장에 점포가 나면 바로 입주를 합니다. 비용 같은 것은 그렇게 염려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곳에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다보니 그들의 거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공직에 있다가 경험도 없이 시작한 건어물 가게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할 때 생각을 하면 재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았고, 시장에 사람들이 많아 서로 부딪쳐가면서 시장 길을 걸었다고 한다. 앞으로 매산시장이 어떻게 또 변화를 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 입주로 시장의 활성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몇 년 전에는 무조선 제일 좋은 1등급 고기를 팔았다. 주변에 단독주택이 많아 주부들이 주로 가족들과 함께 먹기 위해 제일 좋은 분위를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그렇게 판매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매산시장 하나로 축산 이준호(, 40) 대표는 올해로 이곳에 둥지를 튼 지 7년째이다.

 

저는 원래 전에는 골프를 쳤어요. 프로로 나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동생을 가끔 도와줄 때 본 것이 축산업이라 이 가게를 열었죠. 저희는 횡성한우를 취급하기 때문에, 처음에 시작하고 2년 정도는 우리 한우만 판매를 했어요,”

 

7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때는 수입고기는 아예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들이 매산시장의 고객층이 중국인들이 대거 유입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입고기를 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생이 소입고기판매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차등판매를 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동생이 수입고기판매사업을 하고 있어 남들보다는 좋은 가격으로 판매를 할 수 있어요. 요즈음 매산시장 손님들을 보면 70%가 중국인과 동남아 사람들이고 한국 사람은 30% 정도밖에 안돼요.”

 

그렇기 때문에 육고기 판매를 할 때도 차등을 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일 좋은 1+등급 1++등급은 판매가가 워낙 높아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1+등급 500g에도 36000원이나 하는 등심 같은 부위는 사가는 손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대개 수입고기를 이용해요. 수입고기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육점을 이용하는 고객층을 보면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아주 좋은 고기를 사가는 분들과, 좀 가격이 싼 것을 사가는 층이죠. 중간층은 판매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고기를 구해올 때도 그런 구매계층에 맞게 구입을 하야죠.”

 

 

 

 

요즈음 뼈는 팔리지가 않아

 

이준호 대표는 처음 7년 전에 장사를 시작할 때, 소 한 마리에 400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700만원을 웃돈다고 한다. 그만큼 가격이 두 배정도가 뛰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생산지에서 소를 가져올 때 아예 뼈를 다 발라갖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제는 가게에서 뼈를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은 사라졌다고 한다.

 

요즈음은 대개 핵가족화가 되어있어 집에서 뼈를 이용해 뼈다구탕 같은 것을 끊이지 않아요. 그래서 소를 한 마리 통째로 들여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필요한 부분을 신청하면 모두 선별을 해 갖다 주기 때문이죠.”

 

매산시장 하나로 축산 이준호 대표. 젊은 나이에 프로 골프에 꿈을 접고 시장으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젊기 때문에 아직은 무엇인가를 해보기 위해 노력을 한다고 한다. 말끔하게 잘 정돈되어 진열된, 진열장을 들여다보니 딴 집들과는 다르게 정돈이 되어있다. 그런 진열장에서 평소 이준호 대표의 성격을 알 수 있을 듯하다.

 

 

 

 

하나로 축산 고기가 좋아요. 우리도 가끔 그곳에서 사다먹는데 사장님이 서비스로 좋고요. 고기 값도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 집은 제일 맛있는 부위를 고집스레 판매한다는 것이죠. 지금은 조금 힘들 때지만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오겠죠.”

 

매산시장에서 만난 한 지역주민은, 하나로 축산에서 구매를 한다면서 정리가 잘 되어있고 늘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한다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지금은 누구나 다 어려울 때지만, 앞으로 하나로 축산의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깐깐하다라는 말은 까다로울 정도로 빈틈이 없고 알뜰하다는 뜻이다. 매산시장 초입 좌측 골목 안에 있는 희망야채의 여사장 피정인(, 55)씨는 그런 말이 딱 어울리는 성격을 갖고 있다. 매사에 빈틈이 없다는 것은 가게 안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야채들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모든 야채와 판매를 하는 상품에는 국내산이라는 글씨와 생산지, 가격이 적혀있다. 누구나 이 집에 오면 가격이 얼마인지, 어느 나라 산인지 그런 것을 물을 필요가 없다. 그 가게 안에 있는 상품들에는 그런 내용들이 모두 적혀있기 때문이다.

 

매산시장 블로그에 소개한 당근은 수입당근예요. 전통시장 소개를 하면서 수입당근 사진을 사용하면 안 되죠.”

 

그 말 한 마디만 들어보아도 얼마나 매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다. 희망야채의 물건들은 정리가 잘 되어있다. 누가 와도 편하게 물건을 사갈 수 있도록 진열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물건도 수입품, 사람도 수입품예요

 

피정인 사장이 이곳 매산시장에 들어와 야채가게를 차린 지 9년이 되었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벌써 강산이 한 번 변할 때가 된 것이다. 희망야채 가게는 2년 동안은 모든 상품을 국내산만 취급했다고 한다. 남들이 이익을 더 남기기 위해 외국산을 팔 때도 고집스럽게 국내산만 취급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중국인들이 많지 않았으니까 국산 채소만 취급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물건도 수입품, 사람도 수입품으로 변했어요.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수입야채도 팔고 있고요. 하지만 가급적이면 국내산만 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인가 가게 안 물건마다 써 붙인 상품과 생산지의 거개가 국산이다. 피정인 사장은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나면, 새벽 2시까지 가게에서 팔 물건을 포장을 한단다. 그리고 잠이 들면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원농산물시장과 서울 가락시장을 돌아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 8시 전에는 반드시 가게 문을 연다고 하니 늘 피로가 쌓여있을 듯하다.

 

이곳 가게 안 한편에 잠을 잘 곳이 있어요. 5년은 그곳에서 잠을 자면서 장사를 했죠. 워낙 시간이 없어 어디로 갈 수가 없어서요. 물건 정리하고 진열하고 포장까지 하다보면 시간이 정말 부족해요.”

 

 

 

 

잡상인들을 막지 못하면 시장 경제 어려워져

 

매산시장 주변에는 잡상인들이 차를 대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전통시장들의 대개는 이런 잡상인들 때문에 정작 점포를 열고 장사를 하는 상인회원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들은 무분별하게 시장 주변 이곳저곳에 진을 치고 장사를 하기 때문에 같은 물건을 파는 상인회원들은 물론, 검증이 안 된 물건을 파는 경우도 있어 시장의 위상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그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너무 심한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고 냉정하게 할 수도 없고요. 이런 것은 상인회나 해당 주민센터 등이 적당히 조치를 취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들로 인해 상인회원들이 피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요.”

 

 

 

매산시장 인근에 세류아파트를 짓기 전에는 주변에 단독주택들이 많아 손님들이 많았다고 하는 피정인 사장. 당시는 혼자 장사를 하면서도 손수레를 끌고 그곳까지 배달을 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그 당시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이 몸에 배어있다고 하는 깐깐한 여사장 피정인씨. 앞으로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오고 나면 다만 한 사람이라도 시장을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한다.

 

긍정적인 사람은 실패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노력을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희망야채 깐깐한 여사장님의 앞날은 밝음일 듯하다.

 

 

역전에서 팔달문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우측에 매산시장 입구가 보인다. 매산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 점포가 늘어선 곳에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 앞에 과일가게가 있다. 이 과일가게를 부여상회라고 하는데 간판도 붙어있지 않다. 이 부여상회의 대표는 이곳에서 20년간 과일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복숭아 얼마예요?”

한 개에 1000원 씩요.”

그럼 한 상자에는 얼마나 해요?”

“15천원입니다.”

좀 빼주시면 안돼요?”

한 개에 1000원씩 받는 복숭아가 몇 개가 들었는데 거기서 더 빼달라고 해요.”

 

과일을 사러 온 손님과의 대화이다. 신정녀 할머니는 과일을 팔고나서 한국인들은 무조건 깎아달라고 한다면서 중국인들은 물건의 질을 보고, 한국인들은 물건 값을 본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물건의 질을 먼저 봐요. 물건이 질이 좋으면 가격은 문제 삼지 않아요. 그저 부르는 가격대로 다 주고 사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달라요. 무조건 더 달라고 하거나 값을 깎아달라고 해요. 그런 점이 달라요.”

 

 

 

 

20년 전에 과일가게 시작해

 

부여상회 신정녀 할머니는 매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과일가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간에 장사를 바꿔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게는 안에 점포가 있고 과일은 밖에다가 진열을 해놓았다. 점포가 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골목에 비스듬하게 형성이 되어 있어 정작 점포는 창고로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게 안에는 들어가질 않아. 물건도 이곳에 진열을 해놓아야 팔수가 있어요. 아무래도 큰길에서 물건을 보여야 하니까. 이곳은 과일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개 중국인과 외국인들이고, 한국인들은 요 앞 대우아파트에 사는 주부들과 젊은 학생들. 그리고 연세가 드신 남자 분들도 있고요.”

 

예전에는 손님이 모두 한국인뿐이었던 매산시장이 이제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20년이란 세월동안 그만큼 변했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다. 지금은 여름이니 괜찮지만, 추운 겨울에는 어떻게 과일보관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날이 추우면 아예 문을 열지 않아

 

겨울에는 어떻게 하세요. 날이 추워지면요?”

과일은 밖에 내다놓기 때문에 한 겨울에 영하 8도 이하로 내려가면 아예 문을 열지 않아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고요?”

그럼 안 열지 과일이 얼면 못 파니까. 아예 문을 열지 않아.”

 

20년 동안 과일가게를 했지만 요즈음처럼 손님이 없을 때가 없었다고 하면서,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입주를 마치면 매산시장에도 손님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란다.

 

 

 

 

요즈음은 수박도 반통만 달라고 하는 손님들도 있어. 이곳은 주변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통을 사가면 오래 저장을 하지 못해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런 손님들이 오면 반통도 팔기도 하고.”

 

지금은 손님들이 예전과 같지 않아 조금은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나면 손님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부여상회 신정녀 할머니. 할머니의 바람대로 매산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를 고대한다.

 

 

매산시장으로 내려 온 것이 벌써 34년이나 되었네요. 제가 33살에 박사이자 교수이던 남편과 사별 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그릇가게를 열었어요. 그 때 자리가 바로 이 곳이죠.”

 

매산시장 현대그릇전문점의 홍혜숙 대표는 단돈 4,000원을 들고 수원 매산시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매산시장에 점포를 낸 뒤 수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 대학을 다닐 때도 학비를 50%만 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매산시장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그저 시골 장 같았죠. 당시는 역전시장 건물도 없었고요. 길에는 시골아줌마들이 나와서 물건을 팔고는 했죠. 지금은 그런 분들이 장사를 하는 것을 막고 있어서 시장 한편에 몇 분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죽 앉아서 장사를 했어요. 지금은 그 아주머니들이 모두 화서시장으로 옮겨 갔죠"

 

 

 

 

살아있는 매산시장의 역사

 

현대그릇전문점 홍혜숙 대표는 매산시장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34년 동안을 한 자리에서 시장이 변화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의 발전을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걱정하고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 우리 그릇 가게 앞에도 소와 돼지, 닭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 팔기도 했어요. 그 때는 가축시장도 이곳에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손님들이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니까 그릇을 팔아도 일반적인 그릇들이 더 많았죠. 지금은 고객들의 70%가 중국인들이다 보니 그네들이 좋아하는 전기밥솥 등을 많이 취급하죠.”

 

세월이 가면서 매산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릇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70%는 중국인이고, 10% 정도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 정도는 베트남, 인도, 러시아, 스리랑카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란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그릇 가게를 찾아오는 고객 중 90%가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말을 인사정도는 할 줄 알아야 돼요. 공부도 많이 했어요. 물건을 흥정하고 인사를 할 줄 알아야 그들에게 물건을 필 수 있으니까요.”

하기에 중국어는 물론이도 일본어와 영어 정도는 필수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이다.

 

 

 

 

장사는 주변 상황을 돌아보고 노력을 해야 해

 

지금도 중국인들이 찾아오면 대개 본국으로 그릇을 구해 택배로 보내는데, 한문을 잘 쓰기 때문에 중국 주소를 택배상자에 써주면 그렇게 좋아한단다.

 

요즈음은 인근에 대형 할인점들이 많기 때문에 늘 그곳을 돌면서 물건을 바꿔야 해요. 전기밥솥 같은 것을 잔뜩 놓았다가 대형매장에서 할인행사라도 하면, 중국인들이 다 세일하는 곳으로 몰려가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기에 늘 대현매장들과 물건이 겹치지 않도록 진열을 해야 하고, 그들이 할인행사를 하면 그들이 할인을 하지 않는 물건으로 진열하는 물건을 교체해야 한단다. 하기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변을 잘 돌아보아야 하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혜숙 대표는 지금은 매산시장의 가게가 본인건물이며 땅도 좀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건물이나 땅은 누가 집어가질 못하는 것이니, 돈이 될 때마다 그쪽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34년 전 4000원을 들고 수원으로 내려왔지만, 근면으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때는 군에 납품도 했었죠.

 

홍혜숙 대표가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근면과 성실이라고 한다. 그릇 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냉면그릇을 사러 왔는데, 말쑥하게 양복을 입은 신사였다는 것이다.

 

그릇 샘플을 좀 보여 달라는 거예요. 지금은 비싸지만 당시는 냉면그릇을 800원 정도에 받아 웃돈을 부쳐서 팔 때인데, 샘플을 달라고 하면서 얼마에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750원에 드리겠다고 하니, 천개를 주문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군부대와 병원, 학교 같은 곳에 납품을 하는 사람인데, 원가를 아는데 그보다 싸게 준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두 개 정도니까 그냥 드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대답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850원씩에 트럭으로 한 차를 사갔다고 한다.

 

한 때 그렇게 많이 팔았어요. 그러다가 군납품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조달청에서 모든 것을 납품하게 되었죠.”

 

지금도 처음 장사를 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홍혜숙 대표. 지나 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의 고생이 지금의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실과 근면, 그리고 노력이 어우러진 34년의 결실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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