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질 저하 없이 보다 우수한 화질로 극장용 영사기 시스템 대체 가능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 상영을 한 후 120년 넘게 극장에서 사용해 온 영사기와 스크린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LED 디스플레이 제작 기술이 경기도의 산학협력사업을 통해 세계최초로 개발됐다.

 

18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 지역협력연구센터인 한국항공대학교 영상음향공간 융합기술 연구센터는 최근 입체음향 관련 전문업체인 ()소닉티어오디오와 함께 투음(透音) LED 디스플레이 모듈 개발에 성공, 상용화에 나섰다.

 

투음 LED 디스플레이 모듈은 말 그대로 소리를 통과시킬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현재 영화 상영은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영상을 투여하고 극장내 설치된 여러 개의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사람의 음성을 전달하는 스피커는 스크린 뒤편에 설치돼 있는데 극장에서는 소리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지름 1mm 정도의 구멍을 촘촘히 낸 고밀도 천공 스크린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영사기와 스크린 방식은 고화질 영상을 재현하기에는 낮은 명암비로 한계가 있다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LED 디스플레이가 개발됐지만 중앙스피커의 음향 재생을 할 수 없어 상용화되지 못했다.

 

기술개발에 성공한 투음 디스플레이 모듈은 LED 소자에 구멍을 내는 타공 LED라는 특허기술을 사용해 디스플레이 뒤쪽 스피커에서 출력되는 소리를 앞으로 보낼 수 있어 입체적 음향 전달이 가능하다. 투음 디스플레이 모듈의 크기는 한 변의 길이가 25cm인 정사각형 형태로 상하 및 좌우 방향으로 필요한 수만큼 이어붙이면 16m×8.7m 정도의 일반 극장용 스크린이 된다. , UHD(4K) 수준의 초고화질 영상 재생이 가능해 4K로 제작된 영화도 원본 그대로 상영할 수 있다. 이밖에도 LED 디스플레이 특성상 영사기 없이 컴퓨터 등 디지털 장치 연결만으로도 영화 상영이 가능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말 기준 국내 영화관 스크린 수는 2,766개다. 7%대에 이르는 스크린증가추세를 국내 시장에 적용하면 내년은 3천여개로 늘게 되는데 이 가운데 2%정도인 60개 스크린만 투음 디스플레이로 대체돼도 120억원(60×2) 이상의 내수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경기도는 투음 디스플레이가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평원 경기도 과학기술과장은 소리가 투과되는 디스플레이에 대한 원천 특허를 보유한 소닉티어오디오와 항공대학교 연구팀, 경기도의 지원이 합쳐지면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신제품이 탄생했다면서 관련 기술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지역협력연구센터(GRRC) 사업은 연구개발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가 도내 대학, 연구소와 중소기업을 연결, 기술개발 활동을 지원하는 산·학 협력모델이다. 도는 지난해 이번 연구를 맡은 영상음향공간 융합기술 연구센터(한국항공대학교 지역협력연구센터(GRRC)) 에 도비 51천만원을 지원해 연구를 도왔다.

 

<수원시민이 기록한 416> 사진전 아프다

 

2014416. 이날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씻지 못할 아픔을 만든 날이다. 진도 팽목항 앞 남해의 차가운 물속에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나라 같지 않은 정부의 실수로 인해 스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흘렀다. 하지만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의 의문 속에 세월호는 기억 속으로 남게 되었다.

 

최근 네델란드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2014젼 검찰은 선박해양플랜트 연구소에 의뢰해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100여 차례 실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세월호의 침몰은 급변침에 의한 조타미숙이 아닐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를 4년간이나 은폐했다는 것이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56에 소재한 행궁동 레지던시에서 지난 49일부터 ~ 16일까지 <수원시민이 기록한 416>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주최는 수원시와 세월호 수원시민 공동행동이며 주관은 수원민예총 사진위원회가 맡았다. 이곳 전시관 1층에는 추모와 기억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2층 전시공간에는 416 연대의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죠. 자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피어보지도 못한 목숨을 그렇게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시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세월호 침몰이 정부의 발표대로가 아니라고 하니 이젠 정말 제대로 밝혀내야죠

 

 

미덥지 못한 정부발표, 진실은 무엇인가?

 

2층에서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던 정아무개(, 54)씨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을 하루빨리 밝혀내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시공간에 전시된 많은 사진들은 세월호 참사 4주기 수원시민 사진공모 및 전시회로 시민들이 핸드폰에 보관하고 있는 416에 관한 사진들을 모아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지난 38일부터 31일까지 이메일과 카톡 등으로 받은 사진을 현상해 각 단체를 구별해 전를 하고 있다. 2014416일 그렇게 전 국민들을 비통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 후 많은 시민단체들이 세월호에 대한 추모와 박근혜 정부 퇴진 등을 요구했으며 그 현장의 생생한 모습들이 사진에 담겨 있다.

 

어이가 없네요. 도대체 세월호 침몰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 사진들을 보면 아직도 알 수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목숨이 목 놓아 구조를 외차다 저 세상으로 갔는지 원인을 밝혀내야죠. 절대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416의 아픔 잊지 말아야

 

사진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차례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면 아마 조금은 덜 미안했을 것이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써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왜 모르겠는가? 가슴을 쥐어뜯고 땅을 치며 통곡한 들 떠난 아이들이 돌아올 리 없기 때문에 더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아픔을 또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수원시민이 기록한 416 전시. 노랑색 리본이 전시실 여기저기 걸려있다. 그 리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의 아픔을 돌아보면서 더 이상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복지신문 한미연 기자

두레조직이 만나 상대방 기 꿩장목 뺏어

 

서구화된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수없이 사라져간 우리의 풍속들. 그 안에는 상원일이라고 하는 정월 대보름의 놀이들이 있었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마을과 마을 간의 단합을 일구어 낸 수많은 놀이들이 단지 옛것이나 미신이라는 폄하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실 정월 초사흘부터 대보름인 상원일까지 수많은 놀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다 소실되고 몇몇 가지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대보름은 우리민족에게는 4대 명절 증 하나였다. 설날, 추석, 동지와 함께 정월대보름을 큰 명절로 꼽은 것이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잡은 이유는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한 각종 공동체놀이들이가 정월 대보름을 기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에 설을 쇤 사람들은 초이틀은 귀신 날이라고 해서 근신을 하다가, 하늘에서 평신(平神)이 하강한다는 초사흘부터 지신밟기 등 각종 놀이를 즐기기 시작한다.

 

음력 초3일되면 각 마을마다 두레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마을마다 한 집도 빠짐없이 다니면서 고사덕담(告祀德談)’인 축원을 해주는데 문굿서 부터 시작을 해 우물, 마구간, 부엌, 장독대 등을 돈 후 대청에 마련해 놓은 고사상 앞에서 덕담을 한다.

 

고사덕담은 그 집이 일 년 동안 안과태평하기를 바라는 축원굿으로 일 년 간의 액을 막아내는 홍수풀이부터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농사풀이 등 창자의 능력을 따라 다양한 소리를 한다. 지신밟기를 마치면 대청에 마련한 술과 떡을 나누고 난 뒤 고사상에 올려 진 쌀과 돈을 갖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그 쌀과 돈은 마을의 기금으로 사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먼저 지신밟기를 하기 위해 풍물패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하니 우리민족은 정월에 하는 놀이가 풍농과 안과태평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마을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던 두레패들이 길에서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게 먼저 기를 숙여 인사를 하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급기야 상대 두레기의 상단에 꽂힌 꿩장목을 뽑게 되는데 이것이 정월에 열리는 '두레싸움'이다.

 

두례싸움에서 먼저 꿩 장목을 빼앗긴 마을은 상대방의 마을을 '형님마을'로 일 년간 대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긴 마을에서는 빼앗은 꿩장목을 기에 함께 달고 다니기도 했다. 진 마을에서는 일 년 동안 장목이 없는 두레기를 들고 다녀야 했으며 다음해 다시 두레싸움을 벌여야 찾아오거나 장목을 빼앗아간 상대마을을 푸짐하게 차려먹인 후 장목을 찾아오곤 했다.

 

원래 기싸움이란 마을마다 <두레기>가 있어, 그 두레기들이 농사일을 하러 길을 나가다가 서로 꿩장목을 빼앗는데서 유래를 한 것이다. 예전에 마을에는 농사를 지을 때 품앗이를 하던 두레조직이 있었다. 이 두레조직에는 두레를 상징하는 기()'두레기'가 있었다. 공동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두레패들이 길을 가다보면 이웃의 두레패들과 길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

 

길에서 마주친 두레패들은 서로가 자신들이 '형님'이라며 상대방에서 먼저 기수를 숙이거니 길을 비켜서라고 난리들을 친다. 그러다가 기싸움을 벌이게 된다. 기싸움은 상대방의 두레기 위에 꽂힌 꿩장목을 먼저 빼앗는 마을이 형님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놀이, 그 많던 음력 정월의 놀이가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다. 공동체를 창출하고 서로간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던 놀이가 사라지면서 우리는 이웃을 잃어버리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로 변했다. 작금에 들어 우리 전통민속을 다시금 찾아가려는 운동이 번지고는 있지만 허울뿐인 전통, 내실이 사라진 민속을 버젓이 연희하면서 전통을 지켜간다는 낯간지러운 말들을 한다. 우리민속은 겉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사고가 더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재액을 방지하기 위해 붉은색인 팥죽과 수수팥떡 먹어야

 

올해는 1222일이 절기로 동지(冬至)’이다 일반적으로 동지는 대설이 지난 후 15일이 지나는 날이다. 동지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동지추위라는 것이 몰려온다고 한다. 아마도 이 추위가 겨울 중 가장 매서운 추위일 것이라고 어른들은 이야기 한다. 동지란 말 그대로 풀이하면 겨울에 이른다는 것이다.

 

동지에는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가 하루에 1분 정도씩 길어진다고 한다. 옛 풍습에는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 지금도 우리의 속설에는 설날과 정월 대보름, 추석과 동지를 4대 명절로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동지가 되면 농촌에서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동지 때가 되면 집안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 우선 동지 때 아녀자들은 겨울 찬거리를 준비한다. 김장은 이미 해 놓았다고 해도 이것저것 밑반찬 거리를 만든다. 채소 등을 자르고 말려 일 년 찬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남자들이라고 빈둥거리는 것은 아니다. 밭으로 나가 보리를 밟기도 하고 다음해에 사용할 새끼 꼬기도 해야 한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 동지를 전후 해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애동지엔 팥죽 대신 수수팥떡 만들어 먹어

 

동지에 팥죽을 먹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오래전 설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신라 때 어느 가난한 선비의 집에 나그네가 찾아들었다. 그 나그네는 선비에게 부자가 되는 이런저런 방법을 알려 주었다. 선비는 나그네의 말대로 따라했더니 정말 가세가 부흥되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돈은 많아졌으나 선비는 날마다 말라만 가고 있었다. 하루는 지나던 스님이 선비에게 이르기를 그 나그네는 도깨비다. 도깨비를 퇴치하지 않으면 당신이 죽는다고 하면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말을 잡아 그 붉은 피를 사방에 뿌리라는 것이었다. 말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선비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사방에 뿌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설화 속 팥죽의 유래이다.

 

이와는 달리 6세기경 중국 양나라의 종름이 쓴 연중 세시기인 형초세시기에는 또 다른 유래가 전하고 있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죽어 역질을 퍼트리는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붉은 팥을 무서워 해 팥죽을 쑤어 역질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짓날이 되면 집집마다 팥죽을 쑨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린 다음 집안의 대문, 장독대, 측간, 부엌, 뒤뜰, 마구간 등에 한 그릇씩 갖다 놓는다. 그런 다음 집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에 골고루 팥죽을 뿌린다. 이는 잡귀들이 붉은 색을 싫어해서이다. 하지만 중동지나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쓰지 않고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는 수수도 붉은색을 띠기 때문이다.

 

올해는 음력 동짓달 10일안에 동지가 들어 애동지이다.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수수팥떡을 해 먹는다. 이는 애동지는 아이들을 상징하는 동지라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습속에는 아이를 낳으면 열 살이 되는 해까지 수수팥떡을 해서 먹었다. 수수로 떡을 해 먹는 것도 역시 사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수수도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수수는 생태적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 습지대와 바람이 많은 곳, 또한 가뭄에도 잘 견디는 농작물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아이가 탈 없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붉은 수수와 붉은 팥을 이용한 수수팥떡을 만들어 아이와 집안에 드는 모든 사악한 액을 막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민간에서는 동짓날 부적으로 악귀를 쫓고, ()’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는 속설도 있다. 다행히 올해는 22일인 동짓날 날이 쌀쌀해 내년에 풍년이 들 징조라는 생각이다.

 

우리 경기도 전역에서 연희가 되던 거북놀이에서 거북이와 질라래비의 옷을 수숫잎으로 만들었다. 이도 역시 축귀를 상징하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애동지라고 하는 22. 수수팥떡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동자에 관한 깊은 뜻을 학습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섶다리는 조선조 세종 10년인 1428년,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보광산에 위치한 청송심씨 시조묘에 사계절 전사일에 용전천 강물이 불으면 유사 관원과 자손들이 건너지 못할 것을 걱정해 섶나무(잎나무와 풋나무 등)를 엮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섶다리란 한시적으로 내를 건널 수 있는 구조물로 조성하는데 Y자로 생긴 굵은 나뭇가지를 잘라 받침으로 사용하고, 그 위를 적당한 굵기의 나무로 덮은 후 소나무가지 등으로 엮은 후 흙을 펴 조성한다.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섶다리는 내에 물이 불어나면 자연적으로 떠내려가게 만든다.

 

섶다리가 물이 불어 떠내려가다 걸리면 자연스럽게 냇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 등의 산란처가 되기도 하고, 섶다리에 서생하고 있는 많은 미생물들이 적당한 영양가가 있는 먹이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환경에도 득을 주는 이로운 구조물이다. 현재는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판운마을 섶다리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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