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참석한 수원시청 9월 월례회, 수지맞았다

 

수원시는 매달 첫날인 1일에 월례회를 시청 별관 2층 대강당에서 갖는다. 그동안 월례회를 자주 참가하곤 했었는데 최근들어 뜸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월례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마침 91일, 9월 월례회에서 팔달구 지동 거주 고성주(, 62)씨가 남경필 경기도지사로부터 선행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에 찾아갔다.

 

월례회를 참석하면 수지맞는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끔 참석을 할 때마다 식전공연으로 볼만한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이번 9월 월례회는 수원시립합창단 단원들이 무대를 꾸며주었다. 남녀 각 2명씩 4명의 단원이 들려주는 노래는 대단하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수원시립합창단의 실력은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를 하기 때문이다.

 

식전공연에 이어 수상자들에게 시상이 있었다. 이번 9월 월례회에는 총 29명의 인원이 상을 수상했다. 시민표창으로는 경기도지사 표창에 선행도민 3명과 모범 교육교직원 1명 등 4명이, 수원시장 표창에는 시정발전 지방공기업 3명과 선행시민 10, 교통분야 3명 등 16명이 수상해 시민표창은 모두 20명이 수상했다.

 

 

공무원 표창은 모두 9명이 수상했으며 경기도지사 표창으로 8월 중 자랑스런 공무원 3, 그리고 수원시장 표창으로 자랑스런 공무원 5명과 지방세 부과징수 1명 등 6명이 수상했다. 시상을 마친 후 염태영 수원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수상자들을 보니 공무원 수상자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며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공무원들이 남자가 더 많았지만 그 후 여성의 비율이 늘어나 우리 수원시도 여성공무원의 비융이 더 높다"고 했다.

 

또한 이번에 수상을 한 선생시민을 예로 들면서 어린 초등학생이 전과 9번인 60대 어른에게 납치되는 현장을 목격한 인근 태권도장 사범이 아이를 구해주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수상을 한 태권도장 사범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염태영 시장은 "백주 대낮에도 이렇게 어린이들을 납치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모두가 주변에 이런 일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했다.

 

 

40년 넘게 지역 어른섬긴 고성주씨 도지사 선행상 받아

 

사실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씨가 도지사 선행상을 받았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긴 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기분도 든다. 그의 선생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넘는 세월을 묵묵히 지역에서 봉사를 한 숨은 일꾼이다. 그에게 상을 준다고 하면 대통령 표창이나 국무총리 상 정도는 주어야 제몫을 준 것이란 생각이다.

 

그는 항상 소문없이 봉사를 하고 있다. 40년 넘는 세월을 지역에서 어른을 섬기면서도 한 번도 밖으로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다. 하기에 상을 받기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 조금만 일을 하나 하고서도 침소봉대해서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는 일은 자랑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상이다. 지난 해 수원시장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도지사 표창을 받게 되었다. 40년이 넘는 세월 그가 한 일을 아는 사람은 축하를 해야겠지만 부족하다고 한다. 그가 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항상 의아해 하는 것은 왜 정작 주변을 위해 많은 애를 쓰는 사람은 상하나 제대로 주지 않는가?”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수상제도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숨은 일꾼보다 들어내놓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상을 받기 때문이다.

 

 

고성주씨 그의 40년 봉사는 차원이 다르다

 

9월 월례회에서 도지사 표창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고성주씨는 상 받자고 한 일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다고 한다. 진정 봉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조그마한 봉사를 하고도 여기저기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런 자료를 받아 볼 때마다 오히려 역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봉사란 마음이다. 마음으로 베풀지 않으면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 그 마음속에 자신이 있으면 그건 마음이 아닌 자랑이다. 봉사는 스스로 자신을 내놓지 않고 하는 것이다. 40년 넘게 지역 어른을 섬긴 고성주씨의 봉사는 내놓지 않고 행해졌다. 언제나 자신은 그저 어른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매년 초복에 삼계탕을 끓여 300명이 넘는 어른들 대접하기, 5월이 되면 마을 어른초청 경로잔치(300명 이상), 가을이 되면 김장김치 나누기(1,000포기), 이웃과 쌀 나누기(매년 8kg 200포 이상) 등 그의 이웃사랑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한 마디 소문도 내지않고 봉사를 한 세월이 40년이다. 한 해애 그가 봉사를 한 것을 금액으로 따져보니 수천만원이 넘는다. 그렇게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늘 무슨 상을 준다고 하면 혹여 그의 이름석자가 있지는 않을까 들여다보곤 했다. 상을 받자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의 섬김을 소문을 낸다면 또 다른 고성주씨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사를 쓴다. 9월의 첫 날, 모처럼 기분좋은 월례회와 좋은 소식을 접했다. 아마 이번 한 달은 좋은 소식만 들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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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기획조정실장 30년 공직생활 퇴임식

 

이제는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해온 아내(이은양)를 위해 살겠습니다. 그동안 온갖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묵묵히 곁에서 자리를 지켜 준 아내를 위해 남은 시간 꼭 붙어 다니겠습니다

 

1011, 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지방부이사관(3)인 수원시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의 명예퇴임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퇴임소회를 말하는 박흥식 기조실장은 정년퇴임을 하고나면 부인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했는지 절대로 물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난 지금부터 묻지 않고 꼭 붙어 다니겠다라고 말해 강당을 메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은 공직생활 30년을 접으면서 명예퇴임식을 가졌다. 198747급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공직생활을 시작한 박흥식 기조실장은 공보담당관, 재난안전관리과장, 자치행정과장, 문화교육국장, 팔달구청장, 수원시의회 사무국장을 거쳐 올 1월 수원시 기획조정실장으로 임명됐다.

 

 

염태영시장 축사에서 박 기조실장 노고 치하

 

축사에 나선 염태영 시장은 오늘 퇴임을 하는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박흥식 기조실장은 수원시의 공직자상으로 뛰어난 업무기획과 많은 난제들을 해결하였다고 했다. 또한 오늘 이 이별은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위하지 않고 수원시민과 남을 위한 삶을 살아온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이 모처럼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염태영 시장은 축사를 하는 도중 박흥식 기획조절실장의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아들이 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를 하라고 하자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를 답하자 그것밖에 없느냐고 물어 좌중이 모두 웃기도 했다,

 

이날 퇴임식에는 수원시 이한규 제1부시장과 도태호 제2부시장, 수원시의회 배민한 사무처장, 수원시의회 염상훈 부의장을 비롯하여 이재식, 양진하, 김미경, 조석환, 양민숙, 이미경 의원 등도 퇴임을 하는 박흥식 실장을 축하했다.

 

수원시의회 염상훈 부의장은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의 퇴임식을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오늘 퇴임식을 보며 이제 수원시도 공직자들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염상훈 부의장은 그동안 공보관을 거쳐 구창장, 의회 처장, 기조실장을 지내면서 정말 많은 일을 감당해냈다. 남들은 3급으로 퇴임을 하면 35~40년이 걸리는데 박 기획실장은 7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꼭 30년을 채웠다. 오늘 이 퇴임식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다. 모두 큰 박수로 축하해주자고 했다.

 

 

연탄불과 같은 공무원이 되길 바라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은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 나오는 연탄재를 생각하면서 이 시는 공무원의 행동강령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느다라는 시 한 구절을 소개한 박흥식 기획조정실장은 사람들을 위해 활활 타오르다가 마지막 불이 꺼질 때까지 온기를 남겨주는 연탄같은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그런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과연 그와 같은 연탄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30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또 다른 생을 위해 자리를 떠나는 박흥식 기획조정실장. 박 실장을 떠나보내면서 더 많은 일을 했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제 가족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밝혔으니 날마다 좋은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동료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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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가수 최누리. 수원의 전통시장과 봉사활동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다. 노래 잘하고 봉사활동 많이하는 그녀를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미 6장의 음반을 발매한 가수지만, 달랑 음반 1장 출반하고 가수인양 목에 힘주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몸에 겸손이 배어있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가수 최누리씨는 2003KBS 전국 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4KBS 도전주부가요스타 금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최영화라는 본명으로 20081당신은 내사랑이라는 타이들 곡을 갖고 첫 음반을 낸 후, 2009년 최영화라는 본명을 타이틀로 음반을 출반했다. 그 뒤 최누리라는 예명을 사용하면서, 2010세월아 네월아’, 2010쪽지’, 2011팔베개’ ‘고마운 당신’, 2012사랑의 불이 났어요등의 타이틀곡으로 음반을 발매했다.

 

팬클럽에서 이름을 최누리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예명을 최누리로 하고 활동을 시작했죠. 저는 수원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벌써 수원서 생활한지 20년이 지났으니까요. 그동안 감천장 등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나 전통시장 행사 등에 많이 참여해 노래를 불렀죠. 봉사활동을 주로해서인가 아직 돈을 못 벌었네요

 

1, 화성 팔달문 앞에서 만난 최누리씨는 말을 하면서 맑게 웃는다. 6월 중순이나 하순 경 가시내야라는 곡을 타이들로 음반 출반을 앞두고 표지촬영이며 녹음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면서도 선선히 대담에 응했다. 공연을 마친 후 만난 최누리씨는 경상북도 울진이 고향이다. 그래서인가 울진군 홍보대사를 맞고 있다.

 

 

어려서부터 각종 노래자랑 상을 휩쓸어

 

최누리씨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노래를 잘하셨는데 모전여전인 듯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있는 가수이다. 관중이 많을수록 신난다는 최누리씨는 무대에 오르면 관중을 압도한다. 모든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녀와 손이라도 잡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시원한 외모에 가창력까지 뛰어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거기다가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인가? 몸에 겸손함까지 배어있다. 수천 명이 모인 행사장에서도 무대를 내려와 관중 속으로 들어가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노래를 한다. 어려서부터 각종 노래경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그녀가 너무 유명해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사랑의 종소리라는 봉사단체가 있어요. 그 단체를 통해 봉사를 많이 했죠. 봉사를 많이 하다 보니 정작 돈은 많이 벌지 못했네요(웃음). 앞으로는 돈도 벌어야죠. 이제는 수원에서도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동안 큰 행사에는 참여를 많이 하지 못했거든요. 소문 좀 많이 내주세요

 

봉사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활력소 역할

 

최누리씨는 봉사를 하면서 즐겁다고 한다. 특히 장애인들 행사장이나 어르신들 잔치 등에는 가장 먼저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봉사를 하면서 활력을 얻기 때문이란다. 노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즐거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한 마음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는 것이다.

 

새 음반이 나오면 음반을 들고 꼭 찾아뵐께요

공연을 마치고 의상도 갈아입지 못한 체 덧옷 한 장을 걸치고 대담장소로 달려온 최누리씨. 이제 새로운 음반 발매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수원의 더 많은 행사장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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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저서로 매년 한 권씩 무예관련 책 펴내

 

결코 쉽지 않은 일을 끝없이 해내는 학자가 있다. 해마다 한 권씩 우리무예에 관한 저서를 펴내는 최형국 박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경기대학교 Post-doc 연구원을 거쳐 무예사와 전쟁사, 문화사 등을 연구해 왔다. 중앙대 강사와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에서 상임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의 저서로는 친절한 조선사(2007), 조선무사(2009),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2013), 조선군 기병전술과 동아시아(2014),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2015),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2016)등과 TV 역사물의 고증 한계와 그 대안, 조선후기 무과에서의 격구 도입배경과 그 실제, 17세기 대 북방 전쟁과 조선군의 전술변화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조는 왜 무()에 집착했는가?

 

정사를 살피는 정전 위에 올라 처음으로 신하들과 대화를 나눴던 정조는 첫 번째 아침 조회에서 민산(民産), 인재(人材), 군정(軍政), 재용(財用)이라는 네 가지의 정치개혁을 공표하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신하들에게 설명하였다.

 

그 중 첫째 민산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탐관오리들을 색출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둘째 인재가 의미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우라는 것이며, 셋째 군정이 의미하는 것은 이기는 싸움을 할 줄 아는 국방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반드시 이기는 전쟁을 펼칠 장수와 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재용이 의미하는 것은 극가의 재정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정차적인 상황으로 인해 함부로 퍼주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정조가 늘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은 금()과 용()의 정신이었다. 그런 실학적 고민이 18세기 조선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그 바탕에는 무()가 있었다고 저자는 그의 저서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편에서 이야기 했었다. 오직 삶 전체가 무예와 정조, 그의 철학 등만 생각하는 저자의 이번 저서 무예 인문학 - 전통 무예에 담긴 역시 · 문화 · 철학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2, 8장에 이르는 주옥같은 저서

 

저자 최형국은 오직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글자를 생각하며 한 손에는 칼, 그리고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이다. 이번 저서 무예 인문학은 모두 2부 전8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무예에 관한 저자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는 역작이다.

 

1부는 무예에 담긴 인문학편으로 1장 무예에 스며든 문화, 2장 철학적인 무예, 3장 무예에 종착점, 전쟁, 4장 칼로 쓰는 역사이다. 2부는 몸으로 읽는 인문학편으로 제5장 무예는 몸으로 실천하는 인문학, 6장 무예의 삶, 무인의 삶, 7장 칼을 품은 무인의 마음, 8장 배우고 수련하니 기쁘지 아니한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물과 사상사에서 201758일 초판 발행된 이번 저서 무예인문학은 가격 1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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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로 수원거주 5년차인 베트남인 남유민

 

보는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장윤정의 노래에 가사를 바꿔 자신을 소개하더니, 장윤정의 노래 벚꽃길을 부르면서 마치 전문 가수인양 제스처가 화려하다.

 

남인가 내가 남인가요 나 없인 안되면서 없을 때 찾지 말고 있을 때나 잘해주지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의 속마음을 허전해 옷을 사입고 사랑이 고파 배고픈 거야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렵다는 장윤정의 노래를 마치고나자 관람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모두 같은 입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워낙 노래를 하는 몸짓이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듯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1일 오후 2시부터 팔달문시장 3층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팔달문 다문화가요제예선 때의 모습이다.

 

 

결혼 5년차인 25살 젊은 베트남 여성

 

한국이름 남유민이라는 베트남 여성 누엔티뚜엣란은 이제 25살이라고 한다. 20살에 결혼이민자로 한국으로 건너왔고, 수원에서 직장인 남편과 함께 5년 쨰 결혼이민자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한국어도 서툴고 아는 사람들도 없어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베트남인 친구들도 많고 한국인 친구도 있어 외롭지 않다고 대답한다.

 

처음엔 상당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생활이 재미있어요. 남편이 잘해주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없고요. 한국이름은 남유민이라고 남편이 지어주었는데 아직 주민등록상에는 개명을 하지 못했어요

 

노래를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무대에서는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을 하더니 정작 대화를 할 때는 사뭇 여인이다. 말도 조용조용 하는 것이 전형적인 한국의 옛 여인을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베트남에는 세 번 정도 다녀왔다고 하는 누엔티뚜엣란은 528일 오후 5시에 팔달문시장 특설무대 본선에 올라 자신의 끼를 마음껏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 가졌으면

 

한국생활에 만족한다고 하는 베트남 결혼이민자 누엔티뚜엣란. 젊은 여성답게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베트남문화센터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한국어 등을 공부했다고 하는 누엔티뚜엣란은,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처음엔 어려웠지만 문화센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 이젠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저도 그렇지만 한국에 건너와 생활하는 베트남 여성들 모두가 같은 생각일거예요.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직장을 갖고 있어야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하고, 더 많은 한국의 생활이나 문화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으니까요

 

다문화가요제를 찾아 함께 온 베트남 결혼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는 누엔티뚜엣란. 다문화가요제 예선장이라 소음도 크고 긴 시간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28일 팔달문다문화가요제 본선에서 누엔티뚜엣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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