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저서로 매년 한 권씩 무예관련 책 펴내

 

결코 쉽지 않은 일을 끝없이 해내는 학자가 있다. 해마다 한 권씩 우리무예에 관한 저서를 펴내는 최형국 박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경기대학교 Post-doc 연구원을 거쳐 무예사와 전쟁사, 문화사 등을 연구해 왔다. 중앙대 강사와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에서 상임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의 저서로는 친절한 조선사(2007), 조선무사(2009),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2013), 조선군 기병전술과 동아시아(2014),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2015),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2016)등과 TV 역사물의 고증 한계와 그 대안, 조선후기 무과에서의 격구 도입배경과 그 실제, 17세기 대 북방 전쟁과 조선군의 전술변화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조는 왜 무()에 집착했는가?

 

정사를 살피는 정전 위에 올라 처음으로 신하들과 대화를 나눴던 정조는 첫 번째 아침 조회에서 민산(民産), 인재(人材), 군정(軍政), 재용(財用)이라는 네 가지의 정치개혁을 공표하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신하들에게 설명하였다.

 

그 중 첫째 민산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탐관오리들을 색출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둘째 인재가 의미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우라는 것이며, 셋째 군정이 의미하는 것은 이기는 싸움을 할 줄 아는 국방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반드시 이기는 전쟁을 펼칠 장수와 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재용이 의미하는 것은 극가의 재정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정차적인 상황으로 인해 함부로 퍼주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정조가 늘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은 금()과 용()의 정신이었다. 그런 실학적 고민이 18세기 조선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그 바탕에는 무()가 있었다고 저자는 그의 저서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편에서 이야기 했었다. 오직 삶 전체가 무예와 정조, 그의 철학 등만 생각하는 저자의 이번 저서 무예 인문학 - 전통 무예에 담긴 역시 · 문화 · 철학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2, 8장에 이르는 주옥같은 저서

 

저자 최형국은 오직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글자를 생각하며 한 손에는 칼, 그리고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이다. 이번 저서 무예 인문학은 모두 2부 전8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무예에 관한 저자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는 역작이다.

 

1부는 무예에 담긴 인문학편으로 1장 무예에 스며든 문화, 2장 철학적인 무예, 3장 무예에 종착점, 전쟁, 4장 칼로 쓰는 역사이다. 2부는 몸으로 읽는 인문학편으로 제5장 무예는 몸으로 실천하는 인문학, 6장 무예의 삶, 무인의 삶, 7장 칼을 품은 무인의 마음, 8장 배우고 수련하니 기쁘지 아니한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물과 사상사에서 201758일 초판 발행된 이번 저서 무예인문학은 가격 1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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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자로 수원거주 5년차인 베트남인 남유민

 

보는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장윤정의 노래에 가사를 바꿔 자신을 소개하더니, 장윤정의 노래 벚꽃길을 부르면서 마치 전문 가수인양 제스처가 화려하다.

 

남인가 내가 남인가요 나 없인 안되면서 없을 때 찾지 말고 있을 때나 잘해주지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의 속마음을 허전해 옷을 사입고 사랑이 고파 배고픈 거야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렵다는 장윤정의 노래를 마치고나자 관람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모두 같은 입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워낙 노래를 하는 몸짓이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듯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21일 오후 2시부터 팔달문시장 3층 문화센터에서 진행된 팔달문 다문화가요제예선 때의 모습이다.

 

 

결혼 5년차인 25살 젊은 베트남 여성

 

한국이름 남유민이라는 베트남 여성 누엔티뚜엣란은 이제 25살이라고 한다. 20살에 결혼이민자로 한국으로 건너왔고, 수원에서 직장인 남편과 함께 5년 쨰 결혼이민자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한국어도 서툴고 아는 사람들도 없어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베트남인 친구들도 많고 한국인 친구도 있어 외롭지 않다고 대답한다.

 

처음엔 상당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생활이 재미있어요. 남편이 잘해주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없고요. 한국이름은 남유민이라고 남편이 지어주었는데 아직 주민등록상에는 개명을 하지 못했어요

 

노래를 부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무대에서는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을 하더니 정작 대화를 할 때는 사뭇 여인이다. 말도 조용조용 하는 것이 전형적인 한국의 옛 여인을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베트남에는 세 번 정도 다녀왔다고 하는 누엔티뚜엣란은 528일 오후 5시에 팔달문시장 특설무대 본선에 올라 자신의 끼를 마음껏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장 가졌으면

 

한국생활에 만족한다고 하는 베트남 결혼이민자 누엔티뚜엣란. 젊은 여성답게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베트남문화센터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한국어 등을 공부했다고 하는 누엔티뚜엣란은,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처음엔 어려웠지만 문화센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 이젠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저도 그렇지만 한국에 건너와 생활하는 베트남 여성들 모두가 같은 생각일거예요.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직장을 갖고 있어야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하고, 더 많은 한국의 생활이나 문화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으니까요

 

다문화가요제를 찾아 함께 온 베트남 결혼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는 누엔티뚜엣란. 다문화가요제 예선장이라 소음도 크고 긴 시간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오랜 시간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28일 팔달문다문화가요제 본선에서 누엔티뚜엣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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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제 벼루 등 수백 점 보유해

 

형님, 제 보물 창고 좀 가보실래요?”

17일 오전 남문시장 팔달문 홍보관에서 만난 팔달문시장 사무장인 박영일씨가 하는 말이다. 보물창고라니 도대체 무슨 보물이 어디에 얼마나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신 있게 보물창고라고 소개하는 말에 궁금증이 일어 따라 가보았다.

 

보물창고. 정망 보물창고였다. 남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많은 물품들은 모두 보물이었다. 100여 점이 넘는 오래 묵은 수제 벼루부터 시작해, 100여점의 연적, 그리고 각종 붓까지. 이곳을 몇 번이고 들어와 보았지만 이런 물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모은 것들예요?”

오래 됐어요

정말 소중한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것보다 더 많았는데 상당히 많은 벼루가 없어졌어요

아니 왜요?”

모르겠어요, 누가 가져간 것 같아요

 

대화를 하면서도 연신 벼루를 하나씩 들도 보여주는 박영일씨. 박영일씨는 팔달문 인근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팔달문시장 상인회 사람들을 비롯해 시장 사람들은 박영일씨를 사무장님이라고 부른다.그만큼 이곳 팔달문 시장 안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팔달문시장 터주대감

 

박영일씨는 현재 팔달문시장 상인회 이사직을 수행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이곳 홍보관에서는 그를 일러 사무장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곳 홍보관 뿐 아니라, 시장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처리하기 때문에 홍보관장이라는 직함이 더 어울린다.

 

하나하나 손에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주는 박영일씨가 순간적으로 놀란 소리를 낸다. 무슨 일인가해서 보았더니 반 토막 난 벼루를 그냥 맞춰놓기만 했다. ‘마니아란 한 가지 일 등에 몰두하는 사람을 말한다. 진귀한 물품을 모으는 사람들도 마니아라고 한다. 옛 물건 중에서 붓과 벼루, 그리고 연적 등 붓글씨를 쓰기 위한 물건들이다.

 

에전 선비들은 분방사우(文房四友)를 가까이 했다고 한다. 문방사우란 종이, , 벼루, 먹 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친구처럼 가까이하라는 뜻이다. 그중 붓과 벼루, 먹은 백제와 신라 때의 유물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물건을 상당히 소중하게 간직했다.

 

 

이유야 어쨌든 남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이 방 열쇠를 가진 사람이 나하고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옛날 먹도 한 박수가 있었는데 하나도 없어요. 벼루도 없어지고 연적도 몇 개 없어졌어요

 

정리를 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애지중지 수십 년을 정성을 들여 모은 것들이 없어지고 깨졌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하나하나가 다 수제품이고 오래 묵은 옛것들이다. 그런 것들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건을 진열해 놓았던 것을 비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박스에 담아 딴 곳으로 옮겨야 한다면서 물건을 정리하는 박영일씨.

 

물건이 너무 많아 어디다 보관해야할지 걱정예요. 전에 이 물건들을 싼 가격에 팔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그 소중한 것들을 왜 파느냐. 보관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없어질 줄 몰랐죠

 

세상을 살면서 나름 마니아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박영일씨처럼 우리 것을 지켜가는 참다운 마니아는 보질 못했다. 그것도 아주 소중한 문방사우 중 벼루와 연적, 그리고 붓까지. 한지도 상당히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는 박영일씨. 한참이나 좋은 벼루 구경에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생각하면 그 벼루 중 몇 점은 정말 진품명품에라도 내보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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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에 대한 편향된 사고 지우고 재평가 바람직

 

정월 나혜석, 우리는 그녀를 흔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고 표현한다. 나혜석의 생전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나혜석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여류화가요, 시인이다. 또한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창한 신여성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1896428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481210일 당시 나이 52세로 세상을 떠난 나혜석을 기리는 골목축제가 팔달구 행궁동에서 그녀의 태어난 날인 428일과 29일 열린다. 21일 오후 3시 행궁동에 소재한 전통찻집 다전에서는 행궁동 주민센터 이장호 동장을 비롯해 행궁동 주민 30여명과 행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나혜석 생가터 골목전이 열렸다.

 

여성의 선구자라고 하는 정월 나혜석. 나혜석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혜석은 이 시대에 올바른 평가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혜석의 출생 121년을 맞이하여 나혜석에 대한 평가를 다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당시로 보면 정월 나혜석은 정말 파격적인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역사가 그녀를 재평가 해야만 합니다. 나혜석은 일생을 파란만장하게 살았습니다. 삶 자체가 사건이었죠. 나혜석과 관계된 남자들이 모두 친일파로 명단에 올랐는데 나혜석은 독립운동을 했잖습니까? 기미독립만세 사건 때 5개월 동안 구금이 되었습니다. 국가유공자로 지정을 해 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현 수원화성 한동민 박물관장은 나혜석에 대한 평가를 다시해야 한다면서 나혜석은 살아 온 자체가 사건입니다. 일제강점기 치정사건을 비롯해, 나혜석과 황옥사건 등 역사 속의 인물인 나혜석을 올바른 시각으로 재평가하자는 것이죠. 나혜석의 그림도 정확히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인쇄된 그림을 보면 잘 그리지 못했다는 평이지만, 원본을 보면 그림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라고 했다.

 

 

매년 이어지는 나혜석 생가터 골목전

 

21일 오후에 찾아간 행궁동. 나혜석 생가터 임을 알리는 표지석 주변을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했다. 좁은 골목 안에 자리한 찻집에 모인 사람들은 나혜석을 기리기 위한 행사를 추진하면서 정월 나혜석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나혜석은 그 당시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여인이다. 그런 나혜석을 우리의 습속인 유교적 관념으로만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골목에는 나혜석의 일대기를 비롯해 나혜석의 그림들을 그려놓았다. 벌써 3년 째 행궁동 나혜석 골목은 벽화그림을 이어나가고 있다. 행궁동은 나혜석과는 땔 수 없는 곳이다. 어찌보면 나혜석이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에서 활동을 한 것도 당시 한국사회가 그녀의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삶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조선여자를 위하여 일심전력하는 나혜석 여사는 금번 당지 팔번통 태성의원 내에 여자 야학을 설립하고 매주 3일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열성으로 지도하여 입학지원자가 날로 많다더라’ 19223월경 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이다.

 

 

독립운동을 한 나혜석을 기리는 작업 이어가야

 

1922년 남편 김우영이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전보되자 나혜석은 그를 따라갔다. 안동현으로 남편 김우영을 따라간 나혜석은 19223월부터 안동현 태성의원(泰誠醫院) 내에 안동현 여자야학을 설립해 교육사업에 나서는 한편, 부영사 부인의 직위를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또한 의열단의 김원봉 등에게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송금하기도 했다.

 

나혜석은 약 6년간 안동에 정착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한인사회를 보듬으면서 화가로서의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나혜석은 안동의 생활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사회상으로 사업을 해본데도 여기요. 개인적으로 남을 도와본대도 여기요. 인심에 대한 짠맛 단맛을 본대도 여기요.”라고. 나혜석은 6년여 동안 안동에 거주하면서 여성의 몸으로 신교육사업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일을 감당했다.

 

사람들은 마혜석을 불룐녀, 혹은 이혼녀등으로 치부한다. 나혜석이 한 말 중 "정조는 취미다.""자식은 악마다." 혹은 "결혼은 지옥이다" 라는 등의 발언은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러한 사회적 금기를 깨는 말로 인해 나혜석은 사회로 부터 완전히 소외된다. 그렇게 신여성으로 살아가던 나혜석은 말년에 들어 인간들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많은 질병을 앓고 있던 나혜석은 1946년 지나던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서울시립남부병원에 입원되었다. 그 뒤 병원에서 나와 1948년 공주의 마곡사에 갔으나 병세가 악화되자 스스로 마곡사를 나왔다. 192811월 용산에 소재한 서울 시립 자제원에 스스로 들어간 나혜석은 19481210일 오후 830분 서울시립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나혜석은 소지품 하나 없이 병사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죽기 전 각종 질병으로 대화가 어렵던 나혜석은 결국 행려병자, 무연고자로 처리되고 말았다.

 

한국 국내에서는 그녀는 바람 피우다 이혼당한 여자로 치부하였다. 불꽃같은 여인이었던 나혜석을 그 당시 사회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말년에 아무도 지키지 않는 무연고자 병동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정월 나혜석. 그런 나혜석을 기리는 나혜석 생가터 작은골목전’.

 

그런 나혜석의 일생을 그저 편향된 우리들의 사고 안에 가둬놓고 평가를 한 것은 아닐까? 나혜석 출생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잘못 알려진 나혜석의 일생이 재조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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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2000그릇 봉사하는 징검다리봉사단

 

16, 수원시 장안공원에서 생활이 어려운 장애가족, 홀몸어르신,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짜장면 2000그릇을 나누는 행사가 열렸다. 징검다리봉사단(단장 전택현)과 사랑의 짜장차(대표 오종현)이 나눔을 실천하는 현장에는 많은 봉사자들과 단체들이 동참하여 함께 훈훈한 정을 나누었다.

 

수원 화성 상벽이 바라다 보이는 장안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여들었다. 수원시종합자원봉시센터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과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 온 경기도의회 님경순 도의원, 수원시의회 김은수 의원과 수원시의회 한규흠 의원과 자리를 함께했다. 그 뿐만 아니라 찌징면 급식을 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 온 많은 봉사자들. 그 중에는 노래기부를 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아온 가수 김나은과 민요가수 박금주 등도 함께 했다.

 

이날 사랑의 짜장면 봉사는 지역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징검다리봉사단이 주관이 되어 이루어졌다. 징검다리봉사단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는 봉사단체이다. 인사말에 나선 징검다리봉사단 전택현 대표는 저희 봉사단은 지역의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집 청소는 물론 도배와 장판 교환, 그리고 무료급식 등을 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찌징면 2천그릇을 여러분께 대접하고자 합니다. 음식을 드시고나서 내 이웃에 어려운 분들이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은 항상 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징검다리봉사단이 준비한 이날 음식은 짜장면을 비롯하여 통닭괴 과일, 음료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었다.

 

 

사랑의 짜장차를 몰고 다니는 한국SNS연합회

 

이날 징검다리봉사단과 함께 짜장면 2천 그릇을 준비한 한국SNS연합회는 짜장차를 두 대를 운영해 전국을 다니면서 각종 봉사를 하는 봉사자들이다. 전국에 사랑의 밥차는 많이 있지만 사랑의 짜장차SNS연합회가 갖고 있는 차량이 유일하다. 두 대가 돌아가면서 봉사를 하는데 차를 마련한 20144월부터 201512월까지 총 158회 봉사에 45천인분의 짜장면을 봉사했다고 한다.

 

오늘은 밀가루 13포를 준비했습니다. 밀가루 1포를 갖고 150인분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2천 그릇이면 그 정도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이 짜장차 안에서 모든 봉사를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이 저희들을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짜장차 오종현 대표는 전국을 다니는 사랑의 짜장차는 1004명의 수호천사가 비용을 거두어 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설명한다. 사랑의 짜장차는 20125SNS모임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국적인 회원을 갖고 있는 SNS연합회는 경기도 광명시에서 전국에 산재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모임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나눔과 섬김이라는 목적을 갖고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국을 다니면 봉사를 하는 사랑의 짜장차

 

사랑의 짜장차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어렵고 소외된 계층과 공익적인 행사에 짜장면으로 나눔과 섬김을 정을 나누고 있는 모임이다. 이들은 SNS를 통한 인연으로 만나 오프라인에서 짜장차를 마련하여 꾸준히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 달이면 거의 매일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봉사를 한단다.

 

저희들은 SNS회원들이 수호천사가 되어 비용을 마련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대를 갖고 봉사를 하다가 필요에 의해 한 대를 더 마련한 것이죠. 앞으로 필요하다면 더 많은 차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개인사업을 한다는 ()골드버스 손주 대표이사는 SNS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홍보 등을 통해 빠른 시간에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봉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봉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짜장면도 맛있고 정성도 고맙고

 

행사장에 봉사를 하기 위해 나온 경기도의회 님경순 도의원과 수원시의회 김은수 의원, 한규흠 의원 등은 인사말을 통해 봉사를 하는 여러분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면서 앞으로 남을 위해 일을 하는 단체나 모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사랑의 자장면 2천 그릇 행사장을 찾은 이아무개(, 69)씨는 대선기간이 갂워지면서 봉사를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휴일에 공원에 나왔다가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면서 짜장면이 맛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 깃든 정성이 더 값지다고 한다. 짜장면과 함게 다양한 먹거리를 준비한 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어려운 이웃에게 따듯한 짜장면과 각종 음식, 그리고 노래봉사 등 하루라도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사장에 모인 1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 이렇게 봉사를 하는 이웃들이 있어 소외된 이웃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어려울수록 이웃을 돕는 손길이 더 빛을 발하는 것인지.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징검다리봉사단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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