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공개그룹 '염태영과 함께해염' 자료인용

 

최종 66.99% 득표율로 일찌감치 당선 확정 해

 

980,241명의 수원시 유권자 중 582,375명이 투표 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후보가 385,070명의 표를 얻어 66.99%의 압도적인 지지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수원시장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염태영 수원시장 당선자는 처음부터 꾸준한 지지로 수원의 유일한 3선시장이 되었다.

 

민선 7기 수원시를 책임 질 염태영 당선자는 더 큰 수원. 수원특레시를 정책으로 내세워 선거유세 시작부터 앞으로 수원특례시 지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주변의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더 큰 수원의 청사진을 내건 염태영 당선자는 상대가 아무리 네거티브 공격을 해와도 난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125만 명 수원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거유세 가간 중에도 오직 더 큰 수원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염태영 당선자의 행보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여 수원시 4개 선거구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 장안구 66.94%. 권선구 65.49%, 팔달구 63.88%, 영통구 70,30% 등 전 지역에서 개표를 하는 동안 고른 우세를 보인 염태영 후보는 일찌감치 당선 유력, 확실, 당선이라는 수순을 보이며 승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더 큰 수원의 완성, 수원특례시 기대한다

 

염태영 후보는 당선이 되면 첫 번째 약속으로 더 큰 수원의 완성의 주춧돌, ’수원특례시 실현을 약속했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규모에 적정한 행·재정상 권한을 확보하는 특례시지정을 실현하여 수원시 위상 강화 및 장기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 시민 행정서비스 확대, 중소기업과 일자리 지원 강화, 스마트 행정체계 구축으로 원스톱 서비스 확대로 지방분권시대의 모델도시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공약에서 밝혔다.

 

이를 위한 이행방법으로 염태영 당선자는 첫째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한 대통령령 개정을 위한 특례시 지정 필요성 관련 논리 개발 및 실행 전략 수립 특례시 지정 추진 관련 전문가 토론회 및 심포지엄 개최 법규 개정을 통한 기구정원규정 등 조직, 행정상의 특례 확보.

둘째, ‘지방자치법 및 지방세제기본법개정 특례시 지정 필요성과 기대효과 홍보를 통한 시민 공감대 확산 특례시 지정 추진을 위한 전문가, 관련 정치인, 언론 등 여론 조성 강화 지방자치법 및 지방세제기본법 개정을 통한 법적 지위 및 재정특례 확보를 하겠다고 공약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염태영 수원시장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 된 13일 오후 1030분경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수원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인사에서 염태영 당선자는 지난 8년의 성과를 믿고 새로운 4년을 맡겨 준 수원시민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이번 자신의 승리는 수원시민의 승리이고 상식의 승리라고 했다.

 

염태영 수원시장 후보 공보자료  

 

장애복지에도 남다른 관심 쏟는다

 

염태영 당선자는 네거티브와 비방으로 점철된 선거를 시민여러분이 거부하셨습니다. 정책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후보를 시민여러분은 선택해 주셨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과거와 단절하고 문재인 정부와 함께 평화와 번영의 시대, 더 큰 수원의 시대로 나아가라는 여러분의 명령을 준엄하게 받들겠습니다라고 인사의 말을 전했다.

 

복지에서도 염태영 당선자는 고른 관심을 보였다. 더 큰 수원의 완성, 더 촘촘한 사회안전망으로 중·고교 신입생 무상교복, 고교 무상급식의 실현, 마을 공동체형 온종일 돌봄 체계로 육아부담을 덜어주기, 치매안심센터를 늘려 치매환자와 가족 돌보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생애주기형 돌봄체계 조성 등을 들었다.

 

앞으로 4년 동안 수원시정을 이끌어갈 수원시장으로 당선된 염태영 당선자. 거창한 구호나 해답없는 정치논쟁이 싫다며 나의 정책과 실천은 수원 시민을 더 편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달려온 지난 8년이라고 한다. 더 큰 수원, 수원특례시 완성을 위해 첫발을 내딛는 염태영 수원시장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취약계층 어린이 돕기 성금 2839360, 수원시에 전달

 

수원시 가두 구두수선협회가 취약계층 어린이 돕기 행사로 마련한 성금 2839360원을 수원시에 전달했다.

 

수원시 가두 구두수선협회 한금정 총회장과 임원들은 4일 신태호 수원시 안전교통국장 집무실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했다. 수원시는 성금으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아동과 소년·소녀 가장 후원할 계획이다.

 

가두 구두수선협회 회원 50여 명은 지난 530일 수원시청 본관·별관 사이 통로에서 취약계층 어린이 돕기 행사를 연 바 있다. 회원들은 구두를 수선하고, 새 구두를 판매했다.

신태호 안전교통국장은 가두 구두수선협회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후원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자세에서 봉사하는 한금정 총회장

 

제가 어릴 때 너무 고생을 하고 살았습니다. 아버님은 저희 4남매를 놓아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죠. 저는 13살부터 쟁기질을 하면서, 어린 동생들을 키워야만 했습니다. 아마 그 때 제가 고생을 심하게 한 것이 늘 마음이 아파, 주변에 불우한 청소년들을 보면 모두 자식같은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가봅니다

 

수원시청 옆 견인차보관소 담장 밑에서 24년 째 구두를 닦고 있는 한금정(, 58). ()수원시 자립청년회 총회장 직을 맡고 있다. 남을 돕는 것이 즐거워 내일을 여는 멋진여성 경기협회 수원시지회후원회장을 겸임하면서. 한금정씨는 구두를 닦는다. 요 며칠 문이 닫혀있다 했더니 몸살, 감기로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천성이 남을 돕는 일을 좋아해

 

저희 어릴 적에는 정말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개울물을 마시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고구마 한 개를 깎아먹고 하루를 보내고는 했죠. 어머니께서 장애인이셨는데도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해, 저도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운 듯합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즐거워하는 한금정씨는 천성이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만 같다. 옛말에 광에서 인심난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인 옛 말일 뿐이다. 요즈음은 자신이 많이 갖고 있어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려운데도 작은 것이나마 남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훈훈한 것은 아닐까?

 

 

저희 협회 회원이 한 110명 정도 됩니다. 그 중에 봉사를 하는 회원들은 90명 정도가 되죠. 다들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남을 돕는다고 하면 모두가 앞장을 섭니다. 아마도 자신이 어렵기 때문에, 남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이 올려다만 보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베풀면 그만큼 채워진다는 것이죠. 아마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인가는 모르지만, 베풀면 베푼 만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순리인 듯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봉사를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한금정씨. 두 평 남짓한 영업장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인 듯.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며 봉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지만, 손님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두 사람이 앉으면 빠듯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보유단체 ()매헌춤보존회(이사장 이정희) 인정

 

경기도는 지난 1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4호로 신규 지정하고 ()매헌춤보존회를 보유단체로 고시했다고 3일 밝혔다

 

경기도에서는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비는 굿을 도당굿이라고 하는데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은 이 도당굿에서 행해지는 무속춤이다. 경기도당굿은 춤과 음악, 구성의 다양성, 독특함,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바 있다. 도는 도당굿의 시나위춤이 경기지역의 역사성을 품은 전통성과 향토성이 짙은 무속춤이어서 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도당굿 시나위춤도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무녀가 소리를 하며 부채와 방울을 들고 추는 도살풀이춤 부정한 것을 물리쳐 신을 즐겁게 하는 춤부정놀이춤 잡귀를 발로 차서 쫓아내는 터벌림춤 경기도 무속장단 가운데 하나인 진쇠장단에 맞추어 추는 진쇠춤 질병을 물리치기 위해 역신을 잘 대접하고 달래 보내는 깨끔춤 화살을 사방에 쏘아 잡귀를 몰아내는 형식의 전투성이 짙은 올림채춤 수명과 복() 등을 관장하는 제석신을 모시는 굿거리인 제석굿에서 추는 제석춤 등 7개 유형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은 제의적이면서도 다양한 무구(巫具)들과 의상의 변화에서 그려지는 선의 형태가 멋과 흥을 자아내는 예술성 높은 있는 춤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의 전통을 지켜온 ()매헌춤보존회는 의상과 무구, 음악, 형식 등 모든 것을 갖추어 보존하고 있어 시나위춤의 전승을 이끌어 나아갈 보유단체로 지정됐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번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의 문화재 지정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힘들게 우리 전통춤 전승 활동에 노력하는 무형문화재 관계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승의 춤을 이어가는 ()매헌춤보존회 이정희 이사장

 

()매헌춤보존회 이정희 이사장은 한 평생 스승인 매헌 김숙자 선생의 춤을 올곧게 이어가고 있는 예인이다. 고 매헌 김숙자 선생은 안성의 화랭이인 조부 김석창과 부친에게서 경기도의 장단과 춤 등을 전수받았다. 어머니 또한 경기굿을 전승받은 세습무였다. 조부 김석창은 경기충청간의 판소리인 중고제의 명창이었다. 김석창은 중고제 경기도소리인 경제 창시자인 여주 신륵사의 염계달이 창제를 이어받았다고 전한다.

 

김숙자 선생은 세습무가의 33여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예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숙자 선생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춤과 장단 등을 익혔다고 한다. 이정희 이사장은 그런 김숙자 선생 문하에서 올곧은 춤을 전수받았다. 이정희 이사장은 도살풀이춤을 모두 춤을 추기 쉬운 4박 장단으로 추고 있을 때도 성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혼자 어렵다는 6박 장단을 고집했다.

 

이제 경기도에서 선생님의 춤을 제대로 전승 시켜야죠. 선생님이 살아생전 추시던 도살풀이를 비롯해 부정놀이, 진쇠, 터벌림 춤, 제석 춤 등 일곱 가지나 되는 경기도당굿 시나위춤을 그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잖아요

 

늘 선생의 춤을 지켜가기를 고집했던 ()매헌춤보존회 이정희 이사장. 그동안 스승의 춤의 원형을 지키겠다고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제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스승의 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오직 스승의 춤을 지키며 춤만을 위해 살아 온 이정희 이사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 요즘 무당들 문제 심각하다 한탄

 

무당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야. 대층이란 없어

22일 아침,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거주하는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이 봄맞이 상차림을 준비하면서 신제자에게 한 말이다. 고성주 명인은 요즈음 무당노릇하기 정말 편하다고 하면서 음식하나까지 다 배달을 시켜서 굿상을 차리는데 그런 상을 받은 신령이 무슨 정성을 받았다고 무당들이 도와달란다고 해서 도움을 주겠느냐?”고 한다.

 

무당이란 제사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고성주 명인은 음력 37일과 107일 벌써 43년 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두 차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수양부리(자신의 신도)들을 위한 맞이굿을 올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맞이굿은 무당들에게 가장 큰 굿으로 일반적인 무당들은 2~3년에 한 번씩 올리거나 아예 올리지 않는 무당들도 있다.

 

 

 

“일부 무당들 이야기지만 무당이 신령을 모시면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않으면 그건 무당이 아니죠. 남을 비방이나 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어찌 신의 제자라고 할 수 있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무당들 말로를 보세요. 그들이 말년에 얼마나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지. 정말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무당들 이젠 정신 차려야 해요

 

요즈음 무당들이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나쁜 짓을 하다가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고성주 명인은 일반적인 무당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100(할머니 - 고모 - 최영옥(고모의 신딸이자 고성주 명인의 신어머니) - 고성주) 넘는 세월을 가계로 전해진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주 명인의 전안(신령을 모신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기물들도 적게는 수십 년에서 100년이 되어가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모든 음식을 일주일 전부터 직접 준비해

 

고성주 명인은 맞이굿을 하기 1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전안에 있는 유기그릇을 닦는 일이다. “신령을 위하면서 더렵혀진 그릇에 제물을 담아 올리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것이 고 명인의 말이다. 그렇게 그릇을 닦은 후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에는 200명 이상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모두 수양부리들이지만 그 중에는 일부러 굿을 보기위해 무속연구가나 관련학과 학자들도 상당수 찾아온다.

 

고성주 명인의 원칙은 과일이나 육고기 등을 제외하면 모든 제물을 집에서 직접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주일 전부터 전통약과와 다식, 그리고 제물로 사용할 열 가지가 남는 각종 전, 수양부리들에게 복은 건네준다는 백여 개의 시루, 200명 이상이 먹을 음식 등을 모두 집에서 장만한다.

 

 

 

그동안 많은 신의 제자들을 두었지만 그들 스스로 큰 그릇이 되기 전에 곁을 떠난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고 명인은 맞이굿을 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앞치마를 두르고 제물을 차리기에 바쁘다. 그렇게 집에서 수양부리와 신의 제자들과 함께 차린 제물을 올린 후 정성스런 마음으로 맞이굿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 굿을 그대로 전승해가고 있는 고성주 명인. 자신이 섬기는 신령을 위하는 맞이굿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정성으로 준비하는 고 명인은 굿상의 제물을 차리는 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굿 그대로 이어가는 고성주 명인

 

무당이 점을 잘 본다거나 굿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선하야 해요. 절대로 남을 피해 입히는 짓을 해서는 안 되죠. 그런 악한 마음을 갖고 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결국 파멸의 길을 걸어요. 신의 벌이 만만치 않거든요.”

 

고성주 명인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신을 섬기는 제자들이 악한 마음을 먹는다거나 악한 짓을 하면 반드시 그 대가의 신벌(神罰)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성주 명인은 제자를 가르칠 때도 굿에서 알아야 할 각종 의식은 물론 음식 차리는 법과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 굿 음식의 조리법까지 일일이 가르친다.

 

 

굿은 신성한 의식이죠. 굿상을 차리면서 음식점에서 주문해 사용한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물론 편리하고 좋겠죠. 원하는 장소에 배달까지 다 해주니까요. 하지만 굿은 정성이 반이라고 하는데 그런 음식을 신령들이 좋아할까요?”

 

고성주 명인은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걸리고 힘들지만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22, 음력 37일의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은 고 명인과 수양부리 대표, 고성주 명인의 신제자들이 함께 신령들께 삼배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상왕산 개심사 내 나혜석이 살았다던 돌집

 

정말 여기서 나혜석이 몇 달을 살았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게 상왕산 개심사를 방문했지만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아무리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하지만 이런 곳에서 거주했다니 정말 맘이 아프네요

 

4일 찾아간 충청남도 서산시. 서산을 찾아가면 꼭 빠트리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에 소재한 개심사다. 개심사를 이 계절에 찾아간 것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봄꽃인 자목련과 매화,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는 왕벚꽃을 보기 위함이다. 이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이런 꽃들을 만난다는 것은 시기를 잘 맞춰야 하기 때문에 운도 따라야 한다.

 

시기를 잘못 잡아 너무 일찍 개심사를 찾았다. 5일 전화로 대화를 나눈 개심사 스님은 “25일쯤에 왕벚꽃이 만개하니 그 때 찾아와 시잔 한 장 멋지게 찍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건 것은 바로 개심사에서 나헤석이 몇 달간 묵었다고 하는 돌집 때문이다.

 

 

이 건물은 개심사 경내 입구 주차공간에서 계단 위 해탈문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향하면 우물이 있고 그 옆에 돌을 이용해 만든 건물이 한 채 있다. 마른 담장이 넝쿨 줄기가 널려있는 이 돌 건물은 현재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 돌집에서 나혜석이 얼마간의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서산 개심사는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주지로 재임했던 시기에 중흥을 이른 절이다. 만공스님은 1933년 예산 수덕사 견성암에서 일엽스님에 사미계를 주었으며 이 시기에 나혜석도 출가할 뜻을 비쳤으나 만공스님이 거절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나혜석이 개심사에 거주했을 때는 바로 일엽스님이 견성암에서 사미계를 받을 당시 전후인 1932~1933년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개심사에서 출가한 뜻을 비친 나혜석의 의사를 만공스님이 거절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일엽은 1931년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 경성에서 나혜석을 만나, 속세를 접고 여승이 되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나혜석은 일엽에게 "현실 도피 방법으로 종교를 택해서는 안 된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전한다. 일엽은 나혜석에게 함께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될 것을 권고하였으나 나혜석이 거절했고, 후일 1935년 나혜석이 승려가 되려 하자 이때는 일엽스님이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보아 나혜석이 상왕산 개심사에 거주했던 시기는 1932~1933년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5년에는 견성암을 찾은 나혜석이 일엽스님에게 출가할 뜻을 전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1937년 수덕사로 들어가 ()’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에 귀의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수덕사, 해인사, 다솔사 등 산사를 전전하다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등 방황을 거듭한다. 시대를 앞서간 여인 나혜석은 이런 와중에도 이따금 그림을 그렸는데 해인사 석탑, 해인사 홍류동, 학서암 염노장, 다솔사 등의 작품이 남아 있다.

 

삶이 고단해지자 출가할 뜻을 가졌던 나헤석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돌다가 반신불수로 양로원 등지를 떠돌았다. 나혜석은 194612월 눈보라치던 날, 거리에서 한 행인에게 발견되어 시립자제원(지금의 서울시립남부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무연고 행려병자로 분류된 채 생을 마감한다. 관보에는 그의 사망 연월일이 19491210일로 되어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나혜석이 사망시기가 1946, 1948년 등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매 아해들아!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나혜석의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라는 시이다. 하지만 나혜석은 꽃 한 송이 자녀들에게 받지 못한 체 그가 어디 묻혀있는지조차 알 길 없다. 그런 나헤석이 살았다고 전하는 개심사 돌집. 한 옆에는 매화가 망울을 맺고 있고 진달래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개심사에 온지 3일 밖에 되지 않아 알지 못한다는 스님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개심사 돌집과 나혜석. 언제쯤이면 누구를 통해 그 명확한 이야길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