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성 만해기념관(명예관장 : 전보삼)은 4월 4일부터 5월 7일까지 그간 불교 미술에 열심히 정진해오던 송강 스님의 서각과 서예 입문 25년을 맞아 초대 전시회를 갖습니다. 이번 전시는 2017 경기도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으로 진행된다.

 

금번 전시되는 작품은 만해의 자필 오도송과 한글로 풀어서 쓴 작품, 효당 최범술에게 써 준 "마저절위" 그리고 산고의 고통을 겪으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조각 여인상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에 봄바람이여!"(찬송)가 전시된다.

 

차에 관한 작품으로는 평소 송강의 다도관을 나타내는 "법향속에 차한잔"과 느티 고사목에 전각 형태로 표현한 "선미 다미" 그리고 추사가 초의에게 받은 차의 답례로 써준 "명선"과 "다선"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귀하고 멋진 나무를 찾아 새긴 달마와 지장 보살상을 비롯 향기로운 법향을 새긴 10여점의 작품들이 전시되며, 외 나무모음에는 300년 묵은 살구나무 혹으로 조성한 물방울무늬 귀한 찻상과 2미터에 이르는 살구 고사목 찻상, 강원도 정선 심심산중에서 구한 관솔 찻상과 솟대 등의 나무 공예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서예 작품으로는 송강스님의 개성이 두드러진 갑골문과 전서가 함께 어우러진 3미터 대작의 금문 반야심경을 비롯 소품 5점도 전시된다.

 

불보살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면서 지극한 신심을 담은 금번 ‘서예ㆍ서각ㆍ나무모음’ 송강스님 전시회에 사부대중 등 불교문화와 예술세계에 더욱 큰 안목이 생기고 아울러 다녀가는 이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우리 문화의 지고한 가치와 소중함을 아로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송강 스님 약력

1991년 출가 득도 후 도안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태고종 원법스님 문하에서 서예와 다도 사사(1997-2005)

인사동 경인미술관 첫 번째 개인전(2005)

월간 차의 세계 12개월 작품 연재(2009)

월간 불교지 36개월 작품 연재(2010-2013)

경인미술관 개인전(2013)

대전국제아트쇼 부스전(2015)

대전중구문화원 초대 부스전(2016.3.)

성동문화재단 초대전(2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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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년 동안 정들었던 수원 떠나

 

이임사를 하는 김동근 수원시제1부시장이 잠시동안 울컥한다. 24일 오전 9시 수원시청 별관 2층 대강당에서는 2년 동안 수원시제1부시장으로 재임했던 김동근 부시장의 이임식이 거행되었다. 강단을 꽉 메운 수원시청 6급 이상 공직자들과 수원시의회 의원들, 그리고 사회단체 대표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동근 지1부시장님은 그동안 우리 수원시를 위해서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그동안 우리 수원의 발전을 위해 어려운 일도 묵묵히 감당하셨는데, 오늘 경기도 제2부지사로 발령을 받아 우리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시장으로 저보다 직급이 낮았는데, 이제 제2부시자로 진급을 하셨기 때문에 도청에 회의를 들어가면 저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의 이야기를 듣던 공무원 등 이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김동근 제1부시장은 수원시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면서 행사장 등을 가면 김동근 부시장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는다며, 그런 모든 것이 그동안 김 부시장이 수원을 위해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요 요직 두루 섭렵한 김동근 제1부시장

 

김동근 수원시 제1부시장은 1961년생 양주시 출신으로, 의정부공업고등학교(1980),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1991)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 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지역개발 석사학위(1999), 아주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2015)를 취득했다.

 

1992년 제3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김동근 제1부시장은 그동안 경기도 정책기획관(2006.7~2007.3), 도 도시환경국장(2009.6~11), 의정부시 부시장(2011.1~2011.6), 도 기획행정실장(2011.6~2012.1), 도 기획조정실장(2012.1~2014.1)등을 거쳐 20151월 수원시 제1부시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이임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간 김동근 지1부시장은 그동안 수원시에 오서 즐거운 나날이었다면서 처음 수원시 제1부시장이 되었을 때 공무원들과 약속이 칸막이를 낮추고 모두가 소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며 감회에 젖어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격이 없는 친교 두드러진 김동근 제1부시장

 

김동은 제1부시장은 사람들과 격이 없었다는 평이다. 2년 동안 수원시의 각종 행사장과 수원시 22개 전통시장 행사장에서 늘 만난 김동근 부시장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타입이다. 상인들과도 격이 없이 행동하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는 공무원이었다. 수원시의 행정직으로서는 가장 높은 직위에 있다기보다는 그저 친근한 이웃 지인같은 공무원이었다는 평이다.

 

김동근 부시장이 이제 수원을 떠나 의정부에 소재한 경기도청 제2청사의 모든 책임을 지는 행정부지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니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늘 시민들에게 다정다감하고 격이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 준 분인데, 진급이 되어서 떠난다니 축하를 드려야죠. 아쉽긴 하지만 어디를 가든지 건강하시기를 바라야죠

 

김동근 제1부시장의 이임소식을 들은 상인회장 한 사람은 전통시장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떠나게 되어 섭섭하다고 한다. 하지만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어릴 적 꿈을 키우던 의정부에 소재한 경기도 제2청사를 관장하는 제2행정부지사로 진급이 되어 간다니 축하할 일이라는 것이다.

 

김동근 제1부시장은 경기북부 출신이면서 북부청 평생교육국장과 기획행정실장, 의정부 부시장 등 북부지역에서 다양한 행정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소통과 혁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경기북부지역의 발전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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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레일 확충, 안전모 착용 등 안전기반시설 조성

 

지난 해 수원시는 68일 자전거 교통사고 예방과 안전한 자전거 문화의 정착을 위해 교통안전공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날 두 기관은 최근 자전거 교통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시민홍보를 강화하고자 자전거사고 다발지점 지도책자 인쇄배포 홍보용 리플릿 및 현수막 제작배포 자전거 안전 캠페인 전개 찾아가는 자전거 안전교육 병행 홍보 등을 공동 추진키로 했다.

 

수원은 자전거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2013 생태교통 때 특색있는 자전거를 선보이며 차 없는 거리를 운영했다. ‘생태교통 수원2013’ 때는 전국에서 한 달 동안 10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찾아와 차 없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면서 신바람 나게 달리고 사람들은 차도를 마음껏 즐기면서 걸었다.

 

이러한 수원시는 201251일부터 수원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수원시민 자전거 보험을 실시했다. 자전거 보험은 피보험자본인(사망 시에는 법정상속인)이며 수원시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모든 시민은 자동 가입되며 피보험자가 된다. 자전거사고는 자전거를 직접 운전하던 중에 일어나는 사고,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자전거에 탑승 중에 일어난 사고, 도로 운행 중의 피보험자가 자전거로부터 입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를 말한다.

 

김미경 의원 수원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대표 발의

 

수원시 의회 김미경 의원은 지난 해 1228수원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발의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발의된 이 개정 조례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김미경 의원을 만나보았다. 김미경 의원은 시민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 분석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시에서 자전거를 이용해온 시민들의 안전문제를 전반적으로 점검, 분석하고 그에 따른 개선방안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죠. 이 법안은 향후 수원시민들이 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조성을 하였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미경 의원은 이러한 법안조례를 준비하면서 연구 활동의 결과로 시민들이 자전거 이용시설의 안전도를 높이는 근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김 의원은 자전거 전용도로 유지, 보수와 전용도로 가드레일 확충 등을 비롯한 자전거 안전이용 관련 기반시설 정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제도마련입니다. 지금까지 수행한 연구 활동 결과에 따르면 안전모 착용 여부가 자전거 이용자들의 안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자전거 이용 중 사망한 사람들의 90%가 안전모 미착용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전모 쓰기 생활화해야 시민 생명 보호할 수 있어

 

김미경 의원은 자전거 이용은 시민들의 건강증진과 친환경 교통수단의 이용확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안전문제라고 한다.

 

가정에서는 소중한 가정의 일원이여 사회적 측면에서 이끌어나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수원시민 모두가 안전하게 자전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은거리를 운행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는 것을 생활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미경 의원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수원시의회와 수원시 차원에서도 자전거 안전모 착용을 생활화 할 수 있는 시책을 마련하고, 다양한 정책수단과 홍보활동을 통해 안전한 자전거 이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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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장애 비장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결국 모든 시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는 최종현 회장. 수원시지체장애인협회 회장을 맡아보던 최종현 회장은 지난해 1230일 수원시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을 선출하는 자리에서 당선되어 제3대 수원시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3년 임기인 복지단체연합회장은 기한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당선이 되면 임기 3년이 한시적으로 정해져있으며 재선으로 다시 회장직을 맡을 수가 있다. 지제장애인협회장 소임을 맡아하면서 장애인들을 위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친 최종현 회장이기 때문에 이번 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장 선거에서도 사람들의 믿음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가 장애인들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문제제기를 받기도 하고요. 인수인계 절차를 마치고나면 우선 장애인단체들을 점검하고 앞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에 나가 제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연합회를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언제나 먼저 장애인의 복지를 생각하는 사람

 

몇 년 동안 수원시지제장애인협회 일을 맡아하는 최종현 회장을 보면서 늘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을까하는 생각이다. 늘 모든 일에 자신이 소임을 맡아보고 있는 지체장애인협회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행복보다는 먼저 지체장애인들의 행복을 생각하고 그들의 안전과 복지를 먼저 생각하였다.

 

세상은 장애, 비장애가 한데 어울려 차별없는 세상이 될 때 가장 완벽한 복지사회기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관이 주도적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고 생각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생각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그런 세상을 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최종현 연합회장 당선자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의식개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변화를 시키지 못하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면 그 세상은 절대 바뀔 수가 없다는 것이 최회장의 논리이다. 하기에 그는 늘 장애인들이 먼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에 적응해 차별 없는 사회생활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장애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사람들이 장애인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당당하고 정당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하면 사회의 구성원이나 공무원들이 왜 그들을 믿지 못하겠어요. 저는 앞으로 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직하고 당당하게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는 단체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갈 것입니다

 

자신의 일보다 먼저 장애인들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 온 최종현 회장으로서는 사회에서 그런 대우를 받게 된 것은 누굴 탓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누구든지 믿고 모든 일을 맡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장애인 모든 단체가 먼저 변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애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살필 수 있는 것은 결국 장애인이라고 늘 강조하던 최종현 회장으로서는 그 일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한단다.

 

왜 장애인들의 일을 비장애인들이 맡아해야 합니까? 장애인이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말이죠. 결국 사회가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지관 운영이나 상담도 장애인들이 맡아해야 합니다. 저는 각 단체마다 상담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서로 마음을 터놓고 무슨 말이나 상담을 할 수 있으니까요

 

 

최종현 회장이 늘 안타까워하는 것은 정작 누구보다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장애인을 젖혀놓고 비장애인이 그들을 상담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예산낭비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3일 오후, 호매실장애인복지센터 3층 수원시지체장애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종현 회장은 앞으로 인수인계 절차를 마치고나면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 차근차근 모든 일을 풀어나가겠다고 한다. 자신이 장애인복지단체연합회를 맡아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정직하고 당당한 단체와 장애인을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최종현 회장의 행보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꼭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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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선출은 승계가 아닌 권점이라는 직선제로 선출

 

지난 23일까지 수원문화재단 특별전시실에서는 2015 근현대예술인 조망 사업 전시로 운학 이동안선생에 대한 전시가 열렸었다. 재인청은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도와 전라도 삼도에 있었으며 도 재인청 밑에는 군 재인청이 있었다. 이들의 직제는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스스로를 천민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엄격한 규약을 갖고 있었다.

 

각 도 재인청의 수장을 대방(‘도대방이란 각 도의 대방을 일컫는 말로 여겨진다)이라고 하고, 군 재인청의 수장은 장령이라고 불렀다. 재인청에서는 선생 밑에 제자들을 두어 학습을 하게 하였으며 전국에 산재한 많은 예인들이 이 재인청에서 학습을 하거나 재인청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키바 다카시의 <조선 무속의 연구>에 의히면 대방의 선출은 재인청 인원 중에서 3명을 추천하고, 그 이름 밑에 권점이라는 점을 찍어 다수표를 얻은 사람이 맡아보는 직선제 선출을 하였다고 적고 있다. 당시에도 상당히 민주적인 방식의 선거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는 화랭이들의 가계가 즐비해

 

오산 부산동의 이용우 가계가 12대 째 대를 물린 전형적인 산이계열의 집안으로 무의식과 화랭이 춤을 지켜 온 집안이라고 한다면, 화성 남양의 이동안 가계는 4대째(일설에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재주를 지켜온 집안이다. 고 운학 이동안 선생은 경기재인청이 폐청이 되고 난 뒤 재인청 춤 교사인 용인 김인호 선생에게 재인청 춤을 전수받았다.

 

재인청 계열의 춤은 경기도를 비롯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도 전승이 되고 있다. 삼도에 있던 재인청은 그만큼 다양한 전통문화예술을 지역적 특성이 있는 각종 연희종목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경기도에서 연희되고 있는 재인청 계열의 춤은 이용우의 진쇠춤과 터벌림춤(경기도당굿 보존회로 전승)을 비롯해 이동안의 진쇠춤과 엇중몰이 신칼대신무, 태평무, 승무와 살풀이(경기도 무형문화재), 안성의 김숙자 가계로 전해진 도살풀이(중요무형문화재 지정)와 충남 의 재인 한성준으로 전해진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지정)와 살풀이춤 등 많은 춤들이 있다.

 

고 이동안 선생은 1906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송곡리에서 재인청의 세습광대 후손인 이재학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이화실)는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고, 작은할아버지(이창실)도 줄타기의 명수였다. 이런 광대의 가문으로 맥을 이어온 그의 집안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사물이나 젓대(대금), 피리를 잡히는 대신 서방에 보내 글공부를 시켰다.

 

 

어려서부터 기예능에 눈 돌려

 

12게때까지 통권을 마친 이동안 선생은 마을에 들어 온 남사당패를 따라 황해도 황주땅까지 갔다. 그렇게 무작정 가출한 이동안 선생은 황해도 한 장터에서 부친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재인의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이재학에 이끌려 화성집으로 끌려온 그는 두 살 위인 최연화라는 처녀와 결혼을 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가 14세였는데 신부보다 소리와 줄타기, 땅재주 넘는 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려 결혼 4년 만에 집을 다시 뛰쳐나와 버렸다

 

그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방황 끝에 황금정에 있는 광무대에 취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앞으로 가기, 장단줄, 허궁잽이, 화장사위 등 17가지에 달하는 본격적인 어름타기를 배웠으며 장단에 맞춰 줄 위에서 살판(공중회전)을 하는 법도 배웠다. 이곳에서 춤선생 김인호(일명 복돌)와 경기 잡가와 발탈의 명인 박춘재를 만나게 됐다.

 

김인호로 부터는 전통무용의 장단(젓대, 해금, 꽹과리, )과 춤을 익혔으며 박춘재로 부터는 발탈의 연희를, 김관보에게서는 줄타기를 전수받게 되었다. 그가 김인호로 부터 전수받은 춤이 <태평무>, <승무>, <진쇠무>, <검무>, <살풀이>,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한량무>, <승전무>, <정진무>, <학무>, <화랑무>, <무녀도>, <극우>, <장고무>, <기본무>, <노장춤>, <신선춤> 30여 종에 이른다

 

 

이동안 선생의 4대 세습 도대방 근거없다

 

1920년대 재인청이 폐청 될 당시 전국에는 4만 여명이 넘는 재인청 소속의 재인들이 활동을 했다고 하니 당시 재인청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동안 선생은 경기도의 한 일간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이 4대째 도대방으로 이어진 집안의 마지막 도대방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오산 부산리 이용우 선생의 집에는 경기도 재인청에 관한 4책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이 책 내용에는 대방들의 명칭이 보인다. 하지만 폐청 될 당시 아키바다까시가 쓴 <조선무속의 연구>에도 도대방이라는 칭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볼 때 도대방이란 각 도의 대방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재인청의 폐청 될 당시 이동안 선생을 불과 14세에 지나지 않았다. 폐청 당시 3도 재인청에 속한 인원이 4만여명이나 된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당시 내로라하는 재인들이 속해있었던 예능집단이 바로 재인청이다. 그런 재인청에서 어떻게 14새의 어린 소년이 도대방이 될 수 있었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맞지 않는 말이다.

 

더욱 재인청의 대방선출은 3명을 먼저 선정한 후 권점이라는 점을 찍어 선출하는 직선제를 택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떻게 4대째 도대방으로 계승을 한 것일까? 결국 이동안 선생의 ‘4대 도대방설은 신뢰성이 없다. 선생의 기예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렇다고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이 안된 도대방설을 글을 쓰는 사람마다 인용해 ‘4대 도대방이라는 설은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예능집단이었던 거대한 조직인 재인청이 자칫 이 확인되지 않은 사살 하나만으로 14세짜리 어린소년이 수장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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