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산시장으로 내려 온 것이 벌써 34년이나 되었네요. 제가 33살에 박사이자 교수이던 남편과 사별 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그릇가게를 열었어요. 그 때 자리가 바로 이 곳이죠.”

 

매산시장 현대그릇전문점의 홍혜숙 대표는 단돈 4,000원을 들고 수원 매산시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매산시장에 점포를 낸 뒤 수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 대학을 다닐 때도 학비를 50%만 낼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매산시장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그저 시골 장 같았죠. 당시는 역전시장 건물도 없었고요. 길에는 시골아줌마들이 나와서 물건을 팔고는 했죠. 지금은 그런 분들이 장사를 하는 것을 막고 있어서 시장 한편에 몇 분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죽 앉아서 장사를 했어요. 지금은 그 아주머니들이 모두 화서시장으로 옮겨 갔죠"

 

 

 

 

살아있는 매산시장의 역사

 

현대그릇전문점 홍혜숙 대표는 매산시장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34년 동안을 한 자리에서 시장이 변화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의 발전을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걱정하고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 우리 그릇 가게 앞에도 소와 돼지, 닭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 팔기도 했어요. 그 때는 가축시장도 이곳에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손님들이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니까 그릇을 팔아도 일반적인 그릇들이 더 많았죠. 지금은 고객들의 70%가 중국인들이다 보니 그네들이 좋아하는 전기밥솥 등을 많이 취급하죠.”

 

세월이 가면서 매산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릇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70%는 중국인이고, 10% 정도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 정도는 베트남, 인도, 러시아, 스리랑카 등에서 온 외국인들이란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그릇 가게를 찾아오는 고객 중 90%가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 나라말을 인사정도는 할 줄 알아야 돼요. 공부도 많이 했어요. 물건을 흥정하고 인사를 할 줄 알아야 그들에게 물건을 필 수 있으니까요.”

하기에 중국어는 물론이도 일본어와 영어 정도는 필수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이다.

 

 

 

 

장사는 주변 상황을 돌아보고 노력을 해야 해

 

지금도 중국인들이 찾아오면 대개 본국으로 그릇을 구해 택배로 보내는데, 한문을 잘 쓰기 때문에 중국 주소를 택배상자에 써주면 그렇게 좋아한단다.

 

요즈음은 인근에 대형 할인점들이 많기 때문에 늘 그곳을 돌면서 물건을 바꿔야 해요. 전기밥솥 같은 것을 잔뜩 놓았다가 대형매장에서 할인행사라도 하면, 중국인들이 다 세일하는 곳으로 몰려가기 때문에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기에 늘 대현매장들과 물건이 겹치지 않도록 진열을 해야 하고, 그들이 할인행사를 하면 그들이 할인을 하지 않는 물건으로 진열하는 물건을 교체해야 한단다. 하기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변을 잘 돌아보아야 하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혜숙 대표는 지금은 매산시장의 가게가 본인건물이며 땅도 좀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건물이나 땅은 누가 집어가질 못하는 것이니, 돈이 될 때마다 그쪽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34년 전 4000원을 들고 수원으로 내려왔지만, 근면으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때는 군에 납품도 했었죠.

 

홍혜숙 대표가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근면과 성실이라고 한다. 그릇 가게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냉면그릇을 사러 왔는데, 말쑥하게 양복을 입은 신사였다는 것이다.

 

그릇 샘플을 좀 보여 달라는 거예요. 지금은 비싸지만 당시는 냉면그릇을 800원 정도에 받아 웃돈을 부쳐서 팔 때인데, 샘플을 달라고 하면서 얼마에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750원에 드리겠다고 하니, 천개를 주문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군부대와 병원, 학교 같은 곳에 납품을 하는 사람인데, 원가를 아는데 그보다 싸게 준다고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두 개 정도니까 그냥 드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대답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850원씩에 트럭으로 한 차를 사갔다고 한다.

 

한 때 그렇게 많이 팔았어요. 그러다가 군납품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조달청에서 모든 것을 납품하게 되었죠.”

 

지금도 처음 장사를 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홍혜숙 대표. 지나 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의 고생이 지금의 환경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성실과 근면, 그리고 노력이 어우러진 34년의 결실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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