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춘향제 대표행사중 하나인 길놀이가 5월 19일(토) 16시부터 18시 30분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행렬 구간은 약 1.7km 로 용성초등학교에서 출발해 SC 제일은행 사거리 ~ 국민은행 사거리 ~ 광한루원 서문 ~ 광한루원 앞 방자춤판 무대입니다.  






















올해 주력으로 출연하는 국악예술고등학교의 판소리 춘향뎐 퍼레이드는 어사행차, 춘향과 몽룡의 만남과 이별, 옥중춘향 등의 춘향가 주요 대목을 입체적으로 재현하여 한 편의 공연과 같은 길놀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남원의 대표 문화컨텐츠인 신관사또부임행차와 남원지역 시민팀이 해학적으로 준비한 전통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춘향제 길놀이만의 풍부한 스토리와 흥겨운 마당이 구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유아와 어린이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환상적인 버블카 행렬이 비누방울쇼를 연출하며 , 춘향캐릭터 대형 퍼레이드카를 특별 제작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막걸리 수레를 운영하여 시민들과 시원한 막걸리 및 간식을 나눌 예정입니다.
























특히 제일은행 사거리와 방자춤판 무대에서는 팀별로 약 2 분 동안 각기 다른 퍼포먼스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남원지역 청소년 댄스동아리 연합이 준비한 업그레이드 사랑춤이 축제의 젊은 열기를 한껏 발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 다양한 볼거리와 탄탄한 스토리로 준비 중인 제88회 춘향제 길놀이가 시민들과 함께 보고 듣고 춤추며 즐기는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열린 굿판을 가다

 

굿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주구나 그곳에서 울고 웃을 수 있다. 그런 열린 축제인 굿이 산속으로 숨어들면서(지금은 모든 굿이 전문 굿당이라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굿의 본 형태인 열린 축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초복축사 등의 기능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열린 축제의 기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판이 바로 경기도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이다. 고성주 명인은 43년 동안 음력 37일과 107일 두 차례 맞이굿을 지동소재 271~124 자택에서 열면서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열린 축제의 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이 더 대단한 것은 우리 전통의 맞이굿이 선사시대부터 갖고 있는 하늘에 감사하고 수족상응(手足相應)하고 답지저앙(踏地低昻)하는옛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음력 37) 고성주 명인의 전안에서 열린 맞이굿판에서는 경기재인청의 춤과 판소리 공연까지 이어져 굿판에 모인 사람들의 흥을 고조시켰다.

 

저는 굿을 할 때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집안에 신령을 모셔놓고 밖에 나가서 맞이굿을 한다는 것은 아치에 맞지 않잖아요. 2~3백 명이 찾아와도 일일이 집에서 대접을 하고 그들에게 우리 춤과 소리를 들려주죠. 굿판은 즐거워야 하니까요

 

 

경기재인청 춤과 판소리 등 흥겨워

 

고성주 명인은 어려서부터 춤과 소리를 배웠다. 경기재인청 춤꾼들이 추던 많은 춤은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서 사사 받았으며 그 외에 많은 소리꾼들에게서 소리를 익혔다. 경기도의 춤과 소리는 지역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경기안택굿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재인청의 화랭이들과 강신무들의 굿에서 불리는 소리가 다른 것도 경기도의 전통예술을 다양하게 살찌운 것이다.

 

오후 5시 경이되자, 굿을 하는 도중 무용복을 입은 무희들이 전안으로 들어섰다. 고성주 명인의 굿판이 즐거운 것은 바로 이렇게 춤을 추고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고성주 명인의 문하생들이 노들강변(박경순), 엇중모리 신칼대신무(서금자), 교방무(윤혜선) 등을 추고 난 후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무용교육 석사학위 취득자인 이승은의 경기살풀이로 이어졌다,

 

이승은은 전 중양대학교 무용과 강사를 역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재원으로 경기재인청춤을 고성주 명인에게서 교습받고 있는 중에 이날 춤판에 오른 것이다. 전문춤꾼의 실력은 남달랐다. 맺고 풀어가는 춤 태가 뛰어나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역시 전문춤꾼은 다르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박수소리도 더 요란했다.

 

 

판소리까지 곁들인 맞이굿판

 

춤 공연을 마친 후에는 판소리를 하는 조진숙이 춘향가 중 - 뺑덕어미 행실을 스승인 김승의(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적벽가 이수자)의 장단에 맞추어 불렀으며 판소리 한 대목을 양용자, 조진숙, 이정은, 강현미, 김도영 등 5명이 멋들어지게 불렀다. 맞이굿판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공연이 있기 때문에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은 늘 흥청거린다.

 

오늘 정말 좋은 구경을 했어요. 그동안 굿이라는 것에 대해 편협 된 사고를 갖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와서 직접 보니 굿판이 정말 우리 전통의 모든 것을 다 함축해 갖고 있네요. 경기안택굿도 그렇지만 춤과 소리까지 곁들인 이런 굿판이라면 언제라도 찾아와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이굿 관람을 하고 있던 이아무개(, 53)씨는 그동안 굿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굿에 대해 잘못된 시각들을 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소리하는 경기도의 전통 굿 한마당.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 판에는 그런 경기도의 멋이 그대로 녹아있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 요즘 무당들 문제 심각하다 한탄

 

무당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야. 대층이란 없어

22일 아침,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거주하는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이 봄맞이 상차림을 준비하면서 신제자에게 한 말이다. 고성주 명인은 요즈음 무당노릇하기 정말 편하다고 하면서 음식하나까지 다 배달을 시켜서 굿상을 차리는데 그런 상을 받은 신령이 무슨 정성을 받았다고 무당들이 도와달란다고 해서 도움을 주겠느냐?”고 한다.

 

무당이란 제사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고성주 명인은 음력 37일과 107일 벌써 43년 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두 차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수양부리(자신의 신도)들을 위한 맞이굿을 올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맞이굿은 무당들에게 가장 큰 굿으로 일반적인 무당들은 2~3년에 한 번씩 올리거나 아예 올리지 않는 무당들도 있다.

 

 

 

“일부 무당들 이야기지만 무당이 신령을 모시면서 마음을 올바로 쓰지 않으면 그건 무당이 아니죠. 남을 비방이나 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어찌 신의 제자라고 할 수 있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무당들 말로를 보세요. 그들이 말년에 얼마나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지. 정말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무당들 이젠 정신 차려야 해요

 

요즈음 무당들이 신령 무서운 줄 모르고 나쁜 짓을 하다가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고성주 명인은 일반적인 무당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100(할머니 - 고모 - 최영옥(고모의 신딸이자 고성주 명인의 신어머니) - 고성주) 넘는 세월을 가계로 전해진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주 명인의 전안(신령을 모신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기물들도 적게는 수십 년에서 100년이 되어가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모든 음식을 일주일 전부터 직접 준비해

 

고성주 명인은 맞이굿을 하기 1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전안에 있는 유기그릇을 닦는 일이다. “신령을 위하면서 더렵혀진 그릇에 제물을 담아 올리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것이 고 명인의 말이다. 그렇게 그릇을 닦은 후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에는 200명 이상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모두 수양부리들이지만 그 중에는 일부러 굿을 보기위해 무속연구가나 관련학과 학자들도 상당수 찾아온다.

 

고성주 명인의 원칙은 과일이나 육고기 등을 제외하면 모든 제물을 집에서 직접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주일 전부터 전통약과와 다식, 그리고 제물로 사용할 열 가지가 남는 각종 전, 수양부리들에게 복은 건네준다는 백여 개의 시루, 200명 이상이 먹을 음식 등을 모두 집에서 장만한다.

 

 

 

그동안 많은 신의 제자들을 두었지만 그들 스스로 큰 그릇이 되기 전에 곁을 떠난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고 명인은 맞이굿을 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앞치마를 두르고 제물을 차리기에 바쁘다. 그렇게 집에서 수양부리와 신의 제자들과 함께 차린 제물을 올린 후 정성스런 마음으로 맞이굿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통 굿을 그대로 전승해가고 있는 고성주 명인. 자신이 섬기는 신령을 위하는 맞이굿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정성으로 준비하는 고 명인은 굿상의 제물을 차리는 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굿 그대로 이어가는 고성주 명인

 

무당이 점을 잘 본다거나 굿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선하야 해요. 절대로 남을 피해 입히는 짓을 해서는 안 되죠. 그런 악한 마음을 갖고 신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결국 파멸의 길을 걸어요. 신의 벌이 만만치 않거든요.”

 

고성주 명인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신을 섬기는 제자들이 악한 마음을 먹는다거나 악한 짓을 하면 반드시 그 대가의 신벌(神罰)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이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성주 명인은 제자를 가르칠 때도 굿에서 알아야 할 각종 의식은 물론 음식 차리는 법과 음식을 진설하는 방법, 굿 음식의 조리법까지 일일이 가르친다.

 

 

굿은 신성한 의식이죠. 굿상을 차리면서 음식점에서 주문해 사용한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물론 편리하고 좋겠죠. 원하는 장소에 배달까지 다 해주니까요. 하지만 굿은 정성이 반이라고 하는데 그런 음식을 신령들이 좋아할까요?”

 

고성주 명인은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걸리고 힘들지만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22, 음력 37일의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은 고 명인과 수양부리 대표, 고성주 명인의 신제자들이 함께 신령들께 삼배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기사는 2010년도에 발행했던 글입니다.
문화재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가끔 옛 기사들을 하나씩 재송고 하려고 합니다. 이점 유념해 주시고 오해 없으시기 비립니다. 

 

사람들은 절이 있는 곳은 잘 찾아가지만 사지를 찾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런 사지를 찾아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소중한 문화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철안마을. 청룡사지 입구에 도착하면 주차장이 있고, 우측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청룡사가 있다. 이곳이 예전 청룡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청룡사는 고려 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국사인 보각국사가 은거하였으므로, 태조가 큰 사찰을 세우도록 했다고 한다.

 


사찰은 간곳없고 문화재만 나란히

주차장에서 앞으로 난 개울가를 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문화재들이 있는 청룡사지를 만나게 된다. 당시의 웅장했다고 전하는 청룡사는 사라지고 이곳에는 국보 제197호인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보물 제656호인 석등, 그리고 보물 제658호인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석등과 사리탑, 그리고 탑비가 나란히 서 있는 청룡사지. 국보 제197호인 청룡사보각국사 정혜원융탑은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이다. 보각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 이성계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이라고 하였다. 이 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청룡사지에 자리한 보물 제656호 사자석등과 보물 제658호 정혜원융탑비

 

흔히 장명등이라고 하는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보물 제656호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전사자석등’이란 긴 명칭을 갖고 있는 이 석등은 사리탑에 있는 보각국사의 사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조성이 된 듯하다. 석등은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으로, 아랫부분에 한 마리 사자가 힘찬 모습으로 조성이 되어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보물 제658호인 정혜원융탑비는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융탑 뒤편에 자리한 이 탑비는 윗부분의 장식물인 지붕돌인 개석이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 부분의 모서리를 깍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보 융탑의 조각 솜씨를 보고 숨이 멎다.

 

국보 제197호 청룡사지보각국사정혜원융탑. 크지 않은 그 탑을 보고 숨이 막힌다. 아래 기단을 부풀려 놓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려놓았다. 지붕돌의 합각마루에는 용머리와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이 융탑의 몸돌은 항아리처럼 부풀려 있는데, 팔각의 몸돌을 이용해 많은 조각들을 해 놓았다. 모서리에는 기둥을 놓고 그 기둥마다 용이 기어오르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사천왕을 새겨 넣어 이 탑이 특이함을 보인다. 사천왕의 모습은 힘이 있고, 금방이라도 돌을 박차고 튀어나올 듯한 기세다. 조선 초기 석조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도 이러한 조각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 융탑은 몸돌 뒤편에 사리공이 있어 이곳에 사리 및 옥촛대, 금망아지, 금관 등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 때 도난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문화재들을 수탈을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수난이 거듭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 언제나 온전하게 이 땅에서 지켜질 수가 있으려는지. 절로 한 숨이 나온다.

 

남문시장 음악이 흐르는 밤갈수록 관객 늘어

 

시장이 젊어지고 있다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시장이 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시장이 늘 그대로 멎어있다면 발전이 없다는 소리다.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고 있으니 당연히 시장도 젊게 변해야 한다. 앞으로 시장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젊은이들이 시장으로 모여들어야 한다. 하기에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을 젊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전통시장이 살 길이다.

 

글로벌명품 수원남문시장은 그런 점에서는 성공한 시장이다. 젊어졌기 때문이다. 남문시장 글로벌사업단이 가장 신경 써 기획하고 행사를 연 것이 바로 젊은 시장을 만드는 일이었고 수원시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개장한 청년상인들의 푸드트레일러로 인해 낮에는 올드 해가지면 영시장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남문시장은 이미 전국의 많은 전통시장 중에서도 시장으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남문시장이 매주 토요일이 되면 남문시장 고객센터 앞에서 오후 6시부터 두 시간씩 다양한 공연을 펼침으로 많은 고객들이 즐겨 장을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코다브릿지에 시장 찾은 관객들 열광

 

코다브릿지는 수원여자대학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선후배가 만든 듀엣 걸 그룹이다. 예이슬 양과 서린 양 두 사람이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는 코디브릿지는 2년 정도 활동을 했지만 8개월 전 서린 양이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동문이면서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활동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상당히 호흡이 잘 맞는 팀을 이루고 있다.

 

제가 학교도 1년 선배고요. 저는 코디브릿지란 이름으로 활동한 지 2년 정도 되었어요. 그러다가 8개월 전에 서린이 함께 활동을 시작했어요. 저희들은 나름 많은 행사를 하고 있는데 주말이 되면 거의 공연에 초청되어 무대에 오르고 있고요

 

보컬 리더인 예이슬 양은 어려서부터 노래가 좋아 만화를 보는 것보다 가요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다고 하면서 노래응 부르고 싶어 대학에서 전공도 실용음악과를 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각종 행사 등에 초청되어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밤의 진행자가 젊은 듀엣 걸 그룹이 공연의 끝에 출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들의 무대를 맨 끝에 세웠다.

 

 

앞으로 더 기대를 걸만한 코다브릿지

 

저희들은 기획사가 서울 동대문 인근에 있어서 그곳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고 노래연습과 공연 등을 감당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는 것이 끔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워요. 앞으로 더 많은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통시장이라는 안 좋은 공연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코다브릿지에게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앙코르를 주문한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코다브릿지. 두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무대에서 코다브릿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