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뜨거운 날씨에도 30여개 단체 및 개인 참여해

 

프리마켓이란 자유경쟁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자유시장을 말한다. 프리마켓엔 사용하지 않았던 상품을 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이 사용하던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 프리마켓은 일상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용도가 다하거나 딴 물건과 교환하고 싶을 때 일정한 장소에 모여 자유판매를 하는 것이다.

 

수원시는 주말시장이나 각 주민센터 등에서 주민들이 모여 프리마켓을 여는 것이 상용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싼 가격에 판매를 하는데, 이 프리마켓은 주로 자원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바람직한 자유시장의 형성이라는 것이다.

 

10일 팔달구청 주변광장에 프리마켓이 열렸다. 11시에 개장한 팔달구청 프리마켓은 청소년 프리마켓과 새마을 부녀회 재사용물품 판매소 운영 등 나름대로 내실있는 프리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예정은 5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갑자기 기온이 상승하는 바람에 3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 날이 워낙 뜨거워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찾아오질 않네요. 오후시간이 되면 많이들 모이겠죠. 날도 뜨겁고 여기저기 벌어진 행사가 너무 많아 이곳까지 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손님이 없다고 찡그리고 있으면 무엇 하겠느나며 웃는 정아무개()씨는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찾아보니 상당히 많은 양이 곳곳에 쌓여있어 정리도 할 겸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판매를 하면 서로가 좋은 일이기 때문에 참가를 했다고 한다. 자원순환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것이 바로 프리마켓이라는 것이다.

 

 

봉사실적도 인정하는 팔달프리마켓

 

지난 610일 한 차례 프리마켓을 열었던 팔달구는, 매달 한 차례씩 프리마켓을 열 예정이다. 프리마켓에 참가를 하는 시민들에게는 4시간의 봉사실적도 인정된다면서 청소년들이 프리마켓에 참가하면 일거양득이라고 팔달구 관계자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팔달구 프리마켓에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동참하고 있다.

 

자유판매를 지향하고 있는 프리마켓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준비해야 하는 사항도 필요하다. 프리마켓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판매가 아니고 자원의 재순환이 목적이기 때문에, 재사용물품이나 판매를 할 수 있는 곳에 물건을 진열할 돗자리와 거스름 돈, 물이나 간식 등은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한다.

 

구청에서는 장소만 제공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이 열리기 때문에 그동안 점심을 준비한다거나 간단한 음료나, 간식 등은 본인이 직접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구청은 장소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부스만을 제공하는 것이죠

 

 

10월까지 세 차례 더 열릴 예정

 

매월 한 차례씩 개장할 예정인 팔달프리마켓은 10월까지 세 차례 더 열 예정이다. 78()99(), 1014()에 열린다. 8월은 혹서기이기 때문에 피한다. 어느 집이던지 집안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물건을 정리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싼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는 프리마켓. 이제는 이런 자유시장이 정착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저 내다버리기보다는 그래도 필요한 사람들이 싼 가격에 사다가 사용할 수 있으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처음 물건을 샀을 때야 필요해서 구입하지만, 아이들 용품을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용할 수 없게 되거든요

 

아이들 용품을 진열해 놓고 있던 한 참가자는 날이 더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래도 아이들 용품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자신이 필요없다고 해서 무조건 내다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자유시장인 프리마켓. 앞으로 이런 자유시장이 더 상용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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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서 만난 권선여성의용소방대원들

 

수원의 각종 행사장을 찾아가면 꼭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권선여성의용소방대(대장 김경애) 대원들이다. 행사장에서 봉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행사장을 찾아가던지 만날 수 있는 권선여성의용소방대 대원들은 봉사가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그만큼 많은 봉사를 한다.

 

봉사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야죠

한 대원의 이 말이 오래도록 귓전에 남는다. 마음이 먼저 앞서지 않으면 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껴야 한다. 그런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면 그 봉사는 결국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한다. ‘보여주기식봉사란 허울만 봉사라고 일침을 놓는다.

 

9일 오전. 호매실장애인복지관 6층 강당에서 열린 ()수원시지체장애인협회가 주관한 7회 수원시 효사랑 칠순잔치행사장. 같은 유니폼에 앞치마를 두른 여인들이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봉사를 하고 있다. 바로 권선여성의용소방대 대원들이다. 10여명이 이날 행사에 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한다.

 

 

저희 권선여성의용소방대는 많은 봉사를 해요. 회원이 30여명인데 수원의 각종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맡아하죠. 오늘도 10명이 봉사를 하기 위해 참석했는데, 저희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연락이 오면 주저없이 달려가죠

 

권선여성의용소방대 최정윤 총무부장은 여성의용소방대가 하는 일을 묻자 많은 일을 한다면서 아이들의 소방교육을 비롯해 장애인 작업장 봉사, 각종 행사장 봉사, 보훈원 등과 사랑의 밥차에도 봉사를 나가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수원의 각종 행사장이나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원들 회비모아 장학금도 지급

 

여성의용소방대 대원들이다보니 봉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이 화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비를 해야하나 등의 교육을 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도로 등에서 사고가 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신고를 하는가? 등도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그만이 아니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나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약자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일일이 방문해 돌보는 것도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저희들은 회원들이 회비를 모아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아이들과 함께 한국민속촌 관람도 했어요. 그리고 매월 넷째 주 목요일에는 매탄공원에서 저희 권선여성의용소방대 전원이 참석해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중식을 제공하는 사랑의 밥차봉사를 해요. 622일 매탄공원으로 오세요

 

회비를 모아 회원들의 경조사비까지 일일이 챙긴다고 하는 권선여성의용소방대. 20071214일부터 권선여성의용소방대 대원으로 봉사를 시작했다는 10년차 소방대원인 최정윤 총무부장의 여성의용소방대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모른다. 자랑이 아닌 자신들의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여인들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하다.

 

마음으로 봉사를 해야한다는 권선여성의용소방대원들. 수원 어디를 가나 행사장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봉사란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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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사랑의 밥차’ 500명에게 식사대접

 

헐벗은 이에게 옷을 주어 의복공덕을 하였느냐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주어 급식공덕을 하였느냐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어 해갈공덕을 하였느냐

깊은 내에 다리를 놓아 월천공덕을 하였느냐

 

우리 속요에 자주 등장하는 사설 내용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공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나 하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자는 이 소리는 공덕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급식공덕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봉사야말로 공덕 중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여긴 것이다.

 

22일 수원문화재단 옆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1120분부터 팔달구(구청장 김창범) ‘사랑의 밥차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팔달구와 ()수원공군전우회(회장 오남칠), 수원중사모봉사회(회장 이만제) 등이 공동으로 급식봉사를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김창범 구청장과 팔달구 김영진 국회의원, 수원시의회 김미경 의원도 함께 음식을 급식하는 등 500여명의 어른들께 자장면을 대접했다.

 

 

한 달에 4회 사랑의 밥차 운영

 

()공군전우회는 한 달에 4회 정도 사랑의 밥차를 운영한단다. 그 중 1, 3주는 권선구에서, 2회는 수원종힙운동장에서 봉사를 한다. 공군전우회는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마련해 사랑의 밥차 운영을 한다고 오남칠 회장을 말한다. 회원 모두가 항상 봉사를 하면서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저희 공군전우회는 봉사를 한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전우회 등록 회원이 수원시만 59백명 정도 되고요. 후원회원은 35천명 정도 됩니다. 회원들과 후원회원들이 기금을 모아 봉사를 하는 것이죠. 오늘은 자장면 봉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음식을 나르고 뒷일을 담당하기 위해 40명 정도가 나왔습니다

 

봉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근무를 하는 평일에 급식봉사를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열일 젖혀놓고 밥차 운영을 하는 공군전우회와 후원회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김창범 팔달구청장도 오늘 자장면 많이 배달했어요라면서 웃는다. 급식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봉사를 했다는 것이다.

 

 

서로가 공을 넘기는 아름다운 사람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남칠 회장과 이만제 회장은 서로 공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다.

오늘 사랑의 밥차는 중사모봉사회 이만제 회장님이 많은 애를 쓰셨습니다

오남칠 회장님은 이른 시간부터 나와 봉사를 하고 계세요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마음도 아름답다고 한다. 취재를 하다보면 서로 자신들에게 공을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경우 기사작성을 하고 싶지가 않다. 뻔히 그 속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원시의 모든 봉사단체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좋다. 서로가 공을 양보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항상 봉사를 하고 있는 팔달구. 딴 곳에 비해 원도심의 중심에 있는 팔달구는 어른들이 많다. 또한 그만큼 생산을 할 수 있는 연령층이 적다보니 어려운 이웃들이 많기 때문에 늘 도움을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늘 많은 봉사를 하는 김창범 구청장과 관계 공무원들. 그리고 내일처럼 앞장서 도움에 동참하는 국회의원과 수원시의회 의원들. 팔달구가 수원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은 그렇게 나눌 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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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도자기축제와 강원도 최북단 대진항

 

3개월, 90일을 편안히 쉬어보지 못했다. 모처럼 징검다리 연휴를 맞이하여 길을 나섰다. 바삐 살다보면 때로는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핑계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지인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데도 그저 바쁘다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으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징검다리 연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떠났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야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보자고 떠난 길, 먼저 들린 곳은 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여주 신륵사 주차장이다. 그곳을 들렸다가 바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최북단에 소재하고 있는 정수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여주에는 형제처럼 지내는 아우가 북내면 상교리에 살고 있다. 그곳에서 부부가 함께 도자기 공방을 운영한다. 이 부부처럼 세상을 밝게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생활이 윤택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다. 주면 사람들에게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가 늘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온다.

 

 

사람은 많은데 판매는 저조

 

그런 부부가 올해도 도자기축제장에 자리를 마련했다. 몇 달을 도자기축제장에 진열한 작품들을 만드느라 잠조차 못 들더니 심한 몸살,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걱정스러워 찾아간 축제장. 징검다리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하지만 정작 손에 짐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만나기 힘들다. 한 마디로 판매가 부실하다는 이야기다.

 

그토록 오랜 시간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 판매가 부실하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고 작품작업을 하는 아우로서는 도자기축제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없다고 한다. 축제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만한 경제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 축제를 여는 목적 자체가 지역경제를 튼실하게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우리 수원에도 많은 축제가 있다. 축제를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일부 지역은 식당마다 자리가 없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축제의 진면목을 보는 것이다. 그런 축제가 아니라면 굳이 많은 예산을 들여 개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역의 작가들에게 축제장에 참가하는 참가비를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축제라고 할 수 없다.

 

 

최북단 마을, 최북단 항을 찾아가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금강산 줄기 밑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암자인 정수암. 20년 가까이 함께 고생하며 지낸 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는 절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나 몸이 극도로 피곤할 때면 이곳을 찾아간다. 공기도 깨끗하고 주변 경관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회진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10여분만 나가도 동해안의 절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저 얼굴만 마주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서로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지만 만나기만 해도 반가운 사람들이다. 작은 암자가 모처럼 4월 초파일 준비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초파일에 암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비빔밥 공양을 하기위해 준비 중이란다. 지난해 조성하다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마애불을 둘러보고 자리를 옮겨야겠다는 스님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사시예불에 동참한다.

 

“감독님(예전 방송 일을 할 때 부르던 호칭을 아직도 사용한다) 촉이 많이 떨어지셨습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한 마디 하신다. 그동안 참으로 오랜 시간 떠나있었다. 사람은 누구에겐가 상처를 받고나면 사람만이 아니고 그 주위환경도 싫어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보다. 스님과 함께 회진포 일대를 한 바퀴 돌아 대진항에 들린다. 그곳에서 알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것을 만난다. 그래서 사람의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인가 보다.

 

2박 3일의 여행.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살아가기가 바빠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바쁜 시간을 살다가 모처럼 떠난 여행. 화려하지도 않고 풍성하지도 않은 길이지만 그 2박 2일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복. 그것 하나가 앞으로 다가 올 새로운 날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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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 착하기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 할 녀석이다. 그런 착한 녀석이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못하니 마음이 찡하다. 말을 들어보니 아무리 참고 살려고 해도 시누이들 꼴이 보기 싫어 못 살겠다는 소리다. 일만 벌어지면 시누이들이 찾아와 난리를 피운다고 한다. 남편까지 덩달아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혼자만 애를 태우고 있다니. 녀석은 왜 자신은 매번 이렇게 모진 일을 당하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인다. 그동안 시집과의 불편한 관계로,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은 녀석이다. 언젠가는 이혼을 하겠다는 녀석을 진정 시키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제 겨우 한 숨 돌리고 살만하다고 하더니,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보다, 무엇이라고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녀석이야 워낙 천성이 착한 놈이라 무엇이라고 위로라도 좀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저 단순히 위로를 한다고 해서 녀석의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지는 않을 듯하다. 워낙 말도 없이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라, 딱히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조심스럽다. 그저 마음 단단히 먹고, 늘 나만 고통스런 것이 아니란 생각을 갖고 살라고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옛날 할머니들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방송 일을 하면서 우리소리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늘 현장을 다니면서 채록을 하고 소리를 하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녹음을 해 들려주고는 하던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부여에 사시는 분인데 당시 연세가 79세라고 하셨으니, 이제 살아 계시다고 하면 100수를 바라보는 분이다. 소리를 하시고 나서 한탄스런 시집살이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데,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난다.

 

형님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쩝디까?

동생동생 말도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보다 더매우랴

시집살이 삼년만에 이내손은 두껍잔등

삼단같은 머리채는 짚덤불이 되었구나

 

 

그 시집살이 노래의 일부다. 이 도입부만 들어도 시집살이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요즈음 사람들이야 이런 시집살이를 해보질 않았을 테니 이해도 안 될 테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시집살이를 개집살이라고 표현 했을까? 고초당초란 아마 그 당시에는 매운 것을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집살이가 맵다는 말은 자주 쓰는 말이다.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였는지 벙어리 3, 장님 3, 귀머거리 3도합 9년이 지나야 시집살이를 안다고 했을까?

 

부여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시집이라고 오니 때거리도 변변찮아. 그래도 밤이면 길쌈하고, 낮에는 밭에 나가 밭 매고, 그 때는 전깃불도 없었지. 호롱불 밑에서 졸다가 넘어져 불을 낼 뻔 하기도 했어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새벽부터 일어나 소 여물 끓여놓고, 밭에 나가 밭을 매다가 들어와, 참이며 점심 차려 들로 내가야 하고, 하루 종일 그렇게 들락거리면서 일을 하다가, 밤이 되면 또 길쌈을 해야만 했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바뀔 것도 없다. 거기다가 겨울이면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서 아이들에게 젖을 물려도 나오지가 않아당시야 분유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을 때란 생각이다. 더구나 있었다고 해도, 그런 것을 사 먹일 수 있는 형편이었을 테지만. 그런 세월을 살아오셨단다.

 

 

할머니를 만났던 세월이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으니,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은 이때보다 더 편한 생활들을 하고 있을 주부들이다. “그래도 아이들 키우고 서방 뒷바라지를 하면서 시부모까지 잘 섬겼지. 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하고 살았으니시집살이의 고통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도 변했다. 요즈음에야 누가 그렇게 살 것인가? 그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버리거나 헤어지기 일쑤다. 아마 이런 시집살이를 하라고 하면, 단 하루도 버티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남자들이 여자들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저 아침에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다. 요즘 여성답지 않게 숨죽이고 살아 온 녀석의 푸념이라,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어쩌겠니. 할 말은 없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다 살았단다. 늘 블로그를 찾아오는 녀석이니 오늘도 이 글을 볼 것이다. 그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따로 없다. 그저 옛날보다는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니, 조금만 참고 살아보라는 말 밖에는. 오죽하면 개집살이란 표현까지 한 말이 시집살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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