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누구랄 것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그 아름다움을 글로 남겨놓기를 좋아한 우리 선조들이다. 그것이 임금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누정 하나를 두고도 그렇게 임금들 까지도 그 아름다움을 후대에 전했다.


관동팔경.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여덟 곳을 이르는 말이다. 강원도 고성부터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볼 수 있는 관동팔경은 몇 번을 둘러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관동팔경은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과 고성의 삼일포를 비롯해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는 이 관동팔경을 다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비가 오는 날 오른 망양정


정자기행을 하면서 망양정을 찾은 날은 비가 뿌리는 날이었다. 망양정에 오르니 주변에 원추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작은 능선 위에 올라앉은 망양정. 가히 관동팔경 안에 들어갈 만한 곳이다.


이 망양정은 팔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정자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할 정도였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가 보다. 비가 뿌리는 망양정. 그 멋스러움은 몇 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망양정에서 내려다 본 동해바다와 숙종의 어제시

 

망양정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정철의 관동별곡 등이 전해진다. 그림으로도 정선의 백납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 등이 유명하다.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기를 좋아했던 선조들. 그만큼 망양정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만 한 정자다.


관동별곡 중 망양정 부분을 보면 파도가 치고 포말이 일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정철이 이곳에 올랐을 때 동해에 파도가 심하게 치고 있었는 듯하다.


션사(仙사)를 띄워 내여 두우(斗牛)로 향(向)하살까.

션인(仙人)을 차자려 단혈(丹穴)의 머므살까.

텬근(天根)을 못내 보와 망양뎡(望洋亭)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늘이니 하늘 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怒)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은산(銀山)을 것거 내여 뉵합(六合)의 나리는 듯

오월(五月) 댱텬(長天)의 백셜(白雪)은 므스 일고.

 


자리를 옮긴 망양정


원래 망양정은 지금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인 186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그 후 망양정은 몇 번의 수난을 당했다. 허물어져 없어졌던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며, 2005년에 완전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동팔경 중 수일루라고 일컫는 망양정. 그저 누각에 올라 동해만 바라다보아도 가슴이 트이는 듯 하다. 이런 절경에 누각을 짓고 누대에 올라 어떤 꿈을 꾸었을까?


수많은 선조들이 이곳을 거쳤을 것이다. 그 많은 선조들은 각기 가슴에 망양정이라는 절경을 품고 길을 떠났을 것이다. 정자를 찾아 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또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정자를 만날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그 정자에는 어떤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정자들을 찾아 길을 나서지만, 그 여정이 언제 끝나려는 지는 모르겠다. 그저 언젠가 아름다운 정자를 작은 책에 담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누정을 찾아 길을 나서고 싶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 하고 싶다. 그 작은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고 싶다.

요즈음 농촌으로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작은 개구리들이다. 이 녀석들 계곡이고 들판이고 가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우기가 끝나고 산 계곡에 이렇게 작은 개구리들이 돌아다니다가 보니, 이 녀석들을 노리를 뱀들도 여기저기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녀석들이 노는 곳이 달라졌다. 집안까지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녀석들로 인해, 가끔은 놀라기도 한다. 겨울철에 눈을 치우기 위한 검은 플라스틱 장비의 대가 빠져나간 안에서 무엇인가가 꼼지락거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손가락 한 마디만한 작은 청개구리 녀석이다. 이 녀석 제 집이라고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은 이런 녀석들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참 블로그가 먼지. 그저 무엇인가 색다른 것만 보이면 이 짓이다. 찍고 쓰고 올리고.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301-2에 소재한 국내 최초 도자 쇼핑타운인 ‘도자세상’. 7월 24일(화) 도자세상에는 무슨 상품들이 있는지 궁금하여 찾아가 보았다. 도자세상은 생활도자기에서 악세사리, 값비싼 예술작품 등 한국에서 생산되는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을 직접 만나보고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도자세상은 여주 신륵사 입구 도자기 행사단지에 조성한 쇼핑문화 관광지로, 2011년 5월 2일에 공식 개장을 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각처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들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전시 체험시설인 반달미술관을 비롯하여 쇼핑시설인 기념품샵, 리빙샵, 갤러리샵, 브랜드샵 등이 있다.

 

 

도자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솟을문이다(상) 뒤편에 보이는 관리동(하)

 

가격에 따른 구입을 할 수 있는 곳


한국도자재단 도자세상의 마케팅본부 김광래 팀장과 이과성 과장의 안내를 받아 돌아 본 도자세상은,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가격표가 붙은 작품에서부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도자기 등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상설전시관은 한 달에 마지막 주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문을 연다. 매장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고 있으며, 나름대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골라 샵을 선택할 수가 있다.

 

 

관리동 옥상에서 내려다 본 도자세상과(위) 안내를 해준 마케팅본부 김광래 팀장(아래 좌측)과 이과성 과장(우)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에는 리빙샵이 자리한다. 소매용 도자기 25,000점 정도가 진열되어 있는 리빙샵은 중, 저가 상품들로 다량 구입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은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다량으로 구입할 수 없는 상품들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으며, 식당 등을 개업할 때는 도자세상 직원들과 협의하여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리빙샵 건너편인 우측에는 기념품샵이 있다. 기념품샵은 생활자기에서 부터 팬시용품까지 다양한 아트상품 19,000여 점이 전시되어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들이 눈길을 끄는 기념품샵은, 각종 악세사리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여행객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곳이다.

 

리빙샵에 진열된 상품들(위) 와 기념품샵 매장이 진열된 상품들(아래)

 

중앙에 조형물을 지나 8층 높이인 관리동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갤러리샵이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샵에는 국내 도예가들의 수공예품을 엄선하여 판매를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경기도 여주, 이천, 광주 등의 도예가들과, 전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100여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샵에는 1천 2백만원의 가격이 붙은 작품도 보인다.

             

관리동 좌측에는 대중브랜드인 생활자기를 판매하는 브랜드샵이 자리한다. 브랜드샵에는 행남자기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생활자기 문화를 선도하는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가끔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브랜드 도자를 구입할 수가 있기도 하다.

 

 

브랜드샵(위) 와 갤러리 삽(아래)

 

앞으로 다양한 행사와 함께 할 것


“처음에 이 도자세상을 연 것은 지역의 도자예술인들이 판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온전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 매장은 도자기를 구입을 해서 자신들이 이분을 붙여 판매를 하지만, 저희들은 위탁 판매를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이익을 그분들에게 되돌려 드릴 수가 있습니다.”


마케팅본부 김광래 팀장의 말이다. 처음에는 전국의 도자예술인들의 신청을 받아 120명 정도의 작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작가들이 참여를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이문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100명으로 줄였는데, 다시 80명 정도로 선별을 하겠다는 것이다.


“저희들도 작가 분들에게 연말에 작품을 철수하라고 하기가 참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그분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제대로 도울 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행히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저희들의 뜻을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갤러리샵에 진열된 1,200만원의 작품

 

많은 예술인들의 속내를 일일이 알 수는 없는 법. 가격을 예술인들 스스로 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따른 어려움도 있다는 것이다. 이과성 과장은


“올 가을 쯤에는 스스로 장과 짱아지 등을 담구는 행사를 열려고 합니다. 그분들이 옹기를 구입해 자신의 옹기에다가 김치 등을 직접 배워 담구는 것이죠. 언제든지 이곳에 와서 자신의 항아리에 있는 것들을 가져 갈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 등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더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저희 도자세상의 그릇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직원들도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 터


“지금은 판매직 사원들은 계약직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조회를 하면서 고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법, 도자기에 대한 것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년 4월경에는 판매직 중 6명 정도를 정규직으로 채용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자체 등과 협의를 하여 테마관광 코스도 개발하려고 합니다. 매년 발전을 하는 도자세상을 위해 마케팅 부서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반달미술관에 전시중인 남한강 도예가들의 작품(위)과 주도전(아래) 

 

김광래 팀장은 도자예술인들에게 더 많은 이문을 남겨주기 위해, 해외 판촉에까지 정성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과 경쟁에서 더 나은 조건으로 판매전략을 짜고 있다는 것. 누구나 도자세상에 오면 가장 좋은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구입을 해, 기분 좋은 쇼핑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시간 정도 돌아본 매장에는 유난히 눈이 쏠리는 작품들이 있다. 구매충동이 아니라 ‘저런 그릇은 정말 좋다’라고 생각이 드는 도자기들이다. 마지막으로 돌아 본 반달미술관. 그곳에서는 여주 지역의 남한강 젊은 도예가들의 작품과, 술과 도자기가 어우러지는 ‘주도전’이 열리고 있다.

7월 23일, 30도를 훌쩍 넘은 살인적인 더위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이런 날 이천에 있는 설봉산 영월암에 올랐다. 영월암 대웅전 뒤편 암벽에 새겨진 보물 제822호 마애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이다. 남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문화재라는 것을 한 번만 보면 되지 않나?’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번 답사를 한 문화재라도 갈 기회가 있으면 다시 들리고는 한다. 그것은 문화재란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바위를 누가 떠 매고 갈 것도 아닌데’라고도 한다. 그래도 지켜보아야만 할 것이 바로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이천 설봉산 영월암(위)과 자연암석에 새긴 보물 마애불(아래)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도 없는데


주차장에서 영월암까지의 거리는 1.5km이다. 그리 높지 않은 설봉산이지만, 차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길이다. 거기다가 그 무더운 날에 한 어깨에는 무거운 카메라 가방까지 메고 있다. 돈을 준다고 오르라고 해도 마다할 산행이다. 하지만 절집을 찾아 참선을 하는 마음으로 주변 경치를 보면서 걸음을 옮긴다.


옷은 모두 젖어버렸다. 땀으로 흥건히 젖어버린 몰골은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그렇게 오른 영월암. 대웅전을 비켜 뒤로 오르니, 커다란 자연 암벽에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이 마애불은, 머리 부분과 손 부분은 얇게 돋을새김을 하였고 나머지는 선으로 음각하였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거대마애불

 

높이 9.6m의 거대한 이 마애불은 ‘마애여래불’로 명칭을 붙였지만, 민머리 등으로 보아 ‘마애조사상’으로 보인다. 둥근 얼굴에 눈, 코와 입을 큼지막하게 새겼다. 두툼한 입술에 넙적한 코, 지그시 감은 눈과 커다랗게 양편에 걸린 귀. 그저 투박하기만 한 이 마애불에서 친근한 이웃집 어른을 만난 듯하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모두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왼손을 안으로 향했다.


얼굴과 두 손만 부조로 조성을 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우편견단의 형식으로 조성한 법의는 몸 전체를 감싸며 유연한 사선으로 흘러내린다. 이러한 옷의 주름이나 팔꿈치가 직각으로 굽혀진 것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마애불은 그 형태로 보아 조사상이나 나한상으로 보기도 한다.


천 년 세월을 온갖 풍상에 저리도 의연하게 서 있는 마애불. 머리 부분은 암벽의 상단에 조각이 되어 올려다보면 몸에 비해 조금은 작은 듯도 하다. 전체적인 균형은 조금 비례가 맞지 않은 듯하지만, 저 단단한 암벽을 쪼개고 갈아 내어 저런 걸작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여인이여 무슨 사연이 있길래


마애불 앞에 한 여인이 절을 하고 있다. 이 복중에 어찌 그리 애를 닳는 것인지. 수도 없이 절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아마 천배를 하는 듯하다. 물을 마시면서 해도 자칫 탈진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저렇게 이 복중에 절을 하다가 보면, 자칫 탈진이 올 수도 있는데. 나도 더운 복중에 천배를 해보았기에, 그 진한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간절할까? 아마도 이렇게 자신을 던져 기원을 하는 것이라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조차 죄스럽다. 그저 마음속으로 함께 기원을 하는 수밖에.

 


“천년 세월 이곳을 지켜 오신 설봉산 마애불님. 저리 간절히 비는 것이라면, 꼭 들어주세요.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잘 사는데, 저리 땀을 흘리는 사람의 사연은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세상을 지켜가는 것일 테니.”

“날이 더운데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것이 큰 일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시간을 맞추어 먹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돌아 다니다가, 때 늦은 식사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이다.


이 복중에 답사를 재촉한다. 비로 인해 그동안 한참이나 답사를 하지 못했다. 늘 새로운 글을 써야 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더운 날에도 발길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 팔자 한 번 드세우.’라고 하는 아우 녀석에게 ‘그래도 내 일인 걸’이란 말로 대충 입막음을 해버린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식당이다.

 

 


도대체 이게 정말 감자여? 공룡인줄 알았네.


때가 늦은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마도 인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듯하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먼저 자리를 뜬 사람들이 입구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찍고 있다. 밥을 먹고 난 후 그리로 가보니 거 참 희한하게 생긴 것들이 놓여있다. 감자인데 그 모습이 해괴망측하다. 크기도 크고.


“이거 감자 맞나요?”

“예, 아시는 분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갖다 놓았어요.”

“이건 꼭 공룡을 닮은 듯도 하고,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사람들은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댄다.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곁에 아우 녀석은 이럴 때마다 한 마디 거든다.


“형님, 블로그에 올릴 글 하나 생겨 좋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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