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땀꾹이다. 땀꾹은 낮은 천연동굴과, 가고 오는 길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바위산이 서 있어 경치가 좋다. 다만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일은 자칫 함석으로 만들어진 배의 노를 저어야 할지도 모르니,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것이 좋다.

 

땀꾹을 관람하는 배들은 작은 소형이다. 노를 저어 땀꾹으로 가는데, 적게는 2명 정도 많게는 4명 정도가 탄다. 순전히 노를 저어가야 하지만,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배를 타고 감으로 심심하지는 않다.

 

 

아치형 동굴을 지나는 재미

 

땀꾹의 상류로 가다가 보면 아치형 동굴을 몇 개 지나게 된다. 동굴 폭은 10 ~ 20m 정도이고 천정은 손을 들면 닿을 듯하다. 그 곳을 빠져나오면 다시 출발을 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베트남은 자연환경과 옛 모습 그대로 가직한 생활풍습,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관광자원이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가 탄 배를 젓는 아가씨는 힘이 든 것처럼 보인다. 교대로 노를 젓는다. 땀꾹으로 오가는 배위에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노를 저어야 한다.

 

 

승려가 되기 전에는 머리를 다 못 깎아

 

돌아오는 길에 들린 사찰. 이곳에 들리니 어린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머리가 일부분만 남아있다. 이유를 물으니 정식으로 승려가 되기까지는 머리를 이렇게 한쪽만 기른다는 것이다. 예불에 참석하는 아이들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뛰어놀고도 싶을 것이다. 베트남을 여행하게 되면 꼭 한번 땀꾹으로 가는 작은 배에 올라 땀을 흘리며 노를 저어보기를 권한다.

 

세상은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풍광이 달라 재미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유가 조금만 생기면 우리나라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가 보다. 요즈음은 며칠간 줄 연휴가 되면 공항은 그야말로 만원을 이룬다. 해외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물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난 그것과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기보지 못한 숱하게 많은 아름다운 곳들. 그리고 아직 돌아보려면 멀기만 한 문화재들. 내 머릿속에는 우선 그런 것들이 먼저이다. 언제나 다 돌아보게 될지 모르겠다. 아마 남은 생을 다 돌아본다고 해도, 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지만.

 

지난 자료를 정리하다가 보니 땀꾹 사진과 영상이 들어있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은 야심한 밤에 재미를 주기도 한다. 혹 가보지 못한 이웃 분들을 위해 소개를 한다.

 

홍천에 있는 공작산은 해발 887m로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한데, 홍천읍에서 바라보면 거인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공작산은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우며 기암절벽과 분재모양의 노송군락, 그리고 눈 덮인 겨울산이 일품이다. 수타사에서 동면 노천리까지 약12km에 이르는 수타사 계곡에는 넓은 암반과 큼직큼직한 소(沼)들이 비경을 이루고 있고, 계곡 양쪽으로는 기암절벽과 빽빽이 우거진 숲이 있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을 정도다.

 

 

명산 중 명산 공작산

 

한국 100대 명산 중 한 곳인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 수타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7년(서기 708년)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대적광전의 팔작지붕과 1364년 만든 사인비구의 동종,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고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한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고찰이다

 

수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이다. 이 절의 효시는 신라 성덕왕 7년인 708년에 원효가 우적산에 창건한 일월사로부터 전한다. 그 뒤 영서지방의 명찰로 꼽혔으며, 세조 3년인 1457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뒤 ‘수타사(水墮寺)’라고 칭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에 공잠이 재건을 하였으며, 1644년 학준이 당우를 확장한 이래, 계철·도전·승해·천읍 등이 불사를 꾸준히 계속하여 1683년(숙종 9)에는 옛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와 같은 절 이름이 된 것은 1811년(순조 11)이며, 1861년(철종 12) 윤치가 중수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빗속에 운치있는 수타사

 

지난 달 오후 비가 추적이는 날 수타사를 찾았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났지만 비가 와서인가 날이 어둡다. 홍천에서 양평으로 가는 왕복 4차선 도로에서 10km 정도를 공작산 쪽으로 향해 가면 수타사가 나온다. 오래된 천년고찰답게 수타사는 고풍스럽다.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는 대적광전은 보수가 끝이 난 듯 새로운 목재를 이용한 부분이 오히려 신선함이 감돌게 한다.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수타사 사인비구 동종이다. 사인비구 동종은 모두 8개가 모두 보불로 지정이 되어있다. 보물 제11호로 지정이 된 수타사의 사인비구 동종은 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주성동종인 사인비구 동종은 단조롭기는 하나 그 주조법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새롭게 조성이 된 원통보전 안으로 들어가 참례를 하고 주변을 살펴본다. 마음에 염원하는 바를 지극히 빌어보고 옆을 보니 새로 조성된 탱화 한 점이 눈길을 끈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탱화를 그대로 새로 그렸는데 하단 부분을 보니 우리 풍물이 그려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앞에 놓인 기물로 보아 지장탱화인 듯하다. 불과 30여분 동안 정신없이 돌아 본 수타사. 천년고찰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듯하다. 다시 한 번 시간을 내어 한낮에 찬찬히 돌아보리라 마음을 먹고 산문을 나선다.

 

 

나오는 길에 들린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소조사천왕상이 모셔진 전각 안에는 사천왕이 세상에 따라붙는 온갖 사귀를 막아준다는 듯 미소를 보인다. 그래서 절집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마음 편히 세상을 살아가는가 보다.


 

 


수원시 자원회수시설폐기물 샘플링검사를 실시

 

우리나라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이 연간 15조가 넘는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만이 아니라 일반 쓰레기까지 친다면, 그 처리비용으로 아마도 천문학적인 돈이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 돈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면 그 많은 비용이 모두 내 주머니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수원시의 연간 쓰레기 처리비용은 500억원 정도이다. 모든 가정이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버린다고 하면, 일 년에 봉투 판매수익금이 200억 정도의 수입원이 생기게 된다. 현재는 쓰레기를 처리할 때 창출되는 여러 가지 이익금을 환산해도, 수거, 인권비, 소각비 등을 합쳐 43% 정도 밖에 충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원시 자원회수시설(영통동 소재) 폐기물 샘플링검사를 실시

 

수원시는 시민들이 의식없이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내다버리는 불법투기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쓰레기 등을 조사하기 위해 3개월 동안 교육을 시켰다. 방법은 각 동마다 통장 등 주민들이 직접 자원회수시설을 방문해, 자신의 동에서 버려진 쓰레기를 일일이 들춰보면서 얼마나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했는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11월 29일(목) 오전 7시에 영통동 소재 자원회수시설(구 소각장)을 찾아갔다. 수원시 김충영 환경국장과 이동준 청소행정과장, 박란자 재활용 팀장 등과 함께 찾은 소각시설에는 매교동 통장협의회 회원들이 나와, 매교동에서 버린 쓰레기들을 일일이 들추어 보고 있었다. 자신의 마을에서 버린 쓰레기를 갖고 샘플링검사를 마친 통장들은, 사무실에 들려 짧은 시간 쓰레기 처리문제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충영 환경국장은

 

“여러분들이 주민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시의 쓰레기 처리비용은 연간 500억이나 들어갑니다. 그러나 규격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무단투기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연간 100억 이상의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 돈을 모두 여러분들이 세금을 내야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민들에게 홍보를 잘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

 

매교동에서 통장을 맡아보고 있다는 한 주민은

 

“정말 낯이 뜨겁습니다. 참담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분리수거도 안되고, 더구나 음식물 쓰레기까지 함께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분리수거와 규격봉투 사용, 음식물 찌꺼기 분리 등에 대해서 더 많이 주민들에게 일깨워주어야겠습니다” 라고 한다.

 

 

종량제 실시와 더불어 포상제도도 생각해

 

자원회수시설의 관계자는 하루에 쓰레기를 어느 정도 처리를 하느냐고 묻자

 

“우리 수원 자원회수시설에서 하루에 소각할 수 있는 양이 600t 정도입니다. 두 대를 다 돌리면 그렇게 처리를 하지만, 하루에 유입량이 450t 정도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돌리고 있습니다. 많이 쌓이면 두 대를 다 돌리고, 양이 줄어들면 한 대만 돌립니다.”라고 답한다.

 

이동준 청소행정과장은 ‘규격봉투 안에 들어있는 쓰레기를 조사한 결과 40% 정도는 분리수거를 해야 할 것들이라면서, 그만큼 분리수거를 해주지 않으면 소각장의 수명이 짧아지게 돤다‘며, 소각장 하나를 다시 지으려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소각장을 지을 수도 없다며 시민들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규격봉투 사용과 철저한 분리수거를 당부했다.

 

 

교육 효과 기대할만 해

 

쓰레기 무단투기와 분리수거를 위해 시에서는 3개월 동안 각 동마다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를, 일일이 검사를 하는 샘플링검사를 800여 명 정도가 실시했다고 한다. 교육을 마친 동에서는 많은 성과를 보았다면서, 김충영 환경국장은 쓰레기를 줄일 수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종량제 추진도 그렇지만 쓰레기를 한 곳에 모지 않고 자신의 집 앞에 내어 놓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마을마다 일정한 크기의 샘플링 박스를 마련하여, 그 안에 들어간 쓰레기를 분석해 어느 마을이 가장 분리수거와 규격봉투 사용을 잘 했는가를 검사해 공고를 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잘 된 마을에는 그만한 보상을 해 주어야죠.”

 

행궁동 주민들은 샘플링 검사에 많은 인원이 참여를 했는데, 버려진 쓰레기를 일일이 확인한 후 앞으로 쓰레기 줄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돌아선다. 쓰레기 처리는 철저한 분리수거와 규격봉투 사용만이 수원시민으로의 자긍심을 갖게 될 것 같다. 쓰레기 처리 하나를 보아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잴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장안사는 수려한 불광산 도시자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로서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함께 창건하여 쌍계사라 했는데, 신라 애장왕 때인 809년에 장안사라 고쳤다 한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 병화로 모두 소실되었다가, 인조 8년인 1631년에 의월대사가 다시 중창하였고 1941년 각현스님이 중수하였다. 1987년 종각을 새로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고 단장하였다. 사천왕이 버티고 있는 대문을 지나, 정면에 석가여래삼존불과 후불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는 대웅전이 있고 왼쪽에는 응진전, 오른쪽에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바로 앞에는 인도 등지에서 3차례에 걸쳐 들여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7기를 모시고 있는 3층 석탑과,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싼 산신각이 있다.


눈을 부라린 사천왕이 객을 맞이해


장안사 입구에 차를 대고 안으로 들어간다. 절문 앞에는 각종 석불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달마대사를 커다랗게 조성을 해 놓은 것이다. 불광산 장안사라 쓴 현판이 걸린 문루 아래에는 사천왕이 양각이 되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친다니 저런 표정이 딱 어울릴듯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석탑과 그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절집 안은 오밀조밀하니 좁은 공간에 누각들이 정리가 되어 있다. 대웅전 좌편 명부전 뒤에는 극락전이 있는데 극락전 안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고. 이 와불 역시 부처님의 사라가 복장이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장전이나 명부전, 혹은 극락전에 주불이 지장보살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와불은 부처님의 열반 당시 모습이라고 하여 일부 국가에서는 와불을 모신 곳이 바로 명부전이 되기도 한단다.

 

 


척판구중의 전설은 곳곳에 전해

 

장안사를 돌아보고 나서 좀 더 위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척판암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척판암은 원효사대가 수도생활 도중 천안통으로 중국 종남산 운제사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소반을 던져 대웅전에 있던 1천 여 명의 중국승려를 구했다는 전설에서 척판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소반을 던진 것일까? 어릴 적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들렸을 때 스님 한분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척판암에 계시던 원효대사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번 만행 길에 깨달았으니 벌써 40년이 훌쩍 지난 뒤라 감개가 무량하다.


스님의 말씀은 원효대사가 천안통을 열어보니 운제사 대웅전이 곧 무너질 것 같은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는 지라, 얼른 널판 하나를 주워 그곳에 「척판구중(擲板求衆)」이라고 적어 던졌는데 종남산 운제사 스님이 하늘을 보니 커다란 널판 하나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지라 그것을 보고 나서 스님들에게 얼른 나와서 저것 좀 보라고 소리를 쳤단다.

 

 


대웅전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달려나와 그 판자를 보는 순간 대웅전이 무너지고, 그 판자도 땅에 떨어졌는데 판자에는 척판구중이라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즉 ‘판자를 던져 무리를 구한다.’라는·말이다.


이번 만행 길은 동해안의 정자 탐방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은 척판암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를 못했다. 언제가 그곳을 올라 원효스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얻어가기를 바랄 수밖에. 그것이 바람따라 길을 걷는 나그네의 발길이라면, 언젠가는 꼭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짜장스님’, 변산공동체 학교를 가다

 

‘짜장스님’으로 더 유명한 남원 천년고찰 선원사의 주지인 운천스님. 무슨 일인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랑실은 스님짜장’으로 봉사를 하고 계시는 분이기에 무슨 일인가 더 궁금하다. 그동안 ‘스님짜장’으로 봉사를 한 것이 벌써 3만 그릇이 훌쩍 넘었다.

 

말이 3만 그릇이다. 짜장 한 그릇에 가장 저렴한 가격인 2,000원씩만 계산을 한다고 해도, 6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사회에 돌려준 셈이다. 늘 주장하는 것이 ‘스님이 벼슬입니까?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은 배워야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중생들의 아픔을 알고, 그들과 함께 세상 고통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라고 되묻고는 한다.

 

 

생태가 살아있는 곳, 부안 변산 공동체 학교

 

스님이 이렇게 상기가 된 것은 11월 25일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3에 소재한 ‘변산공동체 대안학교’를 다녀온 후이다. <변산공동체학교>는 주곡 중심의 농사를 유기농법만으로 고집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중, 고 과정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인 공동체학교는, 현재 10여 가구에 60여 명의 식구들이 모여 살고 있다.

 

1998년에 문을 연 변산공동체학교는 오전에는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한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모두 살림수업을 한다. 황토로 이룩한 학교는 물론, 모든 것을 스스로 짓고 해결을 한다. 먹거리 하나에서부터 땔감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화학’이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을 합니다. 그곳에 짜장봉사를 나갔다가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왔죠. 저희들은 아직도 짜장봉사를 하면서 일부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오고는 하는데. 이 학교의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합니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제가 더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벌써 이 학교가 문을 연지 15년이다. 그동안 이곳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농약이나 화학비료, 제초 등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10배나 도 품을 팔아야 하는 농사법을 그대로 고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급자족을 위해 쌀농사며 보리, 밀 등은 물론 콩, 고추, 고구마 등 모든 것을 심어서 사용한다. 토종 씨앗을 구하기 위해 강원도는 물론 안 다닌 곳이 없다는 사람들이다.

 

 

짜장스님 공동체 학교를 가다.

 

11월 25일 짜장스님이 변산공동체 학교를 찾았다. 아이들에게 스님짜장을 해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은 직접 짜장을 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이 2~3인 분은 기본으로 먹어치웠다.

 

“세상에 그동안 숱한 곳을 다녔지만, 이곳보다 잘 먹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60명이 살고 있고 잘 먹는다고 하기에, 150인 분을 준비했는데 거의 남은 것이 없어요.”

 

운천스님이 말을 하고 껄껄 웃는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식성이 좋았나보다. 하긴 운천스님이 만들어 주는 스님짜장 역시 일 년 간 농사를 짓고 걷어드려 만들고 있으니, 두 곳의 마음이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곳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도자기도 만들고 나무를 패고, 도대체 과거 우리네들의 농사법과 살아온 모습을 그ㄷ로 지키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정말 올곧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말이 공동체지 어느 누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곳에서 규칙을 지키며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정말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부끄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늘 그동안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을 것을, 당연히 사회에 돌려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운천스님이다. 당연히 자신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먹을 것으로 돌려준다고 시작한 ‘사랑실은 스님짜장’. 운천스님은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 자매결연도 맺고 왔습니다. 저희들이 농사를 지을 때 함께 도와주기로요. 세상은 내가 남을 위해 베풀면, 그것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인연이죠. 말로만 하는 아름다운 인연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이번에 공동체학교를 찾아가서 60여 분의 스승을 만나고 왔습니다.” 라며 크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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