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는 수령 450년이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 자리하고 이 느티나무는 마을에서 심기는 신목(神木)이다. 이 나무를 보러 갔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 느티나무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자인, ‘침수정’을 만나기 위해 비가 오는 널인데도 길을 나선 것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어르신들이 어디 야유회라도 가시는 것인지, 버스에 탑승을 하고 계시다. 할머니 몇 분이 나무아래 계시기에 왜 안 가시느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저 웃기만 하신다. 느티나무를 지나 야산으로 조금 오르다가 보면 침수정이 자리한다. 침수정은 윤선도의 문인이던 홍경고가 17세기에 지었다고 전한다.


수수함이 더 아름다운 침수정

침수정을 다녀온 지는 날이 꽤 지났다. 지난 8월 20일에 화순군을 답사하면서 다녀 온 곳이다. 마침 그 전날 온 비로 인해, 침수정을 오르는 길이 많이 파였다. 물길을 피해 침수정으로 오르니, 정자는 전라도 지역의 전형적인 정자의 형태로 지어졌다. 중앙 가운에 한 칸 방을 드린 조촐한 정자이다.

정자 안벽에는 송사, 기우만 등 문인들의 글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글만 해도 37개나 된다. 아마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홍경고의 사람 사귐이 대단했나보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 팔작집으로 지어진 침수정은, 화려하지가 않다. 그저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소탈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가운데에 방을 한 칸 드렸다. 그러나 실제로 방은 두 칸 방이 된다. 옆에서 보면 중앙서부터 뒤편까지 방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누마루를 깐 주변에도 무엇 하나 시설물들이 없다. 아마도 정자의 주인이 앞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 듯, 그저 수수한 촌 아낙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 펼쳐지는 벌판을 바라보며 시심을 일깨웠을까?

침수정을 한 바퀴 돌아본다. 잎으로 펼쳐지는 벌판에서 시원한 비바람이 불어온다. 답사를 하면서 흘린 땀을 바람이 식혀준다. 그도 고맙기만 하다. 마루에 걸터앉는다. 앞에 배롱나무에는 꽃을 붉게 피웠다. 저 나무는 얼마나 오래 전부터 이곳에 서 있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허전한 정자를 벗 삼으라고 심어놓은 것일까?

별안간 벌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정자 안 기둥에 꽤 큰 말집이 하나 달렸다. 그리고는 벌들의 요란스레 나는 소리가 들린다. 낯선 나그네의 등장이 별로 달갑지 않다는 것인지. 자연석으로 그냥 철버덕 갖다가 놓은 덤벙주초가 눈길을 끈다. 저렇게 자연이 그 자리에 있어 좋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흐르는 지석강이 저만치 보인다. 그 강물이 굽이굽이 돌아 정자 앞으로 다가왔으면 좋으련만. 빗줄기가 세차진다. 갈 길은 멀고 돌아보아야 할 곳은 많다. 오늘 해 안에 몇 곳을 더 들리려면, 빗속에서라도 길을 나서야 할 판. 정자 주인의 고매한 성격 한 자락 들고 침수정을 뒤로한다.

모처럼 마음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그저 단 며칠이지만, 세상 시름 모두 내려놓고 쉬러가는 길이다. 기차에서부터 몸을 축 늘어트린다. 3일간이지만, 세상에서 피곤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이일저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인가 보다.

역에서 내려 차를 타려고 택시 승강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 하나가 쫒아온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벌써 한 8년 된 것 같네요. 잘 모르실거예요”
“죄송합니다만 기억이 나질 않아서요. 누구신지?”
“저 예전에 역전에서 노숙하던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매번 술값을 달라던”
“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그 안에는 별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밥 대신 술을 사달라던 사람이

그렇게 이야길 듣고 보니 얼굴이 조금 떠오르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몰골이 추했을 때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신사가 되어있으니 알 수가 있나.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시면 저는 아마 지금도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나저나 지금 몇 살이세요?”
“저 지금 마흔 일곱입니다. 이름은 ○○○이구요”
“그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쉴 새 없이 퍼붓는 질문에 이 분 웃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분들게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때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털목도리와 털장갑, 양말 그리고 과일과 빵 등을 봉지에 담아 50봉지 정도를 준비해, 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것 말고 10,000원만 달란다. 술이나 한 잔 먹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돈을 주었더니, 이 사람이 역에서 만날 때마다 술값을 달라는 것이다. 노숙을 하면서 오죽이나 힘이 들면 그럴까하고 이해도 하지만, 심한 것 같아 혼을 낸 적이 있다.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술 먹을 돈으로 밥을 먹고 힘을 내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을 역에서 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그 뒤로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혼을 내시고 난 뒤 처음에는 더러워서 살아보겠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원망을 하면서요. 그런데 돈이 모이고 방이라도 얻고 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찾았는데 영 소식을 듣지 못하겠대요.”

세상은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고 했던가? 그 일 이후 난 그곳에서 사람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 고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몇 년을 발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수가 훤해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역시 세상은 이래서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아마도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노숙을 했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바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노숙인들이라고 다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남들에게 아픔을 당한 것이, 다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해서 나도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받는 업보는 아닐까 모르겠다. 

“선생님 연락처 하나 주세요. 제가 아이들하고 꼭 한 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제 아내도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합니다”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면서, 어쩌면 이것이 올 한가위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아닐는지. 날이 잔뜩 흐렸는데도,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음이다.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났느냐?"

화성은 실제로 축성을 하고 난 뒤 전쟁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을 시물레이션으로 전쟁 장면을 제작한다고 하면, 정말 장관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화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 장용위의 군사들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할 것이다. 화성은 그만큼 수성(守城)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적이 성으로 밀려왔다. 4대문을 아무리 깨트리려고 공성무기를 총 동원했지만, 문 앞까지 다가서지도 못했다. 겨우 옹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무기를 움직일 공간이 없이, 옹성 안에 들어 온 병사들이 전멸을 당했다. 그것이 바로 화성이다. 적들은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었다. 성벽을 타고 오르기로 한 것이다.


화성의 서암문. 성벽 안에 감추어졌다.

앞뒤에서 공격하는 성안의 병사들.


긴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오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성벽을 오를 수가 없다. 여장에 걸친 사다리는 긴 창을 이용한 성안의 병사들에 의해 제거가 되고, 뒤에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성벽이 돌출된 치성에서 쏘아대는 화살이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적은 성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만다.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번에는 후미진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성 앞으로 조금씩 지형지물을 이용해 다가들었다. 성벽에 줄을 던지고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뒤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적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도망가기에 급급하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한 무리의 장용위 군사들이 나타난다,


암문의 문은 계단을 내려가 성벽 아랫쪽에 나 있다. 암문 여장에서 내다 본 바깥

“도대체 어떻게 저 많은 병사들이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저 병사들은 땅에서 솟아난 병사들이란 말이냐?“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성 밖은 자신의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딴 곳에서 지원군이 올만한 길도 모두 차단을 했다. 그런데 어디서 저 많은 군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저 군사들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냐?”

화성에는 암문이 있다. 현재는 네 곳의 암문이 남아있다. 이 암문들은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적의 눈에 잘 띠질 않는다. 그곳은 전쟁이 나면 무기를 공수하거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통로이다. 거기다가 몰래 성을 빠져나간 군사들의 적의 배후를 공격하게 된다. 성으로 접근을 했던 적들은 혼비백산을 할 수 밖에.


북암문의 바깥과 안

화성에는 처음으로 축성을 하고 난 뒤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다. 현재는 4개의 암문이 남아있다. 동문에서 남문 사이에는 암문이 없다. 그리고 남문에서 서장대를 오르는 산꼭대기에는 서남암문이 있다. 서남암문의 위에는 주변을 관찰하는 ‘포루(鋪樓)’가 있으며, 앞으로는 용도(甬道)가 시작되는 곳으로 그 끝에는 화양루가 자리한다.

암문은 철판으로 문 바깥부분을 덮었다.

벽돌로 쌓은 아름다운 암문

서장대의 남쪽에는 서암문이 있다. 팔달산 남쪽 기슭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암문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암문이 연결되는 곳은 가파른 비탈로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암문을 통해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뒤를 공격하고 난 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고 생각을 해보자. 모골이 송연하지 않겠는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옆에도 암문이 있다. 북암문은 화성 전체구간 중에서 유일하게 좌우의 성벽을 벽돌로 쌓은 곳이다.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7일에 완성이 되었다. 이 북암문 앞에는 연지가 있다. 요즈음 연지는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만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적군의 시신으로 메워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혼자 놀란다.



동암문

그리고 동장대 가까이 또 하나의 암문이 있다. 바로 동암문이다. 동암문은 북암문보다 이틀 빠른 정조 20년인 1796년 3월 25일에 완성이 되었다. 만일에 대비해 4대문 외에도 후미지고 적당한 곳에 마련한 암문. 이 암문이 있어 적들을 물리치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이러한 많은 구조물들이 적절하게 자리를 하고 있어,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최고의 성이란 찬사를 받는가보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쓴다. 무덤을 ‘유택(幽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곳에 영혼이 쉬고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무덤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구조나 형태가 달라진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이나 동굴 등에서도 사람의 뼈가 발견이 되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초기 형태의 무덤이 아니었을까 추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무덤의 형태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서 널무덤이 유행한다. 널무덤이란 땅을 판 후 그 안에 주검을 넣고 널을 덮는 형태이다. 여기서 말하는 널이란 돌로 된 것을 말한다. 널무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전해지며, 그 뒤에 고인돌과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무지무덤, 독무덤 등이 나타난다.


가장 많은 묘의 형태인 고인돌

고인돌 등 돌을 이용해 무덤을 만든 형태는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대규모 분묘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산청군에 소재한 전 구형왕릉의 묘처럼 많은 석재를 이용해 조성한 석묘 등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분묘의 역사는 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이후에 나타난 무덤의 형태로 보인다.

그 이전의 묘의 형태인 ‘지석묘(支石墓)’라고 하는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여러 유적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인근 여러 나라에서도 이런 고인돌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들 지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수만 기에 해당하는 많은 고인돌이 있다. 현재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있기도 한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 섬과 육지에 골고루 퍼져 있다.

고인돌이 발견되는 곳을 보면 물과 연관이 지어진다. 주로 강을 낀 낮은 구능지대나 바닷가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물을 사용해야 하는 인간들의 생활 때문에 이런 곳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물이 있는 곳에 인류가 집단으로 서식을 하였고, 그런 곳에 고인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남단에 위치한 북방식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은 탁자형이라고도 한다. 커다란 돌을 양편에 세우고, 그 위에 넓적한 돌을 덮는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삼면은 커다란 돌로 막고, 입구는 출입을 할 수 있도록 가벼운 돌을 쓴다고 한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은 고인돌이 있는 지역이다. 고창지역 고인돌은 2003년에 205개 군집에 1,665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이후 2005년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는 1,327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으며, 2009년 군산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등제된 고창고인돌유적을 제외한 174개 군집에 1,124기가 보고되었다. 따라서 최근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고창 지역의 고인돌은 185개 군집에 1,600여기이상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고창 고인돌박물관으로 들어서기 전 좌측으로 보면 작은 안내판에 ‘도산리 고인돌 1km’라고 적혀있다. 이 도산리고인돌은 특별하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좁은 농로를 따라 들어간 곳은 한창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 꽤나 거대한 탁자형 고인돌 한 기가 보인다. 이곳 고인돌은 아름답다고 하여, 많은 책에 소개가 되기도 했다.

‘망북단’이라는 슬픈 이름도 가져

이 도산리 고인돌은 석축 위에 놓여있으며 주변에는 커다란 돌들이 널려있다. 그 중 한기가 탁자형으로 서 있는데, 굄돌의 높이는 어른 키만하다. 그리고 위에 올린 탁자형의 덮개석은 길이가 3.5m 정도에, 정면 입구의 길이도 2.5m 정도가 된다. 덮개돌의 두께도 50cm나 되는 거대한 돌이다.

이 탁자형 고인돌이 특별한 것은 우리나라의 최남단에 위치한 북방식 고인돌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이 고인돌을 ‘망북단’이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때 이 마을의 의병장인 송기상(1612 ~1667)과 관련된 이야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송기상은 이곳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적을 향해 진군을 하던 중 삼전도의 굴욕적인 패배가 알려지자, 이곳으로 되돌아와 평생을 ‘망북통배’(임금이 계신 궁을 향해 날마다 곡을 했다는 뜻)를 했다는 것이다.

키 180cm의 건장한 남자의 손길이로 짐작하시길... 

한 의병대장의 통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도산리 고인돌. 이 고인돌은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이 되었다가, 고창고인돌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자, 사적 제391호로 승격이 되었다. 지난날의 아픔을 안고 있는 고산리 고인돌. 주변 정리를 마친 후 다시 한 번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린다.

며칠 전 택배를 받았다. 상자가 제법 크다. 보낸 사람이 ‘황유진’이란다. 누굴까? 이름만 썼다면 대뜸 알아차렸을 것을, 성까지 적어놓으나 잘 몰랐다. 블로거에서는 이름보다 닉네임으로 통하는지라, 이렇게 이름을 들으면 생소해지기 까지 한다.

파티오 유진. 알만한 블로거들은 다 알고 있는 요리블로거이다. 스스로 ‘미국블로거 유진’이라고 하는 유진님이 요리책을 내었다. 자연주의 레시피 179, 이 책에 179가지의 요리비법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포장을 풀고 책을 꺼내보니 책이 상당히 크다. 규격 외 책으로 묵직한 책의 표지가 그대로 자연스럽다. 자연을 추구하는 요리블로거의 책임을 알 수 있는 심플한 표지이다.

유진님은 왜 자연치료제를 택한 것일까?

그동안 유진님의 요리레시피를 보면 조금은 색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연에서 추출한 효소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종 천연장류와 짱아치, 김치 등 우리의 식생활에서 기본적인 음식으로 각광을 받는 것들을, 나름대로 건강식단으로 꾸며내고 있다. ‘파티오 유진’이란 블로거명도 스페인어로 ‘뜰안’이라는 것이다. 즉 내 주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그리고 직접 재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음식의 소재로 삼고 있다.

유진님의 요리레시피를 보면 건강을 제일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렇게 건강식품을 끈기 있게 올리는 것은, 유진님의 마음속에 있는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책 서문 작자의 글 말미에서 보인 ‘저에게 음식에 대한 정서적 영감을 물려주신, 병상에 계신 사랑하는 어머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한 건강에 대한 소망이 이 책 안에는 담겨있는 듯하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미리 정리해 주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자연으로 만들어진 요리들

유진님은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많은 요리레시피를 소개했다. 그 많은 것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요리블로거가 아닌 나에게는 더욱 더 어렵다. 이번에 책을 받고나서 찬찬히 훑어보니, 그간 유진님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느껴진다.

모두 열 개 부분으로 구분을 해 놓았다. 첫 번 째는 음식의 맛을 내고 숙성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효소 10가지가 소개되었다. 두 번째는 기본장류 12가지를 적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에게 필수적인 찬거리인 김치류 18가지와 장아찌와 피클 9가지를 정리하였다.



요리의 종류와 순서들

그 다음에 소개가 된 것은 바로 자연건강식을 중시하는 유진님만의 노하우가 담긴 질병에방요리 15가지를 소개한다. 또한 우리 한식을 색다르게 조명한 퓨전한식요리 14가지와, 이어서 서양요리 18가지도 소개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브런치 14가지와, 에피타이저와 디저트 13가지를 소개한다. 끝으로 음료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방법 13가지를 소개했다.

모두 179가지의 자연건강식단을 소개하고 있는 미국블로거 유진님의 요리책, 그저 요리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질병예방에 좋은 건강식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책으로 보아야 맞을 듯하다.


요리책의 본문 내용

「저는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분 곁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먹어야 우리 모두가 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드리고자 열심히 동사양의 각종 자료를 파헤쳐, 아름답고 즐거운 요리를 개발하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멀리 이국땅 테네시에서 보내온 유진님의 약속이다.

(덧붙임) 유진님의 책은 출간 5일만에 재료별 요리 2위, 교보문고 요리책분야 베스트셀러 47위 진입이네요. 암튼 대단한 요리책들을 소개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자연을 먹는 가장 쉽고 맛있는 방법 - 파티오 유진의 오가닉 식탁
황유진 (지은이) | 조선앤북 | 2011-08-31
판매가 : 16,800원 → 15,120원 (10%,1,680원 할인)
쿠폰 할인가 : 13,120원 (2,000원 할인/알라딘 서적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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