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일까지 대안공간 눈 제1전시실서

 

속이 비었다. ()는 무()와는 개념이 다르다. 허는 실()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꽉 차 있는 실에 비해 허는 무엇인가 차 있지 않음을 뜻한다.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없는 무()와는 차이가 난다. 무는 그 존재가치가 없는 것을 말하지만 허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팔달구 북수동에 소재하고 있는 대안공간 제1 전시실에서는 김보람, 노승욱, 서은아, 임여송 4인의 작가가 꾸민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봄철이 되면 사람들은 바깥출입을 한다. 그저 볼만한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북수동에 있는 대안공간 눈으로 찾아들었다. 전시회를 찾아왔지만 전시회에서 작가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다.

 

4인의 작가는 각각 성실, 공간속 시간, 내면의 존재, 기억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를 작업으로 들어내고자 했단다. 하지만 전시공간에 설치된 작품들을 보면 딱히 이런 것인가? 하는 느낌마저 갖기가 힘들다. 전공자가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느낌이 없을 때는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나른한 오후에 만난 작가들의 작품

 

아침부터 이것저것 밀린 일들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춘곤증이 밀려온다. 계절이 딱 그렇다. 갑자기 높아진 온도에 산과 들에는 꽃들이 벌써 피었다가 졌다. 그 꽃자리에는 잎들이 색을 입기 시작했다.

벌써 여름이네요. 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데 날이 더워졌어요.”

전화 수화기로 울려오는 맑은 목소리도 잠을 쫓지는 못한다. 졸음 속에 텅 비어버린 머리를 무엇인가로 채워야만 한다. 천천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가까이 있는 전시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전시관에 전시된 제목들을 둘러보고 난 후 한 곳을 정한다. 무엇인가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전시관 안으로 들어선다.

 

()’, 그래서인가 전시실 안은 휑하다. 예전과 같이 작품들로 벽을 채우지도 않았다. 한편 벽에서는 활동사진이 돌아가고 있다. 그 소리에 괜히 가까이 다가가 본다. 하지만 그 역시 내가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작가라도 있었으면 귀동냥이라도 해볼 것을 그렇게 호사를 누릴 수도 없다.

 

 

 

혹시 이 작품을 보고 느끼신 감정이 있으세요?”

저희들도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라 대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 그렇군요.”

 

전시관을 찾아 관람을 하고 있는 관객에게 묻지만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는 없다. 입구에 놓인 전단지를 들고 보지만 그곳에도 내가 필요로 하는 대답은 적혀있지 않다. 이럴 때는 그저 내 멋대로 감상하는 것이 최고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전시회를 돌아볼 때마다 그렇게 해석을 했다.

그림은 작가가 그렸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내 자유다

항상 전시회를 갈 때마다 고집스럽게 내가 하는 말이다. 굳이 모르겠다는 표현보다는 내가 보기엔 이렇다고 생각을 한다. 많은 전시회를 찾아다니다 보니 그런 자유로운 감상법 하나를 터득한 셈이다.

 

 

작품에 대해 이해가 안 될 때는 그저 작가들의 경력이라도 보아야 속이 편하다. 어차피 이해도 할 수 없는 작품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4인의 작가 중 김보람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하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공공미술전공 재학 중이다. 노승옥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임여송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에 재학 중이다. 서은아 작가도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에 재학 중이다. 그리고 보니 네 명의 작가가 모두 성신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을 했다.

 

이것 하나만 갖고도 무엇인가 큰 정보를 얻은 것만 같다. “, 모두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동문들이로 구만”. 무엇인가 크나 큰 수확인 듯 어깨를 한 번 들썩인다. “그래 바로 이것이 무()가 아닌 허()인 것이여. 이렇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어서 제목이 하인가 봐스스로에게 만족한다. 나른한 봄날 전시회가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봄날의 전시회 관람을 라고 규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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