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장이나 지역 나름의 독특한 먹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바닷가에 가면 당연히 해산물류의 음식이 많을 것이고, 산 속 깊은 곳에서는 산채나물 등이 지역 먹거리로 자리를 잡는다. 도심인 수원 역시 군데군데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수원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들라고 하면 ‘수원갈비’를 꼽는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역시 매향교 아래편으로 줄을 지어 성업 중인 ‘통닭거리’를 들 것이다. 그러나 이곳 말고도 수원에는 권선시장의 ‘족발집’과 수원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이 유명하다. 순대타운은 팔달문 앞의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순대와 곱창, 그리고 야채가 수북하니 먹음직스러운 순대곱창볶음이 1인분에 8,000원이다

 

팔달문 시장을 중심으로 늘어난 상권

 

현재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는 각기 독특한 몇 개의 시장이 모여서, 남문 앞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팔달문시장은 화성 축성 이전부터 이주를 한 백성들과 노역자를 상대로 장시가 개설되었을 것으로 본다.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 이산이 직접 6만 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이산 정조의 ‘팔달문’에 실린 큰 뜻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장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팔달문이란 말의 뜻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통팔달’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보다 더 깊은 정조의 뜻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화성의 북문을 ‘장안문’이라고 했다. 장안문은 바로 도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정조는 이 팔달문 앞에 세계적인 유통망을 갖춘 상권을 조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이 직접 투자해 만든 팔달문 앞의 상권, 그것이 바로 이곳에 각기 다른 특색을 갖춘 많은 시장들이 몰려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장 110여년의 지동시장과 순대타운

 

수원천 물길이 흐르는 수원화성의 남수문에서 동편을 바라보면, 장거리 입구에 화성을 닮은 구조물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개장한지 110여년 정도가 된 ‘지동시장’이다. 이 지동시장은 요즈음 ‘순대타운’으로 인해 유명세를 티고 있다. 상가 1층 전체가 순대집으로 들어선 이곳 말고도 순대집은 20여 곳을 넘는다.

 

 

인심좋은 '남문곱창'의 사장님이 서비스를 해준 순대국과 양념장

 

모처럼 해갈을 시켜주는 비가 뿌리는 날 저녁에는, 술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가 않다, 이런 날 찾아갈만한 곳이 바로 순대타운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저마다의 간판을 내건 순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저 이웃하고 있는 순대집들이 정겨운 곳이다. 요즈음에는 외지에서 온 손님들도 이곳을 한 번은 거쳐 가고는 한다.

 

어느 집을 들어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안에 모여 있는 순대집들의 가격은 모두 동일하다. 다만 업주들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는가는, 자주 가는 사람들이라야 알 수가 있다. 물론 어느 집을 골라 자리를 잡던지, 손님들에게 정성껏 대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그만큼 이 순대타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저녁시간이 되면 좀처럼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순대국물 달라면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8월 12일, 하루 종일 비가 뿌린다. 일과를 마치고 순대타운을 찾았다. 특별히 어느 집을 정해서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문 앞에 빈자리에 그저 속 편하게 앉기만 하면 되는 곳이 바로 이 순대타운이다. 순대곱창볶음 2인분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순대와 곱창은 미리 익혀놓은 것이니, 그 위에 야채 등을 푸짐하게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

 

네모난 철판 위에 가득한 음식. 불 위에서 끓고 있는 음식만 보아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푸짐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이곳을 찾아와 주문만 하면 된다. 술을 몇 잔 먹다가 보니 팍팍하다. 순대국을 한 그릇 달라고 하니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란다. 이런 인심이 바로 이곳 지동시장 순대타운의 인심이다.

 

 

그저 편안하게 지인들과 모여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 순대곱창볶음 1인 분에 8,000원, 순대국밥은 5,000원이다. 소주 두병을 마시고도 계산은 22,000원이란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혹 화성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빠트리지 말고 지동시장을 찾아보길 권한다. 사람이 사는 정이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31호로 지정이 된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29에 소재한 ‘엄찬 고택’은,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의 외손인 엄찬의 고택으로 알려진 집이다. 원래 이 집은 문간채가 있었지만 현재는 문간채는 사라지고, 사랑채와 중문을 들어서면 광채와 ㄷ자형의 안채가 광채와 연결되어 ㅁ자형의 집을 구성하고 있다.

 

 

 

사랑채와 사랑마루

 

넓은 마루가 시원한 사랑채

 

밖에서 본 엄찬 고택은 한 마디로 멋진 집이다. 녹음이 우거진 짙은 나뭇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담장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다. 현재 엄찬 고택은 사랑채와 행랑채가 연결된 중문을 사이로 출입이 가능하다. 사랑채는 3칸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두 칸은 넓은 툇마루를 놓아 시원한 느낌이 든다.

 

사랑마루에서 벗들과 앉아 술이라도 한 잔 햇다면, 세상 모든 정취가 시 한수로 대신했을 것만 같다. 이 집을 지었다는 성삼문의 외손 엄찬도, 예전에는 이 사랑마루에서 앞의 경치를 바라보며 글을 읽고는 했을 것이다. 중간에 한 칸은 좁은 툇마루를 놓았는데, 이어진 부분은 안채에서 드나들 수 있는 부엌이다.

 

밖에서 본 행랑채

 

마구간도 있었을 줄행랑

 

중문 밖으로는 한 칸의 행랑방과 광이 마련되어 있다. 이 광은 집의 구조로 보아 마구간으로 사용된 듯하다.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으로는 -자형의 광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 광채는 행랑방을 합하여 모두 여덟 칸으로 마련이 되었는데, 그 중 좌측 세 칸은 문을 달아 놓았다.

 

ㄷ 자형의 안채는 겹 마루를 놓아

 

전체적으로 대지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사용한 엄찬 고택은, 남쪽으로 중문을 두고 동쪽으로 본채를 두었는데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의 우진각으로 꾸몄다. 이 엄찬 고택의 특징은 안채의 대청마루다. 모두 세 칸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대청은 겹 마루를 놓았다. 중간에 기둥을 두고, 그 밖으로 또 마루를 덧낸 형태이다.

 

 

안채의 마루는 기둥밖으로 또 마루를 덧낸 겹마루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렸는데, 대청을 바라보고 좌측에는 부엌과 다락, 그리고 연이어 방을 세 개를 놓았다. 안방과 윗방으로 구분이 되는 이 방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 안채에서 특이한 것은 바로 사랑채와 이어지는 부엌이다. 이 부엌은 중문과 연결이 되어 있는데, 아궁이가 이단으로 되어 있다. 즉 경사가 진 대지를 그대로 이용하다가 보니, 아궁이가 깊어서 아래쪽은 가마솥에 불을 때는 아궁이로 하고, 그 위에 방을 데우는 아궁이를 따로 두었다.

 

이중으로 난 아궁이. 비탈이 진 비형을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 부엌의 아궁이를 층이지게 조성하였다. 위는 방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다.

 

그림 같은 고택의 아름다움, 보존에 신경 써야

 

성삼문의 외손집이라고 해서 그 집이 잘 보존이 되어야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엄찬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될 만큼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집이다. 엄찬 고택을 찾았을 때 집이 퇴락해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이 아프다. 마당에는 잡풀이 그득하고 주변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마을 밑에서 바라보는 엄찬 고택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두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행랑채 앞에 자리를 하고 있어, 운치가 있어 보인다. 모두 여덟 칸으로 되어있는 광채는 한 눈에 보아도 이 집이 예사롭지 않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안으로 들어가 살펴본 집은 여기저기 손을 보아야 할 곳이 보인다.

 

 

 

1670년대에 지어졌다는 엄찬 고택. 그저 성삼문의 외손이 살고 있던 집이라고 장황하게 안내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소중한 문화재로 지정을 했으면, 잘 보존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랑채 넓은 마루에 앉아 불볕 햇볕을 피해본다. 예전에는 꽤나 행세를 했을법한 집안인데, 손길 사라진 집에서 느끼는 한기가 불볕더위마저 서늘하게 만든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24호인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109번지에 소재한 정용채 가옥은, 고택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집안의 짜임새가 돋보이는 집이다. 조선조 말기에 지어진 살림집인 정용채 가옥은 뒤편에 나지막한 동산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삼태기처럼 집을 감싸고 있다.

 

대문채와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 50여 칸으로 꾸며진 이 집은 대문칸의 상량문을 통해 1887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안채의 경우에는 그보다 앞 선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15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오는 동안, 원형에 가깝게 관리를 해온 집으로도 가치가 매우 높은 집이다.

 

 

 

ㅁ자형의 구조, 공간 배치가 뛰어나

 

솟을대문으로 구성된 대문채는 좌측으로는 행랑채와 연결이 되어 있고, 들어서면서 우측으로는 부엌과 방을 드렸다. 좌측으로는 방을 드려 행랑채와 연결이 되어있다. 행랑채는 14칸 정도의 규모로 일자형으로 길게 늘어진 줄행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ㄷ 자형의 안채와 쪽문으로 연결을 하였다. 부농의 집답게 행랑채는 각종 광이며 곳간 등을 두었다.

 

대문채와 떨어져 지은 사랑채는 4칸으로 구성이 되었으며, 바라보면서 우측에 대청을 두었다. 이 사랑채의 특징은 남쪽 두 칸 방 뒤편에 안채 대청과 연결이 되는 복도를 두었다는 점이다. 번잡하게 식솔들의 눈을 피해 사랑에서 바로 안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안채와 사랑채의 구분을 명확하게 짓고 있으면서도 생활의 편리함을 생각한 집의 구조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안채의 날개채 부분과 행랑채가 맞닿아 있고, 중문을 달아 구분을 하였다.

 

폐쇄적인 안채의 구성에도 채광을 생각해

 

안채는 ㄷ 자형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양편 날개채는 모두 행랑채와 연결이 되어 중문을 두어 폐쇄적이다. 가운데 세 칸 대청을 마련하고 양편에 방을 두었으며, 날개채는 부엌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바깥마당으로 나가면 안채에 달린 남향받이의 방이 있다. 이는 폐쇄적인 안채의 공간 구성상 채광에 유리하도록 꾸민 것이다.

 

 

 

바깥마당에는 우물과 장독대 등을 두었는데, 이 집의 특성상 폐쇄적인 안채를 벗어나 모든 실생활의 살림을 바깥마당에서 했음을 알 수 있다. 바깥마당에 접한 방 앞에는 마루를 두어 생활하기에 편리함을 꾀했다는 점도 정용채 가옥의 특징이다. 한 마디로 폐쇄적이면서도 한 편에 여유를 부린 그러한 구성이다.

 

반듯한 가옥, 집안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 마디로 정용채 가옥의 특징은 반듯하다는 점이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듯, 집안의 곳곳은 윤기가 흐른다. 마당은 잘 정리가 되어있고, 집안의 마루 등에도 먼지가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뒤편 바깥마당 우물에는 덮개가 덮여 있어, 이 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서 보면 가장 위편에 자리하고 있어 행랑채 담 밖으로 나오면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바로 아래편에는 초가로 지어진 중요민속문화재인 정용래 가옥이 보인다. 폐쇄적이면서도 실생활에 편리하게 구성이 된 정용채 가옥은, 주변의 지형을 고려한 배치수법이 뛰어나다. 구성에 있어서도 각 채별로 뚜렷하게 공간구성을 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쓰임새에 따라 면밀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마당과 안마당, 바깥마당의 공간이 나름대로 용도에 맞게 구성이 되어있고, 폐쇄성이 짙은 안채에 날개를 달아 채광에 도움을 주고 있는 정용채 가옥. 고택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꾸밈이 잘 되어있는 집이다.

10일이 넘게 계속된 찜통더위. 그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4일에 찾아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소재한 사적 고달사지. 그곳에서 난 땀을 비오 듯 흘리면서도 그늘을 찾아갈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보물 제6호인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때문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찾아간 고달사지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인 958년에 90세로 입적을 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 추시하고 대사의 진영일정을 그리게 하였다. 이 탑비는 대사가 입적 후, 17년 뒤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벌써 몇 번째 찾아간 탑비, 그런데 이럴 수가

 

이 비는 몸돌은 무너져 내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으며, 이곳 고달사지에는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과 출생, 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 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몸돌인 비문을 볼 수가 없어 매번 갈 때마다 아쉬움이 컸던 원종대사탑비였다. 언제가 답사를 함께하던 동료 한 사람이, 도대체 왜 그렇게 갈 때마다 사진을 많이 찍어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세세하게 사진을 찍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 혹 무엇이 변하지는 않았는가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다. 탑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한 장씩 찍어댄다. 40도를 육박하는 땡볕에서 사진을 찍다가보니, 이미 몸은 땀으로 다 젖어버렸다. 얼굴과 등에서는 연신 땀이 흘러내린다. 닦을 엄두도 나질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사진을 찍다가 그만 몸이 굳어버렸다. 이걸 왜 보지 못했을까? 지난번에는 제대로 잘 찍었었는데.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문화재 이야기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 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이 비에 조성된 거북의 머리는 험상궂은 용의 머리에 가깝고,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머릿돌인 이수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의 번잡한 장식 등이,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진전되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귀두의 이는 큼지막하니 두텁게 표현을 하였고, 콧구멍을 크게 뚫렸다. 영화에서처럼 이 콧구멍에서 불이라도 뿜어대는 것일까? 눈썹은 짙고 굵게 표현을 하였으며, 왕방을 눈은 금방이라도 사람에게 위압을 줄 것만 같다. 귀두를 살펴본 후 그 위에 비문을 올려놓았던 장방형의 비좌를 살펴본다.

 

비좌는 받침돌과 일석으로 조성을 하였으며, 이중의 육각형 벌집 모양이 정연하게 조각된 귀갑문을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첨가하여, 비를 끼워두는 비좌를 돌출시켰다. 그런데 지난번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는 이 비좌를 놓치고 말았다. 비좌에 새겨놓은 문양을 돌아보다가 그만 굳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더위먹고 내가 제대로 살 수는 있을까?

 

꽃과 구름문양을 새겨 넣은 비좌의 밑면에도 세세하게 조각을 해놓았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그 섬세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이수를 보다가 ‘아’하고 탄성을 지른다. 몸을 꼬아 용트림을 하는 조각의 놀라움이다. 어찌 그리도 섬세하게 표현을 해 놓았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보아왔던 것이다. 비좌의 밑에도 이수의 밑에도 아름답게 조각을 한 문양들. 그런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렇게 꽤 시간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 걸음을 옮기면서 되뇐다.

 

“이 문화재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찜통더위에 기자들이 더위를 먹었다. 취재를 할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나가기만 하면 땀이 흐르고, 사람을 만나려면 몸에서 쉰내가 난다. 참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런던올림픽’과 가수 싸이의 ‘오빠는 강남 스타일’의 패러디를 찾아보고 킬킬거리며 웃는 일이다.

 

그래서 이 더위 먹은 기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주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각자 좋아하는 여가수를 얼짱 순서대로 10명을 선정해보라고 했다. 이건 순전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름이 없다고 무엇이라고 하질 말길. 앞서 밝혔듯 더위 먹은 기자들이니 말이다.

 

순서는 아무 의미 없다. 다 아름답다

 

 

10위에 랭크된 건 국민여동생 아이유!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여동생이 예상보다 낮은 순위에 오른 건 조금 의외의 일이다. 폭발적 가창력의 증명된 가수이자 예능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언제나 파격적인 패션과 노래로 트렌드를 이끄는 2NE1의 최강 동안 산다라 박이 9위로 꼽혔다. 최근 충격적인 반삭 헤어스타일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지만 그 헤어스타일마저 산다라에겐 위화감 없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8위가 된 건 소녀시대의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제시카이다. 한국과 일본, 유럽에서 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에서 미모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제시카를 빼고 우리나라 미녀 가수를 논할 수가 없지!

 

 

다음은 소녀시대의 흑진주 유리 와 영원한 아이돌 박지윤이 공동 6위가 되었다. 까만 피부가 건강미 넘치는 유리는 흑진주 말고도 깝율이란 별명이 있는데 방송에서 활발한 이미지로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기 때문! 앞으로도 예능에서의 그녀가 주목된다!

 

 

한때 노래 <성인식>으로 우리나라 남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박지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당시의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한사람의 진정한 가수로, 그리고 연기자로 돌아 왔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미모를 바래게 할 순 없었다.

 

 

이번에서 공동수상이 되었는데 영애의 공동 4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섹시디바 손담비와 아이돌 카라의 구하라이다. <미쳤어>와 <토용일밤에>등으로 숱한 남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 그녀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 섹시디바이다. 최근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도 연기자로 참여했는데 그곳에서도 사랑스러운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카라의 구하라하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미스터>, <점핑>, <루팡>등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낸 카라는 최근 한동안의 활동이 드물었는데 카라가 1년 만에 5집 미니앨범 <판도라>로 컴백한다. 드라마 <시티헌터>등에서도 활약한 구하라를 이제 곧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제 남은 탑 3중에서 영예의 3위를 차지한 건 아이돌 f(x)의 리스탈이다. 크리스탈은 8위에 랭크된 소녀시대 제시카의 동생으로도 유명한데 데뷔 당시엔 소녀시대 윤아와 닮은 외모로 유명했다. 자매가 나란히 순위에 오늘 제시카=크리스탈 자매! 우리 나라의 미인 자매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소녀시대의 막내로써 언니들의 귀여움을 듬뿍 받는 서현!. 서현이 대한민국 미녀가수 영예의 2위에 올랐다. 최근 MBC주말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정용화와 용서커플로 호흡을 맞추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서현의 인기가 식을줄을 모른다.

 

 

대망의 1위는 최근 청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missA의 수지가 앞도적인 점수 차로 1위에 등극했다. 올 3월에 개봉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의 학창시절 아역으로 등장했도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KBS드라마 빅에도 출현했다. 그밖에도 KBS예능 <청춘불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그녀의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위먹은 경기리포트 편집부(※사진출처는 각 소속사 갤러리 및 기타 출연 방송 갤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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