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짜장’은 요즈음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가는 곳마다 ‘스님짜장’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자랑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자랑을 할 일도 아니다. 이렇게 버스를 몰고 전국을 다니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헐벗고 외로운 사람들과 그저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헐벗은 이에게 옷을 주어 의복공덕을 하였느냐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주어 급식공덕을 하였느냐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어 해갈공덕을 하였느냐
깊은 내에 다리를 놓아 월천공덕을 하였느냐‘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상여소리의 한 구절이다. 이 소리는 ‘무가 회심곡’의 사설에서도 보인다. 사람들은 그저 이 소리를 듣고 흘려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 몇 가지 공덕을 논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스님짜장’이 먹고 싶어요.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자장면을 좀 해 줄 수 없느냐는 질문이다.

“저희가 한 600명 정도를 매일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데, 자장면을 한 번 해주고 싶어서요.”
“언제쯤 필요하신데요?”
“가급적이면 빨리 했으면 해서요. 그런데 저희는 거리가 좀 멀어요”
“거리는 관계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라도 저희가 필요하면 달려가니까요”

요즈음 인터넷을 통해 스님짜장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5월 한 달만 벌써 9곳을 다녀왔으며, 이 달에만 7,000 그릇의 자장면을 급식한다. 가격으로 따져도 한 그릇에 4,000원이면 28,000,000원의 금액을 무료로 급식을 한 셈이다. 왜 이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자장면을 만들어 무료급식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땅에 아직도 스님짜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봉사를 다니다가 보니, 그 경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뿐 아니라 연일 봉사를 하느라 사람들도 힘이 들어 하기도 한다. 준비를 하고 먼 길을 달려가 봉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

스님짜장이 찾아가는 곳은 복지관에 계시는 어르신들, 군장병들과 전경, 장애우들, 그리고 무료급식소 등이다. 전국 어디나 전화가 걸려오면 날을 잡아 준비를 한다. 말이 그렇지 한 달에 10번이면 3일에 한 번은 이동을 해야 한다. 먼거리는 새벽부터 눈을 부비며 차에 오른다. 연이어 이틀이 걸리는 날은 쉬지를 못한다. 다녀와서 바로 다음 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짜장은 현장에 가서 자장을 볶아야 한다. 그러다가 보면 커다란 솥 두 개를 항상 차에 싣고 다녀야 하는데, 그 무게가 상당하다. 거기다가 100명분의 면을 준비하려면 20kg짜리 밀가루 한 포를 다 반죽을 해야 한다. 1,000명이면 자그마치 열 포대를 반죽을 해야 한다. 시간으로 따져도 반죽을 하는 데만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거기다가 자장면에 들어가는 각종 야채와 콩고기 등도 준비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준비하는 데만 하루가 걸린다. 연이틀 봉사를 나가려면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다. 한편에선 밀가루를 반죽하고, 한편에서 야채를 썰어댄다. 그러면서도 연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몸에 밴 봉사정신 때문이다.


곳은 많은데, 정말 많은데’

‘스님짜장’의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다본다. 그리고 바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스님짜장이다.

“여보세요. 여기는 광주에 있는 장애우 복지관인데요. 이곳도 와 주실 수 있나요?”
“당연히 가야죠.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더 고맙죠.”

갈 곳은 정말로 많다. 그러나 아직은 봉사하는 인원도 부족하고, 그 많은 곳을 모두 다니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 주변에 정말로 아픔을 당하고 있는 분들에게, 정성이 가득한 자장면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다. 갈 곳은 많은데, 정말로 좋은 방법이 없을까?

(주)밀가루와 야채 등을 후원하시고 싶으신 분은 연락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63)631-0108


5월 22일(일), 남원을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장성으로 향했다. 장성에 있는 ○○지원단을 찾아 “스님짜장” 봉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정해진 행사처럼, 군부대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지원단 안에 있는 군 법당인 ‘무각사’를 찾아가기 위해서이다. 무각사 대웅전 안은 장병들로 가득하다.

300명이 넘는 장병들은 짜장스님인 운천 선원사 주지스님의 법문을 들은 후, 기념촬영을 마쳤다. 배식준비를 하다가 사진촬영을 한 운천스님은 “장병들이 너무 고맙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치는데, 우리가 이런 짜장봉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며 장병들의 손을 잡고 기념촬영에 임했다.

 

 

"사랑 실은 스님짜장" 버스와 준비를 하는 봉사단원들
 
“고맙습니다. 짜장스님”

기념촬영을 마친 장병들은 식당으로 달려가 줄을 선다.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지를 모른다. 한편에선 자장을 먹고, 또 한편에선 자장을 만드느라 법석이다. 군인가족들도 나와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모두가 “맛있습니다.”를 연발한다.

 

 

무각사 대웅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스님들과 장병들

400명이 넘는 장병들은 저마다 한 그릇씩을 비우고도, 조금은 모자라는지 배식구를 기웃거린다. ‘많이 먹으라’고 독려를 하지만, 줄어들지 않는 줄 때문인지 아쉬운 듯 돌아선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장 한 그릇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가득한 정성스런 마음이 있어 늘 웃음이 그치지를 않는다.

“고맙습니다. 짜장스님”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는 장병들의 인사다. 언제까지라도 짜장스님으로, 그리고 봉사단으로 남고 싶다는 사람들. 그래서 봉사는 힘들지만 늘 마음이 뿌듯하다.

 


배식준비를 하는 '짜장스님'과 봉사에 함께 참여한 군인가족들 

면을 삶아 찬물에 담근 후 장병들에게 먹일 준비를 하고 있다


자리는 다 차고, 줄은 아직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거기다가 밖에까지....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와 강천면 도전리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다.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운영하는 단체(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 원장 정지훈)가 같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우들이 묵고 있는 이 두 곳은, 중암리에는 20세 미만이 도전리에는 20세 이상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들린 이유는 ‘스님 짜장’ 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곳을 둘러보고 난 후, 참으로 부끄러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난 후, 이들의 생활에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라파엘의 집에는 170명 정도의 장애우들이 묵고 있다. ‘시각중복 장애인의 재활과 교육의 메카’라는 슬로건을 걸고 생활하는 라파엘의 집을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에 떠난 길

아침 6시 30분. 채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남원을 출발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라파엘의 집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가, 김정식 시설부장의 안내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말끔히 정리가 된 경내는 여기저기 장애우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한 곳을 들어가니 스태플 작업을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과 장애우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하는데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우문을 해본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가 시각중복장애우 들입니다. 모든 분들은 각자 통장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일을 하고 받은 수당은, 모두 당신들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이 됩니다. 사회인들과 똑 같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것이죠.”




다음 칸으로 가니 구슬 꿰기, 머그컵 만들기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판매를 하기도 한다. 함께 동행을 한 도자 작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들, 내가 정말 부끄럽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살이를 하면서 불평을 한다. 살기가 어렵다. 누가 보기 싫다 등.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라파엘의 집 사람들은 오직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각장애우면서 지도선생이라는 분이 찬찬히 안내를 시작한다.



“우리는 등록상표가 천사 라파엘입니다. 이곳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고, 저쪽은 컴퓨터실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화면을 읽어주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편리합니다. 노래도 듣고, 책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 중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조직한 밴드도 있다는 것이다. 라파엘의 집 경내에는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시설까지 마련이 되어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의 손을 잡고, 식당에 모인 라파엘의 집 가족들. 그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우리가 다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외롭고 소외된 곳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 지원이 부족해 늘 안타깝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말로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 찾아와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에도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당신들. 당신들이 정말 부럽다. 그리고 힘껏 박수를 치고 싶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말을 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은 인생이란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고 살다가 보면, 깊은 병이 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인생이란게 머 있어. 그냥 사는 거지”

하긴 누구나 다 자신만의 소중한 삶이 있다고 하지만, 그 소중한 삶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다.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부를 축적하거나, 아니면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이 성공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제각각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성공한 삶일까? 늘 그것이 궁금하다.


인생살이에서 세 번째 스카우트가 되다

세상을 살면서 ‘스카우트’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도 스카우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르겠다. 벌써 세상을 살면서 세 번째인 듯하다. 남들이 말하는 스카우트와는 좀 다르다. 하지만 있던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기에 데리고 왔다니, 이런 것도 스카우트라고 보아야 할까?

나이가 60이 넘어 이렇게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리를 옮겨놓고 나서도 조금은 걱정스럽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서, 과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죽어라고 일을 해보아도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기대를 했던 분들에게 더 실망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한 곳이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성정이 다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능력도 다르다. 그 능력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발휘할 곳이라면, 기대를 해봄직도 하다. 하기에 사람마다 각기 필요한 곳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것을 두고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자리를 옮겼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옮겨 온 곳이다. 이곳에서 과연 내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행복하다. 아직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몸이 피곤할 수도 있다.

인생은 60부터 라는데...

자리를 옮긴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한다. 그리고 차분히 노후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그래서 그냥 살다가 후에 어디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숨죽인 듯 살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세상 머 있어. 그냥 살다가 가는 거지”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참으로 세상 편하게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의 속이 과연 편안한 것일까?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속이 더 타버렸을 것만 같다. 그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인생은 60부터 라고” 그 말이 나에게는 적격인 듯하다.

모처럼 옮겨 온 자리에서 창밖을 보니 멀리 지리산이 바라다 보인다. 이렇게 날이 좋은 날 천왕봉이라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인생의 마지막 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이를 먹다가 보면(연세가 많으신 분들께는 참으로 죄스럽지만) 옛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어릴 적에 함께 놀던 친구들이나, 같이 하던 놀이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먼 산을 바라보다가 눈시울을 적신다. 아주 친한 친구 녀석이 하나 있었다. 국민학교(우리 때는 초등학교를 이렇게 불렀다.)를 다니는 내내, 녀석과 나는 우리 집 너희 집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모든 가족들이 한 식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 녀석이 이사를 가고 난 후, 연락이 끊기더니 벌써 5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몇 년 전인가 그 녀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참으로 속이 미어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 녀석이 다시 생각 난 것은 서천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 가서이다.


어릴 적 보던 풍경이 그대로

그곳에는 마당 한 편에 조형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옛날에 놀던 친구 녀석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 놓여 있다. 썰매타기며 윷놀이, 말타기 등등. 그 모습을 보다가 그만 왈칵 서러움이 복받쳐 온다. 뒤 늦게 소식을 접한 친구 녀석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과 늘 함께 하던 모습이다.



녀석과 함께 냇가에 가서 물장구를 쳐가며 물고기를 잡는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도 했다. 한 겨울에 썰매를 지치다가 넘어져 ‘메기’를 잡기도 했다. 마을에 사는 형이(사실은 아저씨뻘이었지만) 장가를 간다고 하는데, 그 뒤를 따라가면서 괜히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색시가 너무 예뻐 보여 괜한 심통을 냈는가 보다.



그런 모습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 그런 흙으로 만든 토우가 즐비하다. 그 주변을 돌면서 녀석과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다가 보니, 괜히 코끝이 찡해온다. 소식이라도 주고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녀석의 누나를 통해 들은 소식은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더욱 더 그리운 녀석이다.



이제는 그만 생각을 하자고 마음을 달랬는데, 아직도 녀석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었는가 보다. 토우를 보는 순간 그만 또 한 번 울컥하고 말았다. 사진을 하나하나 담아내면서도, 녀석이 못내 그립다. 아마도 옛날 그 모습들이, 그래도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 기억을 하나하나 다시 새겨보면서, 녀석과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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