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수원남문 로데오아트홀 무대에서

 

검무의 유래를 보면 신라(서기 667년경)때 황창랑(黃昌郎)이 지은 것이라고 <동경잡기> ‘풍속조(風俗條)’<문헌비고>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어린 화랑 황창랑이 8세의 소년으로 백제왕을 척살하고 백제인들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검무를 빙자해 백제왕의 어전에 나아가 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시해하고 죽임을 그 죽음을, 신라인들이 슬퍼하여 '소년의 얼굴을 닮은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춘 것'이 검무가 추어지게 된 유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설에는 이 황창랑의 전설은 백제와의 전쟁 때 백제의 계백 장군에게 피살된 신라 품일 장군(品日將軍)의 아들 관창랑의 역사적 사실을 춤으로 승화시켰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첨은 동서 <관창조(官昌條)>에 보이는 황창은 관창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 했고, 또 이유원(李裕元)의 시에도 관창이 잘못 전해져 황창으로 되었다고 했다.

 

이런 검무는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데 관창이 죽은 후 신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관창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관창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추었다고 했다. 검무는 진주, 통영, 해주, 광주, 평양 등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춤으로 21일 오후 수원남문 로데오아트홀 무대에서 평안남도 무형문화제 제1호인 평양검무보존회수원지부 창단기념공연이 열렸다.

 

 

천삼백 년의 역사를 지닌 검무

 

검무는 민속연희 등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칼춤이다. 관창랑에서 유래했다고 보이는 검무는 이미 천삼백 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검무가 각 지방의 문화와 풍토 등에 맞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풍속의 특징을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고 한다. 즉 백리만 떨어져도 풍속과 습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각기 그 춤사위나 형태가 다른 검무는 진주검무 등은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이 되고 있다. 검무는 전립과 전복 · 전대의 복식을 한 4명의 무녀들이 칼을 들고 대무하여 추는 춤으로, 조선 순조 때 궁중정재로 채택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각 지방 교방청에서 전승되어 오던 검무는 그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화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검무는 조선조에 들어와 4인이 추었다. <정재홀기>에는 4검무로 되어 있으며, 조선 영조 때 첨수무(尖袖舞)’공막무(公莫舞)’라는 이름이 생겼다. 첨수무는 외연에서 주로 추어졌고 공막무는 여자들이 모인 잔치에서 추는 것으로 용도가 변화한 것이다. 외연용인 첨수무는 무동이, 내연용인 공막무는 기녀인 무녀들이 추었던 것이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쌍검대무에 보면 2명의 기녀가 검무를 추고 있어 4명이던 것이 2명으로 감축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춤 섭렵한 이영자 수원지부장

 

21일 남문로데오 청소년공연장 맞은편에 자리한 보존회 사무실 입구에서 평양검무 수원지부 현판식을 거행한 일행은, 자리를 남문로데오아트홀로 옮겨 평양검무 창단 기념공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평양검무 2대보유자 정순임과 3대보유자 임영순도 참석하여 수원지부의 창단을 축하해 주었으며, 송봉수 로데오상인회장과 강희수 상인회 수석부회장, 김한중 전 상인회장 등도 함께 했다.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보존회 이영자 수원지부장은 장정희에게 춤을 사사하기 시작하여 강선영류 태평무, 김숙자류 도살풀이, 최종실 소고춤 등을 두루 섭렵했다. 2015년 평양검무를 사사하기 시작해 2016년 이수 했으며 2017넌 수원지부를 창단하기에 이른다.

 

이영자 지부장은 2006년부터 남문로데오 거리에 소재한 춤사랑이라는 공간에서 한국무용을 교습을 해왔다. 이날 창단공연이 열린 로데오아트홀에는 평소 이영자지부장의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단공연을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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