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우리의 현실이 어찌 이리 되었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그것도 멀리 이국에서 고생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국제결혼이라는 허울을 쓴 채, 종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심심하면 음주를 하고 폭력까지 휘두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이나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


다문화가정, 그 안에 숨은 슬픔

요즈음은 우리 주변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사람들을 자주 볼 수가 있다. 흔히 이런 가정을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곳에서는 지자체 나름대로, 이주해 온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외국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그 안에서 다문화가정은 남다른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끼리 결혼을 해 자녀를 둔 가정이 이혼을 하여, 외국인 여성을 맞아들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런 동남아 쪽의 여성들이 한국남성과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결코 사랑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중 거개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부모형제에게 도움을 주고자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냥 좋게 이야기를 하자면 국제적인 결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인 결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있는 머나 먼 나라로 떠난 여인들. 그 중에는 물론 적응을 잘하고 잘사는 사람들도 있다. 안락한 가정을 꾸미고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은 자신의 나라를 찾아가기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복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일시키고, 때리고, 폭언을 퍼붓고

우연히 듣는 이야기에서 분노를 느낀다. 정말 내가 그런 인간과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못한 한 남자가 베트남에 가서 부인을 데려왔단다. 얼마인가 돈을 주고 부인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국인 부인을 데리고 와서 생활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린 부인을 굶기고 싶지 않다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부인을 자기나라로 보내준다는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 인간은, 도대체 인간답지가 않다. 부인을 데려다 놓고 집안에서 판판히 놓고 먹는단다. 그리고 부인을 식당에 내보내 돈을 벌게 한다는 것이다. 딸린 아이도 둘이나 된단다. 그러면서도 놀고먹는다는 이 인간. 거기다가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고, 욕을 한다고 하니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쫓아가 귀싸대기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먼 이국으로 낯선 남자를 따라와 사랑을 받기는커녕, 죽어라하고 일을 하는 이국 여인. 거기다가 폭력에 심한 욕설까지 들어가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가슴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 아마 스스로 빗을 졌다고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낯이 부끄럽다.

이런 인간들. 부인을 돈을 주고 사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아, 어찌 그러고 사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2009년인가 다문화가족들이 슨 글을 도자기로 만들엇던 후배가 있다. 경기으뜸이가 글을 쓰고 아우녀석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부인들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때 한 어린 초등학생이 쓴 글이 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어린학생의 글이 생각이 난다.

우리와는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기가 살던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욱 더 많이 알고 있는 걸...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대구시 달성군 달성읍 하리에 있는 <대구광역시 교륙첯 논공학생야영장>에 양영을 들어 온 파라미타 청소년 160명에게 '스님짜장'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비가 오는데도 길을 나섰다. 비가 온다고 가질 않으면 160명이 점심을 굶을 판이다.

빗길에 달려 야영장에 도착하여 뒤로 돌아가니, 이게 왠놈들이야. 졸망한 녀석들이 인기척에 놀란 어미가 짖어대나 다들 쫒아나온다. 이런 횡재가 어디있담? 비를 맞으면 녀석들을 담기에 바쁘다. 어미는 계속 으르렁 대고 있다. "얌마 시끄러워, 누가 애들 들고간데냐 그래" 혼잣말을 해대면서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좌측에 목줄을 한 녀석이 어미이다. 새끼는 7마리 같은데 이건 머 다 다르다. 아비가 도대체 누구여?





참으로 생긴 모습들이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그 중 한 녀석 점박이란 놈이 덩치가 가장 크다. 녀석이 맏이일까? 그런데 이 녀석이 어지간히 요상하게 군다. 월담을 하겠다는 것이지.


 
이 녀석들이 낯선 사람을 마치 외계인 보듯 한다. 자리를 바꿔가면서 쳐다보는 폼들이 무엇인가 좀 수상한 사람을 보듯.... 나 이상한 사람 아니거든...



그런데 이 점박이 표정을 보라. 무엇인가 형제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귀를 기울이는 누렁이 녀석 표정도 그렇고. "야, 내가 저 인간이 위험한지 아닌지 좀 보고 올께. 아무래도 좀 수상한 냄새가 나지 않아. 우리 중 누군가를 잡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 그치" 흡사 요런 표정이다. 이 표정에 죽는 줄 알았다.


이 점박이 드디어 월담을. 아무도 시도를 안하는데, 녀석은 낑낑대며 담을 넘는다.




딴 녀석들이 궁금한지 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물어본다. "형아, 어떻게 넘어갔어?" "형이 원래 좀 담을 잘 넘잖아. 너희도 형처럼 할 수 있어" "그런데 저 인간은 괜찮은 거여?" "머 별거 아닌거 같아. 아무래도 나한테 기가 죽었나봐"


점박이 녀석이 담을 넘어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정말 부럽게 바라보고 있는 깜돌이. 아마 이 녀석이 막내인 듯.


개집 전경이다. 따로 묶인 뒤편에 녀석이 애비인 듯하다. 그리고 점박이 혼자 담 밖에서 잘난체를 하고 있다. "야, 저 인간 별거아녀. 겁 먹지말고 나처럼 담 넘어 봐" 오늘의 강아지 일기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다. 누구는 만믈이 소생하는 봄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좋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순백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겨울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 그 중에도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난 나름대로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유는 우선은 답사를 하기에 적당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또 어떤 모습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지. 나름대로 난 가을을 이런 것들에게서 느낀다.


가을은 낙엽에서 온다. 단풍이 들고 그것이 떨어져 있을 때 정말 가을이라는 것을 느낀다.



널어 놓은 호박꼬지며 처마 밑에 달려 있는 옥수수.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은 느낄 수가 있다.



장독대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와 초가 지붕 위에 달린 덩치가 큰 호박. 결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 그리고 절반은 떨어져 나무 아래를 노랗게 칠을 하고 있는 낙엽.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이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장독대 위에 놓인 감이 연시로 익어가고, 멍석에 놓인 감이 점점 연하게 변하고 있는 모습에서 정말 가을이네 라는 것을 느낀다.

단종임금이 숙부에게 쫒겨나 멀리 강원도 땅으로 가다가 목이 말라 마셨다는 샘 '어수정' 그 맑은 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가을임을 이야기 한다.

난 아무래도 맛집 블로거는 못할 듯싶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카메라부터 들이밀고, 다음에 먹으면서도 연신 찍어대야 하는데 우린 죽어도 그 짓은 못한다. 내가 일부러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들과 밥상머리에 앉아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길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 중 한 분이 점심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찾아간 곳.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 569-5번지에 소재한 ‘뽕나무 골’이란 식당이다. 식당 주차장에는 이미 만차가 되어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좁지 않은 식당 안에 무슨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아마도 인근 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찾아온 듯하다.


아이폰에 역광까지. 사진은 엉망입니다.

누에
박물관이 있는 '뽕나무 골' 식당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곤충들이 가득하다. 옆으로 보니 이상한 것들이 즐비하게 전시가 되어있다. 자세히 보니 ‘누에박물관’이란다. 예전 베틀이며 여러 가지 누에를 치는 기구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이왕 왔으니 이런 것도 찍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카메라가 없다. 단 분 차를 이용했으니 당연히 카메라는 차에 두고 올 수 밖에.

이래서 난 파워블로거가 못 되는 것인가 보다. 블로그의 필수품이 카메라라고 하는데, 점심 한 그릇에 정신을 빼앗겨, 카메라를 두고 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폰이 있으니 우선은 그것으로 대처를 하는 수밖에.




점심에 받은 뽕정식. 황제가 따로 없네.

뽕정식이라고 하는 상차림을 시켰다. 소갈비찜이 나오면 1인분에 2만 5천원이고, 돼지갈비찜이면 2만원이란다. 싼 가격은 아니다. 도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는 반찬들을 보니 26가지나 된다.

이럴 때는 정말 나 스스로를 책한다. 바보처럼 카메라를 두고 오다니. 이것만 해도 글 두 개는 쓸수 있는데 말이다. 밥상과 박물관을 찍었으면, 하루 글 쓸 소재는 충분한데 말이다. 그래도 한 두 어장 찍으려는데, 식당 안에 밥을 먹으로 온 사람들이 연신 쳐다본다. 잠시 고민을 해댄다. 그래도 막 찍어버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배짱이 없다.





더구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시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나저나 이 먼 곳을 다시 오기도 그렇고, 참으로 난감하다. 할 수 없이 아이폰을 꺼내 몇 장만 찍는다. 찍으면서도 연신 부담스럽다. 거 참, 내가 맛집 블로거도 아닌데, 왜 꼭 이래야 하는 것이지.

어쨌든지 밥상을 받고 보니 황제도 부럽지 않다. 화학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만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대접을 받는 자리이니 그 맛을 음미를 해가면서 천천히 먹을 수도 없는 일. 그저 앞에 놓인 반찬만 뒤척이고 있었다니.



먼저 자리를 일어나 박물관으로 가 일일이 찍어댄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이람. 아이폰에 밧데리가 10%가 남았다고 한다. 더 이상 찍었다가는 통화도 못할 지경이다. 이쯤해서 사진찍기를 그만해야 하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밥상도 그렇고 박물관도 그렇고. 다음에 이 방면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려보아야겠다. 황제 노릇 한번 하려고.

주소 :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 569-5
전화 : (031) 353-6220(예약) / 353-6223

남원하면 사람들은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십중팔구는 ‘춘향이’라고 할 것이다. 때로는 ‘추어탕’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요즈음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이란 대답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춘향이를 이야기 할 것이고, 그래서 남원을 ‘춘향골’이라고 부른다.

남원에는 춘향이에 대한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우선 지리산 입구에 가면, 계곡 가에 육모정 맞은편 계단위로 ‘춘향묘’가 자리한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들어가는 우측 길가에는 춘향이와 이몽룡이 이별을 했다는 ‘오리정’도 있다. 떠나는 임을 차마 못 떠나 보내고 버선발로 쫓아갔다는 ‘춘향이 버선발’이라는 곳도 있다.


광한루의 연정을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

그러나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이야기는 광한루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광한루를 연인들과 즐겨 찾는다. 아마도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처럼, 그렇게 깊은 사랑을 엮어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그렇게만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사랑 뒤에는 변학도라는 지저분한 인간 하나가 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광한루에서 요천에 걸린 춘향교를 건너면 사랑의 광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춘향이 테마공원이 자리한다. 춘향이 테마공원. 연인들은 이곳을 찾아 춘향이처럼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그네를 타면서 춘향이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역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춘향이가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옥에 갇힌 장면이며, 동헌의 앞마당에서 주리를 틀리는 모습도 보인다.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런저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글쎄다 과연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다섯 부분으로 나뉜 테마공원

춘향테마공원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분이 된다. 그 첫째는 만남의 장이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만남을 주제로 한다. 둘째는 맹약의 장이다. 이곳은 춘향이와 이몽룡이 서로가 사랑을 언약한 것을 주재로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랑과 이별의 장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동헌과 옥이 있는 시련의 장이다. 이몽룡이 한양으로 가고난 후, 신관사또에 의해 수청을 종용 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춘향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제의 장이다.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내려와 옥중 춘향이와 다시 만나고, 춘향이를 가마에 태워 한양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춘향전은 지금 세상을 미리 내다 본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신관사또 변학도를 나쁜 남자로 몰고 간다. 탐관오리에 여색이나 탐하는 그런 인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춘향전이 지어진 시기를 조선조 영조 때로 보고 있다. 이때는 조선후기로 계급타파와 사회개혁사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이다. 춘향전에서 보이 듯,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와 당시 사대부가의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은, 이미 사회에 팽배한 계급타파를 은연 중 내포하고 있다.

또한 신관사또를 징벌하는 내용으로 보아도, 당시의 사회개혁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때란 생각이다. 이런 춘향전과 같은 소설이 민초들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에는 이미 민초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시의 사회가 춘향이와 이몽룡, 그리고 변학도라는 신관사또를 연적으로 설정을 해놓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소설이었다는 생각이다. 조선조 말엽의 양반사회에 대한 부패상의 풍자와, 관료 봉건 제도에 대한 반항을 관기의 딸인 성춘향의 수절을 빌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1700년대 중반에 300년 뒤의 세상에서 멋대로 방종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춘향전은 판본의 이본이 5종, 사본이 약 20여종, 활자본이 50여종에 번역본이 6 ~ 7종 정도가 있을 정도로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 그 수많은 책들과 판소리까지 전해지면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십장가로 본 여인의 일부종사, 듣고 깨우쳐야

‘십장가’가 있다.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불려나가 형장에서 태형을 맞는 장면이다. 태형을 맞는 춘향이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한다. 그것이 유명한 십장가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심장가. 그것은 바로 열녀 춘향이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이 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들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 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낙루하랴"
둘째 낱 딱 부치니, "이부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이 매 맞고 죽어도 이 도령은 못 잊겠소."
셋째 낱을 딱 부치니, "삼종지례 지중한 법 삼강오륜 알았으니, 삼치 형문 정배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넷째 낱을 딱 부치니,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잖고 위력공사 힘을 쓰니, 사십팔방 남원 백성 원망한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있겠소."
다섯 낱 딱 부치니, "오륜윤기 그치잖고 부부유별 오행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 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임계신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올까. 무죄한 이내 몸이 오사할 일 없사오니, 오결 죄수 마옵소서. 애고애고 내 신세야." (하략)



어찌보면 추냥전은 이 시대를 예고한 소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자 미상에 남원이라는 곳에 한 여인과 사대부가의 도령을 설정한다. 그리고 변학도라는 여인을 참닉하는 인간 하나를 덧붙인다. 이 내용을 잘 보자. 있다고 해서 여인과의 스캔들로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가 되고 있는 가진자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변하도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회가 막장이요, 방송이 막장이다. 막장을 종용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래도 꿋꿋하게 일부종사를 하는 춘향이는 바로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신분적 차이를 부수고 천기의 딸 춘향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이몽룡이라는 남자는, 이 시대 많은 남자들에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춘향전이 지금 시대에 들려주는 진실. 그것은 무엇이엇을까? 난 이 춘향전을 보고 들을 때마다, 이 책은 지금 시대를 예견한 책이었다는 생각읗 한다.  열여섯 살의 춘향이도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임을 지켰다는데, 요즈음 사람들 과연 이렇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몽룡이는 그러한 춘향이를 믿고 멀리 남원까지 내여가 재회를 하였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그렇게 한 여인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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