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 5년인 1510년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니, 올해로 꼭 500년이 되었다. 물론 그동안 집의 형태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집을 지은 후, 여기저기 달라진 점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행랑채가 없다거나 사랑방을 감싸는 외곽 담이 없는 것을 보면, 처음에 이 고택을 지은 후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해지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정무공 오정방 고택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참 아름다운 집이다'라는 찬사를 할 수 밖에 없다. 가옥의 구성이 그러하다. 현재는 대문을 걸어 외곽 담장을 두르고 있다. 그 안에 대문채가 자리한다. 대문을 걸어 사랑채 쪽으로 나간 또 한편의 담장은 사랑채와 안채를 구별하는 사잇담이 되었다.

 


이 고택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오정방(1552 ~ 1625), 오상(1512 ~ 1573), 오두인(1624 ~ 1689)과 같은 해주오씨의 명현들이,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오정방 고택은 처음에는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252번지에 세웠으나, 조선조 효종 1년인 1650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장대석 기단이 돋보이는 사랑채

 

오정방 고택의 사랑채는 안채와 붙어있다. 장대석 기단이 이 집의 견고함을 말해준다.


오정방 고택의 사랑채는 별채로 구성되지 않고, 안채와 단일채로 구성을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ㄱ 자형의 건물에 - 자형으로 사랑과 대청, 안방을 두고, 꺾어진 부분에 부엌을 둔 형태다. 사랑채는 장대석 기단을 4단으로 높이 쌓고, 그 위에 밑이 넓고 위가 좁은 마름모꼴의 주추를 놓았다. 두 칸으로 구성된 사랑채는 측면과 앞면에 툇마루를 두었는데, 방이 끝나는 부분부터 측면으로는 난간을 둘러 멋을 냈다.

 

사랑의 앞의 툇마루는 안채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안채와의 구분을 사잇담으로 나누고, 그 마루에도 문을 달아 구분을 하였다. 사랑채의 뒤로는 조금 비껴서 사당채를 꾸며 놓았다. 사당채는 1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별도의 담장을 둘러놓았다.


사랑채의 뒤편에 자리한 사당채. 현재는 독립채로 되어있으나, 처음에는 바깥 담장 안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잇담으로 가른 사랑채와 안채

 

오정방 고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사랑채와 안채를 가르는 사잇담이다. 이 사잇담은 대문에서 시작해, 안채로 가로지르며 형성이 되었다. 사잇담이 끝나는 마루에 문을 달아 안채와의 경계로 삼았다. 툇마루는 안채의 대청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랑채와 사잇담이 만나는 곳에도 문을 달아 구분을 하였고, 툇마루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방과 대청 사이에도 문을 달았다. 사랑채에서 툇마루를 따라 안채로 들어가려면 두 개의 쪽문을 자나야만 한다.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툇마루. 이 마루는 두개의 쪽문을 달아 안채의 출입을 통제했다.

 
사잇담 안에 있는 한 칸 방의 용도는?

 

문제는 이 사잇담 안에 있는 방이다. 도대체 이 방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툇마루는 사랑채에서 안채의 대청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같은 높이의 누마루를 깔았다. 대청의 마루는 이 툇마루보다 낮게 구성되었다. 그럼에도 이 한 칸의 방 앞에 또 다시 문을 달아, 안채와 구분을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또한 이 방의 툇마루에는 난간을 드렸다.

 

밑으로는 아궁이를 두어 불을 땔 수 있도록 한 사랑채와 안채의 사잇방. 이 방을 혹 정자처럼 이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집 안에 딸이 사용을 했거나, 안주인이 아닌 여인네가 사용을 한 것은 아닐까?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을 불러 온다고 했던가? 결국 이 방에 대한 용도는 알지 못한 채, 혼자의 즐거운 상상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사잇담이 있고, 사랑채에서 안채로 오려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이 방의 툇마루에는 난간을 둘렀다.

 

현재의 대문채는 중문채로 보여

 

전체적인 집의 구조로 보면 현재의 대문채는 중문채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문채는 - 자 형으로 지어졌으며, 대문을 두고 옆으로 두 칸의 광이 마련되었다. 이런 점으로 보면 현재의 대문채는 처음에는 중문채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만한 집에서 일각문으로 대문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채와 사당을 두르는 외곽의 담장이 없다는 점, 그리고 행랑채가 없다는 점 등이 이를 말해준다.

 

현재 오정방 고택의 대문은 과거에는 중문채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문 옆에는 두 칸의 광이 있다.

 

격자살 창호가 아름다운 부엌

 

격자살 창호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된 창호를 말한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멋을 내는 이 창호는, 우리 고택에서 흔히 보이는 창호의 형태다. 오정방 고택의 부엌을 보면 이 격자살 창호를 이용해 멋을 내고 있다. 전체적인 집의 규모보다 부엌이 상당히 큰 형태로 꾸며진 오정방 고택이다.

 

안방에서 달아 낸 부엌은 3칸 정도로 구성이 되었으며, 그 위를 다락으로 꾸며 모두 격자살 창호를 달아냈다. 중앙에 부엌문을 달아내고, 부엌을 바라보면서 우측에는 또 하나의 작은 격자살 창문을 내고, 좌측으로는 까치구멍을 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락 전체를 격자살 창호로 문을 달아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두칸의 마루와 안방, 그리고 부엌이 있는 안채다. 부엌은 격자살 창호를 달아 시원하게 연출했다.

 
 
사잇담에 작은 구멍 하나, 눈을 끌다

 

집안 곳곳을 돌다가 보니, 사잇담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인다. 그저 지나치기가 쉬운 것이, 그 앞에 오정방 고택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것 같은 이 작은 구멍. 담장 밑에 있는 이 작은 구멍은 물론 배수구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배수구 하나에도 미를 생각했던 우리네의 가옥. 그것이 바로 한국의 미를 창출해낸 마음일 것이다.

인구 110만의 대도시 수원. 그곳의 의회를 대표하는 의장님께서 차가 없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몇 배 부지런하다. 그저 지역의 여기저기를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의장이 아닐 때는 지역구만 챙기면 되었지만, 이제는 수원시 곳곳을 다녀야만 한다. 34명의 의원이 있는, 수원시의회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9월 17일 오전 11시, 수원시의회 의장실에서 노영관 의장을 만났다. 그저 털털한 이웃아저씨 같은 노영관의장이 반갑게 맞는다. 사진을 찍겠다고 가운데 자리(상석)에 앉으라고 해도, 굳이 마다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겠단다. 그만큼 격이 없이 사람들을 대한다.

 

 

 

수원시의회 노영관 의장은 1967년 4월 10일에 출생을 하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지방자치 도시행정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수원시의회 7, 8, 9대 의원으로 피선된 3선의원이다.

 

수원시의회 노영관의장 대담

 

- 먼저 이번에 경기도시군의장협의회 회장님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힘들게 찾아주셨네요. 경기도시군의장협의회는 31개 시군의 의장들이 모여서 구성한 기구입니다. 서로가 정보도 교환하고, 상응해가면서 의정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뜻에서 만들어진 협의회죠.

 

- 이번 9대 의회 후기 의장을 맡으셨는데,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지?

예, 아무래도 후기에는 의원님들이 지역에 대한 현안 등을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의원님들께서 각 지역에서 주민들과 약속을 한 사업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할 생각입니다. 또한 110만 수원시민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 수원시민의 위상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수원시는 경기도의 수부도시입니다. 인구 110만을 보유한 수원시는, 전국 230개 자치단체 중 최대 규모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수원은 사실상 홀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은 선거구가 비슷한 울산광역시에 비해 2석이 부족한 4석 뿐입니다. 또한 공무원 1인이 담당해야 하는 주민들의 수는 수원시가 428명이나 됩니다. 이는 창원시가 282명, 울산광역시가 247명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습니다. 이런 점들을 중앙에 이야기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겠다는 것이죠.

 

- 의회 운영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우선은 의회사무직은 임명권을 의회에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사무직까지 집행부에서 임명을 하니, 직원들이 의회 눈치도 보아야 하고, 집행부 눈치도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걸림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회사무직의 인사권은 당연히 의회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회에는 전문 인력들이 있어야 합니다. 법안을 다룰 때마다 정말 필요한 인원이 전문직이기 때문이죠.

 

- 기초의원 공천에 대한 견해가 남다르시다는 데?

이제는 중앙에서 공천하는 그런 공천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에서 공천을 주는 방식은 유지하되,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거죠. 중앙에서 기초의원까지 공천심사를 하지 말고, 주민들이 공천권을 주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주민들의 투표로 50%, 대의원들이 30%, 지구당위원장이 20%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정당공천제가 이런 쪽으로 바뀐다면 주민들이 더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의회와 집행부가 어떻게 앞으로 관계개선을 해 나가실 것인지?

사실 그동안 의회와 집행부가 서로 어긋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회나 집행부는 모두 수원시민의 삶의 잘 향상과 지역발전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9대 후기 의회는 집행부와 서로 대승적 차원의 협력과 긴밀한 의사소통 속에, 조화와 상생, 견제와 균형의 틀을 유지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집행부에 조례안 등을 상정할 때는 의원님들이 충분히 검토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상정안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회기에 임박해서 상정안 등을 제출하면 검토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집행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하고자 하는 뜻에서입니다.

 

- 지난 번 호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돌아보는 등 많은 일을 하셨다는데?

우리 수원시민들이 34명 시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후반기 의회에서는 새로 구성된 의장단과 호흡 맞추면서, 장애인과 소외계층, 다문화가정까지 먼저 생각하며 발로 뛰는 의정활동으로, 시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의회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불편한 곳이 있으면 쫒아가 해결하고, 아픈 곳이 있다면 어루만져 주어야죠. 그것이 의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노영관 의장은 이 날 아침에도 호우로 인한 피해는 없었는지 지역을 돌아보았다)

 

 

- 전국시군구의장협의회 회장 출마를 결심하셨다는데?

그렇습니다. 이제는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많은 권한들을 지역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기초의회가 문을 연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기초의회 의원이 2,922명이나 됩니다. 2005년 제8대 의회부터 소선거구제도에서 중선거구제도가 도입되어, 기초의원들의 의정활동 범위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주민들 요구도 점차 다양화 되어 가고 있고요. 그런데도 아직 기초의회에서 갖고 있는 권한은 미비합니다. 이제는 중앙에 이런 것을 강력히 항의하여 실제로 주민들을 위한 의회가 돨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런 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전국시군구협의회장에 출마를 생각한 것이고요.

 

- 차를 없애버리셨다고 들었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신지?

예, 사실 저희 기초의원님들의 활동비는 많지가 않습니다. 저희들은 지역 주민들의 많은 애경사에 일일이 찾아보아야 합니다. 또 생활도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차까지 있으면 생활이 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저희 집 사람이 작은 소형차 한 대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건강을 생각해서도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죠. 집에서 의회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15~20분이면 충분합니다.

 

- 끝으로 수원시민들께 당부하고 싶으신 것은?

저희 34명의 의원들은 늘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집행부와 함께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시민의 곁에서 현장정치, 생활정치를 하면서 시민들의 의견이 수렴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수원시민여러분들께서는 수원시의회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또,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따끔한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오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지역을 취재하시다가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을 주세요. 집행부와 함께 현안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원시의회 노영관 의장과 대담 중인 온누리

우리우리 사랑은 운명같아요

우리우리 사랑은 숙명같아요

하늘만이 우리사랑 알고 있을거예요

불타오른 사랑이 너무나 뜨거워

떠오르던 저 태양도 놀라워 숨어버렸네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두 사람은

몸을 태워 말하리 사랑한다고

타라 타라 타라

아낌없이 모든 것을 태워라

우리사랑 불타는 사랑

 

 

‘불타는 사랑’의 가사이다. 사람이 이렇게 불타는 사랑을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을 것 같다. 수원 화성을 배경으로 옥상 무대에서 신나게 노래를 하는 가수 정은. 10세 꼬마부터 80세 할머니까지 신이나 손뼉을 친다. 메들리까지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다음 일정이 있다고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정은.

 

그녀는 2003년 KBS 도전 주부가요 스타와 KBS 전국 노래자랑에 잇따라 참가하여, 놀라운 음색을 선보이며 가수활동을 시작해 벌써 5집을 낸 가수이다. 그동안 불타는 사랑을 비롯해 화성팔경, 무정한 사람, 춘천막국수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며, 이번 6집은 양평군 홍보대사답게 ‘두물머리 사랑’이란 노래를 준비했다고 한다.

 

트롯가수 정은과의 대담

 

- 가수활동은 언제부터?

한 10년 정도 된 듯하네요. 10년 전에 첫 앨범을 내고, 이번에 6집이 나오니까요

 

- 수원에 정착하신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수원으로 온지는 한 15년 정도 되었어요. 그동안 파장동 노래교실 등에서 주민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기도 하고요.

 

- 노래교실 회원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한 30여 명 정도 되는 듯합니다. 회원들과 함께 많은 곳에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봉사로 인해 제17회 대한연예예술인 사회봉사상과 한국연예스포츠 아름다운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고요.

 

 

 

- 위문공연은 주로 어디로 다니시는지?

고아원과 어르신들이 계시는 양로원, 그리고 교도소 등을 다니고요. 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은 매달 두 번씩 찾아뵙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한 번에 한 두 시간 정도 노래를 들려드리고 오죠.

 

- 위문공연을 다니시면서 느끼신 점은?

요즈음 사람들은 물질에 너무 집착하는 듯해요. 저희들은 그런 것을 떠나 저희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과 만나 살가운 정을 느끼는 것이죠. 물론 저희들은 노래봉사를 하러 가지만, 사실 그 분들에게서 심적으로 얻어오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게 되고요.

 

- 양평군 홍보대사가 되셨던데?

예 지난 양평군 9월 월례회 때 홍보대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고요.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다니면서 노래로 재능기부를 하려고요.

 

- 봉사를 하기 위해 콘서트를 열었다고 하는데?

예, 여주와 남양주에서 콘서트를 가졌어요. 여주에서는 수익금 전체를 장학금으로 기부를 했고요. 올해 세 번째 콘서트를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수원에서 했으면 하시데요.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이번에는 꼭 수원에서 하려고요(웃음)

 

 

잠시 동안 시간을 이용해 만나 본 봉사하는 가수 정은. 또 다른 무대가 있어서 급히 가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옥상을 떠난다. 늦깎이 가수지만 앞으로 많은 활동을 기대해 본다.

 



9월 18일 오후 6시 30분경. 땅거미가 질 무렵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81번지. 지동 13통장 댁의 옥상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노을빛, 옥상음악회’가 열린단다. 요즈음 지동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생겨난다. 무대의 뒤 배경은 화성이다. 뒤편에 길게 자리를 하고 있는 화성에 조명이 들어온다.

 

옥상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앉아 있다. 10세 어린 꼬마부터, 80세의 할머니들까지 신바람나게 박수를 쳐 댄다. 세상에 어찌 이런 동네가 다 있을까? 그리고 가정 집 옥상에서 어떻게 음악회를 할 생각을 한 것일까? 거기다가 통장님은 집안 화장실까지 모두 주민들을 위해 개방을 했단다.

 

 

 

시장님도 노래 한 곡은 피해갈 수 없는 곳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염태영수원시장이 함께 자리를 했다. 일정을 바꾸어 이곳이 궁금해 달려왔다는 것이다.

 

“화성을 배경으로 하늘이 맞닿은 곳, 옥상에서 음악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입니다. 지동 주민들은 우리 수원에서 가장 행복한 분들이십니다. 올 해 안 좋은 기억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일일 뿐입니다. 이제 그런 것을 다 잊어버리시고.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손수 준비해온 과일까지 내주는 염태영시장도, 이 옥상음악회의 노래 한 곡은 피해갈 수 없었다.

 

  옥상음악회에서 노래를 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우측에서 두 번째)

 

이날 옥상음악회는 송정희 외 7명이 들려준 오카리나 연주를 시작으로, 트롯가수 정은의 가요무대. 레인 하모닉스 밴드의 노래, 그리고 최수정과 학생들이 들려 준 플루트 앙상블에 이어 김관수의 성악독창으로 이어졌다.

 

선생님도 춤을 추게 만드는 옥상음악회

 

잠시 화성의 야경에 취해 있을 때, 갑자기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무슨 일인가 해서 무대로 눈길을 돌렸더니, 얌전한 플루트 선생님께서 남학생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얌전한 성생님도 춤을 추게 만드는 옥상음악회, 그래서 옥상음악회는 누구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하는가 보다.

 

플루트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학생과 함께 멋진 춤을. 뒷배경인 화성의 조명이 아름답다

 

음악회가 진행이 되는 중간중간 푸짐한 경품추천 또한 옥상음악회의 재미를 더했다. 자전거를 비롯해, 참기름, 김치 등 지역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내 준 경품을 받아든 사람들은 지동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자랑이다.

 

“저는 지동이 이렇게 좋은 동네인지 몰랐어요. 안 좋은 기억만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 집에 왔다가 옥상음악회라고 해서 궁금해서 왔어요. 정말 부러운 동네네요. 이제 지동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모두 지워야 할 것 같아요.”

 

 가수 정은이 ‘불타는 사랑’을 부르고 있다

 

지동에서 한 참 떨어진 고색동에서 왔다는 ‘김아무개(여, 47세)의 말이다. 그만큼 지동이 요즈음 달라지고 있다. 성을 끼고 조성된 마을 지동.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으로 인해 건물조차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어 수원에서도 낙후된 마을이지만, 지동사람들은 이제는 그 화성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날마다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기에, 지동사람들은 딴 곳으로 이사를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변해가는 지동을 마음에 품은 채.

 

9월 17일, 태풍으로 인해 온 나라가 물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가뭄이 들면 가물어서 걱정, 비가 오면 물난리도 걱정인 나라.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치산치수를 잘해야 명군이라도 했는데, 본인들이야 잘했다고 자화자찬을 어지간히도 해대지만, 과연 민초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녁 무렵에 수원천 옆 팔달주차타워 옥상에서는 이색 모임이 하나 예정되어 있었다. ‘수원시민이 만든 단편영화제’가 상영예정이었다. 그런데 비로 인해 취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천시에는 수원제일교회 1층에서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무한으로 주는 행복

 

생각해보면 참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다. 그저 마을에 무엇이라도 하나 더 주려고 안달이다. 그 안달이 문화향수까지 충족시킨다. 못골(지동의 순 우리말)은 그래서 요즘 부쩍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수원시민이 만든 단편영화지만, 그래도 영화는 영화인데 7편이나 상영을 한다잖아 글쎄’. 어느 마을 주민의 말마따나 이런 횡재도 있다.

 

물론 전국을 강타한 태풍으로 인해, 50여 몀의 관람객만이 이곳을 찾아왔다. 6시 30분부터 시작하기로 한 영화상영이다. 하지만 영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30분 동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무대에 올라 클래식기타 연주와, 노래도 들려준다. ‘못골문화사랑’이란 지동시장에서 운영하는 문화모임의 친구들이다.

 

 

 

실수도 아름답게 보이는 아마추어들

 

이날의 단편영화제는 못골문화사랑과 수원시민감독 모임인 ‘카사노바’가 주관을 하고, 수원시와 지동주민센터, 마을르네상수센터가 후원을 하였다. 영화는 모두 7편으로 단풍잎 속으로(21분 멜로. 오점균), 접촉과 접촉사이(7분 40초 다큐, 김애숙), The Bar(24분 멜로, 강제욱), 반창꼬(7분 드라마, 이정희), 오디세이 2030(17분 SF, 이정훈), 예쁜 봄날(4분 30초 드라마, 강성민), Big Maich(4분 45초 블랙코미디, 윤수란) 등 7편이 상영이 되었다.

 

그런데 첫 번째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노트북에 다운을 받아 실행을 한 영화가 잠시 후에 화면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엔지니어도 영화를 만든 감독들도 진땀을 흘린다. 주관을 한 사람들의 속이야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다시 상영이 되었다.

 

 

 

“부러우면 지동으로 이사 와”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끊어졌는데도, 관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중단되었는데도 그냥 계세요?”

“기다려 주어야죠. 시민들이 자신이 비용대고 촬영하고, 편집을 했다는데요. 그리고 첫 작품이라는데 우리가 보아 주어야죠”

 

참 대단한 분들이다. 이래서 이곳이 요즈음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 골목마다 재미가 넘쳐흐른다. 그 재미에 빠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보면 모이신 관객들의 얼굴들이 낯이 익다.

 

“오늘도 오셨네요.”

“아! 왔어요. 영화보러 오셨나보네요”

“예, 이 동네 참 여러 가지 볼 것이 많아요.”

“부러우시면 지동으로 이사 오세요.”

 

환하게 웃으며 이사를 오라고 하시는 할머니. 이젠 지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영화는 다시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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