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벽화 길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가 있다. 우리나라 최장 벽화골목을 자랑하는 지동 벽화 길부터 지난 해 생태교통으로 한 달간 뜨거웠던 행궁동 벽화골목과 앙카라 벽화 길들도 유명하다, 곳곳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수원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여기저기 자투리땅을 이용한 쌈지공원 등도 수원의 즐거움이다.

 

요즈음은 꽃철이다. 어딜 가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봄이 무르익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봄은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고 한 것일까? 모처럼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에 자리하고 있는 경기도청 주변에 만개한 벚꽃구경을 나갔다.

 

 

꽃과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볼거리

 

봄은 역시 꽃이 있어서 좋다, 꽃구경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그런 구경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은가? 도청 주변으로 만개한 벚꽃이 장관을 연출하고,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 봄을 만끽하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나와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도청 주변의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고 난 뒤, 팔달구 팔달로 28에 소재한 수원문화원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노랗게 핀 개나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흰 벚꽃과 목련, 그리도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가 함께 어우러진 팔달산은 그야말로 사람들로 만원이다.

 

“정말 장관입니다. 이렇게 한 곳에서 여러 종류의 꽃을 볼 수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올해는 시기별로 피던 꽃들이 날씨 탓인지 모두 함께 피어 꽃구경이 더욱 즐겁습니다.” 가족과 함께 꽃구경을 나왔다는 이아무개(여, 33세)의 말이다.

 

 

수원은 벽화 마을이 맞네.

 

수원문화원의 축대가 노랗게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노란 개나리꽃 밑으로 아름답게 조성한 벽화가 이채롭다. 여기저기 솟대를 형상화한 많은 조형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밑을 지나면서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포즈를 취한다. 이곳의 벽화는 딴 곳과는 달리 벽에 조형물을 설치해 벽화를 대신했다.

 

“우리나라 여러 곳을 다니면서 벽화를 구경했지만, 이렇게 꽃과 어우러진 벽화는 처음입니다. 물론 많은 곳들이 꽃을 함께 심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연적으로 어우러진 개나리꽃과 조형을 한 벽화는 이곳이 가장 멋집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이렇게 아름다운 벽화는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꽃구경을 하러 왔다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여기저기 널린 소공원도 아름다워

 

벚꽃과 벽화를 구경하고 난 뒤 매산로로 접어들었다. 수원시 교동인 이곳은 지난 날 젊은이들이 가장 즐겨 찾는 거리였다. 지금은 로데오상가거리라고 하는 이곳은 여기저기 길거리 갤러리가 있어 유명한 곳이다. 이곳 매산로 119에는 수원시여성가족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성가족회관은 여성의 복지와 권익증진, 능력개발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2011년 수원시가 민간 위탁경영을 하는 곳이다.

 

여성가족회관 뒤편에는 지난해부터 조성을 한 작은 소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작은 공간을 수원시민들과 여성가족회관을 찾는 부모와 어린이들을 위해 쉼터로 조성한 공간이다. 여기저기 널린 의자가 이채롭다. 거기다가 작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해 심어놓은 나무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아르신 한 분은

“수원은 어딜 가나 이렇게 쉴 곳이 많아서 참 좋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루 종일 걷거나 구경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수원은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가 보면 이렇게 쌈지공원을 많이 조성해 놓아서 편하다.”고 한다.

 

봄철에 가장 구경하기가 좋다는 수원. 각 주민센터마다 조성한 다양한 벽화와 자투리땅을 이용해 조성한 쌈지공원, 수원이 좋은 이유이다. 또한 봄철에 많은 사람들이 수원을 즐겨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흙길로 잘 조성된 생태통로. 이 구간이 에코브리지이다. 밑으로는 차도가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길을 걷기를 좋아한다. 자연친화적인 그런 길을 걷노라면 저절로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수원에는 이런 자연친화적인 길들이 많이 있다.사람들은 늘 이런 길을 걷지는 못한다고 해도, 가끔은 그런 길을 한 번씩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길을 걷는다.

 

수원시에 조성된 광교신도시. 광교신도시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원천동, 하동과 팔달구 우만동, 장안구 하광교동, 상광교동 및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일원에 11,282규모로 조성되고 있다. 광교신도시의 관할구역은 수원시가 전체의 88%, 용인시가 나머지 12%를 관할하고 있다.

 

 

31천세대의 가구에 77천명이 거주하게 될 광교신도시는 개발사업의 주체가 경기도지사, 수원시장, 용인시장, 경기도시공사사장 등이다. 20046월에 지구지정, 200512월 개발계획 수립, 20076월 실시계획 수립, 200711월에 착공하였으며, 201112월에 1차 준공을 마쳤다.

 

도시의 기능은 주민이 최초로 입주한 20116월에 시작되었으며, 도시의 완성은 주민입주, 공공청사의 입주, 상업용지의 활성화 등 도시의 기능이 완료되는 시점인 2018년 이후로 본다. 아직도 광교신도시는 여기저기 공사를 하는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완전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곳이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곳

 

이 광교신도시에는 광교산을 비롯하여, 광교중앙공원, 광교역사공원, 광교호수공원, 안효공원, 혜령공원, 사색공원, 연암공원, 다산공원 등이 들어서게 되며, 수원박물관과 광교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광교신도시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생태통로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걷는 명소가 되었다.

 

이 생태통로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길이다. 이곳에는 모두 10개의 끊어진 구간을 잇는 에코브리지가 있다. 도로 위를 잇는 이 에코브리지에는 숲을 조성해, 동물이나 사람들이 이곳이 끊어진 구간이 아닌 자연스런 숲처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도록 조성을 했다. 이와 같이 에코브리지와 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는 광교신도시의 녹지율은 전국 신도시 중 최고수치인 41.7%나 된다.

 

맥문동 등이 지천으로 갈린 공원에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정말 이 길로 여우가 다녔을까?

 

광교신도시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생태통로. 지난 해 조성을 마친 이 길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길이다. 수원 봉녕사 입구서부터 걷기 시작해 광교산까지 이어지는 이 길에는 10개의 다리가 있다. 에코브리지는 집승들이 도로로 인해 끊어진 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조성을 한 구조물이다.

 

10개소의 다리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반딧불이다리, 나비잠자리다리, 소나무다리, 갈참나무다리, 풍뎅이다리, 여담교, 하늘소다리, 무지개다리, 꽃더미다리, 새터다리 등이다. 다리마다 이름이 다르 듯 그 분위기도 다르다. 그래서 이 길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 걷는다. 봉녕사에서 나비잠자리다리로 가는 길이 바로 여우길이다.

 

 

왜 이 길 이름이 여우길일까? 올해는 꽃들이 지난해보다 일찍 피었다. 날씨도 예년에 비해 한결 따듯해졌다. 3월의 끝 날에 찾아간 생태통로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걷고 있다. 아스팔트에 지친 발을 이렇게 흙을 밟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길가 주변에는 작은 정자 등 쉼터가 있고, 맥문동 등 많은 꽃들이 심겨져 있다.

 

아직은 지난해 생태통로를 조성하면서 식재를 한 나무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수년 내에 이 길은 아름다운 숲이 우거질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다니기라도 한 것일까? 여우길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타박타박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본다. 예전 같으면 이 길을 여우들이 지났을 것이라고. 수원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된 광교생태통로. 봄은 그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수원에는 꽃 구경을 즐겨 할 만한 곳이 몇 곳이 있습니다

그저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푹 빠질 수 있는 곳이죠

그 중 한 곳이 수원 월드컵 경기장 주변의 진달래 동산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동산을 다녀왔습니다

구경 좀 하세요~~~~

 

 

 

광교저수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곳이다. 이 광교저수지를 끼고 조성한 목책 길과 저수지 수변 길을 한 바퀴 돌면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걸을 때는 그 시간이지만 잰 걸음으로 걸으면 40여 분 정도면 족하다. 일요일인 23일 오후, 봄이 성큼 다가올 것 같은 날에 광교로 향했다.

 

봄날, 그것도 휴일의 광교산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차도에도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탄 차량들이 긴 주차장처럼 늘어서 있다. 저수지 목책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목책 길로 들어서자 목책 길가에 늘어선 벚꽃나무들이 모두 곧 터질 듯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물결

 

광교저수지 목책 길은 사람들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목책 길을 지나 수변 길로 접어들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광교산의 흐르는 물이 맑다. 저수지에 떨어진 낙엽들이 봄의 정취를 더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천천히 흙길을 밟기 시작했다. 도시에 살아가면서 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에 익숙해 진 발이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길을 만난 듯하다.

 

걷다가 보면 노란색 꽃을 피운 생강나무 꽃들이 보인다. 산수유와 같은 시기에 피는 생강나무 꽃은 공기가 좋은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이다. 이 나무는 꽃이 만개하기 전에 따서 차로 끓여먹기도 한다. 수변 길은 오르고 내림이 있는 길이다. 목책 길이 사람들로 만원인데 비해 이 길은 그저 혼자 걷기 닥 좋은 길이다.

 

 

길을 걷다가 보니 따듯한 봄 날씨로 인해 땀이 등줄기를 타도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띤다. 봄을 맞이한 동물들도 이런 길을 걷는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좁은 길이라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비켜가야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만나면 고개 인사라도 하고 지난다. 길을 비켜 주는 것이 고마워서이다.

 

꼴불견 졺은이들, 보는 사람들 생각도 해주어야

 

요즈음 젊은이들의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은 가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을 아니라고 해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걷는 길이다. 젊은이 한 쌍이 보기 흉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라고 해도 이런 공공장소에서는 좀 삼가주면 좋으련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참 딴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 하지를 않는 것 같아요. 공공장소에서도 저렇게 보기 흉한 자세로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면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은데 말이죠.”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보기 흉하다고 한다. 하긴 이런 산책길 의자에 누워서 두 사람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그리 보기가 아름답지는 않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돌아 본 광교저수지 수변 길. 이제 곧 벚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들 것이다.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한 바퀴 돌아본 수변 길.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난 파워소셜러 팸투어 때 이곳을 찾은 블로거 한 분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수원 사람들은 정말 좋은 고장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역사와 자연, 그리고 수많은 볼거리들과 환경이 살아있는 곳들. 광교산, 수원천, 화성, 전통시장 이 모든 것들이 지나고나면 늘 그립습니다. 수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인 듯합니다.”

 

마재란 말이 쉬어간다는 곳이다. 남양주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760년 경기도 광주 마재에서 진주 목사였던 정재원의 아들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다산 정약용(요한) 정약전, 정약현 등이 선조 28년인 1595년 마태오 리치가 펴낸 한역서학서인 <천주실의>를 읽고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곳이다.

 

마재성지는 103위 순교성인이신 성 정하상(바오로)과 성 정정혜(엘리사벳) 남매의 탄생지이다. 일반적으로 성지란 순교한 장소인데 비해, 마재는 한 가정의 신앙 출발지라는 점이 다르다. 신유박해 때 정약종은 참수형을 당했고, 정약전은 정약용과 함께 귀양을 떠났다. 이 마재의 형제 중 정약전은 진주목사 정재원의 둘째아들이다.

 

 

독실한 천주신앙의 가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나 그 곳에서 1814년에 <자산어보>를 저술, 한국 최초의 어류생태서를 완성했다. 그는 평생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실학자로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한 개혁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를 가까이 했다는 이유로 유배당했지만 유배기간동안 학문에 더욱 힘써서, <일표이서>를 비롯한 5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또 한 사람 강화도 출신인 황사영이 있다. 황사영은 1790년 정조 14, 16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해서 진사가 되었으나 천주교에 입교를 한 후 관직에 나아기지 않았다. 정약현의 딸 명련과 혼인하셨으며, 정약용에게 교리를 배웠고 주문모 신부를 만난 다음 측근으로 활약하다가 1798년 아현동으로 옮겨 활동을 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으로 피신, 그곳 토굴에서 박해받는 조선교회의 참상을 알리고자 북경주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사영백서이다. 북경 동지사 편에 끼어 보내려고 했던 이 편지는 도중에 발각되어 92일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황사영은 능지처참 형을 받았다. 아내인 명련과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마재성지를 돌아보다

 

마재성지는 딴 곳의 성지에 비해 그리 큰 편은 아니다. 한옥으로 지은 성당에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건너편에 마재성지가 자리한다. 마재성지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 편에 사무실이 있고, 103위 성인들의 그림과 정약용 일가를 상징한 듯한 모임을 하고 있는 인형들이 보인다.

 

 

 

마재성지의 정씨 형재 중 정약종의 업적 가운데는 최초로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가 있다. 주교요지는 모두 43쪽으로 된 한글교리서이다. 이렇게 정약종의 형제들이 어릴적부터 천주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했던 터전. 성지 안에 조형물로 세운 칼 십자가 상이 있다.

 

정약종이 잡혀가기 얼마 전에 그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작은 십자가들이 빛나는 것을 본 교우가 약종이 맞게 될 수난의 증표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한 많은 작은 십자가를 입힌 칼 십자가 상은 바로 정약종의 꿈을 형성화 한 것이다. 형리가 그의 목을 베기 위해 나무 형틀 위에 머리를 대라고 하자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 보다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죽는 것이 낫다며 바로 누워서 형을 받았다고 전한다.

 

 

입구에서 우측으로는 십자가의 길 14체가 조성이 되었으며, 좌측동산 길은 마재 명상길이다. 성지를 한 바퀴 돌아본다. 박해 때마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요즈음 사람들은 과연 그런 고통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종교를 지킬 수가 있기는 할까? 어쭙잖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성인인체 하는 무리들이 가여워지기까지 한다.

 

화성을 축성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던 다산 장약용.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들렸던 다산유적지. 그리고 그가 태어났던 천주신앙의 가족발상지인 마재성지. 어찌 보면 다산이 그 많은 저서를 남긴 것도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마재 명상 길을 걸어보면서 세상의 모든 번뇌를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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