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느림보타운 거북시장 음식한마당‘. 거북시장은 수원에서도 그 역사가 가장 오랜 전통시장 중 한 곳이다. 예전 거북시장 인근에는 영화역과 객사가 있었다. 이곳은 장영외영 군사들이 묵는 곳이었고, 더구나 정조의 능행차 때도 이곳 영화역 앞을 지났다. 또한 한양으로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이 장안문을 벗어나 이곳을 거쳐야만 했던 곳이다.

 

이 시장 일대는 영화역에 있는 말들을 키우는 마방이었다고 한다. 18세기 우리나라의 상권의 형성은 개성과 수원, 안성을 잇는 ‘의주로(義州路)’가 바로 삼남대로 중 한곳이었다. 개성상인인 ‘송상’, 수원의 ‘깍정이’, 그리고 안성의 유기상인 ‘마춤이’ 등이 그것이다. 수원의 상거래 중심지는 당연히 거대한 마방이 있는 영화역(현재의 영화동사무소 인근)이었을 것으로 본다.

 

 

 

땅 주인의 별명으로 지어진 이름 거북시장

 

정조대왕은 당시 화성인근에 6개소의 장시를 개설하도록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 중 한곳이 바로 거북시장이다. 거북시장은 수원상권의 발원지였으며, 정조의 강한 국권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당시 영화역이 500여 평 규모에 말을 키웠다는 것을 보면, 이곳이 상당히 번화한 장시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거북시장에는 200여개의 점포들이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거북시장은 수원의 재래시장 중에서도 그 넓이로 친다면 1~2위 안에 들어갈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 곳에 집단으로 형성되기보다는, 여러 길과 골목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거북시장 상인회 차한규(남, 59세) 회장은

 

“이곳의 시장 이름이 예전에는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거북시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30~40년 정도인데, 이곳 일대의 땅이 모두 한 사람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별명이 ‘거북이’였는데, 시장 이름을 그 별명으로 부르게 된 것이죠” 라고 한다.

 

 

 

밤늦은 음식문화제 현장을 돌아보다.

 

원래 제2회 거북시장 음식문화제는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열렸다. 지역의 상인들이 시장 중심의 도로 양편에 부스를 설치하고, 중앙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축제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팔았다. 하필이면 행사 날과 e-수원뉴스 시민가자들의 전주, 충무를 돌아보는 워크숍 일정이 같아, 할 수 없이 막판에 시장을 찾을 수밖에.

 

전주와 충무를 거쳐 수원에 도착한 시간이 14일 오후 6시 30분경. 시민기자들과 헤어져 거북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중심가에 도로는 사람들로 들어차 있고,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인해 그야말로 거북시장 일대가 온통 시끌벅적하다. 거기다가 시간이 배가 고파오는 때라, 음식냄새로 인해 시장 끼가 더 돈다.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자리에 앉았다. 이런 좋은 곳에 와서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그도 실례라는 생각에서이다. 축제는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누적된 피로와 속이 허한데, 술을 한 잔 마시면 탈이라도 날 것 같아 따끈한 국물이 있는 홍합탕과 안주를 시켜놓고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 본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작은 행복을 느끼는가 보다. 가끔 이렇게 지인들과 한 자리에 앉아 술을 한 잔씩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소중하단 생각이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아는 분들이 들려 인사를 하고는 한다.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게 거북시장의 음식한마당은 밤이 깊어가는 데도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3일 동안 장사를 했다는 상인회의 한 분은

 

“정말 피곤합니다. 새벽부터 준비를 해서 밤 10시가 넘도록 서서 손님들을 맞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을 3일씩이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노동입니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좋기는 하지만, 내 년 부터는 이틀 정도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기도.

 

파장동에서 왔다는 어느 여성은

 

“이렇게 시장 길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즐겁죠. 물론 준비를 하는 집행부나 음식을 파시는 분들은 힘이 드시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싼 가격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이런 행사가 여기저기 많이 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다.

 

수원 영화동에 조성 된 느림보타운 거북시장 음식한마당. 그 축제에서 점점 깊어가는 10월의 밤을 즐긴다. 그래서 축제는 계속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 보다.

이산 정조는 화성을 축성할 때, 직접 화성축성 장소까지 행차를 하기도 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보면 8일 간의 화성행차(1795년 윤 2월 9일 ~ 16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은 물론, 행차에 들어간 비용과 물품, 재료, 비용 등 하루의 일과를 자세히 적고 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모신 현릉원에 참배를 한 후 8일간의 행차 중 넷째 날인 윤 2월 12일에 오후와 야간에 화성에서 두 차례 대단위 군사훈련을 한다. 이 군사훈련의 모습은 ‘성조(城操)’와 ‘야조(夜操)’라고 하여, 김홍도의 그림 ‘서장대 성조도’와, <화성성역의궤> ‘연거도’ 등에 자세히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연거도에 보면 횃불을 든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으며, 성안의 집집마다 등에 불을 밝힌 모습이다.

 

 

 

이산 정조의 꿈인 야조

 

정조는 왜 두 차례에 걸쳐 화성에서 군사훈련을 강행하였을까? 정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무단히 노력을 한 군왕이었다. 그런 정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화성에 행차를 한 것도, 군사 훈련을 두 차례 실시한 것도 알고 보면 그 안에 내재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즉 친위부대인 장용영 외영의 1만 명이 넘는 군사의 막강한 군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은 팔달문 일대에 주둔하는 팔달위에 3,218명, 행궁 일대인 신풍위에 1,651명, 화서문 일대의 병력인 화서위에 3,028명, 장안문 일대인 장안위에 병력이 3,098명, 창룡문 일대의 병력인 창룡위에 2,906명이었다. 그 전체 병력이 자그마치 13,899명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군사훈련을 했다고 하면, 그 위세는 실로 대단했을 것이다. 더욱 장용영의 군사들은 가장 무예가 뛰어난 군사들로 구성되었다고 하면, 그 훈련을 보면서 누구도 왕권에 대한 도전을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훈련자체가 실로 어마어마한 압박으로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창룡문 일대에서 벌어진 야간 군사훈련

 

제49회 화성문화제의 둘째 날인 10월 8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일대에서 벌어진 ‘화성, 정조의 꿈 야조’는 큰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지난해까지 바로 코앞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 시범단의 숨소리와 마상재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 장용영 군사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보다 시연장을 더 넓혔다. 관객들은 도로건너 연무대 앞에 자리를 틀었고, 시연은 창룡문 앞 잔디광장 일원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올해 야조를 기대한 것은, 정조 당시 그 숨 가쁘게 변화하는 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인지. 한 마디로 올해 야조는, 전혀 야조답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넓고 크고, 화려한 조명과 음향 등은 대단했다. 그러나 정조의 꿈인 야조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곳에는 정조의 꿈은 없었다. 그저 화려하게 포장된 그야말로 ‘총체공연’인 공연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처음 20여분 동안 무예24기 시범단의 모습은 늘 보던 대로였다. 늘 보아오지만 창, 검, 봉 등 <무예도보통지>에 보이는 무술과 마상재 등을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보여주었다. 다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그들과 함께 호흡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문제는 정조가 이곳으로 행차를 한 후이다.

 

야간군사훈련의 의미도 해석되지 않은 야조

 

그런 데로 연희가 시작되나보다 했더니, 갑자기 창룡문을 화면을 삼아 스크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새장 안에 갇힌 새가 날고, 말을 탄 군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행기가 폭격을 하고 난리법석을 떤다. 아마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상징한 듯하다. 관람객들이 웅성거린다. 무슨 이유인지 이해가 가질 않기 때문이다.

 

그 후에 나타나는 것은 문에서 쏟아져 나온 무희들이, 창룡문 문루에서 떨어져 내린 긴 천을 끌어다 놓더니, 변형된 도살풀이를 추기 시작한다. 사도세자의 넋이라도 달래 보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이때쯤엔 이미 ‘야조는 물 건너갔다.’라는 느낌이다.

 

 

 

 

정조의 명에 의해 야간군사 훈련이 행해진다. 성문으로 쏟아져 나온 장용영의 군사들과 적들이 서로 진을 형성한다. 그리고는 ‘학익진을 펼쳐라’라는 호령과 함께 양편이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끝이 났다. 성문 양편에서 발사가 되는 신기전은 폭죽에 불과했다. 신기전의 위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아이들의 장난과 진배없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거기에는 장용영의 힘도, 정조의 꿈도 없었다. 결국은 이 마무리도 무예24기 시범단이 그나마 분위기를 살려주었을 뿐이다.

 

마지막은 더욱 가관이었다. 정조가 훈련에서 승리를 한 ‘장용영 군사들을 위해 연희를 베풀라’고 명령을 했는데, 신칼을 든 무용수들이 나와 난리를 친다. 신칼은 죽은 넋을 위로하기 위해 추었다는 춤이다.

 

한 마디로 실망스런 야조였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 만들어진 야조는, 그렇게 허무함만 남기고 끝났다. 수원에는 화성이나 야조, 무예 24기 등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분들이 많다. 적어도 이렇게 광대한 무대를 사용할만한 야조를 생각했다면, 연결조차 되지 않는 이상한 물건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야조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한 학습을 해야만 했다.

 

 

실망만 가득안고 돌아서는데 야조를 늘 보아왔다는 한 시민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린다.

 

“수원시민을 배제한 야조는 있을 수 없다. 수원시민들은 정조의 꿈에 당연히 동참을 해야 한다. 지난해에도 횃불을 들고 행사장에 참여를 해, 우리들의 행사라는 긍지를 가졌다. 그런데 왜 우리가 막대한 예산을 서울사람들에게 퍼주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수원시민들은 허수아비를 만들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그들만의 잔치를 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연결도 안되고 이해도 가지 않는 이런 야조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조대왕의 꿈을 찾을 것인가? 행사를 주관한 수원문화재단 관계자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2013년은 수원화성문화제가 50회를 맞이한다. 제발 그 50회 야조에서는 진정한 정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야조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49에 소재한 수원화성박물관(관장 이달호)은 화성 행궁 앞 매향교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 수원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화성박물관에는 하루 700여명 정도가 관람을 하고 있다. 박물관 2층 전시실에는 상설 전시공간으로 수원화성의 축성과정을 보여주는 ‘화성축성실’과,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한 인물과 정조의 8일간의 행차 및 화성에 주둔하였던 장용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성문화실’이 있다.

 

이 화성박물관을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중에 꼬마손님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찾아들었다. 아이들은 정을 이용해 돌을 쪼아도 보고, 성돌을 나르기도 하는 등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엄마의 가자는 소리도 못 들은 체, 그저 열심히 돌을 깨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축성체험

 

아이들의 재미가 쏠쏠한 곳

 

박물관 앞에서는 아이들의 축성체험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대패질도 해보고, 화성 축성 때 돌을 옮기고 쌓는 도구인 유형거, 대거, 평거, 발차, 단기, 목저를 움직여보기도 하고, 거중기와 녹로를 시험해 보기도 한다. 일가족은 듯한 부모님과 딸들은 땅을 다질 때 사용하던 지경다지기도 해본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체험들이 많아, 아이들은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이 시키는 데로 곧잘 따라한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와성문화제 구경을 왔다는 정아무개(여, 48세)는 아들과 함께 녹로시험을 하다가

 

 

화성박물관 2층에 마련된 축성실(위)와 문화실(아래)

 

“아이들에게 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체험행사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어딜 가도 이런 행사를 볼 수가 없는데, 더욱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전시관에는 우리 선조들의 힘과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전시실이 있어서 보람된 날이 된 것 같다.“ 라고 한다.

 

박물관 1층 체험실에서 가마를 타고 있던 용인에서 왔다는 이영경(12, 초5년)과 이효영(10, 초 3년) 자매는, 여러 가지를 보았다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체험을 하면서 화성에 대한 중요성과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일가족이 땅을 다지는 지경다지기를 하고 있다

 

화성박물관 화성축성체험을 한창 취재를 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기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사람을 좀 소개해 달라면서 부탁을 한다.

 

“화성박물관 안내 데스크를 맡아하시는 분 좀 소개 좀 해주세요. 저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 분 정말 고마움을 표현할 수가 없네요. 처음 수원을 찾아왔을 때, 그 분이 얼마나 자세하게 소개를 해주시는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 분이 수원에 계시다는 것도 정말 고맙고요.”

 

 

박물관 1층에 마련된 어린이 체험실과 가마타기

 

화성박물관의 미소천사 정혜숙 인터뷰

 

화성박물관은 주말마다 공연이 있어 자주 찾는다. 갈 때마다 안내데스크에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는 정혜숙(여, 35세)은 언제보아도 한결같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를 한다는 것이 힘도 들 텐데, 언제나 미소로 그 많은 사람들을 대한다. 10월 7일, 화성문화재 기간과 휴일이 중복되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인데도 염치불구하고 잠시 인터뷰를 요구했다.

 

-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예, 화성을 구경 오시는 분들은 70~80% 정도가 저희 박물관을 찾아옵니다. 대개는 저희 박물관도 둘러보지만, 여기저기 볼 곳을 상세하게 알려드리고는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알려드리는 코스가 달라지죠. 대개 이곳에 오시면 2~3시간 정도를 구경하시겠다는 분들이 가장 많은데, 그 시간에 맞게 안내를 해드립니다.

 

 

 

- 오시는 분들에 따라 코스를 정해주는 것인지?

그렇죠. 부모님들과 아이들에 따라 안배를 해드리는 것이죠.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과 어린 아이가 같이 오면, 부모님들도 참 난감해 하십니다. 서장대를 오른다고 하면, 초등학생은 괜찮지만 어린아이는 힘이 들거든요. 또 아이를 안고나 업고 올라가자면 부모님이 힘들어 지실 테고요. 그런 점을 안배해서 코스를 정해드리고는 하죠.

 

- 하루에 몇 명씩이나 안내를 하는지?

하루에 350명 가량 안내를 합니다. 많은 때인 주말이나 휴일에는 1,000명 가까이도 안내를 할 때도 있고요.

 

- 그렇게 안내를 하면 힘이 많이 들 텐데?

주 6일 동안 안내를 하다보면 가끔 힘이 부칠 때도 있지만, 제가 이 일을 워낙 좋아하니 괜찮아요(웃음) 많은 분들에게 우리 수원을 알려준다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인지?

안내를 받으신 분들이 여기저기 관람을 하신 후에 돌아가실 때 ‘고맙다’라고 말씀을 해주실 때가 가장 보람되죠. 그런 분들은 다음에 꼭 다시 수원을 찾아오시기도 하고요.

 

- 바쁘신데 고맙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우리 수원과 화성박물관 많이 홍보 좀 해주세요.

 

화성박물관에서 안내를 맡아본지가 올해로 만 3년째라고 하는 정혜숙. 화성박물관에 1년간의 입장객이 17만 명이라고 하니, 어림잡아 그동안 만나고 안내를 해 준 사람들이 50만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수원과 화성을 안내를 해준 셈이다. 사람들마다 친절한 안내를 해준데 대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음 사람들에게 안내를 시작한다. 아마도 정혜숙이 화성박물관의 안내를 하고 있는 한, 수원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즐거움이 더할 듯하다.

화성이 갑자기 황토색 물감을 칠한 듯하다. 사람들은 짚신을 신고 화성 안 여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런 풍경은 또 처음이다. 마치 긴 황토색 천을 여장을 따라 늘어놓은 듯하다. 그 긴 황토색의 물결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을하늘과 성벽, 그리고 소나무와 사람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셋째 날, 화성 동문인 창룡문 앞에는 1,500여명의 황토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발에는 모두 짚신이 신겨져 있다. ‘짚신 신고 수원 화성걷기’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로 참가를 한 사람들은 옷과 짚신을 받아들고, 옷을 갈아입고 짚신을 신느라 야단법석이다.

 

 

 

가족들, 연인들이 참가를 한 짚신신고 걷기

 

오후 1시 30분에 창룡문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방화수류정 - 장안문(화성 북문) - 화서문(화성 서문) - 서장대를 거쳐 행궁 앞까지를 돌아오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행사에 참가를 한 수원시 지동 표영섭 자치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참가를 했다. 이런 행사를 일 년에 한번만 한다는 것이 아쉽다. 가족들과 함께 화성을 걸으면, 따듯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가급적이면 분기별로 한 번씩 이런 행사를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고 한다.

 

 

 

참가를 한 사람들은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의 ‘출발’ 신호와 함께 풍물패의 인도로 길을 떠났지만, 성급한 사람들은 그보다 앞서 먼저 화성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연인과 함께 용인에서 왔다는 권아무개(남, 31세)는

 

“휴일을 맞아 화성에 놀러왔다가 짚신 신고 걷기라는 말에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다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냥 화성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이렇게 짚신을 신고 돌아볼 수 있다니, 정말 오늘의 이 행사를 평생 못 잊을 것만 같습니다. 내년에는 아이를 낳아 함께 돌아야겠네요.” 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푸짐한 경품까지 곁들여

 

사람들을 따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걷는 화성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안양에서 친구끼리 참가를 했다는 김아무개(여, 42세)는

 

“얼마나 좋아요. 가을하늘과 바람, 그리고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걷는 화성. 참 수원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이렇게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걷는다는 것도 가슴 뿌듯한 일인데,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 이보다 큰 행복은 없을 듯하네요.” 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짚신 신고 화성을 돌아본 참가자들은 오후 5시 30분 화성 행궁 앞에 모여 푸짐한 경품잔치까지 벌였다. 경품잔치에는 배역을 맡은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까지 함께 해 경품추천을 하는 등 재미를 더했다.

 

‘짚신신고 수원화성걷기’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를 한 가운데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행궁 공방 길로 몰려들어, 공방에서 차려 놓은 좌판에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가을하늘과 화성을 즐기며 짚신을 신고 화성을 걸어 온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그 재미를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며, 내년에도 또 참가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 제50회 수원화성문화제가 기다려진다며.

 

10월 5일과 6일 돌아본 제49회 수원화성문화제. 여기저기 벌어지는 각종 행사를 돌아보면서 제법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실망스런 부분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런 곳은 차후에 거론하기로 한다.

 

행사 첫 날인 10월 5일, 오후 4시부터 벌어진 시민환영퍼레이드가 수원공설운동장에서 연무대까지의 구간에서 열렸는데, 이 시가행진은 각 단체 및 마을 등에서 자신들을 상징할 수 있는 모습으로 꾸미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을 낸 모습이 보인다. 두 시간 정도를 장안문(화성 북문)에서 퍼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퍼레이드에서도 ‘강남스타일’이 대세

 

이 날 퍼레이드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역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댄스 팀을 동반한 각 팀마다 으레 나오는 노래는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장안문 앞에서 가장 먼저 시작을 한 어린 꼬마들의 춤은, 주변 사람들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구경을 하던 어느 어르신은 ‘정말 예쁘다. 저런 손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연무대를 출발한 퍼레이드 팀들이 장안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모든 거리행렬 팀들은 장안문 앞에서 한바탕 자신들의 장점을 자랑을 해보이기도. 이 행진에 참가를 한 각 팀은 심사를 거쳐 1등에게는 1천만 원의 상금이 걸려있어서인가, 예년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수원엔 웬 미인이 이렇게 많아요?'

 

행진에 참가한 팀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었지만, 구경을 하는 사람들 역시 즐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퍼레이드는 나름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경기풍물연합회의 풍물팀이 앞장 선 가운데 그 뒤로 많은 단체와 각 동, 학교 등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리행진. 두 시간을 보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거리행진을 보면서 나름 눈여겨 본 팀들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신풍초등학교의 취타대, 수원시 태권도시범단, 수원시상인연합회, SKC, 삼성전자 등이었다. 상인연합회에서는 떡 등을 관람객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재미를 더했고, 태권도시범단은 공중격파시범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축제는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장안문 주변서부터 행궁 광장까지 운집한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재미를 준 시민환영퍼레이드는 꽤 많은 재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역삼동에서 친구들과 구경을 왔다는 김 아무개(남 27세)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 모든 퍼레이드에 참가한 팀들이 자신들이 스스로 이렇게 꾸며 참가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수원에는 왜 이렇게 미인들이 많아요? 물이 좋아서 그런가요?”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군악대의 마지막 연주로 끝난 시민퍼레이드. 두 시간 동안 사람들의 정신을 다 빼놓은 소란함과 박수소리, 그리고 강남스타일이 함께 만들어 낸 수원화성문화재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그래서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것이지만.

 

시민환영퍼레이드 행진속의 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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