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참 정신없이 글을 올렸습니다
사는 것도 빡빡한데 글쓰고 돌아다니면서 추천을 한다는 것도 버겁습니다

그런데 오늘 참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터킨터님의 블에 갔다가
김홍기님께서 블로그를 접겠다는 소식입니다.

문화블로거인 김홍기님은 저 역시 글을 보면서 늘 감탄을 하던 분입니다
그런 문화블로거 한분이 글을 접겠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몇분 되지도 않는 문화블로거 중 한 분인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저도 오늘은 반성의 날로 삼겠습니다
글을 하루 접겠습니다

이글엔 추천을 누르지 마세요

7월 9일 오후 3시, 남원시 도통동 391-2에 소재한 신라 천년고찰 선원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모여든 백여 명의 사람들. 비가 오는 바람에 많은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장소를 옮긴 문화관 안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자 의자를 채우고 뒤편에 서서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선원문화관은 선원사 경내에 있는 폐교가 된 연꽃유치원에 자리를 잡았다. 비어있는 유치원을 이용하기 위해 다각도로 생각을 하던 중, 지역문화의 산실이 될 수 있는 갤러리와 문화강좌 등을 할 수 있는 장소 등을 마련하였다. 사무실 포함 68평의 크지 않은 공간은 전시공간인 ‘갤러리 선’과 수장고, 강습을 할 수 있는 장소 등으로 구분이 된다.



3시가 되자 개관식을 할 장소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우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문화에 대한 기대치를 알 수 있게 한다. 전북 불교회관 이원일 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선원문화관 개관식. 기실 예향이라는 남원에는 전시공간이나 문화센터 등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소도시에서는 그런 문화관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금산사 주지 원행큰스님의 당부, 남원문화를 선도해야 해

간단한 내빈소개에 이어 선원문화관장인 운천스님이 ‘비가 내리는데도 많은 분들이 개관식에 참석을 해 주신 것을 감사를 드린다’며, ‘앞으로 선원문화관을 남원과 인근지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온전히 개방을 하겠다.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이어서 축사를 담당한 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 주지스님인 원행 큰스님은, 축사에서

“남원은 효와 예술의 고장이다. 선원문화관이 남원 문화예술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며, “남원은 원래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곳이며, 일본으로 끌려간 일본 도자의 혼이라는 심수관이 바로 남원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질 정도로 남원은 대단한 곳이다. 이제 선원문화관이 그런 책임을 감당하기 바란다.”고 했다.

개관기념 전시로 마련한 ‘김계용의 솟대이야기’

테이프커팅을 마친 일행은 전시관인 ‘갤러리 선’에 진열되어 있는 작품들을 돌아보았다. 대나무 솟대작가 김계용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관을 둘러본 초대 인사들은, 솟대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든 솟대는 사람들이 지나칠 때마다 흔들리며 바람을 타고는 했다.



우중에 거행된 선원문화관 개관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시실에 마련된 음식과 차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개관식에 참석을 주부 이 아무개씨(37세)는

“정말로 좋은 행사에 초대를 해주어 감사하다. 와서 보니 그동안 우리 남원이 예향이라고는 하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해소가 될 것 같다. 선원문화관이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하니, 더 없이 기쁘다.”고 이야기 한다.



지역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어린이들에게는 문화적 소양을 일깨워, 질 높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을 연 남원 선원문화관. 방학 동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문화강습과 주부들을 위한 문화학교 운영을 한다고 한다. 하기에 더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오늘 오후 3시 남원 선원문화관이 개관을 합니다. 남원을 비롯한 인근 전남북의 새로운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 새롭게 자리를 마련한 선원문화관은, 그동안 2개월 여를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제도 밤 12시를 남기면서 준비를 하였는데,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기념식을 해야 하는데 비가 오네요. 무지 고민스럽습니다. 아침부터 준비를 해애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문화관 개관에 대한 것을 올리기가 버거울 것 같아, 아제 밤에 미리 맛보기 사진을 몇 장 찍어 놓았습니다.


소나무의 속을 일일이 파내고 그 안에 꽃을 심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활짝 핀 꽃이 문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합니다. 며칠을 걸려 파낸 속이 아름다운 꽃들로 차 있습니다. 


입구부터 자연이 숨 쉰다.

전시관 입구 라비를 들어서면 앞뒤로 꽃이 보입니다. 통나무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꽃을 심은 것입니다. 설치작가 허택님의 작품으로 소나무 속을 일일이 파내고 그 안에 꽃을 심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를 분비하는데도 며칠 씩 걸린다고 합니다.

꽃마차입니다. 역시 소나무를 속을 파내고 꽃을 심었습니다.밑에도 도자기 배에 꽃아 있습니다. 밑에 마차는 동관을 일일이 용접을 해 제작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역시 허택님의 작품으로 더운 여름 난 공간을 들어서면 시원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동판을 잘라 연꽃잎처럼 만들고 그 위로 물이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물안개까지 피어올라 운치가 있습니다. 전시관 햔관 여기저기에 설치가 되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합니다.

물 안개를 피우고 있는 작픔입니다. 동판으로 만든 연잎에 물이 소리를 내며 따라 흐릅니다. 안개까지 피어올라 더위를 식혀줍니다


대나무 솟대의 하늘거림

전시관 명칭은 ‘갤러리 선’입니다. 공간 안에는 내일부터 대나무 솟대작가 김계용의 ‘솟대이야기’가 선을 보입니다. 개관기념 작품으로 조금은 특별한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을 중시한다는 문화관 취지에 걸맞는 작품입니다.

대나무의 잔가지를 이용해 사람이 곁으로 지나치기만 해도 솟대들이 움직입니다. 그런 자연의 바람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 작가의 마음입니다. 전시준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 중 몇점만 찍었습니다.



대나무 솟대작가 김계용의 '솟대이야기'에 나오는 작품임니다. 가는 대나무의 잔가지를 이용해 제작한 솟대들은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떨립니다. 자연의 작은 바람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오후 3시에 개관을 하게되는 선원문화관. 8월까지는 이미 전시작품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의 이치를 알려주기 위해 마련한 문화의 산실입니다. 문화관 가관 행사는 마치고나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 331번지, 당산마을 내에 소재하고 있는 고목인 소나무 한 그루. 현재 천연기념물 제410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소나무가 있는 곳을 당산마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나무가 당산제를 지내는 나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거창 당산리의 당송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18m, 밑동의 둘레는 4.1m 정도이다.

6월 24일 거창군 답사를 하면서 찾아간 당산마을 당송. 마을 밖 길에서도 커다란 소나무가 의젓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 나무의 껍질은 거북등과 같이 갈라져 있으며, 밑동 부분에는 도끼자국이 남아있다. 남쪽의 가지 하나가 죽었으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소나무이다.


도끼자국 누구 짓일까?

도대체 이 거목인 소나무에 누가 도끼질을 한 것일까?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만나게 되는 천연기념물 중에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둘이 간혹 눈에 띤다. 누군가 나무를 죽이려고 농약을 나무뿌리에 들이부은 경우도 있고, 멀쩡하던 나무가 급작스럽게 고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다.

거창 당송도 누군가 밑동을 도끼질을 했다고 하는데, 이 나무를 땔감으로 여겨 찍을 것은 아닐 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도끼질을 한 것일까? 마을 주민들에게 물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이 당산리의 당송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웅~ 웅~’ 소리를 내어 울면서 미리 알려준다고 한다.




나무가 신령스럽다 하여 ‘영송(靈松)’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로 화를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1910년 국치를 당했을 때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몇 달 전부터 밤이 되면 나무가 울었다고 한다. 슬픈 일에만 운 것은 아닌가 보다. 1945년 광복이 될 때에도 울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나무에게는 알지 못할 신비가 있다

나무도 생명을 갖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생명의 신비함이 나무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 등을 만나보면, 그 나무들이 갖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다. 특히 당산제나 목신제, 거리제 등을 지내고 있는 나무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나무가 운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잘랐던 사람들이 화를 입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다. 심지어는 떨어진 나뭇가지도 줍지 않는다는 곳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꼭 화를 당해서가 아니라, 나무에 대한 예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이런 큰 나무에게는 또 다른 ‘정령(精靈)’이 있는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 무지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당산나무들은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보살피게 된다. 당산리 당송 역시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만들어 나무를 보호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매년 정월 보름에 제를 지내고 있는 것도, 이 나무의 영험함 때문일 것이다.

푸른 옷을 입은 당송, 볼수록 장관이다

나무를 둘러본다. 조금은 옆으로 휜 듯한 가지에 보호대를 설치하여 받쳐 놓았다. 일반적으로 본 천연기념물인 소나무들보다는 그렇게 생육이 발달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마도 한 가지가 부러져 나가고, 밑동을 도끼자국 등이 그렇게 힘이 들게 했는가보다. 무지한 인간들의 심사가 이 나무에도 해를 입힌 것인지.




그래도 나무의 껍질에 가득한 푸른 이끼가, 이 나무의 모습을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푸른 옷을 한 벌 걸친 듯하다. 마치 가지마다 춤을 추는 듯하다. 그런 것 하나를 갖고도 장관이라고 표현을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 없이 만나는 생명들. 그 생명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당송 아래서도 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인간을 위해 서 있었지만, 정작 인간들은 그런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들은 화를 입어 마땅하다’

아름다운 길, 봉암사 ‘마애불 참배길’

세상에는 아름다운 길이 참 많다. 요즈음에는 각 지자체마다 길을 개발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많은 길들이, 이미 주말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 답사를 하기위해 주로 길을 걸어야만 하는 나로서는 다양한 모습의 길을 만나게 된다.


7월 6일 찾아간 문경 봉암사.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봉암사를, 대중공양을 하기 위해 들어갈 수가 있었다. 봉암사 경내를 벗어나 계곡을 끼고 따라가면 봉암사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천천히 걸어서 왕복 50~60분 정도의 힘들지 않는 평지길이다. 그런데 그 길을 접어들면서 첫 마디가 감탄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니.

흙을 밟는 즐거움

봉암사 경내를 벗어나 계곡에 걸린 침류교를 건너자, 좁은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마애불 참배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천천히 숲길로 접어들어 본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어느 누가 따라할 수가 있을까?



좁은 길을 걷다가 보니 여기저기 바위들이 널려있다. 길에는 나무뿌리가 땅위로 솟아나와 마치 문양을 만들어 놓은 듯하다. 그 길 위에 작은 물줄기가 지나고 있다. 저편에서 무엇인가 ‘스르륵’ 소리가 난다. 산중의 주인인 듯한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끌며, 풀 숲 사이로 사라진다. 이 길은 짐승들의 나들이 길이기도 하다. 자연의 흙을 밟는 즐거움,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이다.



자연, 정말로 자연이 거기 있었다.

좁은 길을 따라 심호흡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바위 위에 떡하니 올라앉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참으로 오묘한 자연의 조화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가 보니, 이번에는 아예 바위를 뿌리가 감싸고 있다. 그 모습이 기이하기만 하다. 외국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많이들 찍어 올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




그 앞에서 한참이나 길을 멈춘다. 어찌 자연이 아니랄까 보아, 이런 모습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자연스런, 그리고 자연 속의 또 다른 자연처럼 그렇게 서 있다. 바위가 양편에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른다. 그곳이 길이다. 물길은 어디로 비켜가지를 않았다. 그냥 사람이 다니는 길로 물도 다니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한 길을 이용할 수 있는 산길, 바로 봉암사 마애불 참배길이다.

나무가 날더러 겸손하라 하네.




좁은 산길을 걷다가 보니, 휘어져 쓰러진 나뭇가지가 길을 가로질렀다. 아마도 나무가 이렇게 길을 가로질러 있는 것을 보니, 세상의 방자함을 모두 걷어내고 겸손히 고개를 숙이라는 뜻인가 보다. 잠시 그곳에 멈춰 그동안 살아오면서 시건방을 떤 일들을 잠시 반성을 한다. 고개를 숙여 나무 밑을 지나고 보니,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그 밑으로 사람 한 두 명은 충분히 들어가 비를 피할만한 공간이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런 자연의 마음을 정녕 이해 못할 것이 사람들이란 생각이다. 그저 이런 자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있으니. 그러다가 결국 봉변을 당하는 것은 인간인데도 말이다.



25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충분한 시간이다. 바위 사이를 지나니, 거기 백운대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이 길의 끝이다. 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풍광을 만날 수가 있다. 태고적 신비가 그대로 배어있는 봉암사 마애불 참배길. 아마도 이 길의 주인은 뭇 짐승들일 것이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지 오래이니. 아마도 이길은 앞으로도 이렇게 자연과 짐승이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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