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성 천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7월 3일(수) 오후 2시부터 수원시 장안구민회관 한누리아트홀에서는 제18회 여성주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하여, 이찬열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오원석, 안혜영 경기도의원, 민한기 수원시의회 부의장, 백정선, 한규흠 수원시 의원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또한 수원의 4개구 구청장과 수원시 여성단체협의회장 등이 참석을 했으며, 다문화가족, 제26회 수원여성 기, 예능 경진대회 수상자 등 500여명이 참석을 하였다. 오후 2시부터 식전행사인 J.M 타드락의 모듬북 공연 K Young Pop 어린이 댄싱팀 등의 댄싱 등으로 분위기를 돋은 후 수원시 여성상 및 기, 예능 경진대회 수상자들의 시상이 이어졌다.

 

 

제9회 수원시 여성상 수상자 자리를 함께 해

 

이 기념식에는 올해로 9회 째를 맞이하는 수원시 여성상의 시상식도 있었다. 여성상 수상자로는 수원소방서중부여성의용소방대 대장인 권옥주(60)가 양성평등 및 여성의 권익증진 부문에서, 전 수원시 새마을부녀회 영통구 회장인 윤은자(58)이 여성의 복지증진 및 봉사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수원시여성경영인협의회 회장인 박현옥(68)은 지역사회 발전 등 여성경연인 부문에서 수상을 했으며, 권선구 여성자원봉사회 회원인 홍성주(58)은 효행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이 외에도 기, 예능 경진대회 입상자들의 수상식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30명이 수상을 한 경진대회 수상자 중에는 이주여성백일장 부문까지 있어, 본격적인 다문화시대임을 알리기도.

 

 

여성이 행복한 도시 만들 터

 

염태영 수원시장은 이날 시상식을 마친 후 기념사를 통해

“먼저 열여덟 번째를 맞이한 여성주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일하는 여성 천만 시대를 맞이하여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류에 맞추어 우리 수원시에서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을 통해 원스톱 취업서비스 제공 등으로 맞춤형 고용일자리 창출 등, 여성의 경제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여성과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곧 완공이 될 여성건강증진센터 등이 우리 수원에 생긴다. 또한 전국 최초로 모든 택시에 택시안심귀가서비스를 통해 안전한 귀가를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뿐이 아니라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해 싱글우먼하우스케어서비스 등을 통해 여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여성이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 시는 여성들이 살기좋은 가장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 지난 5월에는 여성가족부와 KBS가 공동 주최한 가족친화경영평가에서 행정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우리시가 가족친화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앞으로 우시 수원시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3시간 가까이 진행이 된 이날 기념식장에는 가수 현철과 한영주 등이 초대가 되었으며, 각 구청에서 내세운 통키타 소리공간팀(장안구), 모듬북 소리파워팀(권선구). 밸리댄스 아이리스팀(팔달구), 스포츠 댄스팀 꽃내음(영통구) 등도 함께 무대에 올라 기념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참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한 분야에 미쳐 30년 세월을 살아왔다면, 아마 장인이란 별명을 들을 법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명칭보다는 그저 기자’, 아니면 블로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222일 오후 2시 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소재한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그 30년의 정점을 찍었다.

 

오마이 뉴스 게릴라 명예의 전당 오름기자상’. 거창하니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은 기사 1,000건 이상을 송고하고 그 기사가 채택이 되면 주는 상이다. 기사 1,000건이야 누구나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기사 1,000건이란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앉아서 쓴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을 발로 뛰어 쓴 기사이기 때문에, 그 어느 상보다도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시상식. 동행을 한 지인이 촬영을 했다

 

몇 번이고 멈추고 싶었던 역마살

 

30년간의 답사. 솔직히 그 동안 몇 번이나 멈추고 싶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무속인인 아우 녀석이 형은 사주에 지독한 역마살이 끼었어요. 아마 70이 넘어야 멈출 것 같아요라고 한 말이 어찌 그리 잘 맞는 것인지. 어려울 때마다 몇 번이고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저 생각만으로 그쳤다. 또 다시 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 서 있고는 했으니.

어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방안을 둘러본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장서에 가득한 문화재답사를 하고 정리한 CD뿐이다. 저것이 그간의 산물이다. 그 하나하나가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다고 하면, 남들은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답사를 하면서 흘린 땀은 알겠지만, 웬 눈물까지라고 말이다.

 

 

깨진 카메라와 너덜거리는 등산화

 

남들처럼 돈을 벌어가면서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한 번 답사를 나가면 30~50만원이라는 엄청난 경비가 들어간다. 어디서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바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주머니가 빌 때까지 돌아다닌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만, 그때그때 정리를 하지 않으면 글을 쓸 때 감을 잊어버리게 된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리를 마쳐야 자리에 든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깨진 카메라가 몇 대인지 모른다. 겨울에 눈길에 산을 오르다가, 아니면 여름철 억세게 퍼붓는 장맛비 속에서 바위를 오르다가 미끄러져, 살이 터지고 찢긴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셀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바로 망가진 카메라이다. 찢긴 살이야 약 바르고 싸매면 되지만, 망가진 카메라는 그럴 수가 없다.

 

그것도 산꼭대기까지 올라 사진을 찍고 나서 깨졌다면, 사진이라도 남는다. 하지만 바로 눈 앞에 문화재를 놓고 미끄러져 깨졌다면, 모든 것이 시쳇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몇 시간을 헐떡이며 올랐는데, 그리고 바로 코앞에 문화재가 보이는데 거기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마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 진 기사들이기 때문에, 난 이 상이 어떤 이들이 받는 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아우 녀석이 한 말이 70까지는 다닐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앞으로도 5~6년은 더 다닐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얼마나 더 많은 문화재를 만날 수가 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늘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것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어, 심적인 부담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란 칭찬이 아니다. 더욱 부추길 뿐이다. 그것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하나의 당근일 뿐이다. 그래서 또 다시 마음을 정리한다. 물가가 올라서인지 요즈음은 예전 같지가 않다. 답사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간다. 남들처럼 누군가 후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여기저기 기사를 쓰고, 그것을 모아 답사를 다녀야만 한다. 그래서 주머니는 늘 비어있다.

 

하지만 문화재답사라는 것이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아니다. ‘문화재답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늘 그렇게 생각을 해왔다. 어느 날 길 위에서 만나게 되면, 그저 눈인사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만금보다 소중한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소중한 상(사실은 채찍이지만)을 준 오마이뉴스와, 기꺼이 시상식까지 동행을 해준 지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다시 길 위에 선다

다행이다 햇살들은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리하여 ‘헛제삿밥’으로 산 자들 제사 지내고

돌아오기 위해 이 길을 간다.

 

어디더라? 여기가

만난 듯한 구름, 저 산꼭대기의 잘생긴 소나무

바람과 함께 산중에 들어

있는 듯 있는 듯 내 돌아갈 근원을 본다.

 

가쁜 호흡 뒤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들이 숨어 있지만

어쩔거나! 이 또렷한 경계(境界)들을

무량수전, 안양루 오르는 계단 가운데 앉아

나 아직 적멸을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오늘은 무애(無碍)

스스로의 빛남

막을 길 없다

 

 

김우영 시인의 ‘부석사 가는 길’이란 시이다. 12월 28일 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소재한 ‘장호원 숯불갈비’라는 식당 안 한편 방안에서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벽에는 ‘제2회 <수원시인상> 시상식 / 수상자 김우영 시인’이란 글귀가 보인다. 이날 모임은 수원시인협회 회원 25명 정도가 모여 송년회 겸으로 마련한 시상식 자리였다.

 

시상식이라고 찾아 간 자리가 식당

 

이날 수상을 한 김우영 시인은 벌써 안지가 20년이 훌쩍 지났다. 한참 동안이나 보지 못하다가 수원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후 조우를 했다. 그리고는 곧잘 함께 어울려 막걸리 잔을 부딪치고는 한다. 그러다가 시상식이 있다고 해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시인들이라 그런가? 역시 시상식장도 좀 특이하다.

 

 

송년회를 겸했다고 하는데, 식당을 빌려 시상식을 한다는 것은 꽤나 생소하다. 사실 김우영 시인은 고등학생 때 시집을 낼 정도로, ‘시의 신동’이란 칭찬을 들었던 시인이다. 1957년 화성시 봉담 출생으로, 1978년에 원간문학 신인상 시 부분 당선으로 등단을 했다. 그리고는 지역 언론에서 문화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원사랑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중부일보의 문화체육부장을 거쳐 늘푸른 수원의 편집주간, 그리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수원시 인터넷 홍보지인 ‘e-수원 뉴스’의 편집주간이다. 그동안 수원문학상, 경기문학상, 오늘의 경기시인상, 한하운문학상, 수원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시종일관 잔치집 같은 시상식

 

이 날 시상식은 수원시인협회 임애월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다. 먼저 임병호 회장의 선정경위 발표 및 인사에 이어, 세종대 석좌교수인 정순영 시인의 축사, 그리고 수상자인 김우영 시인의 약력보고와 시인상 시상식으로 이어졌다.

 

수원시인협회 임병호 회장은 선정경위를 통해 “김우영 시인은 한국문단에서는 물론 수원문학을 위해서도 큰 일을 했다. 김우영 시인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영이 높았지만 잘 나서지를 않는 과묵한 사람이다. 약관에 전국 동인지인 ‘시림(詩林)을 주재한 사실에서도 잘 입증된다. 김우영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시상식을 마친 후 김우영 시인은 수상소감을 “부끄럽다. 창작활동에 소홀한 요즘이라 사양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더는 게으르지 말라고 주는 상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시상식 후에는 시인들의 시낭송까지 곁들여졌다. 식당에서 열리는 시상식도 놀랍지만, 술 한 잔에 취흥에 겨워 시낭송까지 이어지는 시인들의 시상식. 그동안 숱한 시상식을 다녔지만, 이런 시상식은 또 처음이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시상식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는 않을 듯하다. 시 한 줄 못 쓰는 위인인지라 그런 자리가 조금은 버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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