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뵐 수가 없어 늘 죄스런 마음을 갖는다. 이 선생님을 뵈었을 때 들은 말이 생각난다.

 

요즈음은 무엇을 하고 지내나?”

, 요즈음은 신문에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 기자 일을 하나?”

, 선생님

기자라는 것이 남의 허물만 들춰내서는 안 되네. 사람의 가장 근본은 봉사지. 남을 위하는 봉사야말로 인간의 덕목 중에서 가장 튼 덕목일세. 봉사를 하는 분들을 많이 소개를 해야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지. 남을 헐뜯는 기사를 많이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악한 것이 생기기 마련이야. 자네는 절대로 그런 기사 즐겨 쓰지 말았으면 좋겠네.”

 

 

인간의 가장 큰 덕목은 봉사

 

사람들은 여러 가지 봉사를 한다. 그 중에서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소에서의 봉사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의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0여 일이 훌쩍 지났다. 근 한 달 가까운 시일이 지나고 있고, 수원시청 앞뜰에 분향소를 마련한지도 12일째이다. 그동안 이곳 분향소에서 묵묵히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수원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회장 김영옥) 회원들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이곳에서 교대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8일 오후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녹색어머니회 회원들을 분향소를 찾아 만나보았다. 연합회 김영옥 회장과 정미경 부회장, 김송숙 홍보부장 등 3명이 봉사를 하고 있다.

언제부터 봉사를 시작했나요?”

지난 달 28일 시청 분향소가 분향객들을 받기 시작한 날부터, 매일 2교대로 두 명씩 나와서 봉사를 하고 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아픈 정도가 아니죠.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저희들은 이곳에서 노란 리본과 쪽지에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세월호에서 참사를 당한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찾아와서 네 몫까지 내가 살아 줄께라는 글이나 어른들 말 절대로 듣지 마라라는 글을 적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아요.”

 

 

할 말이 없다. 그저 분향소에 쌓여가고 있는 흰 국화꽃과, 빈자리가 없이 걸리고 있는 노란리본, 그리고 게시판에 빼꼭하게 붙여진 편지들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눈물만 흘릴 뿐이다. 하물며 현장에서 그런 글을 보고 있는 녹색어머니회 회원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어머니이기 때문에 더 아파

 

처음에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다 구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이런 사고가 낫나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매일 들리는 소식마다 참변 인원수가 달라지고, 구조 된 학생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참 어이가 없었죠. 어떻게 그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이렇게 팽개칠 수가 있나 해서 분통도 터지고요

 

끊임없이 찾아오는 분향객들을 맞이하면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녹색어머니연합회 회원들도 모두 자녀를 키우고 있기에 그 마음이 더 아플 것이란 생각이다.

평소에 건강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여기 나와 있으니 춥고 몸도 좋지가 않아요. 아마도 마음이 아프기 때문일 거예요. 바람도 많이 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만 보아도 괜히 눈물이 나고는 해요

 

 

수원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는 모두 34개 학교에 5,490명의 회원들이 모여 있다. 각 학교마다 회장단과 회원들이 있으며, 이들을 모두 아우른 곳이 바로 어머니연합회이다. 녹색어머니연합회의 회원들은 초등학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모임이다.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자연히 어머니회원의 자격이 사라진다는 것.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모임이니만큼 더 마음이 아플 것은 자명한 일.

 

아이들의 등, 하교 길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모인 봉사를 하기 위한 모임이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해 더욱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만 보아도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어요. 저 아이들이 어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하고요. 도대체 이 나라는 매번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을 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사고가 나니 모두 수학여행 금지라고 하는데 참 웃기지 않나요. 이것을 대책이라고 한다면, 그 많은 버스회사나 여행사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요. 대책 없이 무조건 해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죠.”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한 마디씩 하는 말이 공감이 간다. 늘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 그녀들이 있어 항상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덕목은 봉사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전국에 세월호 희생자의 분향소가 여러 곳에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단연 수원시청 앞뜰에 마련한 분향소가 가장 바람직인 분향소로 알려져 있다. 수원시는 지난 달 28일 오전 9시부터 세월호 희생자들의 추모분향소를 설치했다. 그 동안 수원시청 분향소를 찾아와 추모를 한 사람들은 2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수원시청 분향소가 가장 본받아야 할 분향소라고 소문이 난 것은, 24시간 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분향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딴 곳의 분향소들은 자정이나 오후 9시 정도에 분향을 마치는 것이 비해, 수원시청 분향소는 24시간 언제라도 찾아가 분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분향소에는 공무원들로 구성된 안내자가 24시간 안내를 한다.

 

 

3교대로 분향소 지켜, 녹색어머니연합회도 함께해

 

수원시청의 분향소는 시청 등 수원시 공무원들이 교대로 안내를 맡고 있다. 하루 3교대로 책임을 맡는 안내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분향소를 지킨다. 분향소에는 팀장을 비롯하여 3~4명이 안내를 맡아한다. 거기다가 오전 9시부터는 수원시 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 회원들이 함께 봉사를 하고 있다.

 

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회장 김영옥) 회원들은 매일 2교대로 안내를 맡아하고 있어요. 오전 9시에 나오신 분들은 오후 1시까지 안내를 하시고, 오후 1시에 나오신 분들은 오후 6시까지 맡아보시죠. 그런데 이렇게 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 식사제공도 할 수 없어요. 6.4 지방선거 때문에 밥 한 끼만 대접해도 선거법에 위반된다고요.”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한 공무원의 말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맞추어 12교대로, 지난 달 28일 이후 지금까지 중부녹색어머니연합회 회원들이 함께 안내를 맡아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세월호 참사 22일이 지났다. 그리고 전국에 분향소가 차려진지 10일째다. 그러나 아직도 미쳐 자식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리지 못한 가족들이 애간장은 다 녹고 있다.

 

 

밤늦은 시간에는 거의 인적이 끊겨

 

6일 자정까지 분향소에서 안내를 맡아 보았다는 수원시 공보관실 이소희 e홍보팀장은오후 4시부터 시작해 오후 8시까지는 1500명 정도의 시민들이 분향을 하러 오셨어요. 그리고 오후 8시가 지나자 발길이 뜸해져 10시까지 한 15명 정도가 다녀가셨나 봐요. 10시 이후에는 4~5명 정도가 들리셨고요. 한 밤중에도 들려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이런 분들 때문에 24시간 분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라면서

 

어제(6) 밤은 엄청 추웠어요. 저희 시청 분향소는 한데 마련되어 있어서 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밤늦게나 자정이 지나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죠.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가시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한다.

 

 

이렇게 수원시 분향소가 24시간 분향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원시민들 만이 아닌 수원에 관광차 들린 관광객들까지 수원시청 분향소를 찾아와 분향을 하고 있단다.

수원시는 지난 한 해 대통령 표창을 비롯하여, 2013 유엔 하비타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60여 개의 상을 수상하면서 전국 최고의 지자체임을 확인한 것이죠. 밤에 안내를 맡아하는 공무원들이 많은 고생을 하지만, 그래도 수원이기 때문에 이런 분향소의 운영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정말 수원시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인계동에서 장사를 한다는 시민 정아무개(, 44)씨는 뒤늦게 분향을 하러 와 죄스런 마음이 든다면서, 그래도 이렇게 시청 앞뜰에 분향소를 마련해 놓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한다. 앞으로 분향소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불철주야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수원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전국의 모든 사찰은 연등을 단다. 연등은 대개 두 종류로 구분이 된다. 대웅전 등 전각 안에 다는 1년 등과, 절 마당에 다는 1일 등이다. 1년 등은 가족들의 안녕을 위하여 달고, 1일 등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물 중 등 공양으로 드린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절을 찾아 기원을 드리고 부처님의 가피를 입기를 기원한다.

 

수원에는 크고 작은 절이 있다. 아침 일찍 여기저기 절 분위기를 한 번 보겠다고 돌아보았다. 각 절마다 모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예불을 올리고 있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내의 안녕과 자손들의 부귀공명 등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몇 곳에는 커다란 등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글귀도 보인다.

 

 

40여개의 등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극락왕생 염원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고성주(, 60)씨는 스님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토속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만신이라고 자처하는 고성주씨는, 수원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고성주씨의 전안에도 일 년 등이 달렸다. 그리고 마당에는 100여 개가 넘는 등이 달려있다.

 

이 곳의 등은 이상한 점이 있다. 대개 영가를 위한 등은 백등이다. ‘세월호 참사 사망자 왕생극락 발원이라는 등표를 붙인 40여개의 등이, 신도들의 등 주변 밖으로 빙 둘러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등 중에서 10여개는 영가 등인 백등인데, 남은 30여 개의 등은 노란색과 분홍색이다. 꼬리표는 망자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등인데 왜 색등일까?

 

 

이유가 있습니다. 백등은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연세가 드신 분들을 위해 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젊은 사람들과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은 그렇게 영가로 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요. 물론 백등으로 달아주어야 하지만 그들이 다음 세상에서는 저렇게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색등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염원을 하는 것이고요.”

 

정리가 된 후에 위령굿도 할 터

 

그런 마음에서 영가 등을 백등이 아니고 색등으로 달았다고 한다. ‘무책임한 관계자들 때문에 정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수많은 젊은 생명을, 이렇게 떠나보낸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40년 세월을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면서 살아온 고성주씨로서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귀한 생명들. 우리는 참 그들에게 면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사회가 썩는 것을 방조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제가 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보니,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망자의 넋을 달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노귀굿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태가 수습이 끝나고 나면, 저희 전안에서 조용히 위령굿을 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미안함이 조금은 가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더 넓은 곳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타까운 젊은 생명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사람들에게 굳이 알려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저 스스로도 그 아이들을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아픔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젊은 목숨들을 잃었는데, 조용히 제가 해야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는 없으니까요. 그렇게라도 서로의 마음들이 풀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늘 남을 위해 세상을 사는 사람. 주변에 불편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 누구보다 더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고성주씨. 제발 이 사람에게서 마음을 좀 배워라. 하고 한날 남의 핑계만 대지 말고.

6일은 불기 2558년의 사월 초파일이다. 초파일은 바로 부처님이 이 땅에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태어난 날로,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이날 여러 의식을 행하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정성을 모아 행하는 의식 중 하나가 바로 관불의식이다. 이는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일이다.

 

이날 각 절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을 상징하는 화단을 만든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그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 조각상인 아기부처를 세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차례대로 작은 표주박으로 감로수를 떠서 부처님 정수리에 붓는 것이다. 이를 관욕, 욕불, 관정이라고도 하며, 관불의식은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향수로 부처님을 씻어 주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정수리에서 발밑까지 흘러내리게 부어

 

이를 따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모든 절에서 이 관불의식을 행하게 된다. 사월 초파일에 행하는 불교의 의례 가운데 관불의식은, 부처에 대한 공경을 표시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다. 이때 머리에 붓는 물을 관수(灌水)’라고 하며, 이는 부처님 머리에 물을 쏟아 붓는 불교의식이다

 

 

관수란 머리에 부은 물이 발밑까지 흘러내린다는 관두지수 유하족저(灌頭之水 流下足底)’란 말에서 따왔다. 즉 윗사람의 잘못이 아랫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뜻으로,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본이 될 만한 행동을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관불의식을 행하면서 자신도 함께 청정해지기를 기원한다.

 

감로차는 집으로 가져가기도

 

관불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은 불교와 인연을 맺어, 속세의 때를 씻어 깨끗하고 맑은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관불의식을 하게 되면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고 몸의 병이 완쾌되며, 다음 생에 반드시 불법을 만나 지혜의 눈을 뜨게 된다고 했다. 관불의식을 사용을 하고 난 물을 감로차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감로차에는 특별한 공덕이 있다고 해서, 각자 집으로 가져가 그날 하루 동안 마시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전하는 설에 보면 부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에서 깨끗한 두 줄기의 물이 흘러 내렸다고 한다. 그 한줄기는 따뜻하고 다른 한줄기는 차가운 물이 아기부처님 몸을 씻어 편안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보요경(普曜經)>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탄생 하셨을 때 제석천왕과 대범천황이 각가지 향수로 목욕을 시켜 드리고,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향수를 뿌려 목욕한 아기부처님은 심신이 청정해졌다고 전한다. 이런 관불의식을 행하는 것은, 나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피지 못하고 사라진 생명을 위해 관불을 할 터

 

수원시청 뜰에 마련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1만 명을 넘었다.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아온다. 또한 각 학교에서도 단체로 분향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으며, 회사나 사회단체들도 동참을 한다. 채 피지도 못한 체 바다 속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수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초파일 절을 찾아야겠다.

 

그곳에 가서 나를 위한 관불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위한 관불을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깨끗이 씻긴다는 생각으로 관불을 한다면, 그 아이들이 내생에서는 이렇게 아픔을 지닌 곳에서 태어나지 않을 듯해서이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 죄스런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실 것 같아서이다.

(주) 시인 고은 선생님이 세얼호 참사로 안타깝게 어린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된 단원고 학생들을 슬퍼하며 지은 시입니다. 전문을 소개합니다.

 

 

이름 짓지 못한 시 / 고은

 

지금 나라초상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상감마마 승하가 아닙니다

두 눈에 넣어둔 ...

내 새끼들의 꽃 생명이 초록생명이

어이없이 몰살된 바다 밑창에

모두 머리 박고 있어야 할 국민상 중입니다

세상에

세상에

이 찬란한 아이들 생때같은 새끼들을

앞세우고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몹쓸 살판입니까

 

지난 열흘 내내

지난 열 며칠 내내

엄마는 넋 놓아 내 새끼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제발 살아있으라고

살아서

연꽃봉오리 심청으로 떠오르라고

아빠는 안절부절 섰다 앉았다 할 따름

저 맹골수도 밤바다에 외쳤습니다

나라의 방방곡곡 슬픔의 한사리로 차올랐습니다

너도나도 쌍주먹 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분노도 아닌

슬픔도 아닌 뒤범벅의 시꺼먼 핏덩어리가

이내 가슴속을 굴렀습니다

나라라니오

이런 나라에서

인간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무슨무슨 세계1위는

자살 1위의 겉이었습니다

무슨무슨 세계 10위는

절망 10위의 앞장이었습니다

사회라니오

그 어디에도 함께 사는 골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뢰라니오

그 어느 비탈에도

서로 믿어 마지않는 오랜 우애가 자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흔히 공이 없고 사만 있다 합니다

아닙니다

사도 없습니다

제대로 선 사만이 공을 낳습니다

신성한 사들이 다 썩어문드러진 것입니다

이런 사로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를 꽉 움켜잡고 있는 죽음의 세월입니다

오늘도 저 남녘 앞바다 화면 앞에 있습니다

 

아무리 땅을 친들

땅을 쳐

피멍들 손바닥뿐인들

내 새끼의 환한 얼굴이 달려올 리 없건만

밤 지새울

멍한 아침바다를 바라봅니다

어찌 엄마아빠뿐이겠습니까

이 나라 풀 같은 나무 같은 백성 남녀노소라면

저 과체중의 선체가 기울었을 때부터

하루 내내 실시간의 눈길이 꽂혀왔습니다

그 선체마저 잠겨

겨우 꼬리만 들린 채

나라와 세상살이 갖은 부실 갖은 비리

하나하나 드러내는 통탄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런 역적 같은

이런 강도 같은 참변 앞에서

과연 이 나라가 나라 꼬라지인가 물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야만이 저지른 희생 앞에서

이 사회가

언제나 청정한 하루하루일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인간이었던가를 뉘우쳤습니다

영혼이라는 말

양심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몰라야 했습니다 알아야 했습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야

꽃들아 초록들아

이토록 외치는 이 내 심신 차라리 풍덩 내던져

우리 모두 빵()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둘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나도 너도

나라도 무엇도 다시 첫걸음 내디뎌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고도성장의 탐욕으로 마비된 것

이른바 무한경쟁으로 미쳐버린 것

이른바 역대권력에 취해버린 것

하나하나 각고로 육탈로 떨쳐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1인과 10인의 향연이 아닌

만인의 영광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태는

올가을이면

내년 봄이면 파묻어버릴 사태가 아닙니다

1백년 내내 애도해야 합니다

 

죽은 꽃들을 그 앳된 초록들을

이 내 피눈물의 새끼들을 망각을 물리치고 불러내야 하겠습니다

허나 지금

아 이 나라는 울음 복 울부짖음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분노의 복이 터진 나라입니다

내 새끼야

내 새끼야

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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