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단풍들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져 간다. 그런 단풍들이 아쉬워 연일 단풍을 보려는 사람들로, 단풍이 절경이라는 곳은 만원이란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자리한 상왕산 개심사. 가을 단풍이 그리운 사람들에게는 제몫을 다하고 있는 곳이다. 일주문에서 돌로 만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발밑을 간질이는 낙엽들과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단풍, 붉다고 단풍은 아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단풍이다. 개심사의 단풍은 바로 그런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다. 개심사는 백제 때의 절이다.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개심사는, 대웅전 기단이 백제 때의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조 성종 6년인 1475년 소실이 된 것을, 성종 15년인 1484년에 중건한 것이다.


깔린 단풍을 밟고

일주문을 지나 상왕상 개심사로 가려면 10여 분을 걸어야 한다. 오르는 길에 만나는 돌계단을 밟으면 소리가 난다. 바로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때문이다. 지천으로 깔린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면서 발아래서 소리를 낸다.

주변은 온갖 색을 자랑하는 단풍들이 들어차 있다. 천천히 가을을 느끼며 오르다보면 어느새 입구에 들어선다. 연못 가운데로 난 길을 걸으면 별천지다. 그래서 가을에 개심사를 찾는 사람들은, 또 다시 다음을 약속하는가 보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이 된 대웅보전은 백제 때의 기단 위에 세워졌다. 주변의 단풍과 어우러져 또 다른 가을을 이야기한다



자연을 닮은 개심사


개심사가 좋은 것은 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심검당과 종각, 무량수각의 기둥들을 보면 제멋대로다. 굽어진 나무들을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하나도 뒤틀림이 없이 버티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자연의 조화다. 자연 그대로를 사용한 전각들이 있어 개심사의 가을이 더 아름답다


어디를 가도 낙엽이 그대로 쌓여있다. 치우지 않은 낙엽이 있어, 개심사의 가을이 더 풍성해 보인다. 명부전을 지나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에 보면 환상적인 낙엽 길을 걷게 된다. 누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둔한 머리로 표현을 할 것인가?



널브러진 나무가 하나 누워있어 마음이 편해진다. 만일 저 나무를 누군가 치웠다면 이리 아름다운 길이 되지는 못했을 것을. 멋대로 놓아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치장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마음대로 놓여있는 것들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가을, 가을비, 단풍, 낙엽. 이 모든 것은 모두 가을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에 익숙한 계절에 길을 나섰다. 오늘 아침 김제 금산사를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추적거리고 비가 온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날이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금산사에 일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다가 보니, 모악산에도 가을이 찾아들고 있다. 그 가을 속으로 들어가시는 스님의 뒷모습이 한가하다. 가을 비 속, 그리고 낙엽 속,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다리 위, 이 모든 것이 가을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모습. 여유로움에 마음까지 편해진다. 역시 가을은 스님의 뒷모습에서 오는가 보다.


가을 낙엽 속으로 들어가시는 스님의 모습. 가을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계곡에 노란 낙엽이 떨어졌다. 저 낙엽 하나하나가 다 가을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가을 이야기는 풍요롭다. 그 한편에 아기 단풍나무 하나가 얼굴을 붉히기 시작한다. 아마 떨어진 노란 낙엽에게 무슨 소리라도 들은 것일까? 가을의 이야기는 점점 깊어만 간다.



절집 안 담장 위에 감이 익었다. 가을비에 젖은 감이 잎을 떨군다. 계곡에 떨어진 낙엽들이 화려하다. 마지막 계곡을 치장하는가 보다. 그리고 장작을 쌓은 뒤로 굴뚝을 따라 얼굴 붉힌 단풍이 따른다.



가을이 깊었다. 가을 낙엽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뒷모습에서 짙은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다. 누구는 만믈이 소생하는 봄이 좋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좋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순백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겨울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 그 중에도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난 나름대로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유는 우선은 답사를 하기에 적당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또 어떤 모습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지. 나름대로 난 가을을 이런 것들에게서 느낀다.


가을은 낙엽에서 온다. 단풍이 들고 그것이 떨어져 있을 때 정말 가을이라는 것을 느낀다.



널어 놓은 호박꼬지며 처마 밑에 달려 있는 옥수수.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은 느낄 수가 있다.



장독대에 널어 놓은 빨간 고추와 초가 지붕 위에 달린 덩치가 큰 호박. 결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 그리고 절반은 떨어져 나무 아래를 노랗게 칠을 하고 있는 낙엽. 이런 것들에서도 가을이 깊어짐을 알 수 있다.



장독대 위에 놓인 감이 연시로 익어가고, 멍석에 놓인 감이 점점 연하게 변하고 있는 모습에서 정말 가을이네 라는 것을 느낀다.

단종임금이 숙부에게 쫒겨나 멀리 강원도 땅으로 가다가 목이 말라 마셨다는 샘 '어수정' 그 맑은 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가을임을 이야기 한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1번지 천성산에 소재한 홍룡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원효스님께서 창건했다는 절이다.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송고승전』에 의하면 원효스님께서 천문을 보니 중국 태화사 승려들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미리 알고 구했다고 한다.

원효스님은 곁에 있던 판자를 하늘로 던졌는데, 그것이 당의 태화사까지 날아갔다는 것이다. 태화사 스님들은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져 놀라 뛰쳐나왔는데, 그 순간 산이 무너지면서 절이 매몰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란 태화사 승려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판자를 집어보니 ‘해동원효 척판구중’이란 글씨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즉 원효스님이 널판자 하나를 던져 많은 무리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홍룡폭포와 관음전

천명의 승려가 원효의 제자가 되다

이 일로 인해 천명의 중국인 승려가 신라로 와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원효스님께서는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짓고, 이 승려들을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이 곳 홍룡사에서 바로 판자 한 조각을 던졌다고 하는데, 홍룡사는 원효스님과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홍룡사에는 홍룡폭포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이 폭포는 천룡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홍룡폭포를 찾아 홍룡사를 찾아들어갔다. 산신각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홍롱폭포가 보인다. 80척에 달한다는 폭포는 물이 많이 즐었다. 폭포 좌측으로는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고, 우축으로는 좌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천자형으로 흘러내리는 홍룡폭포

세 갈래로 나뉘어져 떨어지는 홍룡폭포,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은 가히 절경이다. 물이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물이 없다고 그 아름다움이 어디로 가겠는가? 떨어진 물이 고인 소에는 낙엽이 떨어져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어찌 인간세상에 이런 절경이 있을 것인가?

이리저리 각도를 재보지만,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무엇을 탓할 수 있으랴? 지금도 날이 좋은 날에는 물방울이 튀면서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잔뜩 흐린 날 찾아간 홍룡폭포는 그렇게 소리 없이 암벽을 타고 내리기만 한다.



원효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관음전에 들려 예를 올리고, 돌아내려오는 길에 몇 번이고 폭포를 돌아본다. 그저 저 맑은 물속에서 한 마리 천룡이 금방이라도 물길을 헤치고 하늘로 오를 것만 같다. 아마 이 아름다움은 또 몇 날 동안 나를 답사의 길로 내몰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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