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를 그리다가 보니 굴비를 닮았다. 한국화가 박요아 작가는 굴비를 그린다. 굴비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굴비 그림이 많다보니 사람들은 그를 굴비를 닮았다고 표현을 한다.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1-2 임 아트 갤러리에서 21일부터 열세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박요아 작가의 · 소금 그리고 바람이야기을 찾아갔다.

 

박요아 작가는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서 작업을 한다. 주로 우리의 소박한 일상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그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원의 풍경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그에게서 손으로 빚은 도자기나 들꽃이 그림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법성포의 굴비와 북어 등이 그려진다.

 

 

담백하고 거친 그림 속에 은은한 정감이

 

박요하 작가의 그림 속에는 굴비가 많다. 남들처럼 아름다운 정경이나 화려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굴비 한 마리, 두 마리 가 벽에 걸려있다. 법성포 굴비를 소재로 연작을 그려낸다. 그의 그림은 굴비를 닮았다. 짠 굴비 한 마리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남겨 놓았다. 소금에 절여 노릇하게 구워 밥상에 오르는 굴비야말로 우리에게는 최고의 찬거리이다.

 

그런 굴비를 그려내고 있는 박요하 작가. 그는 법성포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굴비를 그리기 위해서 법성포의 염장법과 바람을 직접 체험했다고. 빛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소금, 다시 소금과 빛으로 인해 만들어진 굴비. 그런 굴비의 탄생을 체험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기위해 법성포를 찾아 직접 바람을 맞아본 것이다.

 

 

백발을 휘날리면 연신 굴비를 그려대는 작가 박요하는 소위 현대미술의 세련미나 기법의 화려함 따위는 날려버렸다. 담백하고 거친 필치와 투박한 색채는 꼬장꼬장한 작가의 성질만큼이나 진솔하다. 미간을 찌푸리고선 인상을 쓰고 있는 굴비의 모습이 그를 꼭 빼닮았다. 굴비를 닮은 작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소금으로 절인 빛으로 말리듯 끈기 있고 우직하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수원미술전시관 수석큐레이터 조두호의 평이다. 넓지 않은 갤러리 안 벽면에 있는 그림 속에도 유난히 굴비와 북어가 많이 보인다. 박요하 작가가 직접 법성포의 소금기가 배인 바람을 맞아가며 그려낸 것들이다.

 

열세 번째 개인전을 열다

 

꾸준한 작가의 성질을 말하듯 이번에 임 아트 갤러리의 전시는 열세 번째 개인전이다. 그동안 박요하 작가는 서울, 수원, 광명, 영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에는 법성포 단오제 초대전을 열었으며, 한국 서화 공모잔 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경기 미술상, 광명 미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기 미술대전 초대작가, 경기미협 자문위원을 거친 박요하 작가는 현재 한국미협, 수원미협, 수원 가톨릭 미술가회, 성묵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테이블용 작은 달력이 보인다. 박요하 작가의 그림으로 만든 달력이다.

 

 

선생님은 매년 이렇게 책상용 달력을 만들어 파세요. 이 달력을 보면 1월은 굴비 한 마리, 2월은 굴비 두 마리, 3월은 굴비 세 마리 이렇게 굴비가 그려져 있어요. 이 달력을 판 수익금으로 홀몸 어르신들을 도와주시고는 해요.”

 

임 이트 갤러리 임하영 관장의 말이다. 요즈음에는 수원의 정자로를 그려내고 있는 박요하 작가. 커다란 정자로의 그림 속에 공주다방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작가의 투박함이 그대로 배어있지만, 그 글자가 정감있게 다가온다. 마치 바람에 절인 굴비처럼.

 

임 아트  갤러리 /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1-2 행궁공방길

전시 / 11월 21일 ~ 11월 30일

연락 / 010 4719 4580

 

4회 이주영 개인전을 찾아가다

 

해움미술관’, 수원시 팔달구 교동 91-1 지하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컴컴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전시관이 나온다. 새로 미술관을 개장해 첫 전시인 4회 이주영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010일부터 시작한 전시는 116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작가 이주영은 중앙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전시실 안에는 벽에 그림들이 걸려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보다가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한계령과 골목길들. 그 골목길들이 왠지 낯이 익다. 한계령이야 헤아릴 수도 없이 넘은 곳이다. 그런데 이 골목들이 왜 눈에 익을까? “지동 골목입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골목이니까요.” 작가의 설명에 ~ 그랬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골목을 그리는 이주영 화백

 

이젠 작가라는 말보다는 화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세월을 보냈다. 벌써 54세라는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아직도 소년과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그림을 그린 햇수에 비해서 많은 개인전을 갖지는 않았다. 3회의 개인전을 수원미술관에서 가졌다.(2003, 2009, 2011) 그리고 이번에 4회째 개인전을 연 것이다.

 

단체전은 미술동인 새벽전, 환경미술전, 나눔회전, DMZ, 우리가 서야 할 이 땅에서 전, JAALA, 아시아는 지금 전, 수원민미협전, 인권미술전, 백만송이 실루전, 동인전 등 많은 단체전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현재 민족미술협회, 나눔회, 교동창작촌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그림엔 아픔이 실려 있었다.

 

29일 오후 해움미술관을 찾았다. 작가 이주영은 수원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죠. 사실은 어릴 때 지독한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1년 정도 일어설 수가 없으니 앉아서 즐길 수 있는 것이 그리기와 만들기 증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없었죠. 그림에는 어릴 적부터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랬기에 지금은 자신의 화실을 갖고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교동 86-1번지 이층에 이주영 화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림이 남다르다. 어릴 때의 아픔이 있어서인가? 그의 그림 속에는 진한 아픔이 있다. 이리저리 비뚤어진 골목길,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쓸쓸한 뒷모습. 가을이 서리서리 내린 한계령. 그가 즐겨 그리는 그림들 속에는 아픔이 실려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그림으로 표현 해

 

그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그림을 그립니까?”라고 물었다.

그려야 하니까요. 저에게 그림은 운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좋아하는 것들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잘 맞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80년대부터 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 진한 슬픔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0년 그림을 떠나 있었어요. 안성, 평택 등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림에서 손을 땠죠. 그런데 그림이 도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어요. 선배의 화실 한 귀퉁이에 공간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가 지난해에 화실을 마련했어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가르치는데, 수입은 영 시원찮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 행복이 바로 그림에 있다고 한다. 이주영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돈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 이라고 하며 웃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웃는 그의 미소을 보면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깊은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에 있다

깊은 기억의 공간에서 나만의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모노톤의 색조와 긁고, 쌓는 반복적인 작업과정을 통해서

마음에 새겨진 이미지를 표현하려 한다.

 

행궁동 레지던시 건물 이층 전시실. 행궁 아티스트 커뮤니티 센터인 이 전시실에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화가 초이(본명 최경자. 54)의 제7회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최경자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7,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국내, 외 단체전 40회 이상, 현재 한국미술협회, 행궁동 레지던시 작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30년 넘게 잡은 그림붓은 일상

 

최경자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29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쉰 것을 제하면, 한 번도 그림과 떨어진 적이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그림이 그녀의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습관적으로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한단다.

 

제 그림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 속에서 생동하는 기운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죠. 흔히 우리가 ()’라고 하는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려고 합니다. 기운이 생동해야 사람이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늘 만족하지는 못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만족을 하면 늙은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언제나 조금은 부족한 듯한 생각에서 더 한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다가 힘들고 좌절이 올 때는 시장을 간단다. 그 안에서 만나는 시끄러움과 같은 것들에서 기운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씩 조금은 멈추었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 새 기운을 얻어 작업에 임한다는 것이다.

 

 

강렬한 색에서 느끼는 기운

 

전시실 안에는 온통 여인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그림들이 강렬한 색채를 띠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다.

 

느리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욕망의 끈을 놓치는 행위로 화면 한 모퉁이를 바느질 한다. 바느질은 여성의 노력과 느림의 미학이 곁들인 용서와 치유의 작업이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무수한 숙고와 경험과 반추 그리고 욕망과 사랑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 풀고 엮는 촉각적 행위를 동반한 에세이다.’

 

 

내 생활의 90%는 그림입니다

 

화면 안에 자리를 하고 있는 여인들은 무엇인가를 관람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작가 최경자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났다. 그 때도 레지던시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 자신은 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야말로 그림을 그리면서 인생을 즐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 중 90%는 그림을 대하는 시간이고, 남은 10%만이 남들과 같은 일상이라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그림을 그리듯 그려갈 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을 것만 같은 최경자 작가. 49살이라는 나이에 대학원을 진학한 것도, 그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간다. 그래서 벽에 걸린 작품들에서 또 다른 생동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나 아닌지나 모르겠다.

집을 날마다 해체하는 여인이 있다. 도대체 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화가 박남희(여, 49세,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왜 그냥 집이 아니라, 집을 모두 펼쳐서 그림 안에 집어넣었을까? 3월 3일 오후에 평촌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나의 조형예술은 ‘집’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집이란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기에 집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것을 바라보고 관심을 갖는 대상은 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일상은 ‘일탈’을 도출하는 ‘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화가 박남희.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귀인중학교 앞 작업실에서 만났다


‘꿈’을 집이라는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화가

화가 박남희는 그 동안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3년 성보갤러리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연 후, 2008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2회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관훈갤러리에서 3회를, 2010년에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갤러리에서 현대미술 초대전을 열었다. 그동안 단체전도 열심히 했다.

1999년 전통과 현대의 만남전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연 것을 비롯하여, 2008년 중국에서 한일문화교류전, 2009년에는 공주 원골에서 예술과 마을 설치제, 2010년 2010 Project- C전 등 20여 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현재 서울미술협회 회원이면서 아트플래시의 회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저는 그림을 늦게 접했어요. 어려서부터 시작을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늦게 그림을 시작했죠. 30대 초반에 시작한 그림이, 이제는 전업화가가 된 것이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46세에 졸업을 했으니 참 늦은 셈이죠.”

그런 그녀가 그림에 푹 빠진 것이다. 집을 풀어 그림으로 표현을 하는 그녀의 작업은 늘 꿈으로 가득하다.

“꿈을 집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죠.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사고나 감정이죠.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하죠. 집을 바라보는 시각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고, 그것을 펼쳐 놓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그 안에 ‘꿈’을 그려 낼 수가 있는 것이죠,”

'집의 조각들'이란 개인전을 관훈크럽에서 기졌을 때의 작품 


그림속의 색채의 조화로움에 희열을 느껴

화가 박남희, 그녀의 그림 속에는 집안의 모든 것들이 나열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 속의 이미지보다 오히려 색채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색채의 조화를 그려내다가 보면, 현실의 표면적인 현상보다도 본질과 자아의 내면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 그것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미지로 규칙과 제약이 없는 일정한 질서 속에 자유로움을 표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죠. 화가는 만족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끝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그 작업 안에서 느끼는 희열이 없다면, 아마도 아무도 그림을 그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좌절과 희열이 반복되면서, 나의 무의식이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가장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남희 작 <다섯 개의 구름기둥>. 그녀는 집을 평면화하여 그 안에 꿈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한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사물인 집이라는 건축이미지를 해체하여 평면화 시키고 있다. 그 안에 친숙하고 구상적 이미지인 하늘이나 식물 등의 이미지를, 평면과 입체의 이중적 공간을 다시 한 화면 속에 안착시킨다. 그것은 사물에 대하여 낯설음과 익숙함을 동시에 깨달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림은 내 영원한 동반자, 돈으로 따지고 싶지 않아

“저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고 따듯한 느낌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그림을 보면서 본인의 현실적인 일탈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죠. 책장 속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 같은 계단, 또는 반복적인 패턴화 된 층계, 안과 밖이 모호한 문 등,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구성을 그런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다가 말고 너무 오랜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죄스럽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다 볼수록 자꾸만 빠져드는 이상한 마력 같은 것을 느낀다. 아마도 화가 박남희의 말대로 그 그림 속에서 나의 일탈을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하느냐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가정이 있으니 가족들의 도움도 받고, 초대전도 해서 충당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팔기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대답을 한다.

“저는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는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돈이 목적이 된다면 그 안에 참다운 사고가 피어나질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예술은 신선해야 아름다운 것 아닌가요?”

되묻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그저 세상 속물인 기자 하나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건드렸나보다. 3~4월 경에 그룹전이 있어 요즈음은 하루에 7시간 이상을 작업에 몰두한다는 화가 박남희. 그 전시회가 기다려지는 것은 또 다른 건조물의 펼쳐짐 때문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