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농촌진흥청을 끼고 서호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축만제 쪽으로 가다가 보면, 서호가 시작되는 곳 좌측에 정자 한 기가 서 있다. '항미정(杭眉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 이 정자는 조선조 순조 31년인 1831년, 당시 화성유수 박기수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건립한 지 180년이 지난 이 항미정은 현재 수원시 지정 향토유적 제1호이다. 항미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중국시인 소동파의 시구 중 '서호는 항주의 미목 같다'고 읊은 내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하지만 '항미'라는 말 그대로를 풀어보아도 미인의 눈썹이요, 물의 가장자리라는 뜻이니, 굳이 중국의 시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닐는지.

 

 

항미정에 오르다

 

토요일 오후. 그동안 항미정을 몇 번이고 찾아가려 했으나, 번번이 시기를 놓쳤다. 항미정과 축만제를 한 바퀴 돌아볼 심산으로 길을 나선다. 농촌진흥청 정문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조금 담을 끼고 가면, 축만제로 들어가는 냇가 옆의 길이 보인다. 항미정은 그 길 끄트머리 서호가 시작되는 곳에 있다.

 

 

 

항미정에 오르면 축만제인 서호가 한눈에 보인다. 아마도 이 축만제의 풍광을 보기 위해 지은 듯하다. 축만제는 조선 정조 23년인 1799년 농업용 저수지로 축조됐다. 당시에 만석거와 만년제, 축만제 세 곳에 저수지를 조성했는데, 그 중 서쪽에 있어서 서호라고 불렸다.

 

예전부터 서호는 낙조와 겨울철새 들이 찾아드는 곳으로 유명했으며, 잉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마 화성유수 박기수도 이곳 서호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시 한 구절을 짓지는 않았을까?

 

 

정자 뒤편에 달아낸 것은 무엇일까?

 

항미정은 정면 네 칸에 측면 한 칸 반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정자를 바라보면서 우측 한 칸은 두 칸으로 지어져 'ㄴ'자 형태의 정자로 보인다. 홑처마 목조건물로 지어진 항미정은 기둥 위에 사각형의 도리를 얹은 납도리집이다. 정자를 보면서 우측 세 칸은 누마루를 깔고, 좌측 한 칸은 마루를 높여 반 칸을 앞으로 더 달아냈다.

 

주추는 모두 마름모꼴의 사각형 주추를 사용했으며, 좌측 끝은 주추를 높인 장초석을 이용하였다. 뒤편에는 판문을 내었는데, 좌측에도 측면에 판문을 달아냈다. 그저 평범한 정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정자 뒤편으로 돌아가니 흡사 통로를 만든 듯한 구조물이 보인다. 두 칸을 덧달아 낸 이곳은 무엇일까? 그곳을 바라보면서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정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혹 이곳을 통로로 해서 그 뒤편에 건물과 연결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도 아니면 혹 유수를 비롯한 사대부가들이 정자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때, 그 밑에 육방관속이라도 편히 쉬기 위한 장소는 아니었는지.

 

 

일반적인 정자와는 조금은 다른 항미정. 마루에 잠시 올라앉아 본다. 서호의 주변을 걷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들도 이 항미정의 풍취를 알고는 있을까? 이렇게 항미정의 마루에 앉아 옛 선인들의 숨결을 느껴본다. 아마도 옛 분들도 이렇게 마루에 올라앉아 서호의 낙조를 보면서, 세상 시름을 잊지는 않았을까? 이곳에 세상 시름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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