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있어 삼사순례(三寺巡禮)’란 하루 만에 절 세 곳을 돌아오는 일이다. 이는 자신이 지은 죄업을 소멸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자신이 마음속에 서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6일 오후 230분에 출발한 삼사순례는 먼 곳을 갈 수 없어 경기도 내의 절을 찾아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1호가 자리한 이천시 설성면 자석리 51번지에 소재한 용화사이다. 이곳은 예부터 미륵당이라고 전해지는 곳으로, 이천에서 장호원읍을 향해 가다보면 자석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작은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용화사는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길이 나있다.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들어가면 예전 조림지인 듯한 숲길로 접어들게 된다.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는 용화사. 절 안이 너무 조용하다 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눈앞에 축대가 보이고 그 위에 서 있는 자석리 석불입상이 보인다. 대웅전 문이 잠겨 있는 것으로 보아 경내에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미륵세상을 꿈꾸며 머리를 조아리다

 

어차피 이 용화사를 찾은 것도 미륵불인 석불입상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던가. 미륵은 후천세계의 부처님이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든지 567천만 년이 지나면 사바세계에 출현한다는 부처님이다. ‘용화사(龍華寺)’라는 명칭도 미륵불의 세상에서 용화삼회설법에서 기인한 명칭이다.

 

미륵불이 출현하면 국토의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대해 설함으로써, 중생들이 죄를 짓지 않고 모든 번뇌의 업을 끊는다는 것이다. 미륵신앙은 삼국시대에 불교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널리 신봉되었으며, 경기도 일대에는 많은 미륵불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나라가 온통 메르스 공포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석불입상 앞에 머리를 조아린 까닭도 바로 이런 고통스런 세월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가진 자들이야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민초들은 그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두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을 한다,

 

 

 

 

두 개의 석재로 조성한 고려 말기의 석불입상

 

자석리 석불입상은 두 개의 돌로 조성을 하였다. 머리에는 커다란 둥근 갓을 올렸으며 그 아래 얼굴과 가슴부분까지 한 개의 돌을 올리고, 그 아래 하반신 부분을 또 하나의 돌로 조성했다.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이마에는 세상을 비춘다는 백호가 뚜렷하고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를 표현했다.

 

두 귀는 일반적인 석불입상에 비해 짧게 조형되었으며, 얼굴 크기에 비해 눈, , , 귀 등 모든 것이 작게 표현을 하고 있어 조화와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미륵의 법의는 통견으로 아래로 흘러내리게 했으며, 두 손과 함께 마멸이 심해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석불입상의 뒷면은 아무런 조각도 없이 평평하게 처리하였다.

 

 

 

 

이목구비의 조형과 몸체에 비해 좁은 어깨, 간략하게 표현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이 석불입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준다. 마음속으로 서원을 하고 난 뒤 석불입상을 찬찬히 돌아본다. 비록 커다란 돌을 이용해 조성한 석불입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오랜 세월을 간구하지 않았을까?

 

석불입상 뒷면을 보니 누군가 몸체에 동전을 붙여놓았다. 흔히 속설에 동전을 바위나 석불의 몸체에 붙이면 서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얼마나 마음속에 간구하는 바가 간절했으면 이렇게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했을까? 오후에 세 곳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석리 석불입상 앞에 머리를 조아려 다시 한 번 간구를 한다. 이 험한 세월이 하루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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