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290호 괴산 삼송리 왕소나무. 삼송리의 소나무는 마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작은 소나무 숲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12.5m이고, 수간 둘레는 4.5m이다.

 

이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고 불리며,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을 삼송리라 부른 것도, 이 소나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인근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하였는데, 지금은 왕송만 남아 있다고 한다.

 

 

마을지킴이로 숭앙을 받던 소나무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매년 1월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한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에 대한 전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송리의 소나무 역시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보호를 받아왔다.

 

이런 천연기념물인 소나무가 28일 전국을 강타한 태풍 불라밴으로 인해 뿌리 채 뽑히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오전 9시까지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10시 쯤에 보니 뿌리 채 뽑혀 쓰러져 있었다는 것.

 

유리창보다도 못한 국보와 천연기념물

 

28일 하루 종일 모든 방송사들은 실시간으로 태풍의 진로와 피해상황 등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방송사들이 앞을 다투어 유리창이 깨지고 전기가 나갔다고 열을 올려 방송을 하고 있는 시간, 국보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의 지붕 기왓장들이 날아가고, 천연기념물 삼송리의 왕소나무가 뿌리 채 뽑혀버렸다.

 

그러나 방송에선 그런 것에 대한 보도 한 번 들을 수 없었다. 다만 YTN이 각황전과 여수 흥국사 대웅전 용마루 일부도 피해를 입었다고 방송을 할 뿐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데 그까짓 문화재가 대수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600년 이상을 그 자리에서 지켜 온 소나무이다. 그 의미가 남다르다.

 

 

왕소나무를 애도한다.

 

600년이란 역사를 생각해 보자. 100년도 못 넘기는 인간들에 비해, 말없이 이 땅과 민초들의 삶을 600년이나 보아온 나무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즐거움을 알고 있었을까? 마을에서 서낭목으로 삼아 마을의 안녕을 빌어 오던 나무이다. 그런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가 송두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진출처 / 세종데일리

 

태풍이 올 때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들이 수난을 당한다. 지나고 난 뒤에 미쳐 간수를 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사전에 방비를 할 수는 없었을까? 풍속이 50m이면 나무가 뿌리채 뽑히고, 전신주가 넘어간다고 방송에서 수도없이 이야기들을 했다. 그렇다면 더 높고 더 바람을 많이 받는 수령 600년이 지난 이 왕소나무는 당연히 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 아닌가?

 

바로 이런 점이 쓰러진 채 널브러진 왕소나무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것이다. 나무도 오래 묵으면 정령이 있다고 했던가? 오늘 이 왕소나무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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