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운수리) 직지사 대웅전 앞에 보면 두 기의 석탑이 마주하고 있다. 보물 제606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聞慶 道川寺址 東西 三層石塔)’ 이 탑은 직지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2기의 석탑으로, 원래 경북 문경의 도천사 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탑 앞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은 보물 제1576호로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웅전과 앞에 동, 서로 갈라져 서 있는 두 탑으로 인해 직지사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두 탑은 생김새가 거의 같게 조성을 했으며, 각 부분의 조성양식이 같아서 1단의 기단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한 자리에 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곳은 그리 흔치가 않다. 직자사에는 이 외에도 석탑 두 기가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어 가히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석탑들은 모두 직지사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다. 대웅전 앞 석탑 2기는 문경 도천사지에서, 그리고 경내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은 도천사지와 강락사지라고 전하는 곳에 있던 것들이다.

 

 

 

 

닮은꼴로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에 아도 화상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 되었다 벌써 1600년이라는 세월을 지낸 고찰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두 기의 석탑은 마치 쌍둥이를 보는 듯하다. 여러 장의 넓적한 돌로 짠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는 우주를 돋을새김 하였고, 중앙에는 탱주를 돋을새김 하였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우주를 새겨 놓았다.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붕돌은 얇고 평평하게 조성을 했으며, 밑면 받침은 1층과 2층은 5, 3층은 4단으로 조성했다.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위로 들려져 있으며, 꼭대기에 올린 거대한 모습의 머리장식은 1976년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탑들은 대개 탑신의 1층 몸돌 높이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직지사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대웅전도 보물 제1576호로 지정

 

직지사에는 원래 조선초기의 건물인 대웅광명전이란 전각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이 되고 말았다. 현재의 건물은 선조 35년인 1602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절의 준심 전각인 대웅전에는 주불은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셔 놓았다.

 

인조 27년인 1649년에 중영이 있었고, 영조 11년인 1735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직지사 대웅전은 정면 5, 측면 3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대웅전은 중심 법당답게 짜임새가 있으며 천정을 높이하고 절제된 장식으로 치장을 해 장엄함이 엿보인다. 대웅전 안에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은 효종 2년인 1651년에 조성한 것이다.

 

 

 

 

직지사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추어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만세루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당이 위치해 있으며, 길이 9m에 이르는 수미단에는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을 소박하게 조각해 놓았다.

 

대웅전은 뒷벽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으며 후면 전체를 문을 달아 놓았다. 특히 덤벙주초를 놓은 위에 올린 기둥은 일정하지 않게 구부러진 나무의 형태를 그냥 사용하여 자연스런 미를 더하였다.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전각으로 우리 건축시 연구에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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