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참 정신없이 글을 올렸습니다
사는 것도 빡빡한데 글쓰고 돌아다니면서 추천을 한다는 것도 버겁습니다

그런데 오늘 참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터킨터님의 블에 갔다가
김홍기님께서 블로그를 접겠다는 소식입니다.

문화블로거인 김홍기님은 저 역시 글을 보면서 늘 감탄을 하던 분입니다
그런 문화블로거 한분이 글을 접겠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몇분 되지도 않는 문화블로거 중 한 분인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저도 오늘은 반성의 날로 삼겠습니다
글을 하루 접겠습니다

이글엔 추천을 누르지 마세요

문화재청에서는 2011년 「문화훈장」과「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을 포상하기 위한 후보자 접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상은 문화유산 보존ㆍ관리ㆍ활용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 자에 대하여, 시상을 하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포상내용을 보면 모두 3개 부문으로 구분된다.
존ㆍ관리부문 : 문화재의 보존ㆍ관리, 훼손ㆍ멸실 예방, 보호 분야
학술ㆍ연구부문 : 문화재의 학술적과학적 조사․연구 분야
봉사․ 활용부문 : 문화재에 대한 봉사홍보․교육ㆍ활용 분야


의 후보를 접수받는다. 포상인원은 문화훈장 3명과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5명이며, 상장 및 부상은 문화훈장의 경우 각 공적에 해당하는 문화훈장이며, 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은 대통령 상장 및 부상으로 각 1,000만원의 상금과 트로피를 수여한다.

후보자의 수상자격을 보면 문화훈장의 경우, 시상부문에서 공고일로부터 20년 이상의 수공실적이 있는 자여야 한다. 이는 국적과 생존에 관계없이 대한민국문화재분야에 있어,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를 선정한다.

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은 시상부문별로 공고일로부터 5년 이상의 수공실적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적이 현저한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전하게 된다. 후보자의 추천은 본인을 포함한 개인이나 기관, 단체 등 제한이 없으며, 제출서류는 추천서(소정양식) 1부와 공적 증빙서류(사본 제출)를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여 출력물 원본(추천자 날인)을 이메일((ghsin2000@korea.kr)로 제출하면 된다.

포상일 및 장소는 2011년 12월 8일(목) 15:00~17:00 에 정부대전청사 대회의실에 거행한다. 후보자를 추천할 때의 주의 점은 한 사람을 문화훈장과 문화유산상에 중복 추천할 수 없으며, 행안부 포상지침에 의하여 동일공적으로 이미 훈장을 맏은 자, 대한민국문화유산상을 받은 자, 훈, 포장을 받은 지 5년이 경과되지 않은 자, 대통령 표창이나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지 2년이 경과되지 않은 자, 형사 처벌을 받은 자 등이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자들도 이 상에서 제외가 된다. 즉 수사 중이거나 각종 언론보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정부포상이 적합지 않다고 판단되는 자도 포상에서 제외가 된다.


후보자의 서식배부는 화재청 홈페이지(http://www.cha.go.kr - 새소식 - 공지항)에서 다운받아 작성(추천서, 정부포상에 대한 동의서)을 할 수 있고, 접수처는 대전광역시 서구 선사로 139, 문화재청 정책총괄과(우 302-701)로 방문접수 또는 우편접수(접수 마감일까지 도착분에 한함)를 하면 된다.

접수기간은 2011. 6. 7.(화) ~ 8. 5.(금)(공휴일 제외)까지이고, 수상자의 발표는 2011년 12월초에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서 하며, 개별통지도 한다. 주변의 문화유산에 대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있으면, 문화훈장과 대한민국문화유산상에 추천을 하기 바란다.


이것들이 다 무엇이냐고요? 카메라입니다. 편하게 휴대를 하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물론 고가의 카메라는 아닙니다. 이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 100만원을 조금 넘는 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카메라와 렌즈들은, 내 분신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벌써 오래된 것은 12년 째 되었으니까요.

지금 다 사용할 수 있느냐고요? 아닙니다. 하나도 사용할 수 없는 폐품들이죠. 그런데 왜 이렇게 버리지를 못하고 갖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참 슬퍼지네요. 일 년 열두 달, 제 몸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녀석들이기 때문이죠. 버리려고 생각하면, 제 눈과 몸의 일부를 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버리지를 못하고 있죠.


20년 넘은 문화재 답사길, 참 험했다

벌써 문화재답사를 시작한지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올 해 나이 62세이니, 내 인생의 3분의 1을 길에서 보낸 셈이다. 남들은 그 소중한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고 빈정대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길에서 보낸 20년 세월이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주머니에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안절부절 좌불안석이 된다. 얼른 문화재를 만나러 나가고 싶어서다.

산으로 들로, 때로는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하였다. 한 겨울에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매다가 얼어 죽을 뻔도 했다. 장마철에 산속을 뒤지다가 보니, 냇물이 불어 겨우 빠져나오기도 일쑤였다. 그런 문화재답사를 왜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물음에 내 대답은 한결 같다. ‘나도 모르지’



지금 생각하면 그 20년이 넘는 세월이, 참 험한 답사 길이었다는 생각이다. 미끄러지고 구르고,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보니 작은 카메라일망정 성할 리가 없다. 사람과 함께 깨어지고 부수어지기가 일쑤다. 아마도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이전, 아날로그 카메라까지 합친다면 이보다 몇 배는 될 것 같다.

오늘 보니 참 고맙다

이 카메라 중에는 내가 구입을 한 것도 있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미친 듯 답사를 하는 나를 보고 선물을 해준 것도 있다. 지금은 그래도 좋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렇게 소형인 카메라가 나에게는 더 없이 반갑다. 산을 오를 때도 무겁지 않아서 좋고, 모두가 동영상까지 촬영을 할 수 있어서이다.

지금이야 동영상을 찍지 못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영상을 더 많이 찍었다. 아무래도 사진으로는 문화재를 세세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부족한 듯해서이다. 동영상을 이용하면 세세한 부분까지도 촬영을 해서 보여줄 수가 있으니, 문화재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답사를 나갈 때는 사용하는 카메라와 함께, 소형 카메라 한 대를 더 지참하고는 했다.



그렇게 답사를 하면서 망가진 카메라들이다.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정리를 하다가 보니. 가방 안에 가득한 고장 난 카메라들을 보면서 지난날을 생각해 본다. 참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다는 것에 대해, 새삼 이 고장 난 카메라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수고했다’고 고별사를 남기고 보내주어야겠다. 다음에 또 보게 되면, 아픈 기억들이 또 살아날 수도 있으니.


이제 2010년이 4일 남았다. 올 일 년 동안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길에서 들고 온 자료도 상당하다. 아마 전체적으로 돌아다닌 거리를 따지자면, 서울서 부산거리를 50여 번 정도를 왕복을 했을 정도의 거리를 돌아다닌 것만 같다. 그 많은 여정에서 만나 본 문화재만 해도 상당하다.

글 제목에 ‘얼마나 많은 소득을 올렸나?’라고 하니, 남들은 수입으로 알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소득이라고 하는 것은 돈이 아닌, 수많은 문화재를 말하는 것이다. 일 년 동안 어림잡아 4~500점 정도는 만나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 번 답사를 나가면 15~20점 정도의 문화재를 답사한다. 그런 답사가 한 달에 두 세 번씩 일 년 동안 30회 정도를 나가 돌아다녔으니, 어림잡아도 500점 정도는 될 것 같다.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 예천 병암정

늘어나는 자료CD, 그동안 다닌 족적인데

그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자료를 담아 놓은 CD가 2,000장이 넘을 듯하다. 이제는 자료 정리를 더 말끔하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외장 하드를 사서 지역별과 종류별로 구분을 해 담아 놓아야 할 것만 같다. CD라는 것이 영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야만 안심이 될 것만 같아서이다.

만 2년을 티스토리를 접었다가 다시 시작을 한 것이 올 해 8월이다. 2010년 8월 2일 첫 글을 다음 뷰로 송고를 하고 난 후 270개의 글을 썼다. 첫 글은 ‘금강가의 아름다운 정자 만하루와 연지 ’라는 글을 송고했는데, 지금 보니 추천이 43에, 단 한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의 주인공이 바로 ‘친구 세라’ 님이다.

공주 공산성 안에 자리한 만하루와 연지

그리고 5개월 동안 270개의 글을 올렸으니, 적은 글은 아니다. 결국은 5개월 동안 250 점이 넘는 문화재를 답사를 했다는 것이니. 올 일 년 500점 정도의 문화재 답사를 했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 많은 문화재를 만나보면서 기쁨도 있고, 슬픔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장에서 만나는 문화재를 보면서 눈물도 적잖이 흘린 듯하다.

2010년 한 해, 참 많이도 울었다.

길을 나서 만나는 문화재들은 다양하다. 국보서부터 보물, 사적, 중요민속자료, 등록문화재자료, 유형문화재, 민속자료, 거기다가 비지정문화재까지, 수도 없이 많은 문화재들을 접할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 문화재들의 현실을 보면서, 참 많이도 눈물을 흘렸다. 때로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훼파된 문화재의 몰골이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국보 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과 보물 연곡사 동부도비

티스토리에 송고를 하지 않을 때도 답사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꽃이 피는 봄부터 시작해, 무더위가 기승을 떠는 뙤약볕 아래서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아름다운 단풍에 취해 갈 길의 시간을 못 맞추어, 몇 시간을 걷기도 했다. 앞이 안보이게 눈이 날리는 바람에 길을 잊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답사를 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사진 한 장한장이 소중한 까락은 바로 그런 고통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진 안에 소중한 문화재의 정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의 예혼(藝魂)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 년 동안 적어 온 글을 열어보면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있어, 2011년을 걸어야 할 힘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중요민속자료 함양 일두 정여창 가옥과 천성산 홍룡폭포

답사를 하면서 어쩌다가 만나게 되는 분들. 신묘년에는 그런 분들은 더 많이 만나게 되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 년간 그래도 어쭙잖은 글을 보느라 말없이 들려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전한다. 나를 버티게 한 진정한 힘은 바로 그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살다가 보면 세상이란 것이 참 재미있다. 그저 남들이 광고를 부치니까 나도 따라 해보았는데, 그것이 꽤 모였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 몇 권은 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그런데 알라딘 중고책방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지금은 품절이 되어서 구할 수조차 없는 책이 한 권 눈에 띤다.

1999년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발간한 경기문화총서 제1권인 『경기도의 굿』이라는 책이다. 발간을 하고나서 얼마 안 있어 품절이 되는 바람에, 정작 책을 쓴 나도 책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 책이다. 그 책이 딱 한권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고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다.


신청을 해놓고도 긴감인가 했는데

오늘 오후에 택배를 받았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알라딘에서 보낸 책이라는 것이다. 받아서 안을 보니 정말로 ‘경기도의 굿’이란 책 한 권이 들어있다. 1년 넘게 경기도 일대를 샅샅이 뒤지면서 주민들과 대담으로 엮어낸 책이다. 이 책 한권을 내느라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그렇게 현장을 방문하여 굿을 촬영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펴낸 책이기에 나에게는 남다를 의미를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1999년 11월 4일에 펴냈으니, 벌써 10년이 지나버렸다. 그 책을 이제 티스토리 광고료로 구하다니. 참 이런 재미로 블로그에 열심을 내는 것인가 보다.



오늘 날씨도 추운데, 오후에 뜻하지 않은 소중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남들은 왜 힘든 답사를 하느냐고 묻지만, 답사를 하고 책을 내고 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고집스럽게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경기도의 굿 (주문불가)

• 하주성 著 / 4X6배판 / 343면 / 15,000원 (배송비 무료)

• (절판) 경기도 굿의 유래와 특성, 복무 및 무구, 도당굿, 진오기새남굿, 안택굿, 진척굿, 성주굿의 내용과 분포를 철저한 현장답사를 통하여 집대성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학계에서 강신무, 세습무로 무리하게 범주화한 오류를 싫증적, 이론적으로 분석하여 경기지역 무격을 기능 세습무로 정리한 성과를 올렸다.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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