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세계문화축전 조직위원회는 합천 가야산과 홍류동 계곡의 단풍이 절정을 뿜어내는 계절에 축전장을 제대로 즐기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이 방법으로 제대로 이용만 할 수 있다면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열배로 더 즐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대장경 진본을 둘러보기, 마애불, 해인사 즐기는 방법 등이다.

 

더불어 10,000원짜리 입장권 한 장으로 많은 곳을 볼 수가 있으며, 합천군 내에서 할인혜택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실속관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황매산과 오도산 자연휴양림에 들어가 힐링도 할 수 있고, 숙박업소에서 할인도 받을 수가 있으니 열배의 재미가 있는 셈이다. 역시 공부도 할 수 있는 대장경 축전의 막바지 재미를 느껴보자.

 

 

대장경 축전 열배로 즐기는 팁 네 가지

 

첫 번째로 진짜 대장경(대장경판 진본)을 보고 싶은 사람은 해인사가 아니라 대장경축전장을 찾아야 한다. 대장경축전 45일간만 특별히 대장경 진본 8점을 축전장내 천년관과 기록문화관에서 공개한다. 또한 화엄경 변상도 완질본 80점도 축전장에서만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해인사, 마애불, 암자탐방 등을 원하는 경우 가급적 자가용을 축전장 부근의 무료주차장에 세워두고 해인사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세 번째는 대장경입장권 한 장으로 해인사와 마애불입상, 합천영상테마파크, 합천박물관의 관람과 가야산, 황매산, 오도산 자연휴양림 등반 등 가야산을 포함한 합천군의 관광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알뜰관광을 즐길 수 있다. 조직위는 원 티켓, 풀 서비스개념을 도입, 성인 기준으로 1만 원 권 입장권 한매로 10가지 이상의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또한 당일입장권으로 합천군에 위치한 숙박요금(1실기준) 5,000원과 음식가격도 10% 할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네 번째는 팔만대장경 문화유산을 역사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 역사과목을 공부하려면 축전장을 찾으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대장경축전장에는 국내최신 영상기술의 5D원형입체영상관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즐기면서 역사와 친해질 수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번 축전에서는 요즈음 학생들이 영상세대임을 감안하여 현대적인 영상 기법을 도입한 콘텐츠를 다량 배치하였다. 또한 인경, 판각 체험 등 19개의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다양한 체험거리도 즐길 수 있다.

 

 

학생들 역사 교육·체험장으로 전국 최고

 

그동안 대장경세계문화축전에 전국서 몰려든 학생 관람객 수 20여 만 명을 넘어서면서, 대장경 축전이 전국 최고의 학생들 역사 교육·체험학습과 가을소풍 장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대장경조직위는 개막 32일째인 지난 28일 대구 상인초, 부산 금빛초, 창원 진전중 등 전국 787개 이상의 학교에서 11만여 명의 학생이 축전장을 관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30일 밝혔다. 공식적으로 접수, 집계된 것 외에 가족단위 방문이나 개별적 방문 등 통계에 잡히지 않은 관람객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2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조직위는 추산하고 있다.

 

 

대장경축전이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에서 몰려온 초고 학생들로 연일 북적거리고 있다.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전국에서 방문하는 가족단위 관람객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대장경축전이 가족이나 학생들의 교육의 장으로써의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남권은 물론 경기·서울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학교에서 역사 체험을 위해 축전장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축전장을 찾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콘텐츠는 단연 빛소리관에서 펼쳐지는 5D원형입체영상. 대장경의 역사와 의미 등을 현대적인 영상기술을 활용하여 초중고 학생들에 친숙하게 꾸며진 콘텐츠로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인기코너로 자리 잡았다.

 

 

고려대장경 진본 8점과 대장경 천년관도 학생들의 필수 관람코스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인경, 판각 등의 19개의 체험프로그램이다. 대장경축전조직위 김이수 집행위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에 고려대장경과 관련한 내용이 8쪽이나 차지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면서 대장경축전은 역사교육을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끼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좋은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겸 방송인으로 인기중인 김종국이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대장경축전 조직위는 KBS 2TV 예능프로그램 '위기탈출 넘버원',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MC 등으로 맹활약 중인 가수 김종국을 대장경축전의 성공을 위한 명예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개막식에서 노래도 불러 

 

김종국은 우선 오는 26일 오후 2시 대장경축전 개막식에서 ‘사랑스러워’등 자신의 히트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어 10월 5일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영상 메시지에서 김종국은 고향 사랑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경남 합천의 관광 명소인 가야산 홍류동 계곡과 천년 역사를 간직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김종국은 가야산과 해인사로 유명한 경남 합천이 고향이며, 현재도 친인척들이 해인사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홍보 대사를 맡은 김종국씨는 “팔만대장경은 우리 문화의 우수한 문화원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적인 문화재이다”며 “고향 합천을 알리고 대한민국을 빛내는 뜻 깊은 행사에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조직위 관계자는 “바쁜 가운데도 홍보대사를 맡아준 김종국 씨의 고향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며 “가을철 단풍으로 유명한 합천 해인사와 가야산 국립공원은 물론 대장경축전에 많은 국민들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장경축전 명예홍보대사인 김종국이 출연하는 대장경축전 축하공연(9월26일 오후 2시40분~)에는 가수 김종국씨 외에도 트로트 가수 김혜연, 아이돌 가수 레인보우와 제국의 아이들(제아)이 나와서 대장경축전 성공개최를 성원할 예정이다. 대장경축전은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45일 동안 경남 합천군 가야면 주행사장과 해인사 일원에서 펼쳐진다.(자료제공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조직위)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번지에 소재한, 신라 때의 절터로 추정되는 사적으로 지정된 영암사지. 비가 내리는 지난 8월 20일 찾아간 영암사지는, 정말 사지 중의 최고였다는 기억이다. 우선 주변 경관이 뛰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엄청난 넓이의 전각 터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영암사지의 맨 위쪽이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법당터. 그곳에는 보물 제489호로 지정이 된, 합천 영암사지 귀부가 자리하고 있다. 동서로 나누어 자리하고 있는 이 귀부 2기는, 영암사 터 내의 법당터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한 기씩이 자리하고 있다. 영암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어 그 즈음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비와 머릿돌은 사라지고 받침인 귀부만 남아

원래 비는 받침돌인 귀부와 몸돌인 비석, 그리고 머릿돌인 이수가 위에 얹혀 있다. 그러나 현재 영암사지 법당 터에는 받침돌인 귀부만 양편에 남아있다. 양편에 남아있는 귀부는 기단의 형태가 달라, 동시대에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얼마간의 사이를 두고 세운 것으로 보인다.

법당 터 앞에는 석등인 듯한 석물이 있다. 받침과 간주석만 있는 이 석물은 간주석, 중간이 잘려져 있다. 숱한 세월을 지내오면서 많은 아픔을 당한 증거이다. 영암사가 언제 창건이 되었는지, 언제 소멸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터에서 발굴되는 많은 석조물들이 신라 때의 것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때 창건이 된 절로만 추정하고 있다.



동서편의 귀부가 각각 특징을 지녀

석등인 듯한 석조물의 뒤편으로는 석축으로 쌓은 기단이 있고, 계단이 일부 남아있다. 동쪽의 귀부는 거북의 등 무늬가 6각형이며, 비의 몸돌인 비석을 괴는 네모난 비좌 주위에는 아름다운 구름무늬가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머리처럼 새겼고, 목은 똑바로 뻗어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통일신라부터 고려조로 넘어가면서 보이는 귀부의 특징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비석은 통일신라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쪽에 놓인 귀부 역시, 6각형의 등 무늬인 귀갑문을 배열하였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는 4면에 안상을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서쪽의 귀부는 동쪽의 귀부보다 얇고 약간 작지만, 거의 같은 솜씨로 만들어졌다. 동쪽의 귀부는 조금 크며 귀갑문을 새긴 등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정교하면서도 강한 생동감이 느껴지고 있는 귀부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누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이렇게 두 개의 귀부만 남아있는 영암사지 귀부, 도대체 그 비에는 어떤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누구의 비였는지 궁금하다. 영암사지 귀부 2기는 각 부 양식이나 주위의 석조유물 등과 관련지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조에 걸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이 된다. 동쪽의 귀부가 시기적으로 조금 이른 듯이 보이는 영암사지 귀부. 그 비문에 적힌 내용이 궁금하다. 말없는 귀부는 눈만 부라리고 있을 뿐이고.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1659 영암사지에는, 보물 제480호인 삼층석탑 한 기가 서 있다. 높은 축대 안쪽에 서 있는 이 탑은, 쌍사자 석등이 서 있는 금당터 앞에 있다. 영암사지는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로 알려져 있다. 절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 기록으로 보아 영암사는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정비중인 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보물인 쌍사자석등과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황매산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영암사지는 아직도 정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8월 20일 비를 맞으며 찾아간 영암사지. 그곳에서 삼층석탑을 만났다.




무너져 있던 탑을 복원하다

이 삼층석탑은 영암사지에 탑신부가 무너져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쌍사자석등을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주민들이 막아냈다고 하는 점으로 보아, 아마도 이 삼층석탑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해체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제치하 하에서는 이렇게 수많은 문화재들이 해체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이다.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으로, 1969년에 복원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삼층석탑은, 화강암재로 조성을 하였다. 기단은 상당히 높은 편이며, 몸들은 1층에 비해 2, 3층이 유난히 낮다. 기단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인 우주와 탱주를 새겼으며,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몸돌의 모서리에는 우주를 새겼으며,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은 4단씩이다. 몸돌의 비례가 정형을 벗어나 있으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조성하고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상륜부인 머리장식부분은 모두 없어졌으며, 3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쇠막대인 철주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간결하고 규모가 작은 영암사지 삼층석탑

비를 맞으며 영암사지의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과거에는 이 영암사라는 절이 얼마나 대단한 가람이었는가를 추정해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석등 뒤에 조성한 금당터와 위쪽에 있는 또 하나의 금당터, 그리고 석등과 삼층석탑. 귀부와 각종 석재 등을 보아도 상당한 절이었을 것이다.


그런 영암사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전체적으로 볼 때는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잃지 않고 있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이어받고는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의 층급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보물 제480호인 영암사지 삼층석탑. 기단부와 머릿돌 등이 깨어지긴 했지만, 간결하면서도 나름대로 품위가 엿보인다. 삼층석탑 한편에 미륵형태의 조형물이 있다. 이 석조물은 무엇일까? 혹 이 탑을 조성하면서 공양상으로 함께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석탑의 부재가 여기저기 한편씩 깨어져 있는 것도, 혹 이 석탑을 해체해 운반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비를 맞으면서도 석탑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석탑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보면, 옛 절터를 찾아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사지(寺址)’에는 절터만 있는 곳도 있지만, 많은 문화재가 함께 있는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지를 들어가면 많게는 5 ~ 6점의 문화재를 함께 답사를 할 수가 있으니,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정말로 횡재를 한 셈이 된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소재한 사적 제131호인 영암사지.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 때의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지어진 절로 보인다. 고려 현종 5년인 1014년에는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견고한 성을 연상케 하는 사적 제131호 합천 영암사지의 석축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 터

합천 영암사지. 비가 아침부터 줄기차게 쏟아진다. 요즈음은 이상하게 멀쩡하던 날씨가 나만 움직이면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요즘 별명이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로 바뀌어 버렸다. 이런 별명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정말로 죄송한 별명이다. 영암사지에 도착해서도 비는 멈추지를 않는다.

처음 영암사지를 보고 내가 한 행동은 탄성이었다. 이런 곳에 어떻게 이렇게 대규모 사찰을 이룩할 수가 있었을까? 그 당시는 교통도 좋지 않아, 많은 석재를 날아오기도 힘들었을 텐데. 정말로 대단한 절터였다. 지금은 복원을 많이 해 놓아 정비가 되어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편에는 미쳐 정비를 하지 못한 듯하다.


삼층석탑이 서 있는 축대 아래편의 절터와(위) 금당지로 오르는 중앙계단 


저 곳까지 마저 복원을 마친다면, 얼마나 웅장한 절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암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인다.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을 보면,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886년은 신라 정강왕 원년이다. 그런 점으로 보면 아마도 신라 헌강왕 이전에 지은 절이란 생각이다.

밀교의 절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영암사지

황매산의 절경인 암벽을 뒤로하고 있는 영암사지는 모두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높은 돌로 쌓은 축대는 성벽을 방불케 한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로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과 더 위쪽에 자리한 서금당. 회랑터와 기타 건물터 등이 확인이 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조사된 바로는 금당은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축대 밑으로도 넓은 절터가 조성이 되어있으며, 삼층석탑 부분, 그리고 석등이 있는 곳의 금당터와, 양편에 귀부가 남아있는 곳으로 구분이 된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보물 제353호인 쌍사자석등과, 보물인 삼층석탑, 귀부 등 당시의 건물 받침돌과 각종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이곳 영암사지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과,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어 있다는 점, 후면을 제외한 삼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이다. 이런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 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금당지 위를 돌아보다가 비에 젖은 잔디에 주저 앉고 말았다. 15cm정도의 석재 같에 돋을새김한 정교한 조각(위)과 금당지 축대 외벽에 조각한 동물상 때문이다.


금당지를 돌아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다.

금당터, 석등을 본 후 금당터로 오른다. 중앙에 분리를 시켜 양편으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을 놓았다. 계단의 남은 석물로 보아, 화려한 조각이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은 삼면으로도 층계를 놓았다. 위로 오르니 주춧돌과 함께, 본존불을 모셨을 자리가 있다. 그 한쪽 편을 보고 놀라움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낮은 석축 표면에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그 남은 부분에도 이런 비천인인 듯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비가 오는데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영암사지의 옛 모습은 어떠했을까? 눈을 감고 옛 모습을 그려내 본다. 장엄한 영암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황매산을 뒤로하고,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가람이.


아마도 이런 사지는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머물러 있었던 것만 같다. 영암사지, 그 장엄한 절이 언제 소실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마도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만 같은 곳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