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나혜석 기념관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3일 갑자기 쌀쌀해진 날 평택시와 아산시를 경계로 조성된 평택호(공식 이름은 아산호)를 다녀왔다. 겨울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면서도 이곳을 찾아가면 평택의 문화예술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평택호 관광잔지로 개발된 이곳은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 남녀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띤다.

 

평택호는 충청남도 아산시와 접해 있는 곳으로 197312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와 충남 아산시 인주면 모원리 사이 2km의 바닷길을 아산만 방조제로 쌓으면서 24의 거대한 호수로 만들어졌다. 평택호(아산호)는 산간 내륙지방에 있는 댐과는 달리 해변의 간석지형 호수로 이곳은 서해의 바닷물이 들고나는 곳이기도 하다.

 

날씨가 차다. 일렁이고 있는 물가로 모래톱이 있기 때문에 그 모래를 밞으며 걷는 기분은 흡사 바닷가에라도 와 있는 느낌이다. 멀리 겨울바다를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차가운 겨울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광단지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소리터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영희 국악관을 찾아들어갔다.

 

한국소리터는 2010년 명칭공모를 통해 결정된 명칭으로 한국전통의 소리공연을 통해 국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공간이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곳 소리터에는 지영희 홀과 농악마을 야외공연장, 어울림동, 두드림동 등이 모여 있고, 그 곳에 지영희 국악관이 자리하고 있다.

 

 

평택이 낳은 국악의 이버지 지영희 선생

 

평택이 낳은 근대 국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영희 선생은 후에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곳 평택호 한국소리터에는 지영희 선생을 소개하는 이 전시관은 국악의 대중화, 현대화, 세계화를 이끌었던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본관이 충주인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인 지영희 선생은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에서 경기 세습무(화랭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1918년 이석은에게 승무·검무 등 여러 춤을 배웠으며 1928년 조학윤에게서 호적(胡笛=태평소)을 배웠다. 1930년에는 정태신에게 양금·단소·퉁소를, 1931년에 지용구에게 해금·풍류 시나위를, 양경원에게서 피리 삼현육각(三鉉六角)과 시나위를 배웠다. 1932년 대금의 명인 김계선에게 대금 시나위를 배웠고, 1935년 지용주에게 무악장단을 배워 당대의 모든 음악을 섭렵했다.

 

그런 지영희 선생이 시나위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았지만 홀연 가족들을 대동하고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1980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선생은 경기도의 무속음악을 살려야한다고 끝까지 자녀들에게 일렀다고 하는데 그런 선생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이 국악관 안에 전시되어 있다.

 

 

수원의 나혜석을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국악을 전공한 나로서는 지영희 선생의 국악관을 돌아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어린 시절 학업에 열중할 때 선생을 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것은 수원의 정월 나혜석이었다. 왜 이곳 국악관을 돌아보면서 여류 시인이자 화가인 나혜석이 떠 오른 것일까?

 

정월 나혜석, 우리는 그녀를 흔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고 표현한다. 나혜석의 생전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나혜석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여류화가요, 시인이다. 또한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창한 신여성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1896428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481210일 당시 나이 52세로 세상을 떠난 나혜석을 여성의 선구자라고 하고 있지만 나혜석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혜석은 이 시대에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국악을 전공한 지영희 선생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도 이렇게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평택시에 비해,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정월 나헤석이 태어난 수원은 과연 얼마나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릴 수 있도록 노력했을까?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정월 나혜석에 대한 제대로 된 기념관이나 자료전시관 하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혜석에 대해 많은 특별전 등을 열어왔지만 그냐가 태어난 행궁동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녀의 흔적들을 왜 한 곳에 모아 전시관 하나 마련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올해 10월에 문을 연 행궁동 문학인의 집 이층에 전시공간은 나혜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나혜석의 삶을 조명할 때 단독으로 된 기념관 정도가 필요하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기념관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평택호 관광단지 안 지영희 국악관을 돌아보면서 아쉬움만 더 커진다. 우리 수원 행궁동에 나혜석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단독건물의 기념관이 하루 빨리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월 나혜석의 많은 자료들을 그곳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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