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이 중천에 걸린 방화수류정은 가히 수 일경

 

수원화성에 있는 각루(角樓)는 동북각루,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남각루 등 넷이다.

서남각루는 화양루(華陽樓)라하고, 동북각루(東北角樓)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 한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의 동측 구릉 정상 즉 용연 남측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인 용두 위에 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용연은 북성 밖에 있는데 반달처럼 생긴 못으로 둘레가 210, 깊이 6척이며 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못 위의 성 모서리에는 방화수류정이 있고, 못 서쪽에는 석각이두(石刻螭頭)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각이두란 돌로 만든 이무기라는 뜻이다.

 

4월의 끝 날인 30일은 음력으로 3월 보름이다. 방화수류정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만나기 위해 해가지고 난 뒤 천천히 걸어 방화수류정으로 향했다. 시간을 잘 맞춘 덕에 방화수류정 위로 둥근 보름달이 중천에 걸려있다. 이런 멋진 경치 때문에 사람들은 방화수류정을 화성 수 일경으로 꼽은 것이 아니었을까?

 

 

歷遍春城日未斜 (역편춘성일미사) 춘성을 두루 보고도 해가 아직 한창이라

小亭雲物轉晴佳 (소정운물전청가) 소정의 풍경은 한결 더 맑고 아름다운데

鑾旂慣報參連妙 (난기관보삼연묘) 난기가 계속 삼련의 적중함을 보고하니

萬柳陰中簇似花 (만류음중족사화) 수많은 버들 그늘 속에 살촉이 꽃 같구려.

 

정조대왕의 방화수류정에 관한 시이다. 어찌 이곳에 올라 주변을 조망라면서 시 한 수 읊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방화수류정을 수원화성의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밤경치의 신의 한수가 방화수류정이라면 낮에 돌아보는 신의 한수는 바로 용도(用道)이다. 서남암문을 들어서 서남각루인 화양루까지의 길이 비로 용도이다.

 

 

 

봄에 걷는 용도는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다. 바로 전국을 돌며 찾아본 50여개소의 성곽에 대한 책이다. 몰론 그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수원화성 때문이다.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별한 곳이 바로 용도로 이곳을 걷다보면 용도동치와 용도서치를 만난다. 용도의 밖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마 이 용도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적이 팔달산 서남쪽 등성이를 공략하고자 이곳을 올랐다면 이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원화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화성의 성곽보다 높은 곳을 점령해야 한다. 평산성인 수원화성의 유일하게 취약한 곳이 바로 사남암문 밖이다. 이곳을 점령한다면 화성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일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곳에 용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길게 용처럼 자리를 틀고 조성되어 있는 용도. 결국 수원화성은 어느 곳으로도 공격할 만한 곳이 없다.

 

 

 

봄철에 용도를 걸으면 성벽 위로 훌쩍 커버린 소나무들이 성안을 기웃거린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화성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용도로 찾아들었다. “, 이렇게 여긴 성벽이 낮아요? 성벽을 넘어올 수 있겠는데요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수원화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지금도 용도 양편에 경사가 급하지만 예전에는 더 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여 그 비탈을 올라 용도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용도 끝에 자리한 서남각루인 화양루 위에 올라서면 팔달산의 남쪽이 다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화양루 끝에는 양편 성벽이 치성과 같이 돌출되어 있다. 어디 한 곳도 허술한 면이 없다. 이곳이 어찌 신의 한수가 아니겠는가? 이 용도 하나가 있어 수원화성은 철벽수비를 할 수 있는 성이 되었다. “화성을 100번만 돌아보면 속속들이 화성이 보인다던 어느 어르신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보름날 밤과 다음날 낮에 돌아본 방화수류정과 서남암문 밖 용도, 이 어찌 신의 한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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