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은 한풀이이다. 그리고 굿은 살아남을 자들의 희망이다

 

엄마!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딸들과 외손녀 등 가족들이 방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붙들고 용서하라며 통곡을 한다. 흡사 어머니가 생전에 잘 사시다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와 다를 것이 없다. 손발을 주무르며 울고 있는 두 딸과 외손녀의 용서하라는 통곡소리로 방안이 떠나갈 듯하다.

 

26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산곡동에 소재한 굿당 산신당. 이곳의 특실에서 열린 망자 파평 윤씨()49제 진오기가 열렸다. 이날 진오기굿은 성남시에 거주하는 남무(男巫) 지현준의 주관으로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굿상을 마련하고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수원시 팔달구 지동 거주.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은 2017121일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인정 ()한국토속문화진릉협회 1호 명인으로 지정을 받았다)을 주무로 수원시 연무동에 거주하는 만신 임영복, 그리고 고성주 명인의 신딸인 수원시 팔달구 지동 거주 서유리 등이 굿꾼으로 참여한 진오기굿이다.

 

 

 

진오기굿이란 지노귀굿이라고도 하며 죽은 망자의 넋이 극락으로 가도록 일정한 기간 안에 행하는 굿을 말한다. 서울 등 기전지방에서는 진오기라고 하며, 남도 지방에서는 오구굿이라 고 한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씻김굿;, 이북인 평안도지방에서는 다리굿이라고 부른다. 죽은 망자의 혼을 극락왕생시킨다는 뜻에서는 같은 맥락의 굿이다.

 

이날 망자는 경기도 하남시 덕품동에 거주하던 망자 파평 윤씨와()와 망자의 남편인 고 김해 김씨, 그리고 망자의 사위인 고 밀양 박씨 등이며, 제가집(망자의 가족)은 파평 윤씨의 큰딸과 작은딸인 김아무개 씨와 밀양 박씨의 딸, 그리고 망자 밀양 박씨의 사위인 남무 지현준 등이었다.

 

 

굿은 망자 가족의 한풀이인가?

 

방안 가득 차려놓은 굿상과 한 옆에 마련한 망자의 상, 그리고 문 밖에는 사자상 등 두 개의 상이 차려졌다. 이날 아침 7시경 부터 준비한 상차림이 끝나고 망자의 가족들이 도착하곡 난 후 고성주 명인의 앉은부정으로 진오기굿이 시작되었다. 부정을 마치고 난 고성주 명인이 큰머리를 쓰고 상산과 별상굿을 진행한 후 망자의 옷을 걸치고 조상굿을 진핼하다가 갑자기 도약을 하기 시작한다.

 

고성주 명인의 굿을 20년 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 높게 도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바닥에 쓰러진다. 머리가 방바닥에 무딪치는 소리가 하고 날 정도였으니 사람들이 놀라 주변으로 모여든다. “얼른 잘못했다고 비세요라는 임영복이 알려주자 순간 방안은 울음바다로 변한다.

 

 

고성주 명인의 신아들인 지현준이 머리를 잡고 망자의 두 딸과 외손녀가 팔과 다리를 주무르면서 통곡을 한다. 망자 파평 윤씨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엄마를 부르며 통곡하는 두 딸은 그동안 망자가 세상을 떠난 뒤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 것일까? 울음이 그치질 않는다.

 

족히 10여분은 지나 찬물을 먹이고 손발을 주무르니 숨을 내쉬며 고성주 명인이 눈을 뜨고 하는 첫 마디가 망자의 가족들을 더 슬프게 만든다. “내가 살아서는 가는 길조차 아무도 없이 혼자 보내더니 이제 와서 울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고인을 혼자 쓸쓸히 보낸 두 딸은 그 말에 통곡을 한다. “엄마!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라고 아무리 크게 소리치며 빌어보지만 이미 세상을 하직한 망자가 아니던가?

 

 

명인 고성주의 굿은 달랐다

 

진오기굿 중에서도 49제에 맞춰 하는 굿이 가장 어려워요. 자리걷이나 진진오기(망자가 세상을 떠난 뒤 49일 안에 하는 진오기굿)와는 달리 49제에 하는 굿은 망자의 가족들이 첫 번째 영적인 이별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가장 슬픔이 클 때죠. 49제를 마치면 망자와 이별을 한다는 생각에 망자의 가족들이 슬픔이 극에 달했을 때거든요

 

굿을 몇 거리 마치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리며 고성주 명인이 하는 말이다. “머리 다쳤는지 알고 걱정했다는 말에 갑자기 전율이 오더니 자신도 모르게 뛰어오르게 되었다는 고 명인은 온 몸의 뼈가 다 물러난 듯하다고 한다. 자신도 스스로 제어가 안 될 정도로 도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도 집안에 상이 나 진오기굿을 했는데 오늘 굿과는 영 달랐다는 제가집의 한 사람은 진오기굿을 했는데도 마음이 영 편치 않고 무엇인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고성주 명인의 진오기굿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는 것이다. 딴 사람은 불과 4~5시간 만에 끝나버렸던 굿을 이날은 준비부터 꼬박 12시간을 소요했기 때문이다.

 

 

무당(巫堂)은 아픔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자 희망을 전하는 사람

 

무당은 배우가 돼야 해요. 무당이 굿을 하면서 제기집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무당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죠. 왜 돈을 들여 굿을 하나요? 무당이 굿판에서 제가집의 막힌 마음을 풀지 못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면 훌륭한 무당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굿을 마친 시간은 오후 6시가 넘었다. 굿을 마친 후 고성주 명인은 무당은 영적 치료사이자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당이 굿을 하고나면 굿을 한 제가집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맺힌 한이 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당은 배우가 돼야 해요. 그냥 정해진 굿거리 제차만 진행하면 되는 것이 아니죠. 무당은 굿을 당부한 사람들이 어떤 아픔이 있는지 그런 것까지 풀어줄 수 있어야 큰무당이라고 할 수 있죠. 요즘은 그저 편하게 굿들을 하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굿은 있어도 굿할 무당이 없다고 한탄을 하는 고성주 명인은 두 명의 신아들과 한 명의 신딸에게 굿을 전수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지만 올바른 무당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길을 걷는다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지금 자신에게 경기안택굿 전수를 받고 있는 신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굿을 배워 경기안택굿을 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굿당에 들어온 제가집 사람들. 진오기굿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실컷 울면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버렸기 때문이란다. “무당은 배우라는 고성주 명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흡사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망자 파평 윤씨 진오기굿. 제가집 가족들의 얼굴이 편해졌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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