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는 고장 나고 쓰레기는 쌓여 가는데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이 한 말이다.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 축성 기술자들을 모아 놓고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이다. 취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이 말을 혹자는 날마다 술에 취해 살라는 말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조대왕이 축성 기술자들을 모아놓고 한 이 말은 술에 취하라는 뜻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대왕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태평성세를 누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한 군왕으로서의 자책감이 배어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동교에서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방향으로 몇 걸음을 옮기면 정조대왕의 동상인 불취무귀 좌상이 있다. 앉아서 술을 따르고 있는 이 좌상은 화성과 전통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라인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중국인 요우커들이 전통시장을 찾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좌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망가진 센서와 쌓이는 쓰레기

 

이 정조대왕의 불취무귀상은 많은 예산을 들여 조성한 예술작품이다. 정조대왕이 손에 들고 있는 호리병 주둥이 가까이에 손을 대면 센서가 작동해 호리병에서 물이 흐르게 되어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호리병은 술()이 흐르지 않는다. 센서가 고장 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술을 따르는 술잔에는 누군가 종이컵을 버렸다. 주변에도 무슨 동물의 먹이인 듯한 것들이 떨어져 있다. 한 마디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정조대왕의 불취무귀상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뜻을 가진 불취무귀상을 관리를 하지 않아 볼썽사납게 변해가고 있다. 지나던 사람이 볼멘소리를 한다.

 

이런 작품을 시장 진입로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관리를 하지 않아 주변이 더렵혀져 있으면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정조대왕의 깊은 뜻을 가진 이런 작품을 이렇게 방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망신스럽네요.”

 

 

 

노숙자들 동상좌대에서 술판 벌리기 일쑤

 

22일 돌아본 불취무귀상앞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자리하고 있어 경관을 어지럽히고 있다. 동상 가까이 세워놓은 오토바이며 자전거들도 불취무귀상을 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필이면 이곳에 자전거 거치대를 만들어 놓았을까? 아무 생각도 없이 이렇게 조성을 해 놓은 관계자들의 양식이 의심스럽다.

 

중국인 요우커 몇 명이 불취무귀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서 술잔에 놓인 일회용 종이컵이며 곁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하며 웃는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좋은 이야기를 했을까? 3월이 되면서 주말이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수원을 찾아들고 있다.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많은 소개가 된 불취무귀상이다. 팔달문 앞 전통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면 이 불취무귀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관리를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일까? 이 정조대왕의 불취무귀상은 그런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관리가 소홀해서야 수원화성 방문의 해에 볼 낯이 서겠는가?

 

불취무귀상은 자리를 옮겨 제대로 주변경관을 조성한 후 주변을 펜스로 막아 보존을 시키던지, 아니면 관리인을 두어 항상 말끔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가끔 근처 노숙자들이 이 좌상 옆에 들러 앉아 술을 마시는 광경도 눈에 띤다. 의미있는 이 불취무귀상이 더 이상 곤욕을 치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고장 난 센서도 작동이 될 수 있도록 손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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