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문은 사통팔달로 나가는 상권의 중심 지역이었다. 일제 때도 팔달문 인근에 가장 많은 은행이 자리를 잡았고, 팔달문 앞 상권은 많은 일본인들이 눈독을 들인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그만큼 각종 물자가 모이는 곳이었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그런 팔달문 앞에는 도대체 어떤 점포들이 문을 열고 있었을까?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088-10에 소재한 수원박물관. 그 이층에 자리하고 있는 역사박물관은 수원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곳은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 애니메이션 영상을 상영한다. 영상이 끝날 때 장안문이 열리면 수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조선시대의 수원, 수원의 물과 길-60년대의 수원을 지나면 맨 끝에 근대수원 100년 실로 들어가게 된다. 1930년대의 팔달문 거리를 만나게 되는 곳. 이곳에는 화춘옥이 자리하고 있다. 팔달문 앞의 장거리가 그대로 펼쳐진 곳. 격동기를 살아간 수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운 모습들이 그곳에 있었다.

 

팔달문의 옛 모습, 그리고 그 앞에 장거리로 나온 사람들, 예쁘다 양장점과 대창라사, 공설목욕탕과 화춘옥이 우측으로 서 있다. 화춘옥은 70년 가까운 세월을 수원 전통의 갈비 비법을 고수하고 있는 수원의 대표적인 갈비전문점이다. 현 이광문 사장의 할아버지인 창업주 이귀성씨와 아버지 이영근씨에 이어 3대째 그 가업을 잇고 있다.

 

 

1945년부터 수원화성 팔달문 앞의 영동시장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화춘옥은 수원박물관에 이광문 사장이 기증한 1000여점의 옹기와 냉면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1940년대 당시, 영동시장의 화춘옥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팔달문을 바라보고 좌측으로는 허허바사진관과 금성냉장고의 점포가 사진으로 되어있고, 그 옆에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간판을 건 극장이 보인다. 작은 매표소 안에는 아가씨가 표를 팔고 있고, 뒷벽에는 몇 장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 건너편에는 담배가게 아저씨가 작은 점포 안에 앉아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장거리

 

팔달문 앞 장거리들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점포가 더 많아지고 건물이 들어섰다는 것 외는,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30년대의 격동의 세월을 맞이한 팔달문 앞 영동시장. 그 모습은 현재 미나리광 시장이나 못골종합시장, 혹은 팔달문 앞에서 지동교로 진입하는 장거리에서 그대로 만날 수가 있다.

 

중앙극장 건너편으로는 아씨한복과 전파사, 쌀을 파는 수원상회와 각종 그릇을 파는 형제그릇점 등이 있다. 머리하얀 할머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생선가게인 삼일상회 옆에는 건장한 남정네가 음료와 주류 등을 팔고 있는 천덕상회도 있다. 이 곳에 모형으로 조성한 점포들은 실제로 있었던 곳이다.

 

 

지난 216SBS-TV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런닝맨이 런닝별에서 온 그대의 부분을 우리 수원박물관 근대 100년실에서 촬영을 하고난 후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부쩍 많아 졌어요. 방송의 힘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 관계자의 말이다. 옛 팔달문 앞의 장거리 풍경이 그리운 사람들이 찾는 다는 곳. 주말에 수원박물관을 찾아 팔달문 앞 장거리의 정겨움에 젖어보기를 권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날라치면, 제일 문제가 바로 먹거리이다. 2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문화재 답사를 하다가 보면, 정말이지 입에 맞는 음식 한 그릇을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일 수가 없다. 그래서인가 이젠 어느 곳에 가든지, 나만이 좋아하는 음식점 몇 곳을 찾아놓았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니 말이다.

 

수원은 참 착한 먹거리가 많은 곳이다. 사람들은 수원에 오면 여기저기 착한 가격에 맛 좋은 음식점을 찾아다닌다. 요즈음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오기 때문에, 일부러 홍보를 하지 않아도 나름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요즈음 수원 화성 일대의 식당 중에서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집들이 있다. 바로 12일의 덕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팸투어에 참가한 캔디(최명희)님 사진

 

수원 왕갈비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화성 행궁 앞에 있는 맛이 있다는 집을 찾아가면, 토요일은 거의 자리가 없다. 그만큼 검색으로 인한 외지인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오지 않던 선술집에, 요즈음은 심심찮게 젊은이들이 찾아든다고 한다. 바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았다는 대답이다. 맛있고 값싼 맛집, 여행객들에게 이보다 좋은 집이 어디 있을까?

 

수원은 먹거리 중 대표적인 것은 그 유명한 수원왕갈비이다. 수원의 왕갈비가 유명한 것은 전국 3대 우시장 중 한 곳이 바로 수원우시장이었다. 한 해에 거래량만 2만두가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활발한 매매가 이루어진 것일까? 수원에 이렇게 우시장이 호황을 누린 것은 정조대왕의 새정치 육성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조대왕은 화성을 축성한 후, 화성을 자립기반을 둔 도시로 육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은 만석거와 축만제 등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둔전(屯田)을 실시한 것이다. 그리고 농사를 잘 짓게 하기 위해 종자와 소를 나누어 주었다. 종자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면 가을에 수확을 할 때 그 절반을 거두어들이고, 소는 잘 키워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거두어 가고 어미를 소유하게 하였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소가 점점 불어나게 되고, 그것을 팔기 위한 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질 좋은 한우가 우시장에 넘쳐나다 보니, 자연적으로 소를 이용한 음식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수원갈비1940년대 팔달문 밖 장터인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거리에서 화순제과를 경영하던 이귀성씨가 처음으로 화춘옥이란 상호로 해장국을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화춘옥이 처음부터 갈비를 한 것은 아니다. 고기를 듬뿍 넣어주는 해장국을 팔다가 보니, 많이 팔아도 남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양념갈비였다. 양념을 해서 숯불에 구워내는 갈비의 맛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수원에 왕갈비만 있을까?

 

재래시장, 골목마다 넘쳐나는 많은 먹거리

 

남수교에서 매향교를 향해 수원천변을 따라 늘어선 통닭집들, 이 통닭골목에 들어서면 기름 냄새를 풍기는 통닭집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수원의 통닭거리는 이제 전국적으로 명소가 되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다렸다가도 이곳의 통닭 한 마리를 먹고 가려고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원에는 그저 어딜 가나 나름대로의 특별한 먹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먹거리들이 모두 착한가격이라는 것이다. 지동시장의 순대타운 안으로 들어가면 자리가 없을 때가 많다. 권선시장 족발골목의 족발과 순대국도 꽤 명성을 얻고 있다. 거북시장의 30년 전통의 해장국 또한 빠지지 않는다. 행궁 건너편의 우거지해장국도 있다. 곳곳의 전통시장마다 나름대로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맛집들이 포진하고 있다.

 

먹거리 문화의 메카 수원

 

수원 지동, 미나리광, 못골 시장에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집들이 있다. 바로 수소문을 해서 찾아오는 집들이다. 장날 만두의 만두는 6개들이 한 팩에 3,000원이다. 웬만한 사람은 6개만 먹으면 배가 불러 못 먹는다. 거기다가 호떡도 있다. 1,000원에 세 개를 준다. 줄을 서야 먹을 수가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못골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먹거리이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들이 여기저기 발길을 붙든다. 2,500원짜리 잔치국수, 3,500짜리 칼국수, 거기다가 진열을 하면 불티나게 팔리나가는 족발이며, 튀김 등도 한몫을 거든다. 가히 먹거리 문화의 메카라 불릴 만 하지 않은가?

 

 

저희는 사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12일이 끝난 다음,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와요. 인터넷 검색을 했다고요. 매출이 그 전보다 상당히 올랐어요. 모두 12일 덕분이죠.”

 

행궁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요즘처럼 장사가 잘되면 살맛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가 보니, 재료가 일찍 떨어져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찾는 사람은 많은데 준비한 재료가 바닥이 나,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제 봄날이다. 수원을 찾아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돌아보고,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 문화공원인 해우재를 돌아보자. 그리고 곳곳에 자리를 한 먹거리에 행복함을 느껴보자. 이 봄철에 이것보다 더한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연세가 70세 이상 되신 분들은 괜한 눈물방울이 맺힌다. “그래도 이때가 정겨웠지. 사람 사는 것 같았잖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지긋이 눈을 감기도 하고, 연신 “맞아, 맞아”를 외치기도 하신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리 감탄을 연발하는 것일까?

수원시 영통구 청룡대로 265. 예전 주소로는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088-10번지이다. 이곳에는 ‘수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수원박물관 이층에 자리 잡은 한 전시실. 이곳에는 1960년대 팔달문 근처의 장시가 재현되어 있다. 그 당시의 점포 등을 그대로 옮겨 복원을 시켜 놓은 것이다.


수원박물관 이층 전시실에 마련되어 있는 1960년대 팔달문 인근의 점포들. 당시의 점포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을 시켜 놓았다. 아레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담배가게와 공설목욕탕(공중이 아니다), 그리고 그 밑에 어물전과 수원양념갈비의 시조인 화춘옥


담배 가게 아저씨와 극장 매표소 아가씨

예전에는 담배를 팔아 자녀들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에 어떤 담배가 있었을까? 1960년대 초반에는 나비(1960), 재건(1961), 파고다와 모란(1961), 새나라(1962), 상록수(1963), 희망과 전우(1964), 신탄진(1964), 금잔디(1975), 백조(1965), 자유종(1966), 새마을(1966), 타이거(1966), 수연(1966), 한강(1968), 여삼연(1968), 청자(1968), 금관, 해바라기, 스포츠 등 많은 담배가 있었다.

그런 많은 담배를 팔아서 아이들을 공부를 가르쳤다고 하니, 아마도 지금보다는 이문이 많았을 때였는가 보다. 당시는 담배를 팔아 나라에서 많은 수세를 했을 때니 말이다. 그 당신 팔달문 옆에는 중앙극장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의 중앙극장 간판. 1961년에 신상옥 감독의 작품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선전판이 걸려있다. 아래는 팔달문 인근에서 유명했던 예쁘다 양정점과 대창라사 


팔달문 인근에 있는 중앙극장도 아주 오래된 풍물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 상영하던 영화의 종류가 1961년에 제작이 된, 주요섭의 원작소설을 신상옥 감독, 임희재 각색으로 최은희와 김진규 등이 주연을 맡았던 흑백영화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 관람권을 구입하던 시대가 아니었으니, 중앙극장 앞에 줄을 서서 표를 구하는 수밖에.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풍경

예전에는 숙녀복이나 신사복 한 벌을 맞춘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예쁘다 양장점과 대창라사 등은 팔달문 옆에서 그래도 잘 나가던 가게였다. 예쁘다 양장점은 1960년대 초반 영동시장 안에 개설한 점포였다. 주인 박창원씨는 남문의 양재학원을 졸업하고 단층건물을 세를 내어 양장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양장점에서는 소화국민학교와 영복여고의 교복을 디자인 하였으며, 1980년대 까지 있다가 문을 닫았다. 예전에는 목욕탕을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일 년에 몇 번 밖에는 목욕탕을 갈 수가 없었다. 집에서 물을 데워 대충 닦는 것이 고작이다. 그럴 즈음인 1954년 10월 27일, 팔달로 2가 45번지에 문을 연 공설목욕탕과 이발소는, 당연히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꺼리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수원 양념갈비의 원조 화춘옥

전시실 한편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화춘옥’. 바로 유명한 수원의 대표음식이 된 ‘수원양념갈비’의 시조이다. 1940년대부터 1979년까지 영동시장 안에 자리했던 화춘옥은, 창업주 이귀성씨의 대를 이어 아들 이영근씨가 운영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화춘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들렸다가 갈비 맛에 반해 소문이 났고, 그 뒤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집이 되었다.


위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화춘옥에서 창업당시에 사용하던 실제 주전자. 그리고 전파상의 모습과 대창라사. 그 앞 흐릿한 가로등 밑에 과일을 팔고 있는 상인이 보인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주전자는 창업주 이귀성씨 당대에 사용하였던 것을 기증을 받아 전시를 해놓았다. 건너편으로는 생선가게, 싸전, 그릇집, 전파사 등이 자리를 하고 있다. 1960년대 팔달문 주변에 실제로 있었던 점포들을 재현해 놓은 시장통. 아마도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이 모습을 그냥 넘기지 못할 것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옛 풍물에서 느끼는 정은 남다른 것. 어르신들이 이곳을 들려 눈시울을 붉히는 것은, 누구나 아련한 기억들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추운 날이 조금 풀리는 날, 수원박물관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찾아보는 것 또한 효도란 생각이다. 효도란 꿈 많은 시절의 기억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주) 수원박물관의 1960년대 장시는 조명으로 새벽부터 밤까지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다. 위 사진들은 밤의 가게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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