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수원을 들려가는 곳쯤으로 알고 있다. 서울에서 기차로 30분, 전철이나 승용차,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에는 년 중 수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그들이 수원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 그리고는 에버랜드나 한국민속촌을 들려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그것은 서울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수원에 오면 그저 아침 일찍 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간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수원을 온전하게 돌아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몇 번에 나누어서 수원을 돌아본다면 못 볼 것도 없다. 하지만 요즈음은 1박 2일이 대세 아닌가? 수원에는 1박 2일 코스가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국 어디보다 좋은 아름다운 코스가 있다.

 

 

수원의 1박 2일 코스, 1박 2일 팀 한번 와보라

 

요즈음 사람들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묶어 나들이를 한다. 하지만 아직도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를 묶어서 가족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가 있다. 당연히 수원의 가장 아름답고 좋은 곳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이다. 이 코스를 보지 않고는 수원을 보았다고 논하지 말라.

 

토요일과 일요일을 잡아보자. 토요일 오전에 길을 나서 수원 화성의 연무대 앞에 주차를 시킨다. 굳이 연무대를 시작점으로 잡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연무대에는 활을 쏠 수가 있다. 그곳에서 활을 쏘고 난 뒤 화성열차를 이용해 화성을 구경한다. 열차요금은 대인 1,500원, 중고생 및 군인 1,100원, 어린이는 700원이다. 이 열차요금과 화성관람을 할 수 있는 관람료는 함께 묶여있다.

 

 

 

화성열차는 화성을 돌아 팔달산 성신사 앞까지 간다. 그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성신사 옆 약수터에서 서장대로 오르는 길이 있다. 서장대까지는 200m 정도.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도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서장대를 돌아보고 나면 화서문 방향으로 내리막길이다. 그곳을 걸어 화서문까지 도착을 하면, 화서문서부터 동문인 창룡문까지는 성 밖으로 돌아보기를 권한다.

 

성안에 있는 시설물도 중요하지만, 역시 성은 밖에서 보아야 제 멋을 느낄 수가 있다. 그렇게 동문까지 왔으면, 그곳에서 지동 벽화길로 들어서면 된다. 지동 벽화길은 1차 350m, 2차 680m의 골목으로 연장 1km 가 넘는다. 2차 골목길은 아직 조성 중에 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다. 올 11월 말이면 2차 벽화길도 마무리가 된다.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화성 야경은 압권

 

지동 벽화길을 둘러보고 나면, 해가 설핏 하는 시간이다. 이때쯤 지동제일교회 종루에 마련된 해발 97m의(지동교회 13층) 노을빛 전망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환상적이다. 그리고 일몰 후 17분이 지나면 화성에 조명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보는 야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오면 지동시장 순대타운이 기다리고 있다. 곱창볶음 1인분에 8,000원인데 야채와 합해 철판에 가득 내어준다. 그 또한 별미 중 별미. 저녁을 먹은 후 소화를 시키려면 조금 걸어 올라가 화홍문 옆 방화수류정의 야경을 볼 수가 있다. 화성의 시설물 중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이 아니던가?

 

 

그리고 잠은 행궁 앞 수원문화재단 뒤편의 사랑채를 예약하면 된다. 사랑채는 31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다. 만일 시간이 조금 일러 잠이 오지 않는다면 수원천 옆 통닭거리로 나가면 된다. 사랑채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2일차 오전 관람 또 다른 재미

 

둘째 날의 수원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사랑채에서 묵은 후, 아침은 사랑채에서 해결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화성 행궁을 돌아보고 난 뒤, 11시에 행궁 신풍루 앞에서 펼쳐지는 무예24기를 관람 후 공방거리를 돌아볼 수가 있다. 공방거리 끝에서 팔달문을 거쳐 남수문과 봉돈을 돌아 본 후, 다시 내려와 수원천을 걷는다.

 

수원천에는 자연 그대로 풀이 우거지고 물고기들이 유영을 한다. 그리고 다리 밑에는 새로 마련된 벽화가 있고, 화성박물관이 있어 수원 화성의 축성과 장용영 군사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화홍문으로 올라가 인근에 있는 갈비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가 있다. 여유가 있으면 수원갈비를 먹으면 되고, 주머니 사정이 만만치 않으면 갈비탕으로 해결을 하면 된다. 이렇게 돌아보는 1박 2일 코스. 수원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이러한 1박 2일의 역사코스를 가족들과 함께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수원의 자랑거리인 이러한 1박 2일 코스를 돌아보지 않고 수원을 논하지 말라. 이참에 한마디 하고 가자.

 

“1박 2일 팀, 어여 오시오. 이렇게 좋은 1박 2일 장소를 놓아두고 어딜 돌아다니는 게요.”

“아마도 이런 전시는 세계 최초일 듯합니다. 한, 중, 일 3국의 대목장들이 우리 화성박물관에 모입니다. 세 사람 모두 각국을 대표하는 대목장으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수천 년 동안 이어 온 대목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전시기간 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응수 대목장과 함께 화성을 돌아보면서 실제 건축도구 시연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10월 24부터 2013년 1월 30일까지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소재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大木匠의 세계’ 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이달호 관장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

 

이번에 참가를 하는 3국을 대표하는 대목장들은 이번에 한국의 신응수(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와 중국 이영혁(자금성 고건수선중심 주임), 일본 오가와 미츠오(이카루카공사 대표)로 명실공이 3국을 대표하는 대목장들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대목장들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3국의 대목장들의 기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크다.

 

동아시아 목조건축 초유의 일

 

이번 기획전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번 전시는 3국의 대목장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와 학술발표회를 통해, 서로의 건축세계를 비교하고 논의하는 소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실 사람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아시아 목조건축물인 한국의 창덕궁과 수원화성,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법륭사 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목조건축물의 백미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건축물들이 누구에 의해 설계되고 시공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왔는지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번에 3국의 대목장전에 참가를 하는 세 사람은 모두 자국에서 인정을 하는 대목장이라는점이다. 한국의 대목장 신응수는 한말 궁궐건축 기문(技門)의 계승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궁목수이며 수원 화성의 장안문 복원의 대목장이기도 하다. 중국의 이영혁은 자금성 수리보수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궁목수이며, 일본의 오가와 미츠오는 법륭사의 마지막 궁목수 니시오카의 계승자로 일본을 대표하는 궁목수이다.

 

6부로 나뉜 전시장, 꼼꼼히 살펴보아야

 

이번 전시는 모두 6부로 나눠진다. 그 6부의 내용은 각각 대목장의 위상, 대목장의 교육과정, 한중일 대목장의 역사, 한중일 대목장의 건축세계,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대목장, 목수의 방 등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부 : ‘목조건축의 총책임자 대목장’이라는 주제로 건축물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총괄 지휘하는 대목장의 위상을 보여준다. 이 코너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김홍도의 「기와이기」를 재해석한 작품이 같이 전시된다.

 

2부 : ‘대목장의 교육과정’ 코너로, 한 사람의 목수가 설계능력을 갖춘 대목장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제 건축도구의 사용법을 연출하여 실감나게 전시되어 있다.

 

3부 : ‘한중일 대목장의 역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청대·에도시대 대목장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한다. 조선시대 영건의궤와 영건일기를 통해 기록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부 : ‘한중일 대목장의 건축세계’로 한국의 신응수, 중국의 이영혁, 일본의 오가와 미츠오의 자료를 건축모형, 건축도구, 생애자료, 주요건축물, 저서 등으로 구분하여 전시한다. 전통건축업에 종사하는 목수들이 가장 기대하는 코너로 한국의 경복궁 근정전, 중국의 자금성 태화전, 일본의 법륭사의 건축양식을 모형을 통해 비교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구인사 공포가 실물크기로 전시되어 대목장의 힘을 느낄 수 있다.

 

5부 :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대목장’이다. 1796년 축성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화성을 수리했던 대목장의 계보를 밝히고, 장인을 귀하게 여긴 정조의 뜻을 되새기는 코너이다.

 

6부 : ‘목수의 방’이다. ‘목수의 방’을 들어선 순간 은은한 소나무 향과 아련한 대패소리에 잠시나마 힐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수가 사용했던 다양한 건축도구와 목재가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 중 하나는, 국내 유일의 자료인 『조선경국전』이다. 태조 3년인 1394년 음력 3월에 정도전이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을 정리하여 지어 바친 『조선경국전』에는, 조선 초기 대목장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국제전시의 위상을 고려하여, 그동안 박물관에서 비장해오던 것을 처음으로 공개 전시한다고 밝혔다.

검은 벽돌로 성에서 돌출시켜 쌓아올린 포루. 포를 쏘는 구조물인 포루는 성의 몸체에 凸 자 모양을 붙여 치성과 비슷하게 하고, 그 위에 포사를 3층으로 지은 구조물이다. 포루는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며, 그 안에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포를 쏘게 하였다.

 

이런 설명만 갖고는 포루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포를 쏘는 포루가 있는데, 관리를 위해서 모두 잠가놓았다. 하기에 포루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포루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포루의 형태는 같게 생겼지만, 크기는 조금 다르다.

 

 

 포루는 성안에서는 맨 위에 전각만 들어나지만, 성 밖에서 보면 3층으로 된 구조물이다.


 

3층으로 된 포루, 위용이 대단해

 

화성의 포루는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위에 총안을 낸 문은 판문(板門)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포루의 책임자가 있어, 적을 향해 공격을 지시하게 된다. 포루는 성 안에서 보면 맞배지붕이지만, 성 밖에서 보면 팔작지붕으로 그 형태가 다르다. 성 밖에서 보면 3층의 구조로 되어있지만, 성 안에서 보면 맨 위의 전각만 들어난다. 이 포루 안에는 몇 명의 군사들이 들어가 있었을까?

 

화성박물관 이달호 관장은 포루의 병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포루 안에 병사들이 몇 명이나 들어가서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포루는 3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규모 등으로 볼 때, 한 층에 대략 5~6명 정도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에 소재한 화성박물관 2층 상설 전시관에는, 화성문화실에 포루의 한 면을 절개한 조형물이 있다. 이곳에는 포루 안의 생김새와 그 안에 병사들의 모습이 모형이로 만들어져 있어, 포루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과거 성벽 위에 있는 여장의 한 타에 5~6명의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던 것을 보면, 아마도 포루의 한 층에 그 정도 인원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모형을 보면 맨 위층인 전각에는 포루 안에서의 전투를 지휘하는 무장과 총수들이 있고, 1층과 2층에는 불랑기를 가진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임진왜란 전부터 사용한 불랑기자포

 

홍이포, 신기전, 녹로 로 등과 함께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이 많이 사용했던 불랑기자포는 현재 보물 제861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 중 861-1호는 육군박물관에 3점이 있으며, 861-2호는 서울역사박물관에 1점이 지정이 되어있다.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화기로는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 화포이다. 불랑기는 15세기 포루투칼을 포함한 서구제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 25년인 1592년에 명나라 군대가 가지고 들어왔다고 알려졌었으나, 이미 그 이전인 명종 때 이미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불랑기자포에는, 자포 포신 표면 우측에 <가정계해 지통중칠십오근팔냥 장김석년(嘉靖癸亥 地筒重七十五斤八兩 匠金石年)>이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자포가 1563년에 제작되었으며 중량이 75근 8냥이고 장인 김석년에 의해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랑기로 무장한 장용영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화성과 포루. 아마 당시 이들의 화력은 막강했을 것이다. 그러한 포루를 돌아보면서 과거 ‘정조의 꿈’이라는 화성이 더욱 달라져 보인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만난 포루 하나로만도 가슴이 벅찬 이유이다. 역사 속의 산물이라는 존재는, 늘 그렇게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다스리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지.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49에 소재한 수원화성박물관(관장 이달호)은 화성 행궁 앞 매향교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 수원을 관광하러 온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화성박물관에는 하루 700여명 정도가 관람을 하고 있다. 박물관 2층 전시실에는 상설 전시공간으로 수원화성의 축성과정을 보여주는 ‘화성축성실’과, 수원화성 축성에 참여한 인물과 정조의 8일간의 행차 및 화성에 주둔하였던 장용영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성문화실’이 있다.

 

이 화성박물관을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중에 꼬마손님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찾아들었다. 아이들은 정을 이용해 돌을 쪼아도 보고, 성돌을 나르기도 하는 등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엄마의 가자는 소리도 못 들은 체, 그저 열심히 돌을 깨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축성체험

 

아이들의 재미가 쏠쏠한 곳

 

박물관 앞에서는 아이들의 축성체험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대패질도 해보고, 화성 축성 때 돌을 옮기고 쌓는 도구인 유형거, 대거, 평거, 발차, 단기, 목저를 움직여보기도 하고, 거중기와 녹로를 시험해 보기도 한다. 일가족은 듯한 부모님과 딸들은 땅을 다질 때 사용하던 지경다지기도 해본다.

 

이래저래 재미있는 체험들이 많아, 아이들은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이 시키는 데로 곧잘 따라한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와성문화제 구경을 왔다는 정아무개(여, 48세)는 아들과 함께 녹로시험을 하다가

 

 

화성박물관 2층에 마련된 축성실(위)와 문화실(아래)

 

“아이들에게 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체험행사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어딜 가도 이런 행사를 볼 수가 없는데, 더욱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전시관에는 우리 선조들의 힘과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전시실이 있어서 보람된 날이 된 것 같다.“ 라고 한다.

 

박물관 1층 체험실에서 가마를 타고 있던 용인에서 왔다는 이영경(12, 초5년)과 이효영(10, 초 3년) 자매는, 여러 가지를 보았다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체험을 하면서 화성에 대한 중요성과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일가족이 땅을 다지는 지경다지기를 하고 있다

 

화성박물관 화성축성체험을 한창 취재를 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기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사람을 좀 소개해 달라면서 부탁을 한다.

 

“화성박물관 안내 데스크를 맡아하시는 분 좀 소개 좀 해주세요. 저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 분 정말 고마움을 표현할 수가 없네요. 처음 수원을 찾아왔을 때, 그 분이 얼마나 자세하게 소개를 해주시는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 분이 수원에 계시다는 것도 정말 고맙고요.”

 

 

박물관 1층에 마련된 어린이 체험실과 가마타기

 

화성박물관의 미소천사 정혜숙 인터뷰

 

화성박물관은 주말마다 공연이 있어 자주 찾는다. 갈 때마다 안내데스크에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는 정혜숙(여, 35세)은 언제보아도 한결같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를 한다는 것이 힘도 들 텐데, 언제나 미소로 그 많은 사람들을 대한다. 10월 7일, 화성문화재 기간과 휴일이 중복되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인데도 염치불구하고 잠시 인터뷰를 요구했다.

 

-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예, 화성을 구경 오시는 분들은 70~80% 정도가 저희 박물관을 찾아옵니다. 대개는 저희 박물관도 둘러보지만, 여기저기 볼 곳을 상세하게 알려드리고는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알려드리는 코스가 달라지죠. 대개 이곳에 오시면 2~3시간 정도를 구경하시겠다는 분들이 가장 많은데, 그 시간에 맞게 안내를 해드립니다.

 

 

 

- 오시는 분들에 따라 코스를 정해주는 것인지?

그렇죠. 부모님들과 아이들에 따라 안배를 해드리는 것이죠. 예를 들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과 어린 아이가 같이 오면, 부모님들도 참 난감해 하십니다. 서장대를 오른다고 하면, 초등학생은 괜찮지만 어린아이는 힘이 들거든요. 또 아이를 안고나 업고 올라가자면 부모님이 힘들어 지실 테고요. 그런 점을 안배해서 코스를 정해드리고는 하죠.

 

- 하루에 몇 명씩이나 안내를 하는지?

하루에 350명 가량 안내를 합니다. 많은 때인 주말이나 휴일에는 1,000명 가까이도 안내를 할 때도 있고요.

 

- 그렇게 안내를 하면 힘이 많이 들 텐데?

주 6일 동안 안내를 하다보면 가끔 힘이 부칠 때도 있지만, 제가 이 일을 워낙 좋아하니 괜찮아요(웃음) 많은 분들에게 우리 수원을 알려준다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 가장 보람될 때는 언제인지?

안내를 받으신 분들이 여기저기 관람을 하신 후에 돌아가실 때 ‘고맙다’라고 말씀을 해주실 때가 가장 보람되죠. 그런 분들은 다음에 꼭 다시 수원을 찾아오시기도 하고요.

 

- 바쁘신데 고맙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우리 수원과 화성박물관 많이 홍보 좀 해주세요.

 

화성박물관에서 안내를 맡아본지가 올해로 만 3년째라고 하는 정혜숙. 화성박물관에 1년간의 입장객이 17만 명이라고 하니, 어림잡아 그동안 만나고 안내를 해 준 사람들이 50만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수원과 화성을 안내를 해준 셈이다. 사람들마다 친절한 안내를 해준데 대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음 사람들에게 안내를 시작한다. 아마도 정혜숙이 화성박물관의 안내를 하고 있는 한, 수원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즐거움이 더할 듯하다.

혜민스님은 미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출가를 해 스님이 되셨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한 마디로 잘 나가는 대기업에 있다가, 환경운동가로 돌아서 수원시장이 되었다. 두 사람 다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6월 10일 오전 10시 30분. 수원시 팔달구에 소재한 화성박물관 야외무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염시장과 혜민스님이 대한불교청년회 회원 600여명과 조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사회자의 질문을 대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청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 행사는 대한불교청년회 창립 92주년 기념으로 열린 ‘정조의 꿈, 孝 문화강국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전국불교청년대회로 열렸다.

 

 

환경운동을 한 시장과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 스님의 조우

 

11시가 넘어서면서 기온은 30도 가까이 올랐다.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땀이 흐른다. 야외무대 주변에는 나무들이 있다고 하나, 바람 한 점이 없는 날이다. 종이모자로 겨우 햇볕을 가렸다고는 하지만, 흐르는 땀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이다. 패널로 초대가 된 혜민스님이나 염태영 수원시장 두 인물이, 결코 평탄치 않은 세상을 살아왔기에 할 이야기도 많은 듯하다.

 

“저는 경제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막내 동생이 대학이 졸업하고 난 뒤 환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돈벌이를 하겠다고 생각을 했기에, 남들이 좋은 직장이라는 것을 떨치고 나온 것이죠. 그 후 10년 동안 급여 없는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 당시 여러분들이 조금 전에 지나 온 매향교서부터 지동교까지 복개를 한 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면서 반대운동을 펼친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고, 제가 시장이 된 후로는 수원천 살리기와 남수문 복원 등을 이루어내게 되었습니다. 남수문은 두 번의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 90년 만에 복원을 하였죠. 여러분들의 역사와 비슷합니다.”

 

수원을 찾은 대한불교청년회 회원들과의 대화를 하는 염태영수원시장(좌)과 혜민스님(가운데)

 

염태영 수원시장의 말에 대한불교청년회(이하 대불청) 회원들은 박수로 환호를 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받은 혜민스님은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곳이다. 딴 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갖고 평가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를 제일 먼저 물어본다. 그 사람의 실력하고는 관계없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를 더 중시한다. 이런 풍토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도 외로움을 느끼는가?

 

사회자의 질문에 염태영수원시장은 ‘당연히 외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연과 함께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친구들과 아울려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화성발물관 야외무대에서 패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대불청 회원들

 

“행정이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시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마음 같아서는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도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행정입니다. 그럴 때 제 마음과는 달리 서운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는 참 외롭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라는 대답이다.

 

외롭지 않는냐는 질문에 대해 혜민스님은

 

“내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런 뜻으로 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일을 잘 하려고 했던 것을 갖고 시기하고 질투를 하는 경우를 만나면 참 외롭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우리 마음에 있는 울분을 삭히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억울하고 힘이 들 때는 친구들과 대화를 한다. 친구들이야말로 가장 좋은 대화의 상대이다. 내가 억울한 사정을 가장 잘 들어주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동지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외롭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불필요한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염태영 수원시장

 

한 시간 여의 패널로 초청된 염태영수원시장과 혜민스님에 대한 공통적인 질문이 끝나고, 대불청 회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회원은 ‘가진자들에 대한 횡포로 인해 정신공해를 당했는데, 이럴 때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이 질문에 대해

 

“시민들의 표를 언어서 당선된 시장도 일종의 권력자이다, 하지만 정치인과 행정가는 다르다. 국회의원이라는 정치인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시장의 권력은 중앙에서 나누어 준 1%의 힘 밖에는 없다. 그런데 행정을 하는 시장은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주민들과 ‘느티나무 밑 대화’를 많이 한다. 그리고 늘 찾아다니면서 행정을 펼친다. 시민들의 사연을 듣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장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기에 시장에게 권력을 대해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헤민스님의 대답은 수행자이기 때문에 염태영시장의 대답과는 달랐다.

 

“나만 피해를 당하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피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고 상대방만 원망하고 미워한다면, 결국 그 피해를 보는 쪽 역시 나이다. 하기에 먼저 내가 왜 피해를 보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그 다음에 나를 스스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권력 앞에서 내가 그래도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의 대화를 마친 후 염태영수원시장은 대불청 회원들에게 수원을 자주 찾아줄 것을 부탁 한 뒤, 남원에서부터 새벽길을 나서 짜장봉사를 하러 온 사랑실은 짜장 운천스님’에게 고생이 많다면 위로의 말을 남겼다. 운천스님 또한 수원출신으로 후배이기 때문에 더 반갑다고 기념촬영까지 함께 했다. 스님짜장을 먹고 있던 한 회원은

 

 

짜장면을 먹기위해 늘어선 줄과, 염태영수원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운천스님 

 

“오늘 참으로 감명 깊은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인구 110만의 자치단체를 이끄는 시장님이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가 하면, 많은 법문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혜민스님과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한다. 무엇보다 남원서부터 수원까지 짜장봉사를 와 주신 운천스님과, 선원사 신도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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